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새로운 군주 (1)
꼬박 하루 동안 이어진 전장 정리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전사한 특공대의 시체는 장례 절차를 밟기 위해 따로 모아두었고, 경찰들의 시신 역시 모았다.
경찰들의 시신은 동안구 제1세력의 군주를 위한 선물이 될 것이다.
살아있는 경찰 10명과 죽은 경찰 시신 수십 구.
거기에 경찰서장의 목까지.
시온이 동안구로 경찰들의 시체를 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동안구와의 전쟁 시기를 뒤로 미루는 것이었다.
동안구 세력의 규모는 거대하다.
지난 한 달 동안 꾸준하게 동안구 체포조로 나섰던 명예 경찰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동안구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체계적인 아포칼립스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그들은 무리를 이루고, 멀리서 이쪽을 감시하고 있었으며, 가로등에는 경찰들의 목을 매달아 장식했다고 했다.
굳이 장식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정말로 목을 매달아 둔 것이 ‘장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 시온은 세력을 장악했다.
이제 막 전투를 마친 상황에서 외부의 침략을 받는다면, 시온의 세력은 쉽게 버텨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동안 제1세력의 요구를 따르는 척하며 그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경찰들을 모두 처형하여 그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그들이 내건 요구를 충족시켜 줘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제 경찰서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보일러도 고장이 나서 재가동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 경찰서장의 목을 자른 것은 시온에게도, 세력에게도 정말 큰 의미였다.
그리고 그건 진재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서 내부 세면장.
슥- 슥.
홀로 있는 세면장 속, 재희는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 냈다.
추위 때문에 물을 끼얹는다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기에 수건으로 몸을 닦아 냈다.
재희는 깨진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
얼굴을 제외한 쇄골 아래로는 온갖 상처투성이였다.
재희는 상처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를 앞으로 끌어 매만질 뿐이었다.
지금껏 생각이 많고, 할 일이 많아 관리하지 못했다.
이제 작은 산을 하나 넘었다.
심적으로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 있을 전투를 생각하면, 긴 머리는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서걱-. 서걱.
그녀는 비누 받침대에 놓여 있던 가위를 집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긴 생머리가 세면대 바닥에 하나둘 떨어졌다.
이윽고 재희는 단발머리가 되었다.
거울을 통해 짧아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던 재희는 생각했다.
‘만안을 접수한 뒤엔…… 그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시온이 군주의 자격을 얻음과 동시에.
그와 자신의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리그는 ‘군주’와 ‘플레이어’ 간의 힘겨루기이기 때문.
이제는 얼마나 세력을 확장하는지가 중요하다.
재희의 힘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
회귀자의 강점.
그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진재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퀘스트와 업적.
그리고 플레이어들.
세력을 장악한 이후,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힘을 발휘할 자유를 얻었다.
이젠 강시온을 도와, 그가 ‘경기 남부’를 지배하도록 할 것이다.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거야.’
재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세면대 한 편에 걸어 두었던 옷을 하나둘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곧 처형식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 * *
철크덕, 철크덕-.
두 다리와 두 손이 묶인 채, 재갈을 문 경찰서장이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상처를 치료하고 온몸을 붕대로 감은 최명준이 있었다.
날씨가 영하 20도에 육박하는데도, 그는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
최명준은 실실 웃으며 서장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사색에 질린 서장의 얼굴.
그럼에도 서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솟구치는 피는 접착제로 인해 막혀 있었고, 서장은 헐떡이면서 코로만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얼굴을 보며 최명준은 말했다.
“어이. 넌 여기서 네가 최고인 줄 알았지? 최고는 우리 행님이다. 이 멍청한 새끼야.”
퉤-.
최명준은 서장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의 피 섞인 침이 서장의 인중에 붙어 질척거리며 흘러내렸다.
그때, 강시온과 진재희가 2층으로부터 나란히 내려왔다.
시온이 내려오자 최명준은 곧장 허리를 펴, 폴더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형님.”
“오셨습니까! 형님!”
그 뒤로 특공대원들이 최명준을 따라 시온에게 인사했다.
특공대는 최명준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
최명준이 건달처럼 그들을 통제했기에, 그들은 시온에게 필요 이상의 충성심을 보이고 있었다.
최명준의 방식에 시온은 일일이 관여하지 않았다.
시온은 서장을 지나치며 명령했다.
“끌고 와.”
“예.”
철크덕!
최명준은 서장의 사슬을 쥔 채, 끌었다.
죄인, 경찰서장 박건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단두대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서장의 처형식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군주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좋을 것이 없었다.
군주라는 것은 결국 시스템이 규정한 리더.
오래 살려 두면 잠재적인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칙령과 업적 포인트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랬기에 가능한 빠르게 서장을 제거해야 했다.
그때, 돌멩이가 날아들어 서장의 오른 관자놀이에 명중했다.
퍽!
“이 천하의 못된 놈-!”
단두대로 향하는 복도 양쪽에는 시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서장이 경찰서를 빠져나오자, 그를 향해 마구잡이로 돌과 병, 유리가 날아들었다.
“천하의 나쁜 놈!”
“죽어도 싸!”
“악마 같은 놈!”
“죽어! 죽어!”
서장이 했던 짓처럼 시민 중에 스파이를 심어 둔 것이 아니었다.
이건 시민들의 진정한 분노였다.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꾹꾹 억눌러 왔었던 분노들이었다.
서장이 한 발자국 내밀 때마다 양쪽에서 온갖 오물을 포함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강압적인 지시.
강제적인 노동력 징발.
공평하지 못한 자원 분배.
소수의 특권층 보호.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모두를 희생시켰다.
거기에 강간 및 구타, 살인, 협박, 감금까지.
이처럼 서장의 죄목은 많았다.
서장의 얼굴이 돌멩이에 맞아 깨지고 일그러졌다.
몸에는 시민들이 던진 오물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바닥에 시민들이 던진 유리 파편 위로 서장은 걸어야만 했다.
그렇게 서장은 단두대 앞에 도착했다.
서장이 만들라고 지시했던 단두대는 기어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무릎 꿇어.”
처형을 지도하는 특공대원은 서장에게 명령했다.
서장은 고분고분 말을 따랐다.
특공대원은 서장의 목을 잡아채, 받침대에 가져다 놓고 고정대로 고정했다.
철컥-!
날카로운 칼날은 이제 서장의 목을 향해 있었다.
그의 입은 찢어져 있었고, 접착제로 이어진 볼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주목하는 이 순간에, 새로운 지도자는 단두대 위로 올랐다.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도, 어떤 이야기도 오가지 않았지만.
이미 이곳에 모인 모든 시민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모두 들으십시오.”
강시온.
그는 어린 청년에 불과했다.
원래 사회 속에서 누군가를 이끌어 본 적도 없었으며, 많은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선보인 적도 없었다.
일용직 노동자, 중졸, 고아, 빈곤층, 기초 생활 수급자.
이전까지 강시온을 수식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군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경찰서장은 강압적으로 지금껏 우릴 수탈하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세력의 지도자가 가지는 모든 힘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핍박 받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강시온은 걸어서, 단두대로 향했다.
그 뒤로는 진재희가 따르고 있었다.
강시온은 단두대로 걸어 올라가, 서장의 곁에서 소리쳤다.
“여러분. 세상은 멸망했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우리를 지키지 못하며, 공권력은 마비되었습니다. 우린 우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계가 멸망한 이 순간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살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 서장에게 그런 희망이 있었습니까? 서장이 통치하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매일 눈뜨기가 두려웠을 뿐이지, 미래가 있었습니까? 오늘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그런 서장의 밑에서, 무능한 지도자 밑에서, 지금껏 충분히 고통받았고, 충분히 상처받았습니다. 충분히 참아 왔습니다. 당신들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시온의 말에 군중들의 모두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루에 거울을 볼 날이 얼마나 있을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군중들은 사뭇 놀랐다.
너무 처참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씻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먹지도 못하고 노동력만을 강요받아 볼살은 움푹 파여 있었다.
시온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 모습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입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것이 곧 지도자의 역량입니다. 하지만 오늘로써 변할 겁니다. 서장은 처형당할 것이며, 우리 세력은 달라질 것입니다. 대한민국? 한민족? 단군의 아들딸? 다 집어치우십시오. 우린 우리입니다. 우리 방식대로 살아남을 것이고, 우린 반드시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시온의 말은 군중들을 장악했다.
그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군중들을 매료시켰고, 감정을 동요시켰으며, 가슴 깊이 공감시켰다.
지금껏 고통만 받아오던 시민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동했다.
강시온이라는 인물은 이미 그들에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비록 스무 살 청년이었음에도.
“경찰서장은 오늘 죽습니다. 이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한다는 나의 포고입니다. 우린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권리,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외부 세력을 처단할 것입니다.”
시온은 집행자를 바라보았다.
집행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도끼를 쥐었다.
척!
그의 도끼날이 하늘 높게 치켜올려졌다.
모두가 침묵하고, 집중했다.
지금껏 수많은 시민들이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지금 눈앞의 인물은 그 의미가 달랐다.
모두의 원수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어서 집행자는 도끼로 밧줄을 내리쳤다.
훼에에에에엑- 터억!
촤르르르르르르륵- 턱!!!!!!
칼날은 단숨에 서장의 목을 덮쳤다.
“…….”
“…….”
“…….”
툭, 데굴데굴…….
서장의 목이 굴러떨어져 군중 앞에 자리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던 노인이,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서장의 목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서장의 얼굴을 두 손으로 들고서는 마주 보았다.
노인의 손에 들린 서장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척!
노인은 서장의 목을 두 손 높이 치켜들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군중들이 볼 수 있게.
그러자 모두는 열광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군중들은 포효했다.
시온은 그것을 보며 웃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말없이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변화는 곧바로 일어났다.
띠링!
우선 시온을 필두로.
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
모두의 눈앞에 알림 창이 떠올랐다.
군주 재선거에 대한 시스템의 알림 창이었다.
[군주의 사망으로 인한 만안 제1세력의 재선거를 실시합니다.]
[재선거의 권한은 해당 구역의 관리자에게 위임됩니다.]
[만안 제1세력의 모든 칙령이 해제됩니다.]
[후보자 등록 중.]
[후보자 등록 완료.]
[재선거를 위한 선거 위원회가 만안구에 개입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존재는, 시온의 심기를 건드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