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이중 작전 (2)
만안의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자, 동안의 전사들은 국경에 경비를 대폭 증가시켰다.
건물 곳곳에 감시자를 심어 두어 만안구를 감시하거나, 그들이 함부로 안양천을 넘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안양시에는 단순히 세력에 속하는 생존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들의 가족들과 함께 아직까지도 구조대를 기다리는 족속.
마찬가지로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의 너머를 오가며 여러 세력을 돌아다니는 족속.
사람들은 그들을 모두 방랑자라고 불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어느 세력에도 포함되지 않고, 무너진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강을 중심으로 판자촌을 형성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동안이 접수하고 있는 안양천에는 이처럼 불특정 다수가 살아가는 공간이 있었다.
만안과 동안 사이의 지역, 비산.
이곳은 마담이 지배하는 지역으로 온갖 도박과 성매매,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구역상으로는 동안의 영역이었다.
밤.
어둠밖에 없는 비산 도시 곳곳에서 횃불과 모닥불 빛이 밝아졌다.
물을 긷는 동안의 노동력들과 전사들, 그리고 방랑자들이 쥐 고기를 뜯어먹거나 도박을 벌이고 있었다.
말린 쥐 꼬리를 육포처럼 질겅거리며 씹던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는 근처에 있던 여자에게 다가가 옷자락을 잡았다.
여자는 담배를 걸고 도박을 벌이고 있었다.
“엄마. 엄마. 별똥별.”
아이가 옷자락을 당기는데도 여자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아이는 더욱 세차게 옷자락을 흔들었다.
“엄마, 엄마! 별똥별……!”
“아잇-! 시끄러워!”
훽-!
여자는 아이를 매몰차게 내팽개쳤다.
그러자 여자와 도박판을 벌이던 남자 셋은 낄낄 웃어 댔다.
그리곤 판을 바라보며 혀를 굴려 댔다.
“누나. 어쩌나? 푸흐흐흡……! 광박에, 멍박, 피박. 대충 봐도 저기에 모인 담배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 어떡해?”
도박판 옆에는 담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멸망한 뒤로 담배 생산이 중단되자, 대부분의 세력들은 담배를 ‘화폐’로서 활용하고 있었다.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방랑자들도 이처럼 담배를 가지고 물물 교환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박과 더불어 성매매도 담배로 거래할 수 있었다.
국가가 무너진 뒤로는 다시 원시적인 시기가 도래했다.
만약 여자가 이 판에서 판돈을 만회하지 못한다면 자신과 아이, 둘 다 꼼짝없이 노예로 팔려야만 했다.
남자는 자신의 패에서 비광을 꺼내 여자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판에는 비 3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떡해……? 응? 푸하하하…… 아, 그러니까. 적당히 하셨어야죠.”
“……기다려. 기다려. 아, 안 졌어.”
“하하. 아, 참나. 일단 피 하나 주시고.”
남자는 담배 한 개비를 쥐고선 피우기 시작했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도박판에 퍼져 나갔다.
남자는 벌벌 떨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낄낄거리며 훈수하는 듯이.
“알아요? 세상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근데 말이야. 난 X발, 그게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어. 포기할 줄도 알아야, 다음 레벨도 올라가는 거지. 끝까지 포기 안 하다가 인생 나락 가는 거야~ 누나.”
덜덜덜.
여자는 조심스럽게 매화 피를 꺼내었다.
그녀가 살 방법은 매화 홍단을 먹어 점수를 내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자의 희미한 희망을 남자는 철저하게 짓밟았다.
타악-.
남자는 이마에 매화 홍띠를 붙였다.
“내가 이걸 내줄 것 같아……?”
“아…….”
여자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었다.
“푸하하하하! ……어이쿠, 떨어졌네.”
타악-!
남자는 떨어진 매화 홍띠를 다시 이마에 붙였다.
게임은 끝났다.
여자는 모든 인생을 걸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
여자는 도박을 통해 모든 것을 만회하려고 했지만 결국 얻은 건 없었다.
“자~ 애는 마담에게 데려가고 여자는 가져다 팔아 버려.”
“예- 형님!”
남자의 패거리들이 여자의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여자는 곧장 엎드려 남자의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아-, 아! 기다려. 기다려! 아이는 같이 있게 해 줘. 제발 부탁할게……!”
“저기요. 아니, 프로답지 않게 왜 이래? 정말. X바. 애를 어떻게 데리고 다녀요. 네?”
타악, 타악.
남자는 쪼그려선 여자의 뺨을 살짝씩 치며 말했다.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을 맺었다.
“……우리 사모님은 이제 바빠질 텐데.”
노예로 팔려 가서 바빠진다는 건, 암울한 미래를 의미한다.
인권도 법도 없는 이 세계에서 노예가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리고 소수의 플레이어, 그러니까 이 세계에선 강자라고 손꼽히는 몇몇 사람들은 노예를 사들이고 있었다.
남자와 패거리는 그 노예상이었고.
“아…….”
“일단 몸에 있는 털부터 싹-. 밀어야겠다. 이번 거래처의 그분은 털을 싫어하시거든? 우린 왁싱 같은 건 할 줄 몰라서 요걸로 한땀 한땀 손수 하거든.”
남자는 면도기와 가위를 들고 위협했다.
“제발…… 아들만은……”
“아직도 아들 타령이야. 그그 아가리를 X발, 생각이란 걸 뇌에 거치시고 말하세요. 예? 안 된다고!”
“꺄악-!”
남자는 여자의 입술을 쥐어 잡곤 옆으로 쓰러트렸다.
힘없이 쓰러진 여자를 두고 남자는 실실 웃어 댔다.
게다가 여자의 아들은 남자의 부하에게 안겨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 정리 다 됐음 가자~”
패거리는 여자를 포박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팔려 갈 운명이었다.
어느 시대이든 도박꾼은 언제나 비참한 미래를 맞이한다.
물론.
그건 여자를 상대했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의 웃음소리가 선술집 가득 울려 퍼졌다.
슉-.
그리고 순식간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처음에는 날파리가 다가온 줄 알았다.
하지만 남자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남자는 자신의 목에 흐르는 피를 확인하곤, 슥슥 계속해서 피를 닦아 냈다.
하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다.
스친 줄 알았던 구체가 남자의 목을 관통했던 것이다.
“어……? 어? 어어? 어? 어라?”
두려움에 질린 남자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남자의 시선은 선술집 한 편에서 말없이 앉아 있던 소년에게로 꽂혔다.
그 곁에는 검은 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소년은 검정색 벙거지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소년은 강시온이었다.
이 공간에는 남자의 패거리, 여자와 아이 그리고 저 소년뿐이었기에 자연스레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너…… 너……?”
휘청- 풀썩!
남자는 곧장 옆으로 쓰러졌다.
피를 많이 흘려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의 부하들은 곧장 식칼을 꺼냈다.
“뭐, 뭐야!!!”
“너 누구야!”
부하들은 주춤거리면서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부하의 손에 잡혀 있던 아이는 단번에 벗어나 도박꾼 여자에게 달려갔다.
시온의 공격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이곳에는 시온의 구체가 가득했다.
“하아…… 하아…… 흐으……!”
도박꾼 여자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머금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용기를 낸 패거리 남자가 시온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티팩트가 개방되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일반인이 플레이어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파바바바박! 쿠웅!
패거리 남자는 시온의 구체에 온몸에 벌집이 되어 옆으로 쓰러졌다.
시온이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 한 일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벌떡-!
그때, 시온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은 패거리 남자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재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히…… 히익……!”
딸그랑-!
남자는 잔뜩 겁먹어서는 식칼도 놓은 채, 뒤로 자빠졌다.
시온이 더 다가오자, 그는 눈물을 머금으며 빌었다.
“사, 사, 살려 주십시오……! 담배라면 얼마든지 드릴 테니.”
남자의 시야 속 시온은 공포 그 자체였다.
벙거지 모자를 쓴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온의 눈동자.
그 압도적인 위용에 남자는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어이 남자는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졸졸졸-.
오줌이 바닥을 적셔 갔다.
그리고 그에게 시온은 말했다.
“거래처의 그분이라고?”
“……네, 네?”
“그분이라면 이곳의 마담을 말하는 건가?”
“네, 네, 네…… 네네!”
남자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들어 시온을 바라보았다.
시온은 벙거지 모자를 벗어들며 말했다.
그는 감정 없는 눈동자로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가서 전해.”
“예…… 예! 살려 주신다면…… 무, 무엇이든……!”
패거리 남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온은 말을 맺었다.
“만안의 군주가 보기를 원한다고.”
* * *
안양시 비산동은 만안구와 동안구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에 있던 비산대교는 두 지역 사이를 잇는 다리였다.
원래 시온은 비산동에 있는 마트로부터 이곳 만안구까지 넘어왔었다.
지금 비산동은 동안구의 소유였다.
비산동을 지배하는 마담은 인신매매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동안의 군주 산하에 있었다.
산하에 있다고 해도 마담은 독자적인 마을과 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시스템상 칙령의 힘만 없었을 뿐이지 독자적인 군주라고 보는 방랑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마담에게도 만안의 군주, 강시온은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보기 위해 친히 찾아왔다니.
“…….”
구미가 당길 수밖에.
복도에 일정한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이곳은 원래 시온이 첫 번째 라운드를 치렀던 쇼핑몰.
시온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마담을 만나기 위해서.
덜컹-!
“아-! 반가워요. 아이고~”
마담은 강시온이 기다리고 있는 방문을 열며 들어왔다.
방 전체가 가득 찼다고 느낄 정도로 풍만한 몸뚱이.
마담은 천천히 걸어가 시온의 반대편에 앉았다.
삐걱.
마담이 의자에 앉자, 그녀를 수발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녀의 입술에 담배를 물려 주었다.
“대단한 사람이 왔다길래, 놀이도 그만두고 금방 찾아왔습니다. 하이고-. 근데 만안의 1세력 군주께서 뭐가 아쉬워서 저에게 찾아오셨을까요.”
마담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었다.
이 세력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존재였다.
그녀의 힘은 대단했다.
비산동은 안양의 교통 요충지로서 많은 방랑자들이 오가는 공간이다.
즉, 각 도시에서 몰려드는 플레이어와 전문가들, 훌륭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용병이나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단체인 셈이다.
물론 안양시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 시장에서 일어나는 건 대부분이 도박과 성매매였지만, 곳곳을 살펴보면 특유의 먹거리 문화도 있고, 많은 생산품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만경과 무역을 하는 방랑자들 중에도 이곳 출신이 많았다.
그때, 마담의 부하들이 시온의 책상 앞에 무언가를 세팅해 주었다.
글라스 한 잔, 휴지 한 조각, 지포 라이터 하나, 담배 세 개비, 비스킷 과자 다섯 개.
그들은 그 모든 것을 흐트러짐 없이 정갈하게 책상에 올려 두었고, 소주와 맥주를 시온의 글라스에 따라 쇠젓가락으로 섞어 주었다.
시온의 앞에 놓인 것과 동일한 것들이 마담의 책상에도 세팅되었다.
세력의 우두머리 대 우두머리로서 예우를 갖춘 것이었다.
이 시대에 술과 담배는 그야말로 최고의 사치품이었으니.
마담은 자신의 소맥 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마셔요. 제 부하가 소맥 비율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요. 하여튼 반가워요. 시온 님. 저흰 당신을 환영합니다.”
꼴딱꼴딱-.
마담은 소맥 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시온은 그녀와 어울려 주기 위해 자신의 소맥을 단번에 들이켰다.
시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잔을 내려놓고선 물었다.
“근데. 나와 이렇게 쉽게 만나도 되는 겁니까? 동안의 군주가 알게 되면…….”
사실 시온은 마담과 만나는 건 꽤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마담은 아무래도 동안구 세력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린 것이었다.
“아-. 걱정 마세요. 별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당신과 만나 이상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동안의 군주는 지금 전쟁 중이라 바쁘고…… 아! 지금은 뭐, 부상당했다고 하던데요?”
그 말 뒤로 마담은 입을 가리고 웃어 댔다.
졸졸졸.
시온의 글라스에 또다시 소맥이 따라졌다.
맥주 거품이 글라스 가득 차올랐다.
거품 사이로 다시 소주가 물줄기를 이루며 파고들었다.
“근데, 만안의 군주님에게 관심은 언제나 많았어요. 뭐…… 전 군주의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플레이어도 아니니까. 내세울 만한 건 장사 스킬? 그러니까 동안의 군주에게 붙어서 신변을 보호받는 중이었죠. 아-, 아. 그러니까 절 너무 경계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전 군주님이 좋거든요.”
꼴딱- 꼴딱-.
마담은 벌써 세 번째 잔을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현대로 따지자면 그녀는 벌써 15만 원어치 술을 마신 셈이었다.
“교량, 보일러, 물레방아, 수레, 도시 뭐…… 등등. 당신이 이룬 업적들은 감탄할 정도니까요. 아, 정말이지. 당신의 세력 규모가 동안의 반만 따라갔더라도 단번에 당신에게 붙었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시온은 두 번째 잔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마담과 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시온 님을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고,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완전히 제 스타거든요. 하여튼 뭐, 그건 그런거고…… 하아.”
툭.
그때, 마담은 표정을 순식간에 거두었다.
그리고 시온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근데, 이건 경우가 아니죠?”
그리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마담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철저히 장사꾼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