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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67화 (67/221)

#제67화. 요동치는 판도

동안 제1세력의 군주, 박지수는 참혹한 전투 현장의 한복판에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녀는 에스키모 털모자를 쓴 채, 쪼그려 앉아 덩그러니 놓인 남자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기침을 내뱉었다.

“콜록……! 콜록!”

박지수는 입가를 쓸고는 물었다.

“……그러니까 이걸 꼬맹이 한 놈이 다 했다고?”

“……예.”

쪼그려 앉은 그녀 옆에는 최측근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박지수의 감정 변화에 측근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녀는 무자비한 군주였다.

자신의 일 처리에 차질이 생기면, 대상이 누구든 숙청했다.

정당한 법과 질서가 없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권력을 쥐었다는 건, 여태껏 존재해 왔던 모든 권력들을 압도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 X발.”

박지수는 기분이 언짢은 듯, 조용히 욕을 내뱉었다.

그러자 중년의 사내는 눈밭에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쯔으읍…… 푸.

박지수는 담배 연기를 입에 머금었다가 뱉어 냈다.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잘게 부서져 거꾸로 파묻힌 건물이나, 캔처럼 찌부러진 자동차, 게다가 인간들의 시체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났다.

사실 박지수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스템이 선택한 군주다.

게다가 경기 남부에서는 꽤 실권을 쥐고 있는 세력의 군주였다.

수원에 있는 거대한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박지수는 경기 남부에서 진정한 1인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선 성벽을 만들어 남부 세력에 대한 방어를 위한 정비 시간을 확보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런 대규모 방어 시설 설계조차도 ‘플레이어’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플레이어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

지금껏 압도적인 군사력과 칙령을 바탕으로 성장한 박지수의 세력이, 단 한 명의 플레이어에 의해 휘청거렸을 정도로 플레이어의 의미는 남다르다.

플레이어는 한마디로 비대칭 전력이다.

플레이어의 수가 많은 세력일수록 앞으로의 판도를 유리하게 가져갈 것이다.

결국, 박지수의 세력은 플레이어에 대항하기 위한 계획을 짜야 했다.

인재를 섭외해야 했다.

박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앞으로 내던졌다.

그녀가 던진 담배가 눈 속에 파묻혔다.

그때, 부하 한 명이 다가와 박지수에게 속삭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그 여자도 함께 도망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여자라니?”

“이세범의 누나, 이주연입니다.”

이세범은 주연의 안전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지금껏 박지수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주연이 도망친 뒤로, 더 이상 세범을 자신의 곁에 둘 명분이 없어졌다.

남자는 그걸 염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지수는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군주의 눈길에 바짝 긴장한 남자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애초에 박지수는 이세범을 이주연과 만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이세범은 박지수의 철저한 ‘장난감’일 뿐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됐고, 보좌관.”

박지수가 손짓하자 중년의 남자가 후다닥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해.”

박지수의 말을 들은 보좌관의 동공이 흔들렸다.

보좌관의 대답이 없자, 박지수는 그들을 돌아보며 다시 명령했다.

“뭐해? 인간 사냥. 시작하라고. 그 괴물 새끼들 풀어.”

그건 2라운드가 시작될 때부터 박지수의 세력이 하고 있었던 비인간적 행위들이었다.

인간들을 마치, 짐승을 사냥하는 것처럼 화살로 쏴서 잡는 작전.

어차피 플레이어들은 목에 화살 정도 뚫리는 것 정도론 죽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수는 이 작전을 이용해, 벌써 13명의 플레이어를 세력 안에 두었다.

그리고 인간 사냥은 박지수가 원하는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를 찾기 전까지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받들겠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군주의 명을 받들었다.

* * *

경찰서 연병장 가득, 군주가 선포한 칙령에 대한 알림 창이 떠올랐다.

황금으로 빛나는 금빛 테두리의 알림 창이었다.

[만안 제1세력, 군주 강시온]

[칙령 선포]

[선포자: 강시온]

그 알림 창 앞에서 시온은 모두에게 소리쳤다.

“1조 1항, 세력에 속하는 모든 시민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로운 의지와 의견을 표현할 수 있으며, 세력에 존속되는 동안 생명권을 보장받는다.”

[만안 제1세력, 군주 강시온]

[칙령 선포]

[선포자: 강시온]

[1조 1항: 세력에 속하는 모든 시민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로운 의지와 의견을 표현할 수 있으며, 세력에 존속되는 동안 생명권을 보장받는다.]

파격적인 1항의 내용.

이곳에 모여 있던 모두가 놀랐다.

생존권은 단순히 군주가 선포한다고 해서 보장되진 않는다.

역사 속에서도 그렇다.

체계적인 구조와 군대를 보유한 국가들 중에도 국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당장의 조선도 그랬으며, 현대에 와서는 숱한 나라들이 내전, 경제, 쿠데타 등의 이유로 자국민을 방치해 왔다.

시온이 말하는 ‘생존권’은 세력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의미였다.

즉, 시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며 세력의 확장, 체계 설립, 경제 시장 건축 등은 차순위 목표라 천명한 것이다.

이타적인 판단이었다.

K는 흥미로운 듯, 시온의 선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온의 선포는 멈추지 않았다.

[업적 포인트 –50p.]

칙령을 선포할 때마다 업적 포인트가 소진되었다.

시온은 지금껏 퀘스트를 통해 벌어 두었던 포인트가 많았기에 필요한 칙령을 모두 선포할 수 있었다.

평균적으로 처음 세력을 접수한 군주가 선포할 수 있는 칙령은 기껏해야 2개였지만, 현재 시온은 5개까지 선포할 수 있었다.

시온은 뒤이어, 2항의 내용을 선포했다.

“선포한다.”

그는 곧바로 두 번째 칙령을 선포했다.

쿠데타 이전, 철저하게 계획해서 세운 칙령이었다.

[1조 2항: 세력에 속하는 모든 시민은 세력의 발전과 1조 1항에서 규정한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방위 영역에 대한 책임을 진다.]

시온이 생각하기에 이것만이 세력을 가장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생존권은 다음 두 가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식수를 포함한 식량 그리고 국방력.

이 두 가지가 결국 세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시온은 이 두 가지의 요소에 대한 책임을 시민들에게 지웠다.

1조 2항은 그런 내용이다.

결국 시온은 2항을 통해, 1항에서 규정한 생존권을 위한 활동을 펼쳐 나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분일 뿐, 실제로는 시온이 세력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렇게 규정해 두면 시온이 지시하는 모든 명령은 곧 시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된다.

노동의 의무를 지는 대신, 생존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시민들은 결국 스스로를 위해서 시온의 명령에 따르게 될 것이었다.

‘……생존권은 단순한 미끼. 오늘 이후 내가 싸워야 하는 건, 내부의 시민들 그리고 지지율이야.’

한 세력의 군주가 되면, 그만한 책임과 힘이 따른다.

이로 인해, 시온의 세력에 속하는 시민들은 모두 노동 의무를 지게 된다.

시온이 원하는 세력의 발전 방향은, 모든 시민들이 세력 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의무를 지는 형태다.

‘……세력의 안정화 그 이후는 피비린내 나는 정복전뿐.’

시온은 생각했다.

이 리그에서 우승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 이상 방어적인 전략을 취하진 않을 것이라고.

일단 세력 내부의 전력을 끌어올린 다음엔 외부로 눈을 돌릴 것이다.

“이상이다.”

우선, 칙령은 1조 2항까지만 선포했다.

이로써 강시온이 거머쥔 세력의 토대가 정해졌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1항과 2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국가의 헌법 제1조는 해당 국가의 기본 원리를 규정한다.

시온의 규정한 기본 원리는 결국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스스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력에서 생존권을 보장하는 대신 세력을 위해 일하라.

단지 한 문장일 뿐인데도, 이를 통해 시온은 전 시민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성인, 남자, 여자 심지어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까지도.

어린이, 노인, 장애인.

원래 세계에선 사회적 약자였던 그들을 쉬게 해 줘야 한다?

그럴 순 없다.

세상이 멸망하고서, 더 이상 공짜로 지켜 줘야 할 신분 같은 건 없다.

살아남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각자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금 상황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을 지켜 줄 여유 같은 건 없으니까.

그때, K는 박수를 치며 시온에게 다가왔다.

“훌륭합니다. 무슨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력의 색깔은 칙령 1조에 따라 갈리죠. 제가 볼 때…… 시온 님의 세력은 인도적인 세력이 되겠군요.”

“…….”

인도적이라.

잠시 생각하던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자신이 선포한 칙령은 결코 인도적이라 할 수 없었으니까.

어쩌면 경찰서장이 했던 것보다 혹독한 노동이 시민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단지 시온은 생존권 보장이라는 보기 좋은 포장으로 치장했을 뿐.

단두대를 둘러싸고 모인 시민들은 하나같이 시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온을 지지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무엇보다 ‘생존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지도자가 생존권을 보장한다는데, 그 누가 반기를 들겠나.

경찰서장의 지배를 받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경찰들은 시민들을 폭행하고, 억압했으며, 필요하면 처형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일들에 시온이 관여되어 있었지만, 이를 아는 이들은 없다.

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의 은폐는 결국 시온의 지지율을 공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온은 자신이 뿌린 씨들을 착실하게 수확했다.

K에게 동생을 소식을 들은 순간, 시온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제 세력을 확장할 것이다.

안양시 통일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빠르게,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도록.

그는 이제 인간을 학살하기 시작할 것이다.

“만-세!!!”

그때, 군중 사이에 있던 깡마른 백발의 노인이 두 손을 들며 소리쳤다.

노인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하지만 힘이 있었다.

“대군주님. 만-세!!!”

노인은 강시온을 찬양했다.

이미 그들에게 강시온은 구원자였고, 자신들을 이끌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지율 100%

수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마,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단두대를 둘러싼 모든 군중들이 강시온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만세 소리는 만안구 가득 울려 퍼졌다.

시온은 그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눈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때, 하늘로부터 떨어진 물 한 방울이 툭, 시온의 볼에 떨어졌다.

“만세!!!!”

“만세-!!!!”

“군주님! 만세!!!!”

군중들의 함성 소리가 가득한 이곳, 그의 볼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시온은 자신의 볼에 떨어진 물을 중지로 쓸었다.

그리고 중지를 엄지로 비비며 그것을 확인했다.

진눈깨비였다.

비가 내린다는 건 온도가 올라 더 이상 물이 얼지 않는다는 것.

이는 곧 겨울이 끝나 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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