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단두대 (2)
경찰 병력이 살해되고 나서, 경찰들은 순찰의 규모를 키웠다.
또한 5층과 4층 사이 계단 층에 추가로 바리케이드를 놓아, 시민들의 갑작스러운 반란에 대비했다.
하지만 사건은 경찰 내부에서 터지고야 말았다.
덜컹-!
5층, 서장의 집무실 문이 열리며, 피 흘리는 여자가 튀어나왔다.
놀란 경찰관들이 서장실 문에서 빠져나온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
가까이에 있던 김수경이 금세 옷을 벗어, 여자에게 다가가 덮어 주었다.
김수경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습니까? 왜 그래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데요?”
그녀를 품에 안은 김수경이 여자의 상태를 살폈다.
둔기로 맞은 듯한 상처가 온몸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여자는 김수경의 품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말을 이었다.
“살려 주세요…… 아저씨…… 제발 살려 주세요.”
김수경이 무슨 말을 잇기도 전이었다.
끼이이익-.
들려오는 경첩 소리에 김수경은 고개를 들었다.
“…….”
그곳에는 술에 취한 서장이 서 있었다.
두 주먹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으며, 숨을 거칠게 내뱉고 있었다.
속옷밖에 입지 않은 그의 몸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꿀떡, 꿀떡.
서장은 술병을 통째로 들이켰다.
김수경은 그런 서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장님. 이게 대체……?”
“그거 내 거야. 내려놔.”
서장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수경에게 강한 어조로 명령했다.
“서장님……?”
“내려놓으라고. 김순경.”
터벅.
서장이 술에 취해 터벅터벅, 앞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서장의 고개가 좌우로 뒤흔들렸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보였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내려놓으라고. 내 거라고. 어딜 만져? 어?”
“서장님……!”
김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삼단 봉을 꺼내 들었다.
삼단 봉을 쥔 그의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서장과 김수경 순경.
세 명의 경찰들이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김수경만이 서장을 막아서고 있었다.
“서장님…… 이건 범죄 행위입니다.”
김수경이 말하자, 서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범죄? 어떤 범죄.”
“정신 차리십시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 아…… 어? 아니, 무슨 범죄. 내가 법인데, 무슨 범죄……? 아, 잠깐. 김 순경. 가서 물 좀 떠 와.”
“서장님! 제발!!!”
“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아니. 아니……!”
김수경의 말을 듣던 서장은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왜 내 말을 안 들어. 왜. 아냐. 내 말 들어…… 너도 죽여 줄까? 죽고 싶어? 물 좀 가져오라니까? 무울!!!!!!”
“……서장님을 강간 및 구타, 감금 행위의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그때, 김수경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갑을 꺼내었다.
서장은 눈동자를 떨어트렸다.
비틀거리는 시선 속에서도, 그는 김수경이 쥔 수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 지금. 수갑. 수갑…… 수갑 채우려는 거야?”
“서장님. 당신은 지금 제정신 아닙니다.”
“제정신? 제정신? 너 지금 나한테 제정신이라고 한 거야? 제정신…… 제정신. 제정신. 하…… 제정신. 아…… 제정신이라.”
서장은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으고,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서장은 드디어 미치고야 말았다.
울다가 웃다가 머리를 벽에 박아 대고 있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걸쭉한 침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수경은 천천히 서장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서장은 중얼거리듯이 명령했다.
“멈춰.”
그 순간, 서장에게 다가가던 김수경의 눈앞에 알림 창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만안 제1세력, 군주 박건우에 의한 칙령, 1조 2항]
[1조 2항: 모든 경찰서 내부의 시민들은 ‘명예 경찰’이 되어 군주 박건우의 명령 수행 의무를 진다.]
[60초 이내, 수행하지 않을 경우 페널티 부여.]
“어엇.”
알림 창의 등장에 김수경은 우뚝 멈춰 섰다.
서장은 여전히 벽에 기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술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것이었다.
“너…… 너. 거기서……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죽어…… 죽는다? 카아아아악!”
퉤.
서장은 침을 내뱉곤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낚아채곤 다시 서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철컥!
그 순간, 김수경은 서장의 손목에 수갑을 걸었다.
김수경은 서장의 명령, 아니 시스템의 명령을 어겼던 것이다.
“…….”
서장은 자신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김수경을 바라보았다.
“서장님. 당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
김수경 순경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두려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서장의 범죄 행위를 묵인할 순 없었다.
서장은 다시 수갑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김수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고는 중얼거렸다.
“아, 잠깐. 잠깐…… 이게 수정이…… 수정이 뭐였더라. 아, 수정. 수정이 말이야…….”
서장은 여자의 손을 놓은 채, 다시 벽면에 이마를 처박더니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은 얼마 가지 않았다.
서장의 손목에는 수갑이 여전히 채워져 있었고, 서장은 김수경에게 말했다.
“너, 그냥 죽어라.”
“예……?”
그 순간이었다.
꽈드드드드드드드득-!!!!
“카아아아악! 커어어어어어억!”
김수경의 몸에 검은 물질이 휘감겨 오더니, 그대로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뽀득, 뽀드드득!
그 장면을 목격한 다른 경찰관들은 지레 겁먹어선 뒤로 주춤거렸다.
서장에게 수갑을 채웠던 김수경의 온몸이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서장은 우는 듯, 웃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소리쳤다.
“내 명령에…… 내 명령에…… 불복종하면…… 죽는 거야!!!! 그렇게 수정했어……!!! 아하하하하!!! 엄마, 나 잘했지? 응? 어? 야, 너희도 알겠지? 너희도? 응?”
콰드드드득-!
김수경의 몸이 꽈배기처럼 꼬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의 뼈가 으스러리고 피까지 모두 분출되기 시작했다.
털썩-!
곧 김수경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고, 새빨간 핏줄기가 복도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서장은 여자의 손을 쥔 채, 이 장면을 목격하던 다른 경찰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이, 이거. 치워. 저기. 어디야…… 3층에 가져다 버려. 시민들이 살해한 것처럼…… 꾸미라고. 알겠어? 그, 그, 그리고 내일 시, 시민 중에 하, 한 명 뽀, 뽑아서, 주동자로 몰아서 처, 처형시켜. 응? 알겠지? 어, 엄마. 엄마가 시켰어요! ……아하하.”
이제 서장의 말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쿵.
여자는 다시 서장에 의해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 문의 경첩 소리가 이토록 소름이 끼치는 것인지, 그곳에 있던 모든 경찰관들은 그 소리에 압도적인 공포를 느꼈다.
* * *
“우아아아아아아악! 내가 왜!!! 내가 왜!!!”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비명 소리였다.
원래라면 들리지 않았던 비명 소리가 이젠 아침에 눈을 뜨면 무조건 울려 퍼졌다.
그것이 여자일 수도, 늙은 노인일 수도, 아이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즘 잠들기를 무서워했다.
내일 일어나면 또 누군가 죽어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 그 누군가가 죽어서 남긴 시체는, 또 다른 누군가가 발견해서 비명을 내지른다.
비명은 사람의 마음을 타락시킨다.
특히, 울음이나 처절한 소리침 같은 것은 쉽게 전염되었다.
“내가 안 죽였다니까?! 어!!! 내가 안 죽였다고!!! 이런 X발! 안 죽였어! 안 죽였다고!”
경찰관 두 명이 남자를 체포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 시민들은 옹기종기 모여 체포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근처에 경찰관들이 이젠 눈을 매섭게 뜬 채, 삼단 봉을 당장이라도 휘두를 것 같았으니까.
유치장에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소문이 다 퍼져 알고 있었다.
그냥 죽진 않을 것이다.
고통 속에 죽어 갈 것이다.
이미 경찰과 시민, 두 세력 간의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였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네에……! 예에……? 허어어엉……!”
그리고 이곳에 있는 시민들은 경찰서에서 생활하며 새롭게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중년의 남성이라도, 선인이라도, 표정이 인자한 아주머니라도,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젊은 청년일지라도, 우람한 체격의 군인이나 정의감 넘치는 경찰이라도 전부 똑같다는 사실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어린아이로 되돌아갔다.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울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쉼 없이 눈 내리는 경찰서의 아침 점호장.
그 한가운데에는 서장의 명령에 밤새 작업조들이 만든 단두대가 세워져 있었다.
간이 단두대일 뿐이었지만, 그 용도는 인간의 목을 효과적으로 자르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모두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이곳에서의 첫 번째 처형식이었다.
* * *
단두대의 모습은 단순했다.
인근 도시에서 주워 온 재료들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중세 시대의 단두대와는 달랐다.
조잡한 재료들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처형’에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했다.
거대한 칼날이 도르래에 연결돼 아슬아슬하게 올려져 있었고, 그 밑으로는 사람의 목을 포박할 수 있는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시온은 그것을 바라보며, 실로 작업자들의 실력이 출중하다고 생각했다.
단 하루 만에, 처형 기구를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 거행되는 처형식은 그의 계획에는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시민 세력의 분노를 더욱 부추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에서 포박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어, 남자는 비명을 지르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경찰관 두 명이 남자를 끌고 와, 목을 목 받침대에 놓고, 고정대로 덮었다.
그리고 수갑을 고리에 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서장이 걸어 나왔다.
거만한 자세로 뒤뚱거리며.
서장은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풍만한 배를 자랑하며 단두대로 다가왔다.
서장은 소리쳤다.
이자가 어젯밤 경찰을 죽인 자이고, 지금부터 경찰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위협을 하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리겠다고.
“아, 정말 잘 만들긴 했어.”
단두대를 바라보며 했던 서장의 첫마디였다.
그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고, 사슬을 쥔 경찰관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여든 시민들을 둘러본 뒤에, 다시 사슬을 쥔 경찰관을 바라보았다.
그의 움직임은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잠깐만.”
서장은 쪼그리고 앉아, 단두대 밑에 있던 남자에게 속삭였다.
누구도 듣지 못하게 남자한테만 속삭였던 것이다.
“지금 웃어 보세요. 지금 웃으면 살려 줄게.”
단두대에 낀 남자는 낑낑거리며 서장을 바라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하지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듯 동의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장은 다시 남자에게 속삭였다.
“그건 히쭉거리는 거고…… 스마일을 하라고. 응? 스마-일. 고개 쳐들고 소리 내서 말해. 그럼 진짜 살려 줄게.”
남자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그곳에 모인 모두에게 웃음을 내보였다.
“수- 마- 이일-”
입에 재갈이 물린 채로 어눌하게 말한 남자가 웃어 보였다.
“킥킥킥킥…… 으으…… 푸흐흐흐……!”
서장은 남자의 모습을 보곤 입을 가리며 웃더니, 사슬을 쥔 경찰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장의 신호에 사슬은 풀렸다.
촤르르르르르륵- 터엉!
남자의 머리가 웃는 채로 떨어졌다.
잘린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와 사람들 앞에까지 굴러갔다.
“축하드립니다. 지구상 최초로 웃으면서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장은 다시 허리를 펴 담배를 태웠다.
공포.
그것은 서장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였다.
서장에게는 시스템이 규정한 칙령이 있다.
그 절대적인 군주의 권한이 있는 한, 이곳에 모인 모두가 서장에게 함부로 대들거나 할 수 없었다.
그러한 이점을 이용해, 지금 서장은 시민들에게 공포를 주입시킨 것이었다.
서장은 담배 쥔 손으로 까딱거리며 명령했다.
“해산해.”
서장은 담배를 맛나게 태우며 다시 경찰서로 저벅저벅 들어갔다.
그 뒤로, 경찰관 두 명이 남자의 시체를 주섬주섬 치웠다.
시민들은 서서히 해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인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모두가 한 남자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퍼트린 소문은 좁은 건물 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곳에 모여들었던 모든 시민은 이미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서장이 경찰서로 들어가자, 시선은 다시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강시온이 있는 곳이었다.
시온은 처형식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다, 이내 중얼거리며 말했다.
“준비는 완벽하겠지?”
그 목소리에 최명준이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더 이상의 지체는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