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단두대 (1)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시민에 의해 왕정과 귀족을 몰락시킨 진정한 의미의 자유 시민 혁명으로 불리는데, 난 다르게 생각한다.
프랑스 대혁명은 시민-상인-귀족(왕족)으로 이어진 세 개의 계급 중, 상인을 중심으로 한 계급 체계의 변화일 뿐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주체는 시민임에 분명하지만, 최대 수혜자는 결국 상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부르주아, 즉 상인 계급은 국가를 장악하고 시 의회를 만들었으며, 사회의 최상위 계층으로 등극했다.
그것이 현대에까지 이어져 기업인이 사회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즉, 선동당한 시민들이 얻은 것은 없다.
선동한 상인들이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
이에 미루어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하급 계층이 반란을 일으켜 상급 계층을 이기면, 그 최대 수혜자는 중간 계층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나의 상황이 딱 이러했다.
난 시민의 편도, 경찰의 편도 아닌 어중간한 박쥐 같은 존재.
그리고 박쥐는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며 온갖 선동과 균열을 일으키는 따지자면 사회의 악(惡).
분열을 일으킨 건, ‘나’지만 두 세력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여 싸우기 시작했다.
“경찰이…… 시민을 죽였다-!!!!!!!”
“시민을 죽였다!!! 경찰이 시민을 죽였다-!!!!!”
처음은 패닉이다.
경찰이 시민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이기에, 실제로는 시민 세력이 더 거대한 권력을 지녔음에도 뿔뿔이 흩어졌다.
시민 무리는 순식간에 해산했다.
거의 도망치듯이 경찰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어떡하면 좋습니까? 예? 관리자 양반. 당신이 시민들 좀 진정 좀 시켜 보소……! 그러기 위해 관리자 시켜 둔 거 아니오?”
서장은 당황해선 내게 물었다.
지금껏 서장은 ‘시민’을 완벽하게 길들였다고 생각했을 터인데, 나로 인해 그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장은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맴돌거나 이빨을 부딪치며, 자신이 불안하다는 걸 여지없이 내비쳤다.
박쥐는 조류에게 갔을 때는 조류에게 알랑방귀를 뀌어야 하는 법.
난 그에게 말했다.
“엄하게 다스리시지요. 경찰들은 그만한 힘과 자격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엄하게……? 어떻게 말이요?”
난 조금 뜸을 들이고 말했다.
“사형시키십시오.”
“…….”
꽤 돌직구였다.
서장을 제외한, 이곳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이청춘 경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청춘 경사는 처음으로 내게 큰소리를 내었다.
그는 터벅터벅 내게 다가왔다.
“시온 씨!!!!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덥썩!!
이청춘 경사는 내 멱살을 쥐었다.
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장난하십니까……? 경찰이…… 시민을…… 사형시켜? 이봐, 강시온 씨!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당신……!”
이청춘 경사는 내 멱살을 쥔 채, 흔들어 댔다.
그의 손아귀에 따라 내 몸도 앞뒤로 흔들렸다.
“겨, 겨, 경찰은……! 시민을 지키라고……! 있는 거야…… 알겠어?”
나는 그런 말을 해 대는 이청춘 경사를 향해 말했다.
“참 모순되네요. 경사님.”
난 그에게 멱살을 잡힌 상태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경찰서 내부 1라운드. 당신들은 ‘사형’과 ‘고문’을 자행했으면서, 이제 와서는 정의로운 경찰인 척하고 있는 겁니까?”
“뭐……?”
이청춘의 눈꺼풀이 뒤흔들렸다.
멱살을 쥔 그의 두 손도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난 보았다.
지하 1층, 유치장.
그들의 은밀한 공간을.
그곳엔 그들이 숨기고 싶은 과거가 남아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처음 와서, 느꼈던 감정은 하나였다.
경찰서는 온갖 모순덩어리로 가득하다고.
그들이 날 관리자로 두었던 것도, 결국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였을 뿐이었으니. 기존 세상의 정의로운 경찰은 이제 없었다.
시스템은 ‘정의’의 의미를 재규정했다.
시스템의 정의는 결국 생존이다.
살아남는 자의 생각이 정의관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박건우 경찰서장.
그리고 동안구 제1세력의 군주처럼.
“다 같이 살아남고자, 1라운드 때는 다른 왕들을 그렇게 죽였으면서. 이제 와서 발뺌하냐고 물었습니다. 이청춘. 경사님.”
“……아, 아니야. 그건…… 그건 어쩔 수 없이……!”
이청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도 떨려 댔다.
난 쐐기를 박았다.
“어쩔 수 없이…… 라. 어쩔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어떤 게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강간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술 처먹고 운전하다가 지나가던 행인을 들이박았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거였습니다. 실수였습니다. 선처해 주십시오. 판사님. ……그런 걸 가장 혐오했던 게 경찰 아니었나요?”
“…….”
난 그의 멱살 쥔 손을 잡고 내렸다.
이청춘의 손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손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한 가지만 하세요. 경사님. 당신은…… 경찰입니까. 아님 그냥 살고자 하는 사람입니까.”
“나…… 나는…… 나는. 나는…….”
이청춘은 목소리를 떨며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서장이 내게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어깨를 쥐었다.
서장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양쪽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서장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하고선, 내게 말했다.
“그, 그래요. 관리자님 말이 맞네요……! 시온 씨는 천재입니까? 와하하하하! 당신을 관리자로 둔 것이 올 한 해 최고로 잘한 것입니다……! 그래요. 시온 씨……! 예, 옛부터 말 안 듣는 개X끼는 몽둥이로 키우는 것이 맞거든요……! 아, 그리고 저한테는 칙령의 힘이 있으니까……!”
난 지금껏 짧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서장의 기괴한 표정은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마주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끔찍한 몰골이었다.
‘……괴물 새끼.’
서장은 지금 미쳐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1라운드부터인지, 아님 2라운드를 시작하고서인지.
서장은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감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길인호를 죽인 것도, 동안구에 무리하게 진격해 쓸데없는 인력을 낭비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는 지금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동시에 내가 이용해 먹기도 좋은 상태이기도 했다.
서장은 불안한 듯 고개를 덜덜 떨면서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한 경찰관에게 소리쳤다.
“야-!! 관리자님을 도와 단두대 만들어. 당장.”
경찰관이 쭈뼛거리며 서장의 명령을 듣기를 주저했다.
그리고 난 그런 서장을 불러 세웠다.
“아뇨. 서장님. 괜히 수고스러운 경찰 병력을 사용할 필욘 없습니다.”
“과, 관리자님……?”
이곳에서 내가 했던 말 밖으로 흘러 나가면 안 되니, 경찰 병력을 내 일꾼으로 사용하면 안 되었다.
난 조금 미소를 보이며 서장에게 말했다.
“서장님. 망나니 개X끼가 자기를 삶아 죽일 솥을 스스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건 그거대로 재밌겠지요?”
난 시민들을 이용해, 단두대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효과적으로 쌓일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서장의 입이 동그랗게 말렸다.
이내 그는 폭소했다.
“아, 아하하……! 아!!! 천재, 천재, 천재!!!! 푸하하하하하하!!!! 시온 씨는 정말 천재입니까?!!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어이! 당장 진행시켜! 아하하하하하하!”
서장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를 따라 희미하게 웃었다.
* * *
박쥐는 다시 포유류에게 다가가 포유류 행세를 한다.
다시 시민의 편에 서서, 경찰에 대한 분노를 한층 더 끌어올릴 것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내 말에 작업자들이 한껏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장은 지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는 지금 미쳤어요. 시민들을 처형할 단두대를 시민 스스로 만들라니.”
“…….”
“…….”
모두가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경찰서의 대립 구도는 작업자들도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작업자들에게 정보를 흘린 이유는 간단하다.
작업자들은 지금 경찰서 내부 시민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엘리트 집단.
엘리트 집단을 휘어잡기만 한다면, 그 밑의 일반인들은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오게 될 것이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저희는 도대체…… 하아…… 경찰이 시민한테 이래도 됩니까?!”
“젠장…… 젠장…… 젠장!!!!”
그들은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서장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내게 크게 의지하고 있었다.
하나둘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았다.
“관리자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알려 주십시오.”
“맞습니다. 관리자님만이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겠지 않습니까……?”
“관리자님……!”
“관리자님!!”
경찰들도 그렇고, 시민들도 그렇고.
모두가 나에게 의지했다.
이걸 의미하는 건, 두 세력 모두 나의 혓바닥 안에서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작업자들은, 내가 직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특공대와는 다른 인원들이었다.
작업자들은 말 그대로, 세력이 굴러가기 위한 여타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 하는 부류이다.
특공대는 최명준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심부름꾼 집단.
최명준은 특유의 건달 방식으로 특공대를 뭉치게 만들어, 나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솔직히 공권력이 없는 시민들을 휘어잡는 데에는, 건달만 한 것이 없었으니.
그리고 나의 원래 작전에 대해 아는 건, 진재희, 최명준, 특공대뿐이었다.
“전쟁하시죠.”
난 기어코 그들에게 말했다.
이 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만의.
나에 의한.
모든 건 동생을 찾기 위한 이곳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
나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이내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마치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저렇게 하다가 다 죽어…… 오늘 아침에도…… 경찰이 휘두른 방망이에 권 씨 아저씨가 죽었어.”
“우리를 진짜 개돼지로 보는 거야.”
“더 이상 참아 줄 수가 없어. 생각해 보니…… 경찰서장. 이 개X끼.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명령만 내리잖아?”
“내 친구도 토벌조에 속했는데, 아주 중노동이나 다름없대. 동안구로 향하기 위해 밤까지 눈만 파낸다는데……!”
“이렇게는 살 수 없어.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사람들의 말, 말, 말.
그 말들을 난 계속해서 주워들었다.
좋은 징조이고, 좋은 대사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서 답을 이끌어 내길 원했다.
“관리자님…… 우리…… 어떡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가장 앞 열에 있던, 콧수염이고 턱수염이고 덥수룩하게 난 한쪽 안경알이 깨진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난 그 아저씨에게, 아니 모두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제게 계획이 있어요. 들어 보실래요?”
모두가 내 계획을 듣고선 교묘한 미소를 지었다.
* * *
띠링-.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악!!!!!!!!!
딸랑-.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또롱-.
-칵!!!!!!! 칵!!!!!!!!
깊은 밤, 안양 일번가 외진 곳의 건물 골목.
시온은 네펜데스로 인해 온몸이 꽁꽁 묶인 오우거의 턱 위에서 종소리를 일정하게 울리고 있었다.
종소리에 따라, 새끼 오우거도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종은 다름 아닌, 인근 식당 유리문에서 떼어 온 도어벨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그 밖에도 여러 종류의 종을 가지고 있었다.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진 종이었다.
시온은 일정한 순서에 맞춰, 종을 울리고 멈추고, 놈의 눈을 찌르고, 치료되길 기다렸다.
“……반응하기 시작했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재희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그녀의 반응처럼 새끼 오우거는 일정한 종소리에는 ‘어떠한 움직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종소리에 따라 오우거의 본능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소리를 주입 교육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띠링-.
시온이 1번 종을 울리면, 남자가 신호에 맞춰 오우거의 눈알에 칼을 꽂아 넣었다.
이 짓을 반복한다.
나중에는 1번 종소리만 울려도, 놈은 칼에 찔리는 줄 알고 반응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놈의 신체는 특이한 자동 반사 조건이 있었다.
마치 인간의 무릎 반사처럼, 어떠한 행위에 맞닥뜨리게 되면 의식이 없어도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시온이 놈들의 지하상가로 들어갔을 때, 뭣도 모르고 눈알을 공격하자 자동으로 튀어나온 손바닥을 보고 깨달은 사실이었다.
띠링-, 딸랑-, 또롱-, 뚜룽-.
각기 다른 종소리를 통해 오우거를 조련한다.
2번 종, 3번 종, 4번 종, 5번 종까지.
“어느 정도 됐다.”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몇 시간이고 이어진 조련 과정은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우거를 포획하고 5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솔직히 진재희의 입장에선,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괴물과 만난 순간 두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도망가거나, 사냥하거나.
하지만 시온은 그런 괴물을 조련할 생각을 했다.
그에게 있어서 오우거는 자신의 전쟁 도구일 뿐이었다.
그때, 몇 명의 사람이 얼음덩어리 몇 개를 짊어지고는 오우거의 몸통 위로 옮겼다.
“관리자님…… 가져왔습니다.”
수레에 끌고 온 것은 얼어붙은 인간의 시체들이었다.
시온은 그들을 발견하곤 가장 청량한 음성을 지닌 종소리를 들었다.
“시작해요.”
찰랑-, 찰랑찰랑.
세 번 울렸다.
이것은 ‘보상’의 종소리였다.
그러자 오우거의 입에서 침이 고이더니, 질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얼어붙은 시체를 두세 명씩 짊어지고는, 오우거의 입 쪽으로 향했다.
-카아아아…… 카아아아아…….
질질 침을 흘려 대는 오우거의 입.
그걸 바라보던 사람들은 기괴함에 침을 꼴깍 삼켰지만, 곧 얼어붙은 시체를 오우거의 입에 처넣기 시작했다.
마치 소각장에 쓰레기를 넣는 것처럼.
하나, 둘, 셋, 넷, 다섯……
놈에게 먹이를 주었다.
놈의 목젖이 꿀떡거리며 일정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건 시온의 당근이었다.
이 청량한 종소리를 들려주면, 먹이를 준다는 것을 깨닫고 오우거는 금세 얌전해졌다.
이 또한 조련의 방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날 밤.
경찰서에서는 또 한 번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