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75화 (75/221)

#제75화. 이중 작전 (1)

시온은 만안 제3세력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로 인해 동안 제1세력, 전사들의 여왕 박지수 역시 전쟁 상황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시온이 원했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박지수가 만경과 3세력의 관계를 알게 하는 것.

“현 시간부로 만경은 3세력과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싸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단지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다는 관계일 뿐이니까요.”

시온의 말에 몇몇 부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쥐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이렇게 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결국 모든 건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온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남자였다.

“우린 강을 차지할 겁니다.”

시온은 타고난 지략가였다.

그리고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그의 작전 계획은, 곧 모두를 납득시켰다.

아니, 납득 그 이상이었다.

모두가 시온의 계획에 감탄하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찬양할 만큼, 그의 계획은 완벽했기 때문이다.

* * *

드르륵. 드르륵…….

나는 오우거가 끌고 있는 1톤 트럭에 탑승하고 있었다.

오우거는 긴 밧줄로 트럭의 앞부분을 묶고, 그것을 짊어진 채 앞으로 나아갔다.

오우거 트럭.

이곳에서는 훌륭한 이동 수단이었다.

오우거는 걷기만 해도 눈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육중한 육체를 지녔다.

덜컹거리며 몸이 일정하게 흔들렸다.

난 트럭의 벽면에 기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담배 냄새, 옅은 피 냄새 그리고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

경찰서를 접수하고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사이 눈은 많이 녹았고, 도시 곳곳에는 초록빛의 외계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식물은 주민들에게 새로운 음식 거리를 제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외계 생명체는 새로운 단백질원이 되었다.

1년 사이.

정확히는 1년 반 사이, 세계는 급변했다.

세계는 눈으로 뒤덮였고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세력이 속속 등장했다.

물론 눈이 녹는다고 해서 물바다가 되는 일은 없었다.

진재희의 말에 따르자면, 이곳에서 발생한 눈은 기존 지구 환경의 눈과는 속성이 달라서 지구가 물바다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2라운드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지금은 눈을 녹이며 식수를 어찌어찌 공급하고 있지만, 만약 3라운드가 되기 전에 강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세력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랬기에 이번 작전이 필요했다.

이번 작전을 통해 식수 보급처를 확보하고 동안구와의 전쟁을 가속화할 것이다.

동안구와의 전쟁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대규모 살상이 벌어질 것이다.

각 부대의 부대장과 통솔 능력, 병사들의 개인 훈련 장비도 검토해야만 했다.

우리는 이 리그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서로 죽이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세상이 피로 뒤덮이는 그 날까지.

“…….”

눈을 감고 흔들거리는 트럭 안에서 잠을 청했다.

요즘 도통 잠을 편하게 자지 못했던 탓이다.

난 몰려드는 졸음을 쫓지 않았다.

오랫동안 도시에 정박하여, 안전하게 생활하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곳은 야생.

인간은 피식의 존재라는 것을.

“……위험.”

진재희의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난 그 목소리에 눈동자를 조금 떴고, 이내 그녀의 시선이 꽂힌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옛날에 놀이터로 사용되던 공원이었다.

아직까지 그곳에는 놀이터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미끄럼틀은 거대한 뱀이 휘감고 있었다.

-쭈아압, 쫘아압.

뱀의 가죽은 회색빛이 돌고 있었고, 기다란 털이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크기가 거대해서 얼핏 보면 용 같았지만, 생김새를 뜯어보면 뱀이었다.

팔과 다리가 없었으니.

질겅- 질겅-.

그리고 뱀의 입에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두 다리가 빠져나와 씰룩거리고 있었다.

뱀은 지나가는 이쪽 무리를 주시하고 있었고, 입은 계속해서 오물거리며 두 다리를 씹어 대고 있었다.

이쪽으로 다가올 것 같진 않았다.

이쪽에는 오우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놈들의 생태계에도 위협적인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

약육강식의 균형이 잡혀 있었다.

오우거는 그들 생태계에서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허나, 뱀의 눈빛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놈은 머리를 꼿꼿하게 세워선 우에서 좌로 움직였다.

아마 이곳에 오우거가 없었더라면, 단번에 달려들었을 것이다.

“…….”

흥미를 잃은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동하는 시간만이라도 마음 편히 쉬고 싶었다.

* * *

밤이 되자, 이제 만경에는 횃불이 거리를 밝혀 주었다.

“군주님 오십니다-!”

군주의 등장에 병사들이 중앙 거리를 통제했다.

“군주님……!”

“군주님이다……!”

“아, 군주님!!”

시온이 도시에 들어서자, 주민들은 너도나도 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중앙길을 따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에게 시온은 군주 그 이상의 존재였다.

쿵…… 쿵……!

오우거가 트럭을 끌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곧 옛 만안 경찰서 건물 앞에 도착했다.

“…….”

시온은 경찰서 앞에 도착한 후, 트럭에서 내려 가볍게 몸을 풀었다.

“군주님……!”

“군주님!!! 아, 군주님!”

우르르-!

주민들이 순식간에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먹을 것이나, 사치품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주민들이 더 이상 시온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고, 시온은 인사치레 없이 경찰서로 올랐다.

그가 경찰서로 올라간 뒤로도 군중들은 그곳에 모여 환호하고 있었다.

군중 사이에는 경기 북부에서부터 내려왔던 방랑자 최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최현지 옆에는 며칠 동안 그녀를 감시하던 만경의 사무관 하윤하도 함께였다.

하윤하는 며칠 동안 최현지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는 시온이 임명한 사무관의 의무이기도 했다.

“하아…… 군주님.”

하윤하는 똘망똘망한 눈매를 하고선 강시온이 들어간 경찰서를 기웃거리며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최현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시온에 대해 거의 광신도에 가까울 정도의 지지를 보였다.

왜 그럴까.

강시온이라는 군주는 도대체 어떤 일을 벌여 온 것일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최현지가 강시온을 처음 본 첫인상은 그냥…….

‘……급식?’

사실 이 모든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외관이었다.

단순히 잘생기고, 못생기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최현지는 적어도 이곳의 군주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높은 등급의 플레이어로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온의 곁에 있던 여자에게서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이 세력의 비밀. 아- 너무 궁금하잖아.’

최현지는 입맛을 다셨다.

터억-.

최현지는 곁에 있던 하윤하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하윤하는 깜짝 놀라선 최현지를 돌아보았고, 최현지는 소녀를 보며 실실 웃었다.

“사무관님. 나 저분 만나고 싶어요. 방법 없어요?”

“…….”

하윤하의 눈동자가 최현지를 한 번,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한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녀의 손을 차갑게 내쳤다.

“관둬. 일반 주민도 군주님을 뵙는 건 어려운 일이야. 아니, 아예 불가능한 일이지. 군주님이 얼마나 바쁜데…… 게다가 넌 방랑자잖아?”

“흠…….”

경찰서 앞에 모여 있던 군중들이 하나둘 흩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최현지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어 말했다.

“제가 군주님도 혹할 만한 정보를 알고 있다면요?”

“흥. 그걸 누가 믿어?”

“진짜예요. 전 증거도 있는걸요?”

“……만약 정말 그런 정보가 있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군주님을 만나 뵐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군주님은 불철주야 우리를 위해 일하느라 바쁘시거든. 자, 외출 시간 끝났어. 이제 가서 자.”

훽-.

그 말을 뒤로 하윤하는 차갑게 돌아섰다.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최현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광적이네. 광적. 사람을 저렇게 광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건가. ……북쪽의 돼지 새끼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최현지는 헐레벌떡 뒤돌아 가는 하윤하의 곁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럼 부장은 만날 수 있죠? 세력을 이루는 핵심 부장들? 질서 부장님은 주민 차원에서 만나 뵐 수 있다고 들었는데. 신문고였나? 사무관님이 요청해 준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우뚝.

그 소리에, 하윤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최현지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은 부장에 대해, 최현지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질서부에서 규정한 정책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곳에 온 지는 겨우 하루밖에 안 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정보력이었다.

‘방랑자는…… 방랑자라는 건가.’

정보로 먹고사는 플레이어들.

횃불이 간간이 비추는 어두운 밤거리 속에서, 최현지는 타인과 다르게 타이트한 찢어진 청바지와 흰 반팔 티, 라이더 재킷, 그리고 워커를 신고 있었다.

얼핏 보면 혼자서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춥지도 않은지, 외투도 걸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있진 않았다.

하여튼 최연지는 무언가 달랐다.

이곳의 주민과는.

“멋대로 해. 할 수 있다면. 그래도 군주님을 뵙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래 봐야 방랑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윤하는 그녀가 불러일으킬 파장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자, 최현지는 웃어 보이며 소녀에게 경례했다.

“네- 엡. 급식 사무관님!”

“그렇게 부르지 마!”

하윤하는 잔뜩 성질을 내고는 성큼성큼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최현지는 실실 웃었다.

“귀엽네.”

그러곤 다시 방랑자 숙소로 들어갔다.

만경의 통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지경(地京), 동안 제1세력이 새로운 도시의 이름을 선포할 때 지어진 이름이다.

그리고 지경은 지난 1년 동안 무수한 발전을 이룩했다.

지경이 타 지역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는, 첫 번째는 군주 박지수가 동안구를 빠르게 통일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동안구에는 거대한 생산 공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가 멸망한 뒤로 사람들에게 ‘사치품’이라는 개념은 뒤바뀌었다.

기존의 사치품이라고 하면 금, 보석, 명품 브랜드, 고급 식재료, 모피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사치품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문명의 생산품’이었다.

라면, 통조림, 탄산음료, 가공식품, 손전등, 건전지, 카세트, 약품, 담배 등이 사치품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생산 공장이 돌아가지 않자 인간들의 사치 품목이 뒤바뀐 것이다.

그리고 지경이 가지고 있는 생산 공장에는 수많은 사치품이 저장되어 있었다.

이는 타 지역 군주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요소였다.

즉, 지경은 지금 전쟁터였다.

마치 국제 정세에 한반도와 같은 위치였다.

그들은 많은 전투를 치렀고, 지금도 역시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푹……! 푸슈우우우웃!!!

들것에 실린 박지수의 어깨에서 새빨간 핏줄기가 치솟고 있었다.

지경의 뛰어난 의사들이 한데 모여 군주를 수술대로 옮기고 있었다.

“빨리! 빨리……!”

“서둘러!”

덜컹-!

변변한 장비도 없는 수술대였지만, 어깨에 박힌 화살을 빼내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수술 바로 시작해.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어……!”

“이봐 정 간호사……! 뭐 해, 빨리!”

대학교 병원 수술대.

그곳에는 전등이 피를 흘리고 있는 박지수를 비추었다.

전등과 약품은 사치품 중에서도 최고가였다.

하지만 박지수를 살리기 위해선, 그깟 사치품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수술 준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그때.

“우으으으…… 으으으……!!! 으아아아아악!!!!”

푸슛-! 주르르르륵……!

수술을 준비하던 의사와 간호사는 깜짝 놀랐다.

수술대 위에 올라 있던 박지수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더니, 자신의 어깨에 박혀 있던 화살을 뽑아내었다.

피가 사방으로 터져, 전등까지 튀었다.

그녀는 이를 문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달랐다.

박지수는 흰자위를 드러내고 핏대를 세운 채, 주먹에 힘을 주었다.

피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온몸에 힘이 없더라도.

그녀의 의지와 갈망, 분노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그 새끼……!!!!!!!”

군주의 분노 앞에 의사와 간호사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지경과 의왕 세력이 전쟁을 벌인 지 4개월.

이젠 이 전쟁을 끝내야만 했다.

물자와 인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기 때문이다.

분노에 치를 떨고 있는 그때, 박지수의 눈앞에 또다시 거슬리는 알림 창이 떠올랐다.

[만안 제1세력과 제3세력 간의 전쟁이 선포되었습니다!]

그건 단순히 제3세력이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넘어, 만안의 제1세력에 예의 주시하고 있던 그 남자.

강시온.

그의 세력이 기어이 정복전을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후우…… 후우…… 후우…….”

박지수는 피를 흘리며 숨을 몰아쉬면서도, 또렷하게 그 알림 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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