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새로운 군주 (2)
마녀처럼 기괴하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온은 인상을 찌푸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드디어 만났다! 정말 엄청 오래 기다렸다고요!”
하늘 사이의 공간이 벌어지고, 그곳에서 아기 천사들과 함께 여자가 튀어나왔다.
눈을 가린, 관리자.
K였다.
관리자와 마주한 군중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녀는 시온을 바라보곤,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시온 씨. 정말 보고 싶었어요.”
* * *
“사실 당신이 다시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1년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 시온 씨네요. 반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놀라운 수치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놈을 노려보았다.
K는 허공에서 군중들을 둘러보다가 내게로 다가왔다.
군중들은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었다.
시민들 중 관리자의 능력이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는 없었다.
2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대다수는 자신이 처한 처지가 무엇인지 알았을 테니.
그리고 K가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또 거대한 변화가 있을 거라는 걸 의미했다.
“거리나 산의 군주가 아닌 이상, 건물 출신의 리더가 다시 군주가 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역시 시온 씨!”
K는 잔뜩 신이 나서는 소리쳤다.
“전 시온 씨가 해낼 줄 알았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시온 씨. 드디어 군주의 자리에 근접하셨네요. 모두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결과입니다. 무려 반년 만에 말이죠.”
“…….”
모두라니.
놈이 말하는 모두는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건가.
그 누구도 내가 이곳 경찰서 내부에서 일 년 만에 군주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들만의 또 다른 무리가 있을 터.
아니면, 리그를 관리하는 관리자들만의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일 수도.
펑, 펑-!
그때, 아기 천사들이 폭죽을 터트렸다.
축포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서장의 처형에 환호하던 군중들도 관리자의 등장에 모두 침묵했다.
시스템의 관리자.
그들은 우리 모두를 이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신의 사자들이다.
이제 와서 그녀를 반겨 줄 사람도, 좋아할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K는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건 바로 재선거 투표이죠. 간단해요. 시스템이 재설정한 리더가, 과연 시민들의 지지율을 얼마큼 이끌어 낼 수 있냐. 그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쿠데타는 시스템에 반(反)하는 사항입니다. 원래는 안 될 일이다, 이 말이죠. 하지만 시스템이 시온 씨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죠. 시스템이 시온 씨에게 요구하는 지지율은 90% 이상입니다.”
“뭐?”
인상을 찌푸렸다.
90%
터무니없이 높은 요구치다.
투표에 있어서 과반수도 아닌, 90%의 지지율을 얻으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다.
인민재판이 난무하는 독재 국가에서나 90% 지지를 받을 수 있다.
K는 지상으로 내려와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속삭였다.
“알아요. 압니다. 90%는 정말 미친 수치예요. 저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분’들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당신이 특별하길 원합니다. 정말 타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도록 최고의 플레이어가 되어 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극적인 변화, 극적인 결과. 자극적인 경과를 원하십니다.”
스으윽-.
K의 손이 내 어깨를 야릇하게 쓸며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난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90% 달성을 못 한다면 어떻게 되지?”
“…….”
K는 뒷짐을 진 채 군중들을 향해 걸어가다, 날 돌아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규정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 목소리에 난 다소 감정을 섞어 K에게 말했다.
“……웃기지 마. 지지율 90%? 그건 무리야. 허접해. 네 신들은 허접하고 제멋대로야.”
그러자 K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아니죠. 아닙니다. 허접? 멋대로? 아뇨. 아뇨. 전혀요. 시온 씨.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죠.”
툭.
K는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나의 왼쪽 가슴에 손가락을 두었다.
그녀와 나의 키 차이는 명확했다.
K는 나보다 훨씬 큰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난 그녀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당신은 평소 개미의 권리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개미의 권리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적이 있습니까? 아니다, 당신은 일종의 병균이죠. 그것도 질 나쁜 우주 병균.”
“뭐?”
인상을 찌푸렸다.
K는 나의 감정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분’들에게 여러분들은 그 개미보다 더 작고, 병균보다 더 하찮은 존재. 그러기에 당신들은 자신의 권익을 위해 치장하는 겁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에게 관심을 달라고, ‘그분’들에게 표현하는 거죠. 그리고 그 표현 방법은 잔혹과 살육이고, 당신의 기상천외한 이야기입니다. 좋게 비유해서 난 어쩌면…… 당신의 코디네이터죠. 당신은 무대 위의 스타고.”
그때, K는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날 믿어. 오늘 이후 내가 널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주겠어.”
“…….”
K는 다시 내 얼굴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뒤돌아 팔을 벌려 군중들에게 소리쳤다.
군중들은 여전히 단두대 위의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자! 이제 당신들이 선택할 차례입니다! 후보자는 단 한 명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 위치한 강시온 님이시죠! 투표의 방식은 간단합니다. 60초의 투표 시간을 주겠습니다. 강시온 님을 새로운 만안의 제1세력 군주로 인정한다면 오른손!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맡으면 좋겠다, 하면 왼손! 참고로, 여기 있는 강시온 님이 군주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리그에서 탈락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 마시고 편하게 투표해 주시길 바랍니다.”
K의 말이 끝나자.
띠링-!
거대한 타이머가 허공에 떠올랐다.
정확히 60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짝!
K는 박수를 쳤다.
“시작하죠. 투표를.”
“캭캭캭! 시작하자! 멍청이들아!”
“콕콕콕! 시작하자고! 바보들아!”
아기 천사들은 허공을 빙글빙글 돌면서 투표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투표는 시작되었다.
난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10초, 20초, 30초, 40초…….
그때까지 군중들 중 손을 든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곧 놀라운 결과가 펼쳐졌다.
* * *
난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결국 타인에게 나의 속내를 밝히는 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제아무리 나라고 할지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 군중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날 둘러싼 수백 명의 사람들.
그 군중들 모두가 손을 들었다.
남녀와 아이, 노인, 부상으로 신음하는 자들까지.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투표 시간이 종료됐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K는 감탄하며 소리쳤다.
“푸하하……! 아, 굉장한 결과입니다. 정말 놀라운 결과예요! 아무리 천 명 이하의 소규모 집단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이런 지지율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하하. 하하하! 역시 시온 씨. 대단하시네요.”
K의 함박웃음과 함께 알림 창이 연이어 생성되었다.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투표자 총 851명.]
[찬성 851명 / 반대 -명]
[만안구에 5,578번째 군주가 탄생했습니다.]
[선포합니다.]
[현 시간부로 만안 제1세력의 군주는 강시온입니다.]
지지율 100%.
그들 모두가 날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토의하지 않았다.
속닥거리지도 않았다.
모두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낸 놀라운 결과였다.
K는 소리쳤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만안 제1세력의 새로운 군주가 탄생하였습니다! 기뻐하십시오! 환호하십시오! 우리들의 새로운 군주입니다!”
빰빠바밤-! 펑펑펑!
아기 천사들이 다시 팡파르를 불고 폭죽을 터트렸다.
폭죽들이 뿜어내는 각양각색의 빛들이 하늘 가득 차기 시작했다.
폭죽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빛나며, 내가 군주가 됐음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앞에는 무수히 많은 상태 창이 무더기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1라운드 때, 보았던 군주들에게만 주어지는 시스템 창이었다.
[만안 제1세력 군주: 강시온]
[수도: 만안구 만안경찰서]
[자원
●보유 도시: 1
●시민 수: 851명 (부상 541명 / 경상 503명, 중상 38명)
●플레이어 수: 1명, S급(1)
●거주 내 순위: 1위
●식량: 35일 (+3)
●식수: 12일 (+4)
●지지율: 100%
●전력:
병력 103명 / 특공대(48명), 미정 의용군(55명)
무기 135개 / F급 (87), E급 (47), A급 (1)]
금빛 테두리를 휘감은 군주의 상태 창.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떠한 상태 창보다 더 화려하고 거대했다.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 자연스럽게 스크롤이 되어 이어졌다.
각각의 상세 내용은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시민 수, 플레이어, 식량, 식수, 전략까지.
간략화된 수치 이외에도, 자세한 사항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2라운드가 시작되면서, 난 더 이상 상태 창을 볼 수 없었다.
군주의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있는 것이라고는 인벤토리, 자잘한 알림 창,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공지뿐.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시스템이었을 뿐임을 지금 실감했다.
2라운드가 진행되면서부터, 나는 잊고 있었다.
어쩌면 경찰 세력을 접수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잊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리그다.
정해진 규칙과 설정하에서 라운드가 진행되는 신들의 놀이이다.
단순한 재난이 아니란 말이다.
K의 말이 옳다.
그들은 우릴 개미 이하의 존재로 바라볼 뿐이지,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있지 않다.
퀘스트, 상태 창, 알림 창, 라운드.
이 모든 건, 그들의 재미를 위해 설계된 하나의 시스템일 뿐.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드리운 압도적인 수의 ‘군주 전용 상태 창’은 이전까지 보았던 것들이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주었다.
‘……서장이 왜 내 계획을 간파했는지도 이제 이해가 돼.’
난 군중들을 돌아보았다.
모든 군중들의 머리 위에는, 개인의 상태가 보이고 있었다.
이름, 상태, 직업, 성별.
작업자들로 지정해 둔 인원들은 ‘작업자’의 표식이.
특공대로 지정해 둔 인원들은 ‘특공대’의 표식이.
그리고 아무런 직업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은 ‘시민’의 표식이 있었다.
성별, 이름은 그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
상태, 부상의 정도나 감정의 상태 등이 간략하게나마 나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내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력군의 상세 지도가 상태 창 안에 모두 나와 있었다.
게다가 지도 내에서는 일반 군중들의 표시도, 옥상 사이를 잇고 있는 교량의 표시, 심지어는 일번가에 포박하고 있던 오우거까지 나와 있었다.
재가동된 보일러의 정보까지 나와 있었으며, 재가동하기 위한 상세 재료들까지 명시되어 있었다.
다시, 품에 있던 군용 단검을 꺼내었다.
●
군용 단검 (+0)(조합)
랭크: E
공격력: 20
내구도: 5
특수효과: x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정, 이름, 직업.
도구가 가지는 특징, 공격력, 내구도.
그리고 마치 드론 촬영하는 것처럼 훤히 보이는 경찰서의 지도까지.
이건 마치…….
“신…… 같죠?”
난 단검을 쥔 채, 상태 창에서 눈을 돌려 K를 돌아보았다.
K가 싱긋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 그녀의 말처럼 이건 정말 신의 능력이었다.
단지 바라만 보더라도,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존재였다.
신의 선택을 받은 군주란 그런 존재였다.
“그 밖에도 다양한 힘이 있습니다.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고, 군주의 능력을 업데이트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스스로 알아내야 할 능력이죠.”
단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자연스레 상태 창이 사라졌다.
“한 번 완성된 아이템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제작법이 인벤토리 내에 공유가 되어서 기억돼요. 보일러, 오우거 포획법. 이 아이템은 당신이 이뤄 낸 결과를 나타내죠. 그러니까 다음 보일러를 만드는 법도 쉽겠죠? 이미 제작법이 이렇게 만들어졌으니까.”
K는 나의 인벤토리에 있던 세 개의 제작법 두루마리를 두고 말했다.
하나는 ‘아포칼립스 보일러 제작법’ 또 다른 아이템은 ‘오우거 길들이는 법’, ‘옥상 교량’이었다.
이건 정보 자원이었다.
단순한 물질적인 자원이 아닌.
“당신이 이뤄 낸 모든 결과물은 이렇게 시스템 내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엄청난 업적입니다. 모르셨죠. 다른 군주들도 슬슬 반응할 텐데……? 한 번 보실까요?”
난 상태 창을 확인하다, K를 돌아보았다.
K는 자신의 상태 창에서 무언가를 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게로 무언가를 보냈다.
[군주 트레이딩 마켓에 접속합니다.]
[만안 제1세력 군주님이 트레이딩 마켓에 접속했습니다.]
[등록된 상품이 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트레이딩? 상품?
“어디 보자…… 일단 경찰서장, 그 돼지 새끼가 당신의 업적을 트레이딩 마켓에 올려놨었거든요? 그걸 일단 자유 경매로 돌리고……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됐다!”
[마켓에 상품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보일러, 오우거 길들이기, 옥상 교량에 대한 경매 진행 상황을 불러옵니다.]
“확인해 보세요. 시온 씨.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당신이 지금껏 이뤄 낸 결과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이것이 그 결과입니다.”
K의 목소리와 함께, 몇 분 지나지 않아 나의 알림 창이 거의 폭주하기 시작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