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이중 작전 (3)
“……이건 아니죠?”
마담은 그 말을 뒤로 잔을 들었다.
그녀가 꼴딱거리며 소맥을 마시는 소리가 시온의 귓가에 맴돌았다.
전운이 감돌았다.
마담의 한마디에 환영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뒤바뀐 분위기에 시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둘의 관계 속에서 상하 관계는 확실했다.
시온이 위였고, 마담은 아래였다.
시온은 한 세력의 군주였고, 마담은 세력 군주 산하에 있던 대신급이었으니.
그런 마담이 군주에게 불만을 표현한 것이었다.
마담은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마담은 여타 다른 군주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담은 장사꾼이었다.
장사꾼은 손해를 입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 측 도박꾼 인력이 둘이나 죽었어요. 그것도 당신에게 말이죠. 그 둘은 꽤나 좋은 인력이었다고요? 도박은 우리 마을에선 최고의 즐길 거리이자 관광 거리니까. 근데 그런 전문가를 죽였으니, 저에게 돌아오는 손해는 어떡할 거죠? 이건 계산을 해야겠어요.”
비스킷을 하나 집어 든 마담은 그것을 반으로 부쉈다.
그리고 한 입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도발 행위로 받아들일 수밖엔 없군요. 갑자기 만안의 군주가 와서 우리 측 전문가를 죽였으니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처형하거나 단두대에 끌고가 죽이셨겠죠? 제가 그랬다면 말이에요.”
마담은 선술집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죽인 것을 탓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온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단지 그녀의 부하를 죽이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생각은 옳았다.
그로 인해 마담은 시온을 경계하고 있지만, 시온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담이 시온에 대해 아는 것처럼 시온 역시 마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턱.
시온은 담뱃갑 다섯 개를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비스킷을 손톱으로 조금씩 뜯어내고 있던 마담은 담뱃갑을 한 번 보더니 이내 미소를 보였다.
시온은 마담에게 담배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담배 한 갑이면 사람을 죽여 준다고 들었어. 그들은 나름 전문가니까 두당 두 갑. 남은 한 갑은 사과의 의미. 그리고 이건 우선 계약금이다.”
살인에 필요한 비용은 기껏해야 담배 한 갑.
이 세계에서 사람의 목숨은 담배 한 갑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 정도는 마담에게 인사치레로 건네줄 생각이었다.
중요한 건 이다음이었다.
지이이익-.
곁에 서 있던 진재희가 커다란 가방의 지퍼를 열어 검은 봉투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녀는 봉투 속에서 담배 보루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순간, 마담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턱, 턱, 턱, 턱, 턱!
담배 열 보루.
담배 이천 개비.
그들의 계산방식으로는 사람 목숨 백여 개의 돈이었다.
작은 세력은 통째로 살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한 돈.
게다가 이 열 보루는 계약금이었다.
“……!?”
끼익-.
깜짝 놀란 마담이 허리를 세웠다.
엄청난 돈이었다.
기본적으로 만경에 유통되는 화폐는 라이터였지만, 담배 역시 가치가 있었다.
대부분의 세력이 담배를 화폐로써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이곳의 주민들에게 담배 보루는 거대한 골드바나 다름없었다.
“아하하…… 아니. 뭐예요……?”
마담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까지 큰 거래.
리그가 시작된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마담에게 가장 큰 거래가 한 보루 수준이었으니.
“하하하하…… 아, 잠깐만요. 와-.”
방금 전까지 위협하던 언사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마담은 손을 깍지 껴선 손가락을 마구 움직여 댔다.
엄청난 거금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담은 철저한 장사꾼이다.
시온은 그런 장사꾼 기질을 이용했다.
동안의 군주와는 차원이 다른 금액을 제시하며, 마담과 협상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 군주님. 좋습니다. 좋아요. 완벽합니다. 말씀해보세요. 저랑 어떤 거래를 원하시죠?”
이제 마담은 앞서 죽은 도박꾼들에 대해서는 까먹은 듯 보였다.
결국 시온은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내 제안은 단 두 가지.”
시온은 차분하게 두 가지 조건에 대해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안 세력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도 동안의 군주에게 넘기지 않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마담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을 들은 마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 * *
마담과의 거래가 끝난 뒤, 시온과 재희는 다시 만경으로 돌아왔다.
만경에서 경찰서 건물은 주민들에게 있어선 황제의 궁이었다.
그 누구도 서에 들어갈 수 없었고, 허락된 자에 한해서만 입장이 가능했다.
그것도 경찰서 4층 이상부터는 허락된 자들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경비는 삼엄했다.
4층부터 5층.
두 개 층이 모두 시온의 개인 집무실이었다.
그곳에는 시온만의 시설들로 가득했다.
샤워, 목욕, 식당, 서점, 개인 공간, 금고까지.
하나같이 부장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시온은 집무실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했으나, 부장들의 의견은 달랐다.
강시온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군주의 개념을 넘어섰다.
주민들은 강시온이 곧 세력이라고 생각했고, 시온이 무너지는 건 곧 자신들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시온이 세력이고, 세력이 곧 강시온이었다.
군주 한 명에게 몰린 지지율이 그의 세력을 이렇게 만들었다.
군주 강시온이 무너지는 날, 만경의 주민들 역시 파도 앞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그러니 부장들은 시온의 안전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사실 부장들은 강시온이 세력 밖으로 나가는 것에도 부정적이었다.
위험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들을 시온이 아니었다.
이렇게 비산까지 다녀온 날이면 부장들은 난리가 났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자꾸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진재희 씨가 붙어 다닌다고 해도…….”
“우선, 검진부터 받으시죠. 선생님이 대기 중입니다.”
기나긴 경찰서 복도를 걷는 시온의 뒤에는 꼬리처럼 부장과 부부장들이 따라붙었다.
시온은 그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금고로 향했다.
부장들의 생각이 어떠한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되었다.
시온은 금고 방에 도착해 안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었다.
열쇠 더미.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방은 열쇠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열쇠는 시온과 부장들만이 가지고 있었다.
시온은 벙거지 모자를 벗어 겨드랑이에 끼곤, 열쇠 더미에서 금고 방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차락, 차락.
열쇠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보고는 언제 들으실 겁니까? 관리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질서 부장이었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전히 열쇠를 찾고 있었던 시온은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보고를 들을 필요가 있습니까. 잘해 주시고 있지 않으십니까.”
실제로 일일이 보고를 받지 않아도, 부장들과 임원들의 능력은 출중했다.
그야 그럴 것이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시온에 의해 직접 지명된 인물들이었으니까.
여기까지 세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각 분야 부장들의 역할이 컸다.
철컥- 딸각.
열쇠를 찾은 시온은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은 뒤 돌렸다.
끼이이익…….
낡은 철제문이 요란한 경첩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시온은 그들을 돌아보았다.
“당분간 내정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꼭 필요한 정보만 저에게 보고 올리세요. 그걸 위해 당신들이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전쟁 물자를 준비해 주세요.”
“전쟁 물자라고 하시면.”
“식량, 식수, 무기, 훈련. 그것들입니다.”
“군주님. 그렇다면 그 시기를 알려 주십시오. 동안과의 전면전을 시작한다면 그에 따라 세력의 생산 품목을 바꾸고 효율을 높이겠습니다.”
동안과의 전면전.
그건 피할 수 없는 미래였다.
그 사실 역시 부장들도 인지하고 있었다.
시온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내 대답했다.
“……빠른 시일 내.”
끼이이익…….
철제문이 열리며, 안의 내용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 안 가득 쌓인 담배 보루들.
총 1,305보루.
낱개로는 261,000개비.
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진재희가 모으기 시작했던 담배들이었다.
진재희는 이미 담배가 황금보다 더 귀해질 것을 알고 있었고, 지난 1년 반 동안 꾸준하게 그를 위해 담배를 모았다.
담배의 가격이 낮을 때, 편의점이나 마트만 수색해도 몇십 보루씩 나올 때부터 모아 두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1,305보루였다.
덕분에 시온은 다른 군주들에 비해 재정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마담이 담배 열 보루를 받고 눈이 돌아갔다면, 시온에게 담배 열 보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툭, 툭.
시온은 가방에 들어 있던 담배 보루를 다시 금고 안에 쌓아 올렸다.
마담과의 거래를 하고 남은 잔여 담배들이었다.
* * *
시온이 생각해 낸 ‘강’을 차지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만경이 직접적으로 동안의 전사들과 부딪히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만안 제3세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안 제3세력에 전투 병력을 지원해, 동안구를 견제하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 사냥꾼들을 ‘사냥’하는 것.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안의 군주 박지수는 만경을 의심할 터였다.
박지수가 만경이 제3세력을 지원했다고 의심하면, 그때부터 전면전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온은 만안 제3세력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시온은 박지수의 눈을 피해 적의 핵심 병력을 토벌할 수 있을 터.
정치를 이용해 확실한 이득을 챙기는 셈이었다.
시온은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적을 교란하고 있었다.
이중 작전.
대외적으로는 제3세력과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제3세력과 손을 잡아 동안구를 궤멸시키는 것.
이로써 시온은 강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 작전의 중심은 최명준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공격은 시작될 것이다.
* * *
“공격 준비 끝났습니다.”
파란 완장의 지휘관 한 명이 시온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시온은 앉은 상태에서 대답했다.
“시작해.”
“예.”
지휘관은 병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시온의 명령에 경찰서 옥상에 있었던, 만경의 병사가 손전등을 켰다.
그러고는 손가락 그림자를 만들어 반대편 건물 벽면에 비추었다.
그러자 거대한 손그림자가 건물에 문양을 만들어 냈다.
그걸 확인한 또 다른 수신병이 똑같은 문양을 건너편 건물 벽면에 비추길 반복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세 명. 릴레이 형식으로.
수신병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 군주의 명령을 재빠르게 작전 지역에 전달했다.
마치 조선 시대의 봉화처럼.
이와 같은 수신은 빠르게 작전 지역까지 임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밤에만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결국, 그림자를 이용한 수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작전 시작은 야심한 밤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만안 제3세력에 주둔하던 최명준은 건물 벽면에 비추어진, 수신호를 확인했다.
주먹을 쥐어, 두 개를 맞댄 모습.
군주의 공격 명령이었다.
최명준은 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버려 비벼 껐다.
그의 뒤론 완전 무장한 정예대 100명과 세 개의 투석기가 있었다.
“자- 드가자.”
“예!”
병사들은 시내버스에 탑재된 투석기 기둥을 뒤로 내려 전봇대로 창틀 사이에 끼워 넣으며 고정시켰다.
그리고 유리병을 가득 담은 자루를 쥐고선 투석기에 올려두었다.
지휘자가 소리쳤다.
“사격 준비 끝!”
“발사.”
“발사!”
칙-.
최명준은 라이터를 켜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가 아무리 비싸진다고 할지라도 최명준은 담배를 끊지 못했다.
후우-.
그가 내뱉는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투석들이 쏘아졌다.
추우욱- 촤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유리병들이 안양시 밤하늘에 떠올랐다.
목표 지점은 동안과 만안의 접경지대.
비산동과 가까운 동안의 방어 세력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