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혁명
난 묵묵히 서장의 말을 들었다.
그는 첫 번째 처형식 이후, 일주일이 지난 밤에 나와 진재희를 자신의 집무실로 초대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은 거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그의 앞에 앉아 있었고, 진재희는 내 옆에 서 있었다.
서장은 내게 말했다.
“사람이란 것이 참 이상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장의 테이블에는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그는 얼어붙은 횟감을 녹여서 그것을 초장에 찍어 먹었다.
졸졸졸-.
서장의 잔에는 와인이 계속해서 따라졌다.
따뜻한 국물이 가득한 어묵탕과 화로에 구운 닭, 불판에 구운 고기, 세계가 멸망하고 나서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이전 문명의 음식들이 책상에 가득했다.
내 앞에는 일회용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눈앞의 서장은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그 난잡한 음식들 사이, 서장과 나의 체스 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흑(黑), 서장은 백(白)이었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는 것이에요. 그게 참…… 그 실수란 것만 없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은 없었을 텐데. 생각해 보면 그릇된 판단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실수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되돌아보면 실수가 되는 거죠.”
턱, 스윽스윽.
서장은 스테이크를 썰었다.
요즘 셰프들이 어디에 차출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서장의 개인 셰프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서장은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며 씹었다.
서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근데, 또 달리 생각하자면. 이 사람이 실수란 걸 안 하면, 우리 인간이 이렇게 발전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틱, 스윽스윽스윽스윽.
서장은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고 시선은 내게 꽂혀 있었다.
“관리자님은 혹시. 그 최초의 인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담과 같은 종교적인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꿀떡꿀떡.
서장은 이제 와인 병을 통째로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의 보금자리 곁에는 술병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난 그를 따라 와인을 마시며 대답했다.
“호모 사피엔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아니, 맞긴 한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최초의 인간은…… 누구인가?”
서장의 입이 일정한 간격으로 위아래로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입술 사이로 이어지는 걸죽한 침과, 입안 가득 잘게 부서진 음식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누굴까나…… 뭐, 저도 어떤 책에서 본 것이긴 한데. 그게 분명 이스라엘 어디, 중동 쪽 교수였던가…… 근데 그 책을 보고 아! 하면서 깨달았죠. 말 되네! 라면서 말이죠. 하하.”
서장은 대부분의 생활을 집무실 안에서 보낸다.
집무실 한 편에 마련된 침대와 침대 옆으로는 넓고 긴 책상이 있어, 늘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이곳에는 배치된 두 대의 난방기구 덕분에, 경찰서 내 다른 거주지에 비해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혀끝에서 와인을 굴리던 서장이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는 날 바라보았다.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난 서장이 원하는 대답을 모른다.
그리고 서장이 날 따로 불러, 무슨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물론, 지금은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할 때다.
이미 거사는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알려 주시겠습니까?”
난 테이블 위에 있던 포도 한 알을 집었다.
서장이 쥔 잔에서 와인이 일정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정답은 최초로 거짓말을 한 원숭이입니다.”
포도를 쥔 채, 그것을 입에 넣고 씹었다.
오독.
시고 달콤했다.
“최초의 거짓말을 한 원숭이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원숭이를 속였습니다. 동물이 거짓말을 할까요? 아니죠. 동물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본능대로 움직이죠. 그럼 그 최초의 인간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
“전 그것이 파괴의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꿀떡.
서장의 목구멍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원숭이는 같은 원숭이를 죽일 이유가 전혀 없죠. 육식을 하는 게 아닌 이상, 함께 무리를 이루는 편이 더 안전할 테니까요. 그런데 그 원숭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원숭이를 파괴한 것입니다. 그 원숭이의 먹을 것을 뺏음으로써, 또는 거짓으로 그 원숭이를 굶김으로써, 일종의 파괴 행위를 저지른 것이죠. 그건 동물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진보 행위였어요.”
툭.
서장이 와인 잔을 놓았다.
그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날 노려보며 말을 끝맺었다.
“그럼, 한 가지 의문이 들죠.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진보적인 존재가 아닌가?”
나 역시 눈동자만 올려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기분 나쁘게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근데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해석 같고…… 파괴을 통한 초월적 진보는 원숭이에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인간은 말입니다? 인간이 현재보다 더 초월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가? 원숭이는 파괴의 욕망이었고…… 그렇다면 인간은?”
팅-.
서장이 지포 라이터의 뚜껑을 열자 청량한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지포 라이터에서 피어오른 불꽃에 서장의 담배 끝이 말려 들어갔다.
“이 리그는 그걸 증명하는 질문의 대답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다. 그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
푸우-.
그가 내뿜는 담배 연기는 일순간에 내 시야에서 그를 가렸다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관리자님.”
그는 내게 동의를 구했지만, 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뱀의 울음소리처럼 간악했다.
“글쎄요. 편하신 대로 생각하시죠.”
눈앞에 와인 잔에 눈이 갔다.
난 평생 술이란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소주도, 맥주도, 알코올이 들어간 그 어떤 술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를 따라 와인 잔에 손을 가져다 놓았다.
입술에 잔을 묻은 채, 조금 뜸을 들이다 한 모금 마셨다.
쓰린 맛 뒤에 달콤함이 감돌았다.
벌써 서장과 난, 2시간째 술을 마시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만 오가는 중이었다.
서장은 약간은 혀가 꼬인 듯, 말을 얼버무리며 말했다.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이 있습니다. 그건…… 인간은 왜 평등한가, 입니다.”
“…….”
퐁-!
서장은 다시 와인 병을 땄다.
그는 이미 잔뜩 취해 있었다.
졸졸졸.
다시 그의 유리잔에 새빨간 와인이 채워졌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관리자님. 평등하지 않기에, 평등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평등하지 않고, 권위적인 존재가 단지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었을 뿐이죠. 그러니 세상은 평등하지 않은 것이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불평등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서장은 단숨에 유리잔에 든 와인을 비워 냈고, 나도 그를 따라 와인을 들이마셨다.
그때, 진재희가 걱정스러운 듯, 내 잔에 손을 대었다.
“괜찮겠어?”
“괜찮아.”
그녀는 내가 과음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걱정 없었다.
취하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 이 정도로는…… 서장을 취하게 만들기 어려웠다.
“하여튼…… 전…… 관리자님이…… 좋습니다. 제 조카 같고, 뭐. 지금 와서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원래는 관리자님이 꾸린 토벌조에 감시자를 붙여 두었습니다만.”
그 소리에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난 눈동자를 올려 서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난 며칠 전에 죽었던 시 의원을 떠올렸다.
난 그를 높게 평가했다.
세력 내의 실질적인 브레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 의원은 처형되었고, 서장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서장도, 그리고 나도.
우린 서로를 감시하고 있었다.
“교량과 괴물 조련…… 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도…… 우우욱……! 알고 있고요.”
서장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다시 날 바라보았다.
“근데 관리자님이…… 단두대를 시민에게 만들도록 지시한 건…… 그- 건. 제가. 관리자님이 이젠 우리의 편이 되었구나…… 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죠. 뭐…… 사실은 당신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만. 당신을 섣불리 죽여 버린다면, 시민들의 반항이 더욱 거세질 것을…… 대비해…… 아…… 취하는군.”
난 서장을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물었다.
“근데 김수경 순경은 어떻게 된 겁니까? 어제부터 오지 않는다만.”
“죽여버렸는데요? 건방지게 굴어서.”
서장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난 인상을 찌푸렸다.
벌떡-!
그 말 뒤로 서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와인 잔을 쥐며 내게로 뻗었다.
“뭐, 그런 건 이미 지나간 일. 자, 관리자님! 우리의…… 건승을 위하여.”
서장은 와인 잔을 들며 실실 웃었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잔을 들었다.
탱-.
와인 잔이 부딪히며,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장은 와인을 마시며 고개를 들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한 채 잔의 담긴 와인을 비워 냈다.
역시나 쓰다.
결국에는 타이밍 싸움인 것이다.
내가 먼저 서장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서장이 나를 먼저 죽일 것인가.
그리고 결론은 이미 났다.
“우린 이제 한배를 탄 겁니다. 관리자님.”
“…….”
“그런 기념으로 제가 관리자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건 우리가 같은 위치에 올랐다는 선물.”
그때, 서장은 바깥에 있던 비서를 불렀다.
“그, 저 뭐야. 들어오라고 해.”
난 물이라도 마실까, 테이블 한 편에 있던 생수병을 쥐었다.
그때, 집무실로 몇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모두 여자였다.
여자들은 내 옆에 나란히 서더니, 불안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장은 다시 잔에 와인을 따르며 내게 말했다.
“예로부터 말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모든 쾌락에 대해 독점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지녔습니다. 그리스의 성인들은 젊은 소년과 잠자리에 드는 것을 즐겨 했고…… 인류학적인 성인이었던 간디 역시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습니다. ……현대인들이라고 다를까요? 아뇨. 더하면 더하겠죠.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원래 병들거나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병적인 욕망을 지닌 게 아니에요. 이건 그저…… 당연한 것입니다. 당신은 위에 있기에, 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누리세요.”
술기운이 올라왔지만, 난 정신을 바로 했다.
그러고는 여자들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젊은 여자들이었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돌려 서장을 바라보았다.
남자로서 성적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비정상적인 것이다.
나 역시 스무 살 남자다.
세상이 멸망한 뒤였지만, 내게도 그 욕망이 꿈틀거렸다.
성욕, 식욕, 수면욕.
그 모든 것이 결여된 이 세상에서도, 집단의 최상위 계층은 모든 것을 누리고 살고 있다.
멸망하기 전의 세상과 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난 쾌락에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오로지 동생을 찾는 것뿐이었다.
“……못 들은 걸로 하죠.”
그러자 서장은 비틀거리는 손가락으로 진재희를 가리켰다.
그는 검게 변한 잇몸을 드러내며 실실 웃어 댔다.
“아, 관리자께선 이미 애인을 가지고 계셨던가?”
서장은 웃음을 참는 듯, 킥킥거리며 말을 이었다.
“로맨티스트네? 우리 관리자님.”
“…….”
대꾸할 가치를 못 느껴, 대답하지 않았다.
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어지럽게 쓰러져 있는 검은 체스 말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며 말했다.
“체스. 두실 줄 압니까?”
“……체스요? 아, 예. 그러죠. 대학 시절에 자주…… 두곤 했습니다. 예. 아, 그래. 관리자님. 저랑 체스…… 두시기로 했죠? 그래요. 한번 놀아 봅시다.”
와르릉.
서장은 자신의 앞에 있던 접시와 음식들을 테이블 저편으로 치워 버렸다.
서장과 나 사이에는 이제 체스판이 자리했다.
체스는 내가 가지고 온 놀 거리였다.
그를 이곳에 묶어 두기 위한 하나의 수단.
첫 번째는 술이고, 두 번째는 체스.
단순한 것들이지만, 두 가지 수단은 서장을 이곳에 묶어 두기 위해 만든 요소들이다.
서장은 비틀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체스 말들을 쥐었다.
“룩이…… 여기였던가…… 아니, 퀸과 킹의 자리가…… 이게…… 장기랑 다르니까…….”
난 서장이 난리를 피운 통에 쓰러져 있던 검은색 킹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탁-.
검은색 킹이 일어선 순간, 나의 군단은 완성되었다.
난 준비되었다.
난 각오되었다.
난 시작할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끝낼 것이다.
어수선하게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저 흰색의 체스 말들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일 뿐이다.
“시작할까요?”
“예…… 뭐…… 시작하시죠.”
집게손가락으로 폰을 쥐어 앞으로 전진시켰다.
타악-!
둔탁한 소리가 집무실을 채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