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도시 속의 도시: 방랑자의 경우 (2)
“절대 안 된다라…….”
최현지가 숙박비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노파는 군주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깨작. 깨작.
최현지는 테이블 앞에 앉아 젓가락으로 음식을 휘적거렸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정체불명의 음식을 들어 올렸다.
“뭐야, 이건?”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생존자들은 더 이상 기존 문명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라운드가 진행됨에 따라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생존자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영양분을 보충했다.
여러 세력을 다녀왔던, 최현지에게조차도 지금 눈앞에 집어 든 이 음식은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었다.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버무린 스노우 네펜데스의 촉수 무침……?
생긴 건 파의 뿌리처럼 생겼지만, 돼지 껍질처럼 듬성듬성 잔털이 있었다.
김치와 비슷한 방식으로 양념 되었기 때문이다.
최현지는 인상을 구기며 기어이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꼴딱-.
식감은 민들레 씨가 잔뜩 붙어 있는 기다란 오돌뼈를 씹는 것 같았지만, 고춧가루가 팍팍 뿌려진 덕분에 친숙한 맛이 나긴 했다.
‘진짜 한국인들은 뭐든 김치로 만들고 보는구나.’
설마 몬스터의 부산물까지 김장해서 먹을 줄이야.
그 밖에도 고구마 으깬 뭉치, 양념 쥐 고기 셋, 쥐 뼈를 푹 고아 만든 사골국 한 사발.
이렇게 나온 한 상이 이곳 주민들의 일반식이었다.
쥐 고기는 다른 세력에서도 많이 먹어 봐서 이젠 익숙했다.
쥐는 번식력이 좋고, 키우기도 쉽고, 무엇보다 훌륭한 단백질원이다.
질기긴 하지만, 고소하고 특유의 향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최현지는 쥐 고기 육포를 씹어 대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주민들은 휴일을 맞아,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몇몇은 드럼통에 마른 판자를 집어넣고, 아이들은 거리를 쏘다니고, 마을의 아낙네들은 저마다 모여 수상한 액체가 담긴 컵을 마시고 있었다.
‘평화롭고, 체계적이지만 뭔가 이색적인 분위기.’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보여주기식 평화가, 그렇게 보여주기식도 못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금껏 최현지가 보았던 다른 세력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적어도 이곳에는 ‘웃음’이 있었다.
‘어쩌면 이 세력의 군주가 3라운드를 좌지우지할 플레이어일지도 모르겠어. 도대체 누구지?’
기본적으로 군주와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트레이딩 마켓은 ‘익명’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곳의 군주를 특정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유명한 상품을 올리는 곳이라면 대충 유추할 순 있을 것이다.
‘어디…… 이 군주는 어떤 발명품을 만들었나.’
군주가 트레이딩 마켓을 사용하지 않을 리는 없다.
반드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방랑자는 정보를 수집하는 플레이어.
정보가 그들에겐 가장 큰 힘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마주친 존재를 보곤, 최현지는 이곳의 군주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 서, 설마?”
딸그락- 탱-!
최현지는 자신의 식기가 엎어진 줄도 모른 채, 거리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먼 곳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건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생명체였다.
“오우거…… 와-.”
쿠직…… 쾅!
빌라만큼이나 거대한 몸집을 지닌 생명체가 승용차를 캔처럼 찌부러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납작해진 승용차를 짊어진 채, 차곡차곡 건물 사이를 이었다.
이건 하나의 성벽이었다.
원래 돌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오우거는 찌부러트린 승용차를 차곡차곡 쌓아 성벽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우거는 군주의 노예였다.
“하하하…… 아, 미친.”
그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최현지는 말없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적어도 최현지가 본 군주들 중, 단언컨대 이곳이 가장 진보적인 발전을 이룬 곳이라고.
“하-. 존나 재밌어졌어. 이러면 서울 남부의 발전 속도보다 더 빠른 거야. 아직 3라운드가 시작되기도 전일 텐데……. 아, 미친. 잠깐. 어쩌면……?”
최현지는 이곳의 군주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야만 했다.
* * *
만경은 법과 질서가 어우러진 멸망한 세계 속의 도시이다.
이곳에 소속된 모든 주민은 서로를 동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일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온의 세력은 체계적이고 더욱 강대해졌다.
시온은 지난 1년 동안, 도시 건축과 더불어 내부 질서 확립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이것.
그 어떤 세력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이며, 진보적인 집단.
지금 만경의 모든 것들은 시온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었다.
타고난 리더.
능력 있는 군주.
벌써 1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지지율이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 같은 이유였다.
물론, 시온이 지난 1년 동안 도시 개발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었다.
재희와 시온의 가장 큰 목표는 개인 트레이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만안 제2세력.
지난 6개월 동안, 시온의 세력 못지않게 세력을 키운 놈들은 안양 초등학교를 수도 삼아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들과의 마찰은 없었다.
그들이 시온의 세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온은 마찰을 일으키고 싶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만안 제2세력을 토벌하기 위한 원정대는 30명 남짓이지만, 대부분이 전투 이후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인원들이었다.
공격대는 단 두 명.
강시온과 진재희.
그들은 지금 그들의 수도 맞은편 아파트의 옥상에 서 있었다.
“입구 쪽의 방어가 더 견고해. 돌아가는 것이 좋을 거야.”
진재희가 먼저 전장 상황을 살피며, 시온에게 말했다.
시온은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초등학교를 살피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물건도 보였다.
저것이 만안 제2세력이 만들던, 비장의 무기였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병력들은 초등학교 입구 쪽에 몰려 있었고, 후방은 비교적 경비가 느슨했다.
아마 시온의 세력이었던 제1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전방의 경비만 신경 쓴 듯했다.
“내가 먼저 정문에서 시선을 분산시킬게. 넌 무기와 함께 후방을 공략해 줘.”
가만히 진재희의 작전 설명을 듣던, 시온은 그제야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의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시온의 덥수룩한 앞머리가 휘날렸다.
“오늘 이곳에 온 의미 말이야. 지난 1년간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 아냐?”
“……응. 그건 맞지만.”
진재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의 토벌은 단순히 세력 간 전투나 전쟁이 아닌, 실험일 뿐이다.
강시온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또 무기의 성능은 어떠한지.
하지만 재희는 막상 적들을 마주하니, 그의 몸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지금 강화된 나의 아티팩트를 인간을 상대로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그게 가장 중요해. 내 적수는 만안구의 졸개가 아닌, 동안구의 전사들이니까.”
“응.”
“어찌 되었건, 이번에는 내가 해볼게. 적의 전투 병력을 토벌할 거야. 나머지는 모두 식민지로 만들어서 운동장에 농장을 세우겠어. 난 내 개인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세력의 발전도 중요해. 그건 유념하고 있었으면 좋겠어.”
“응.”
“최명준과 합류해서, 후발대에 들어와. 이제 갈게.”
그 말을 끝으로 시온은 몸을 돌려, 옥상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문고리를 쥔 시온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 재희를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네가 날 구해 줄 거잖아?”
시온은 그녀가 있기에 아무 걱정 없이 전장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말을 뒤로 시온은 옥상을 빠져나갔다.
끼익-, 쿵.
옥상에 홀로 남은 재희는 한동안 말없이 굳게 닫힌 옥상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무기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거대한 몸집을 빌딩 사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딸랑-.
그리고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 * *
만안 제2세력은 지난 1년 동안, 1세력에 대한 견제를 철저히 했다.
그들 역시 2라운드 동안, 만안 지역에서 살아남는 세력은 1개의 세력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두 세력이 충돌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빨리빨리 움직여! 그건, 거기다 놓고. 어?!”
2세력의 군주는 과거 초등학교의 교장이었다.
그는 하나의 묘책을 세웠다.
1세력은 견고한 승용차를 쌓아 세운 성벽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세력.
그에 비해 2세력의 총인구는 1,000명 안팎이고, 그마저도 전투 훈련도 안 된 늙거나 어린 사람들뿐이었다.
그랬기에 교장은 ‘투석기’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세력의 모든 노동력을 바로 이 투석기 개발에 투입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화염병과 활을 제작했고, 방어시설도 건축했다.
자신들이 1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강한 무기를 생산해 내야만 했다.
“좋아.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교장은 자신의 투석기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내버스를 개조하여 만든 거대 투석기였다.
투석기는 기본적으로 연료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끌어야 했지만, 중요한 건 투석(投石)의 기능이었다.
“어이, 한번 끌어 봐!”
드드드드…….
교장의 명령에, 옛 교직원이었던 사람들이 있는 힘껏 밧줄을 잡아당겼다.
투석기의 장대와 이음매는 모두, 근처 철물점에서 얻었다.
천장이 없는 시내버스, 투석기의 장대가 뒷바퀴 인근 바닥까지 내려오면, 준비하고 있던 철판을 시내버스의 양 창문 사이에 끼워 넣었다.
텅-!
그렇게 되면 고정이 되었다.
물론, 모든 것이 수동이었다.
철판을 든 인원도, 밧줄을 당기는 인원도 최소 스무 명 이상씩 투입되었다.
투석기의 존재는 교장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이것만 있으면……!’
교장은 투석기만 있다면, 자신도 여타 다른 군주처럼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군주와 플레이어의 정보 커뮤니티는 정보 교환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군주들 사이에서는 흔히 레벨 차이가 있었다.
몇만 명을 거느리는 대군주가 있다면, 기껏해야 몇백 명 남짓의 소규모 군주도 있기 마련.
열등감이다.
교장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타 군주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특히, 만안 제1세력 군주 강시온에게.
“자-. 이제 전쟁이다! 가자!”
교장은 운동장에 모인 모두에게 소리쳤다.
그는 자신이 투석기의 위력을 보여 주기만 한다면, 1세력의 군주가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투석기의 모습은 거대하고 위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쿵-!
그때, 운동장 가득 울리는 거대한 땅울림.
“어엇……!”
교장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또다시 땅울림이 느껴졌다.
쿵-!
연이어 땅이 울렸다.
쿵, 쿵, 쿵-!
땅울림은 천천히 이곳을 향하여 오고 있었다.
운동장에 모인 모두가 힐끔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모두를 공포에 질리게 한 존재는, 먼 곳으로부터 기어이 모습을 드러냈다.
“…….”
“…….”
그 엄청난 위엄 앞에 운동장에 모인 모든 주민은 얼어붙었다.
쥐고 있던 무기를 떨어트리고, 다리도 떨어 댔다.
누군가는 뒤로 자빠지고, 누군가는 전의를 상실하곤 흐느끼고 있었다.
-구으으으으……!
온몸에 상처뿐인 몬스터.
그 압도적인 육체는 족히 10m는 넘어 보였고, 쥐고 있는 전봇대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그리고 오우거는 한 남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
쿵……!
남자는 오우거의 왼쪽 어깨에 앉아 있었다.
쿵……! 쿵……!
남자와 오우거의 주위로 수많은 구체들이 일정한 곡선을 따라 회전하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교장은 흠칫 놀라 뒤로 도망갔다.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전투 준비……!!”
“예…… 예! 교장 선생님!”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이 선생! 이젠 군주라고!”
“그냥 항복하시죠……! 교장 선생님……!”
“무슨 소리야!”
지난 1년간의 업적.
저 남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참에 투석기의 위력을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맞출 수 있겠어?”
“해, 해 봐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답은…….”
“무조건 맞춰야 해!”
“예…… 예!”
오우거가 천천히 다가오자, 2세력의 병사들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전투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오우거와 어깨에 앉아 있던 남자는 결코 ‘전투 준비’ 따위를 하는 게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실험.
오우거의 파괴력이 어느 정돈지 실험하는 것과 동시에 지난 1년간의 수행을 거듭한 결과물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시온은 조심스럽게 다른 종을 꺼내 들었다.
三의 문양이 새겨진 명령어가 기록된 종. 시온이 이를 흔들자 특유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랑-, 딸랑-.
바로 공격 신호였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종소리와 함께 괴물의 괴성 소리가 제2세력의 도시에 한가득 울려 퍼졌다.
동시에 오우거에게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시온의 실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