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66화 (66/221)

#제66화. 각각의 별들 (2)

“동생분. 살아 계시다고요.”

“뭐?”

K가 전해 온 소식에 시온은 처음으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심장은 마구잡이로 요동치고 있었고, 손과 발 역시 떨어 댔다.

동생이 살아 있다.

준호가 살아 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소식이었나.

사실 그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어른, 어린아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죽어 가는 이 세계 속에서 어린 동생이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거의 죽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기에, 시온은 지금껏 애써 외면해 왔다.

정말로 동생이 살아 있다면, 낭만적인 일이었다.

세계가 멸망하고서 낭만을 좇아간다는 건, 자살행위였지만.

시온은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동생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엄혹한 현실을 버텨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K의 말에 그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돋았다.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과 걱정,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이면서 요동치고 있었다.

시온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

“……어딨어.”

“자, 그만! 여기까지. 제가 알려 줄 수 있는 정보는 끝.”

그만?

그만이라고?

훽-!!!

그 순간, 이성을 잃은 시온은 단숨에 K를 덮쳐들었다.

쿠당!

K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시온은 그녀의 몸 위에서 압박했다.

시온은 그녀를 위협하며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군용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어딨어…… 말해.”

“……아무리 시온 씨라도 관리자에 대한 위해는 용서하지 못해요?”

“다 필요 없어. 전부 필요 없다고. 이딴 시스템. 리그. 너희들의 그 보잘것없는 놀이는 다 집어치워! 동생만…… 동생만 내게 데려와.”

“…….”

덥썩-!

시온은 K의 멱살을 쥐었다.

K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시온은 겨우 말을 이었다.

“나에게는…… 동생이 전부야. 동생만…… 내 곁에 있게 해 줘. 그러면…… 뭐든 할 테니까.”

둘 사이의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멱살을 쥔 시온의 손이 서서히 힘이 풀렸다.

관리자에게 요구해 봤자,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 K는 시온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시온이 다시 고개를 들어 K를 바라보았다.

“뭐든 하겠다고? 푸흐흐……. 그래, 바로 그거야, 플레이어.”

K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

그녀는 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특별해. 특별한 존재에게는 목적이 있어. 그 목적을 잊지 마. 그분들은 당신과 동생의 감동적인 재회를 원하고 있어. 그걸 이루기만 하면…… 오래전 죽은 당신의 부모조차 되살릴 수 있어. 그분들의 힘이라면.”

스륵-.

K의 가녀리고 큰 손이 시온의 양 볼을 감쌌다.

그러고는 시온의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아까 했던 질문 중에 한 가지만 네게 말해 줄게. 내가 누구냐고? ……나도 인간이었어. 한때는 말이지. 물론, 내가 살던 시대는 당신과는 다른 시대였지만.”

“…….”

시온은 떨리는 동공으로 K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K의 손은 이제 시온의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분들의 심부름꾼일 뿐이야. 동생을 찾고 싶어? 동생과 행복하게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정말 그걸 원해?”

스윽-.

그때, K는 그대로 상체를 들어 올려 시온의 목덜미 부분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그녀는 양손으로 시온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시온의 목에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애태우는 것처럼 입바람으로 간지럽히며 말했다.

그야말로 뱀처럼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전부 이뤄 줄게. 모든 걸 줄게. 네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모든 걸 이뤄 내게 해 줄게. 평생 행복한 감정 속에 늙어 죽게 해 줄게. 아님, 영생을 줄 수도 있어. 그러니 이겨. 이 리그에서 이기란 말이야. 너의 모든 걸 바쳐서 세상을 바꾸고, 이 세상 속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되는 거야.”

“…….”

“나와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마. 넌 나만의 스타야.”

스윽-.

그 말을 뒤로 K는 머리를 빼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시온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다시 경쾌하게 바꾸었다.

“자! 그럼 시온 씨! 이렇게 하죠. 우선 안양시를 통일해 보세요. 그럼 당신의 동생이 있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 드릴게요. 어때요?”

“…….”

시온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

그건 시온에게는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킬 소식이기도 했다.

이제까지 시온은 동생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 것이었다.

경찰서를 접수했던 것도 모두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시온에겐 대다수의 행복보단, 동생 한 사람의 행복이 소중했다.

동생이 안전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몇백 명, 몇천 명의 목숨도 상관없다.

시온은 기꺼이 그들을 희생시켜, 동생을 지켜 낼 것이다.

모두 타인일 뿐이다.

하지만 동생은 다르다.

동생은 시온에게 있어선 모든 것이다.

시온은 동생을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다짐은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설령 백발의 노인이 된다고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

시온은 크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눈을 뜨며 말했다.

“한 가지 더.”

“네?”

K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시온은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다시 이성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온은 지금 각성했다.

지금껏 동생을 찾기 위해 리그에 임했다면, 이젠 이 리그에 승리하기 위한 강시온이 되었다.

그건 충분히 각성이라고 불릴 만했다.

그에게 리그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가 생겼으니.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이건 동생을 구한 뒤, 시온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너희도 죽일 수 있어?”

“…….”

위협적인 언사였다.

그 위협을 K 역시 느꼈다.

그리고 강시온 정도 되는 남자가 위협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K는 기뻤다.

그는 지금 처음보다 더욱더 강력한 동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K는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사실 K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가 행복해지기를.

* * *

흑백의 공간에 색깔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감정을 모두 쏟아 낸 뒤의 감정은 허탈함과 동시에 후련했다.

K의 스킬이 캔슬 되고, 다시 웅성거리는 군중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진재희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게 괜찮냐고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다시 그들을 둘러보다 경찰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황량한 건물.

피 냄새가 조금 나는 듯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단발머리가 바람에 맞아 살랑이고 있었다.

진재희는 내가 어디에 있든, 위험에 처해 있든 항상 옆에 있던 존재였다.

지금도 나와는 한 발자국 벗어난 자리에서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6년이나 지난 듯했다.

준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네가 없는 이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우린 없는 형편에도 서로 힘을 보태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언제나 지쳐 반지하 방에 들어가면, 준호는 날 기쁘게 해주기 위해 온갖 장난을 벌였다.

휴지를 둘둘 말아, 미라 흉내를 내며 놀려 댈 때도.

유튜브에서 주워들은 유행어를 따라 하다 엉뚱한 말투로 놀려 댈 때도.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방 이곳저곳을 쏘다닐 때도.

넌 언제 어디서나 내가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난 네가 웃을 때, 따라 웃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목을 매던 날, 아무리 어린 너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고.

그날 이후로 동생은 심적으로 괴로운 날 챙기기에 바빴다.

내가 자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준호야, 넌 사람을 잘 챙기는 아이였어.

“…….”

다시 고개를 돌려 안양시를 돌아보았다.

이곳 어딘가에 동생이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준호야, 걱정 마.

형은…….

형은 해내고 말 거야.

설령 이 세계의 끝이 종말일지라도.

반드시 널 찾아내겠어.

“…….”

난 고개를 들어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시작했다면, 이제 멈춤은 없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하늘 위의 신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신들이 나와 동생을 걸고 비참한 광대짓을 하기를 원한다면, 내 기꺼이 너희들을 위해 춤을 추겠다.

단, 평범하게 추진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잔혹한 세계를 펼쳐 주겠어.

그것이 너희들이 원하는 짓이라면.

“……선포한다.”

나의 목소리가 군중들에 작게 울렸다.

그 순간.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모두의 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이건 시스템이 정한 군주의 권력.

이건 나의 권력이다.

난 다시 고개를 거두어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준비되었다.

나와 함께 이 리그를 이겨 나갈 준비가.

[만안 제1세력, 군주 강시온]

[칙령 선포]

[선포자: 강시온]

“1조 1항.”

군중이 모두 주목하고 있는 지금, 나의 첫 번째 칙령이 선포되었다.

칙령과 함께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뚝.

남자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와, 붉은 눈밭에 떨어졌다.

아이의 두 손에 쥐어져 있는 남자는 원래 전사였다.

정확히는 이곳, 눈 성벽을 쌓는 지역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는 동안 제1세력의 여왕이 직접 임명한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은 잘린 채 아이의 두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의 몸은 잘게 찢어져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목을 눈밭에 내려놓았다.

그때, 아이의 뒤에서 여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해들이 떨어질 때마다 눈보라가 일어났다.

준호의 기상천외한 능력들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것이었다.

모든 사물을 공중에 떠오르게 해 달려드는 모든 전사를 해치웠고, 건물 높이까지 치솟았던 눈 벽은 이제 무너져 내렸다.

단 한 명의 아이가, 동안 제1세력의 수백 명의 전사를 죽였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마지막 전사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수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준호는 최강이었다.

적어도 주연이 보고 경험하고 살아왔던 세상 속에서는.

준호는 조심스럽게 주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생각해 봤어. 누나?”

준호는 천천히 불길로 가득한 눈길을 걸었다.

아이는 천천히 걸어가 주연의 앞에 앉았다.

주연은 자신의 앞에 앉은 준호를 바라보았다.

고개는 숙이고 있었고, 조금은 울먹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도무지 사람을 수백 명이나 죽인 살육자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주연은 그 앞에서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를 볼 때마다 쇼핑몰에서 만났던 남자가 떠올랐다.

둘은 닮아 있었다.

하지만 주연을 알지 못했다.

소년의 형이 정말 강시온일지는.

시온은 재희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동생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앞의 준호는 지금 주연과 같이 행동하고자 했다.

세계가 멸망하고 나서, 준호에게 처음으로 친절을 베풀었던 건 주연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곧 여기 도착할 거야. 만약 날 따라오지 않는다면 누난 죽겠지.”

준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준호에게 주연은 조심히 반문했다.

“……하지만.”

“하지만이라고 하지 마. 누나. 내 능력이 무한은 아니거든. 이젠 나도 도망가야 해. 선택해. 날 따라오든가…….”

그때, 반대편 벽면에 비친 토벌대의 그림자가 손전등 빛에 늘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적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준호는 고개를 들어 주연과 눈을 마주했다.

“……아님 죽든가.”

준호는 울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인지, 아님 주연이 알 수 없는 다른 감정인지.

확실한 건, 저 눈물만큼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아이의 울음이었다는 것이다.

주연은 갈등했다.

아직 동안 세력 내부에서는 자신의 동생, 세범이 살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지 못한다면, 후에 동생 세범을 만날 일도 없다.

주연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결정을 지었다.

와장창-!

얼마 지나지 않아, 의왕으로 가는 경계가 허물어졌다.

도시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이는 2라운드가 거의 끝이 났다는 걸 의미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