#제79화. 사냥꾼 사냥
만경의 식수 공급처.
그곳에는 버려진 노동자들의 시체가 얼어붙어 있었다.
모두 세력에 물을 공급하다가 변을 당한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식수를 공급하는 일을 멈출 순 없었다.
물을 긷는 작업은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이뤄져야 했다.
오늘도 밤이 깊어지자 만경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시온의 정예대였다.
“…….”
“…….”
풀벌레와 모닥불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강변에는 놈들이 날린 화살이 꽂혀 있었고, 자라난 풀잎 사이로 작은 몬스터들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그 풀잎 사이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 한 명의 사람도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자세를 낮춘 시온의 정예대는 천천히 도하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인간 사냥꾼.
강변으로부터 200m가량 떨어진 건물의 옥상이었다.
아직까지도 하늘에는 아군의 기름병이 동안을 향해 날아들었으며, 그 아래로는 강시온의 정예대가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정예대 100명.
이들은 시온이 경찰 세력을 접수할 때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부대였다.
은밀하게 숨어서, 적의 뒤통수를 치고, 최명준에게 살인 기술을 배워 연마한 살인 집단.
이들의 준비는 철저했다.
달빛이나 횃불에 칼날이 반짝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검의 날을 모두 검은색 페인트로 도색했을 정도다.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사냥꾼’이었다.
* * *
만경과 동안, 두 세력의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사실상 타 세력을 이용한 교묘한 정치 전쟁은 시작되었다.
양측은 안양천이라는 천연 식수 자원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으며, 이제 그 칼끝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안양천을 바라보던 두 인간 사냥꾼은 말없이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껏 잔혹하게 만경의 노동자들을 화살로 쏴 죽이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다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선배 전에 제가 말했던 건…….”
“됐어. 이젠 잊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만 말해.”
“……네.”
멸망이 시작되고 나서 세상은 급변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삶의 의미가 달라졌다.
인간 사냥꾼 남자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필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수행한 것이었다.
멸망 전, 남자는 대학생이었다.
24살.
이젠 26살 언저리의 나이일 터다.
여자가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자, 남자는 전방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뭔가…… 같이 마음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랬던…… 거예요. 저도 가족들이 전부 죽었어요. 부모도, 동생도…… 근데 전 그냥 단순히.”
남자는 여전히 창틀에 기대 어두컴컴한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머리를 쥐며 조금 소리쳤다.
“아-! 모르겠어요. 그냥. 저 정말 이런 적 한 번도 없거든요? 근데…… 선배만 보면…….”
남자는 주먹에 핏대가 설 정도로 쥐었다.
그는 이어서 여자를 바라보며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근데 정말 진심이었어요. 전 정말……!”
하지만 여자를 바라본 남자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
꿀렁, 꿀렁.
그곳에는 목에 칼이 꽂힌 여자가 누군가에게 입을 틀어막히며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선배?”
남자의 동공이 마구잡이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여자의 뒤에 서 있던 장발의 남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
장발의 남자는 칼을 꽂아 넣은 채로, 씨익 웃었다.
“이야…… 로맨틱해라.”
간악한 뱀처럼 능글맞은 목소리.
그는 최명준이었다.
최명준은 여자의 목에 꽂힌 과도를 더욱 비틀기 시작했다.
상, 하, 상, 하.
최명준이 과도를 비틀 때마다 그녀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면서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여자의 입을 커다란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인간 사냥꾼 남자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주춤거리며 한 발자국 뒤로 빼내었다.
“지금껏 사람을 그렇게 잔혹하게 죽이면서 지들끼린 여기서 시시덕거리며 에로 영화나 찍고 있었던 거야?”
최명준은 피식피식 웃으며 기어이 여자의 목에서 과도를 뽑아냈다.
푸욱- 촤르르륵! 풀썩!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피를 머금으며 움찔거렸다.
아극.
최명준은 과도를 입에 물곤, 양 소매를 접기 시작했다.
그의 양손은 피로 가득했다.
최명준 앞에서 인간 사냥꾼 남자는 벌벌 떨며 반대편 벽면에 붙었다.
이곳에선 도망칠 곳도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박지수’의 명을 받은 동안의 전사였지만, 소속은 동안의 전사가 아니었다.
만안을 교란하기 위해선 동안 소속으로 괴롭혀선 안 되었기 때문이다.
최명준은 소매를 접은 뒤 과도를 쥐며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발요…… 저흰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이, 이러지 마. 제발!!!”
“이러지 마?”
덥썩-!
최명준은 남자의 머리칼을 쥐고선 들어 올렸다.
그러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명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
“왜 이러면 안 되는데?”
“……으……!”
“너희도 했으면서. 왜 나는 안 돼?”
“으아……!!!”
“왜…… 너희도 이렇게나 즐겼으면서, 나도 좀 즐기면 안 돼?”
툭.
그때, 최명준이 남자의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어땠어? 쾌감 쩔었지? 빨딱 서 버렸어? 사람 죽이는 거 말이야. 아-. 난 다른 건 모르겠는데, 살인할 때가 가장 죽여 주는 것 같아. 생각해 봐. 내가 죽이는 상대가…… 나처럼 태어났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싸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니까. 존나 쾌감 쩌는 거 있지? 한 명의 사람을 죽이는 건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아. 파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쾌락이라고 생각해 난. 그 정도야. 그…… 그…… 죽기 전에 질질 짜는 모습. 살려 달라고 비는 모습. 무력하게 추욱 늘어진 시체까지. 너도 그랬지? 너도 즐겼지? 같이 즐길래?”
탱그랑-.
최명준은 품에서 사시미 칼을 꺼내 남자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곤 그에게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최명준은 과도를 쥐고 있었고, 인간 사냥꾼 남자는 사시미 칼을 쥐고 있었다.
둘의 무기의 차이는 확실했다.
최명준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더 발악해 줘. 사냥할 맛 나게.”
“으으으……! 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사시미 칼을 쥔 남자가 최명준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을 죽이러 달려오는 남자를 보며 최명준은 웃었다.
“아, 그래. 그거야.”
푸욱-!
“으으…… 으랴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최명준이 사냥을 하는 동안, 정예대는 건물 곳곳을 마구잡이로 쏘다니고 있었다.
동안의 인간 사냥꾼들은 정예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정예대는 살인의 죄책감을 잊은 집단.
최명준에 의해 살인이 정당하다고 믿는 집단.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포식자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나 이렇게 좁은 건물 내부에서의 전투는 정예대에게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이미 이보다 더한 전투력을 지닌 경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었으니.
인간 사냥꾼들은 속속 피를 머금고 쓰러졌다.
이곳은 원래 복합 상가.
노래방,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유리문, 상가 안, 식당, 화장실까지.
인간 사냥꾼들의 피로 얼룩진 이곳은 그야말로 살육의 무대였다.
건물을 빙글 둘러싼 정예대 덕분에 건물을 탈출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절망에 빠져 심지어는 변기통에 머리를 박고 숨으려고 했다.
그것이 은신의 효과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것이다.
터벅, 터벅.
최명준은 인간 사냥꾼 남자의 목을 쥔 채, 복도를 걸었다.
“아그들아-! 한 명 정도는 산 채로 붙잡아야 한다? 목은 전부 잘라서 1층으로 가지고 오고!”
“예에-!!! 형님!”
최명준이 소리치자, 복도 이곳저곳에서 살인 행위를 벌이던 정예대가 소리쳤다.
1층까지 내려온 최명준이 겹겹이 모여 있는 목들 사이로 남자의 목을 훽 던져 놓았다.
그리고 중간에서 벌벌 떨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 근처에는 정예대 여자 한 명이 사냥꾼 여자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얘가 보낼 애야?”
최명준은 자연스레 담배를 물며 정예대 부하에게 물었다.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적당할 것 같습니다.”
“후우-.”
최명준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사냥꾼 여자에게 부딪혔다.
“흐…… 흐으…… 흐으…….”
최명준은 한동안 담배만 피우며 여자의 흐느낌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쪼그려 앉아 여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곳에 있는 단 한 명은 살려 보내라는 강시온의 명령이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죽이고, 한 명만 살려 보내라는 명령.
최명준은 시온의 그 명령을 들었다.
하지만 단 한 명만 살려 보내라는 의미로 이해하진 않았다.
최명준은 담배를 태우다 말했다.
“보내.”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부하들이 자루에 목을 담아 하나둘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로써 인간 사냥꾼 토벌 완료.
지금껏 꾸준하게 시온을 괴롭혀 왔던 식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 것이다.
“다 됐음, 가자.”
최명준은 임무를 완수하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간 건물 안에는 이제 목 없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 * *
동안을 향해 포격을 시작한 후로, 세 번째 아침 해가 떠올랐다.
이제 슬슬 반응이 올 터.
밤새 불타오른 불길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난 밤새 전장을 살피며 각 지휘관들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투석기는 완벽했고, 최명준의 정예대는 효과적으로 인간 사냥꾼을 토벌했다는 소식이다.
일차적인 계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으로 동안은 전쟁을 급하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안의 박지수는 전선을 둘로 나눌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선을 둘로 나누는 건, 미련한 짓이다.
독일도 일본도 모두 그렇게 패망했다.
학교 역사 시간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그 사실을 박지수가 모를 리는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박지수를 협상 테이블로 끌고 오는 것뿐.
그녀가 의왕보다 만안에 더 관심을 가져야만 무엇이든 진행할 수 있었다.
전쟁이든, 협력이든.
어쨌거나 이번 일은 대외적으로 보이기에는 만안의 제3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내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박지수가 모를 리가 없다.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시스템을 이해한 군주였으니까.
그녀와의 협상 테이블 마련을 위해 비산의 마담과 접촉했고, 결과적으론 성공했다.
마담은 박지수와의 회담을 주선하겠다고 거래했고, 두 번 다시 만안의 정보를 동안에게 팔지 않겠다고 했다.
계획은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작은 도미노였던 나의 작은 계획이, 이젠 거대한 세력의 수장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안양시를 내 손에 거머쥐는 날이.
그리고 오늘은 그 시작을 알리는 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군주님-!!!”
전령 한 명이 다급하게 옥상 문을 열며 들어왔다.
그는 달려와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숨을 헐떡였다.
“……무슨 일이시죠?”
“허억…… 허억……!”
전령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난 곁에 있던 텀블러의 뚜껑을 따서 전령에게 주었다.
전령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아, 감사합니다…… 허억…… 허억……!”
전령의 온몸은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언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전령은 허겁지겁 물을 들이켜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만경의…… 정문에…… 정문에……!”
전령의 말에 난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좋은 일이 벌어졌다.
“부장들을 불러 모으세요. 당장.”
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