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개화
쥐고 있던 텀블러를 돌려 가며 상표를 바라보았다.
과거 꽤 유명했던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텀블러였다.
그때에는 이런 텀블러 하나에 치킨 두 마리 값이라는 말이 믿기지가 않았었다.
그때의 난, 뭐랄까.
돈에 쫓기는 인생이었으니까.
“…….”
나는 몬스터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세력에게 강력한 힘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쇼핑몰에서부터 고블린이 어떻게 행동하고 먹잇감을 공격하는지에 대해서 파악했었다.
아마 그때부터 몬스터 길들이기를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오우거를 본 순간, 두려웠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봤다.
원리는 간단하다.
놈들이 동물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는 점.
놈들 역시 인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두려움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점.
실제로 놈들의 지능은 예상보단 뛰어났다.
종소리를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청량한 음, 둔탁한 음, 두 번 치거나, 세 번 치거나, 종소리 박자 사이의 쉼표까지.
이제 안양역 일대에는 길들인 오우거의 머릿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난 점점 더 전력을 강화했다.
서두를 것은 없었다.
세력은 성장 중이고, 개인 훈련도 이어지는 중이다.
나는 눈앞에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텀블러에서 눈을 돌려, 옥상 너머를 바라보았다.
-크으으으…… 크으으으…….
거대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 눈알은 하나만 달려 있는 그놈의 얼굴이 날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난 건물 옥상에 있었고, 놈은 1층에서 반듯하게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를 통한 길들이기.
놈은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참을성을 기르고 있었다.
주위에는 진재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벌써 3시간째, 놈은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
텀블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놈에게 다가갔다.
이제 놈과 나의 얼굴 사이는 불과 1m도 안 되었다.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날 바라보는 놈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러면서도 절대 나를 공격할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난 이놈과 함께 이곳을 평정할 것이다.
놈의 거대한 육체를 가지고 적의 세력을 초토화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었다.
놈이 도대체 얼마나 강할지.
이것으로 오우거 길들이기는 성공이다.
[오우거를 성공적으로 길들였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200p.]
* * *
강시온이 만안구를 거머쥐게 되면서, 판도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온이 뿌린 씨앗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속속 싹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세력 내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명령에 따르며 노동자로 거듭났다.
지지율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시온의 휘하에 쉬는 존재는 없다.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할당된 업무를 처리하고, 생존권을 보장받았다.
[시민 일일 사망률 5% -> 1%]
두 번째로 보일러가 재가동되면서, 거주지 외의 지역 생존자들이 새로이 합류했다.
시온의 세력은 빠르게 영토와 기반을 다졌고, 이에 따라 근처에 흩어져 있던 생존자들은 그의 세력에 합류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경찰서 건물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수증기는 하나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젠 아포칼립스 주민들의 희망봉이 되었다.
[시민 수 851명 -> 1,543명]
세 번째로는 전투력 강화였다.
시온은 확보된 지지율을 기반으로 전 시민 ‘예비군화’를 진행했고, 아이와 노인을 제외한 모든 인원은 시간에 맞춰 군사 훈련을 받았다.
또한 전문적으로 무기를 연구하는 부서도 생겨났고, 군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령 체계도 확립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오우거 부대’가 있었다.
[총 전력
병력 1,143명 / 특공대(140), 예비군(1,003)]
오우거 길들이기는 효과적이었다.
오우거는 전투력뿐만 아니라, 노동력에도 큰 힘이 되었다.
길들인 오우거는 이제 세력을 따르는 충실한 노예가 된 것이다.
시온의 의도대로, 몬스터의 노동 가치는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인간 수십 명이 달라붙어 파내야 할 눈덩이도, 오우거는 겨우 수 분이면 작업 완료할 정도였으니.
또한 오우거가 세력에 개입하면서, 시민들의 지지율 유지에도 한몫했다.
괴물을 길들인 군주, 강시온이다.
그들에겐 깊은 신임과 더불어 높은 지지를 보낼 만한 요소였다.
겨울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시온은 세력의 핵심 노동자들 중, 대표를 뽑아 그들을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 이용하려고 했다.
그의 국정에서 노동자의 계층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질서 부 (이)가 창설되었습니다.]
질서 담당자는 외부로부터 새로 유입되는 인원들이나, 기존 인원의 생활 계획 임무 편성을 맡는다.
질서 부처의 산하에는 보일러, 식량, 식수, 칙령 그리고 의료가 포함되어 있다.
주민들이 살아가기 위한 거의 모든 업무를 포괄하는 부처였다.
부장으로 임명된 자는, 과거 회계사이자 사업가였던 중년의 여자였다.
[작업 부 (이)가 창설되었습니다.]
작업 담당자는 세력 내 대내외적으로 필요한 모든 노동력을 처리하는 곳으로 부처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부처였다.
부장으로 임명된 자는, 예전 보일러 담당자였던 남자였다.
질서와 작업, 이 두 개의 부처가 군주에게 속한 권력 단체였다.
시온은 권력을 평등하게 분배했다.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질서부와 작업부의 부장은 서로의 업무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다.
각 부처가 연관된 사항이 생길 경우, 시온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권력은 행정과 정치 두 개로 나누었지만, 국방력은 그대로 군주 직속으로 두었다.
최명준을 대장으로 하는 각각 100명씩 편입되어 있는 1군, 2군, 3군.
[사령부 (이)가 창설되었습니다.]
[1군 (이)가 창설되었습니다.]
[2군 (이)가 창설되었습니다.]
[3군 (이)가 창설되었습니다.]
또한 전시 상황에 대비해, 세력 내에 속해 있는 모든 인원은 예비 병력으로 군주가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군주의 칙령으로 보호받았다.
[2조 1항: 군주의 산하에 각 군 사령부, 질서부, 작업부를 창설하고, 각 부는 독립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각 부처의 부장급의 임원은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한다.]
[2조 2항: 전시 상황에 군주는 질서부, 작업부, 군사령부의 인원을 예비 전투 병력으로 동원할 수 있다. ※총동원령 발령]
[2조 3항: 각 부처의 부장들에게는 명령권과 임명권이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2조부터의 내용은 시온이 각 부의 부장급들과 의논하며 결정지은 것이다.
부장은 각 산하의 인원들에 대해, 행정 명령권과 임명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어제 식수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질서부장은 명령권을 발동해 식수 조달 노동력을 증원했다.
또한 담당자를 새로 임명해 식수 조달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이렇게 군주 산하 조직이 개편되면서, 작업의 효율성이 극대화되었다.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의 능력을 바탕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세력을 키워 나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체계적인 조직 개편으로 시온의 세력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산업화의 동물이다.
산업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현재에 이르렀다.
시온의 주민들은 각자의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임무가 부여된 이상, 그들 모두가 책임을 다하고 성실히 임했다.
물론, 초기엔 시온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날이 유입되는 생존자들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서는, 시온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시온이 세력에게 요구하는 명령은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는 노동의 활성화.
모두가 절대적인 군주와 세력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할 것을 명령했다.
두 번째는 필요 건물들의 우선 확보 및 시장 활성화.
시온은 도시 속의 도시를 구상하고 있었다.
경찰서를 중심으로 빌라, 학교, 도로를 통합해, 성(城)을 구축하고 세력의 영토를 확보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서 거주지를 확보함과 동시에 늘어나는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식량과 식수를 확보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율적으로 굴러가는 시장 역시 필요했다.
도시 밖에서 새로운 물건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데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얻었지만, 앞으로 그 규모가 커질 것이다.
하여 시온은 시장을 세울 것을 명령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중앙 시장은 경찰서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질서부장은 화폐를 발행했다.
그건 라이터였다.
추위라는 재해 속에서 라이터는 큰 가치가 있었다.
질서부장은 이를 화폐로 사용하여 시장을 만들고,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주민 간의 경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라이터는 불을 피울 수 있다는 도구로서의 가치가 있었고,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했다.
게다가 수량이 적다는 점도 한몫했다.
모두가 라이터를 새로운 화폐로서 인정했고, 시온 역시 이를 승인했다.
위 두 가지, 즉 군주의 강조 사항은 ‘칙령’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닌 세력이 정한 룰이었다.
칙령을 발동해 처벌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주민들은 대체로 룰을 지켰다.
그들 스스로가 정했으므로.
그리고 룰을 어길 때면 군주인 시온에게 재판을 청원했고, 시온은 각 부장들에게 재판을 맡겨 감독했다.
이렇게 내부 시스템이 안정화되자 시온의 세력은 날을 거듭할수록 강대해지고 거대해져 갔다.
시온의 의도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성장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장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이.
퍽-! 풀썩.
“…….”
시온은 벽면에 부딪혀,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검을 쥔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온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일어나.”
“…….”
100번이 넘는 경합.
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날씨였지만, 시온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시온은 입가를 쓸며, 겨우 몸의 중심을 잡곤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주먹을 내보였다.
지금껏 시온은 재희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지만, 이제껏 재희는 오른손만을 사용하여 그를 제압했다.
“육체가 단련되지 않으면, 네가 아무리 아티팩트에 재능이 있더라도 소용없어.”
“……!”
슉-!
시온은 오른손을 곧게 뻗어 재희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재희는 그것을 고개만 틀어 피해 내고, 다시 다리를 걸어 시온을 반대편으로 넘어뜨렸다.
쾅-!
“커헉……!”
고통스러워하는 시온에게 재희는 그의 손 관절에 발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세력은 네 배경일 뿐이야. 결국엔 너 스스로가 강해져야 우승할 수 있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제 봐주는 것 따윈 없어. 어떻게든, 이 1년 동안 넌 ‘각성 1’을 얻어야 해.”
“…….”
재희는 더욱더 강하게 손목을 밟아 댔다.
그녀가 말한 각성 1이 무엇인지, 시온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진재희를 이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온은 오른손을 내보여, 아티팩트를 불러왔다.
허공에 구들이 만들어져, 재희를 노렸다.
슉-!
재희는 고개만 돌려 시온의 아티팩트를 피했다.
그녀의 훈련 방식은 무자비했다.
플레이어와 군주의 회복량이 뛰어나다는 점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진재희는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 전투 감각을 일깨워 주며, 그의 아티팩트 활성화에 최선을 다했다.
재희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1년이야.”
퍽-!
“1년.”
쿠당-!
“1년 동안 넌 강해지기만 할 거야. 압도적으로. 너의 세력도. 너의 힘도.”
쾅-!
진재희는 시온의 목을 잡아채곤, 벽면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슉.
그때, 구체가 재희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재희는 다시 보지도 않고 피해 냈다.
“다른 건 생각지도 마. 우리에게 허락된 건 고통스럽고, 괴롭고, 집요하고, 가시밭길뿐인 삶이야.”
꾸우우욱…….
진재희는 더욱 힘을 주어 시온을 압박했다.
“감정은 이 모든 것이 끝난 뒤. 그때 모든 걸 토해 내도 늦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속속 시온의 귓가에 박혔다.
“비굴하게, 위엄 있게, 때론 무자비하게.”
그녀의 목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네가 이 시대의 단 하나의 군주가 될 때까지. 난 멈추지 않을 거야.”
그들의 훈련은, 세력의 모든 이들이 분주하게 세력을 키워 나가는 동안 경찰서 옥상에서 이루어졌다.
장장 1년 동안 말이다.
옥상은 쏟아진 시온의 핏자국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재희는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려, 헐떡이는 시온의 모습을 보고도 그녀는 그 어떠한 동정도 연민도 들지 않았다.
이건 모두 시온을 위한 일.
시온을 위한 일이 곧 자신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이제 3라운드가 되면 모든 것이 뒤바뀐다.
그에 맞춰 시온은 변화해야 했다.
회귀자인 자신이 그의 스승이 된다면, 시온은 눈부시게 성장할 것이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고, 세력은 그 규모를 키워 나갈 것이다.
그전까지 휴식은 없다.
* * *
반쯤 무너진 가로등 밑.
눈으로 덮인 그곳에 새하얀 꽃이 피었다.
봄이 찾아온 것이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2라운드가 거의 끝나며, 기나긴 겨울이 기어이 끝이 나고 봄꽃이 필 무렵.
얼어붙었던 건물의 창가로부터 녹아내린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고,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과거의 잔해가 세상 밖으로 드러날 무렵.
모든 것은 변해 있었다.
그의 도시는 완성되었고, 시장은 활성화되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시온을 구원자이자 진정한 군주로 모시고 있었고, 그들은 이제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841명으로 시작된 시온의 세력은,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1만 2,000명이었다.
이곳은 더 이상 경찰서로 불리지 않았다.
수도, 만경.
만안 제1세력의 새로운 터전이었다.
그리고 변화된 이곳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