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조련사 (2)
쿵! 쿵! 쿵쿵쿵쿵쿵쿵!!!
오우거가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놈이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건물이 흔들렸다.
급박한 이 상황 속에서 진재희는 태연했다.
오직, 시온과 재희만이 태연할 뿐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작업자들은 벌벌 떨거나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파아앗-.
섬광과 함께 진재희의 손에 검이 쥐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티팩트가 발동되었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진재희는 눈밭에 떨어졌다.
그리고 태연하게 걸어 나와, 달려오는 오우거와 마주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우거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도심에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놈의 눈에는 여전히 화살이 박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후우.”
진재희는 놈에게 차분히 다가가며 호흡을 내뱉었다.
이곳은 증명하는 자리였다.
자신이 왜 최강이고, 회귀자인지 그의 눈앞에서 증명하는 것이었다.
시온뿐만이 아니었다.
옥상 위에선 공략조가 진재희를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들.
진재희는 그들의 관심 속에서도 차분했다.
이제 놈이 코앞이었다.
-쿠아아아아아악!!!
오우거는 전봇대를 휘둘렀다.
쾅, 그그그그그…… 부웅-!
놈이 휘두르는 전봇대는 건물 외벽을 사정없이 긁어 버리곤, 진재희를 향하였다.
하지만 놈의 전봇대를 그녀가 맞을 일은 없었다.
훼에에에엑!
진재희는 단숨에 주저앉으며, 오우거의 공격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구어어억?!!?
진재희는 피한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휘릭. 탁.
전봇대에 올라탄 재희는 단숨에 놈에게 달려들었다.
전봇대를 쥐고 있는 놈의 손에 올라타서는 팔, 삼두, 삼각근에 이르는 곳까지 단숨에 다가갔다.
-쿠아아아아악!!!
오우거가 그녀를 잡아채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우거의 스피드로는 진재희를 잡을 수 없었다.
아티팩트가 개방된 이후, 개인 능력치 역시 개방되었다.
더 이상 진재희의 신체 능력은 ‘보통’의 인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시온이 경찰서 내부를 정리하고 보일러를 만드는 동안, 진재희는 회귀자‘답게’ 개인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각성한 회귀자 진재희에게 일개 오우거 따위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타다다닷- 부웅-!
진재희는 단숨에 뛰었다.
그걸 바라보고 있는 작업자들은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지상으로부터 6m 상공.
진재희는 포효하고 있는 놈의 추악한 얼굴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쿠아아아아아악!!!!
그녀는 이제 두 손으로 검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오우거가 쓰러질 때까지, 그녀의 난도(亂刀)는 멈추지 않았다.
* * *
쓰러진 괴물의 턱에 여자가 서 있었다.
난도질당한 괴물의 상처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놈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가 주변의 눈까지 새빨갛게 적셨다.
이제 오우거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킬레스건도 완전히 끊어졌고, 온몸의 신경도 베어졌다.
그저 꿈뻑거리며, 화살이 박힌 눈동자만이 움직였다.
진재희가 오우거를 제압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던 작업자들은 몸서리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진재희보단 오히려 강시온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를 통제하고, 그녀가 지키고, 그녀와 함께 있는 건, 강시온이었으니.
진재희의 힘이 곧 강시온의 권력이었던 것이다.
뽁.
진재희는 오우거의 눈알에서 화살을 빼내었다.
그리고 태연하게 담배를 물었다.
그녀는 거사가 끝난 뒤에는 항상 담배를 태우는 습관이 있었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우긴 했지만, 그나마 버릇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내뿜은 담배 연기가 오우거의 눈앞에서 흩어졌다.
일이 끝나자, 시온은 옥상에서 내려와 진재희에게 다가갔다.
실제로 오우거를 눈앞에서 마주하니, 실로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놈의 피부가 일정하게 움찔거렸다.
시온은 재희를 따라 오우거의 얼굴 위로 올랐다.
오우거의 몸은 내뿜는 핏줄기 때문에 미끌거렸다.
먼저 올라가 있던 진재희가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시온은 오우거의 몸 위에 올라, 놈의 눈알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식간에 해치웠네.”
“응.”
진재희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시온은 좀 더 자세히 놈의 몸을 살폈다.
암흑뿐인, 지하상가에서 손전등 빛에 의지하며 바라보는 오우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놈들의 작은 피부 결까지 보일 정도였다.
오우거는 그만큼 난도질을 당했는데도,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몸은 완전히 제압당하여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진재희는 천천히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시온은 여전히 놈의 눈알을 살피고 있었다.
이후, 숨을 한 번 내뱉고는 대답했다.
“조련할 생각이야.”
“조련……?”
“며칠 동안, 놈들을 관찰해보니까 결국 놈들도 동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지. 이 사실을 이용하면 분명 조련할 수 있을 거야.”
“그…… 게 가능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동물을 조련한 건 봤지만, 몬스터를 조련한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적어도 진재희의 전생에선, 그리고 전생의 강시온조차 몬스터를 길들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시온은 전생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도.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에 진재희는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시온은 확신이 있었다.
“고대의 사람들은 호랑이를 보고 조련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그냥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존재였지. 하지만 현대에 와서 호랑이는 길들여졌어. 여전히 위험한 작업이지만, 결코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봐.”
시온은 그 말을 한 뒤로,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살폈다.
지난 며칠 동안 오우거를 관찰하면서 발견한 놈의 습관,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시온은 이 관찰 일지를 토대로 놈에게 ‘공포심’을 주입할 생각이었다.
“이 개체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유난히도 작은 놈이었는데.”
그녀의 말대로 시온이 선택한 이 오우거는 다른 오우거들보다 몸집이 더 작았다.
하지만 시온은 놈이 작았기에, 그랬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공포는 동물들에게 있어서, 성욕보다 중요시되는 감정이야. 공포가 있어야만이 자기 몸을 지킬 수 있고.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어야 번식을 할 수 있거든.”
“……공포.”
진재희는 시온의 말을 따라 하며 곱씹었다.
“그리고 공포를 통한 학습이 가장 잘 통하는 건, 어린 개체겠지.”
“설마……?”
“그래. 새끼 오우거를 길들일 거야.”
휘릭-. 푸욱!
시온은 검을 쥔 채, 단숨에 새끼 오우거의 눈살에 칼을 처박았다.
-쿠아아아아아아악!!!!!
새끼 오우거라고 할지라도, 울음소리만큼은 감히 ‘새끼’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을 만큼 공포스럽고 컸다.
그때, 진재희가 뒤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잠깐. 새끼라면…… 놈들의 어미가 올 텐데?”
“내가 왜 이쪽으로 끌어들였겠어? 오우거는 일정 거리 이상은 절대 나가지 않아. 아마 서식지를 벗어나기 때문이겠지. 이 새끼 오우거가 이쪽까지 온 건, 본능 때문이었어. 눈을 공격당했으니까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거지.”
시온은 지금 회귀자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이곳은……?”
“오우거의 서식지 바깥이야. 어미는 이곳에 오지 않아.”
그 앞에서 진재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모든 작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온은 오우거 밑에 있는 작업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대편 건물로 들어가더니, 거기서 큰 플라스틱 통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들은 낑낑거리며 플라스틱 통을 오우거의 몸통 위로 올렸다.
플라스틱 통을 감싼 천을 걷어 내자, 유리 파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유리 파편을 본 재희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마……?”
“눈치가 좀 빨라졌네. 밤까지 기다렸다가, 유리 파편을 이 새끼 오우거의 몸 곳곳에 박을 거야. 한 번만 설명할게. 잘 들어.”
시온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재희의 동공도 뒤흔들렸다.
저녁에 오우거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녁에 작업자들을 풀어 오우거 몸 곳곳에 유리 파편을 박는다.
그렇게 된다면 낮 동안 유리 파편이 반짝거릴 테고, 스노우 네펜데스는 그 반짝임에 반응해 오우거의 온몸을 묶을 것이다.
그럼 오우거의 육체가 재생한다고 하더라도, 놈이 이곳에서 벗어날 일은 없다.
네펜데스에 의해 철저하게 묶인 상태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시온이 ‘ㄷ’자 형태의 골목을 선택한 이유도 이 유리 파편에 있다.
이곳은 밤이 되면 달빛조차 드리우지 않은 완전한 암흑이 된다.
유리 파편은 빛을 반사해야만 반짝인다.
즉, 스노우 네펜데스는 밤에 작업할 동안에는 이곳 골목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빛이 없는 밤에 작업을 하면, 작업자들은 안전하게 유리 파편을 오우거의 몸에 박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걸로 포획 완료야. 내가 생각한 계획도 여기까지고. 앞으로 이놈을 어떻게 조련할지는 차차 생각해야겠지. 이해했어?”
시온은 재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시온이 한 말은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가 어떻게 이 계획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였다.
“우선은 경찰서 내부를 정리할 거야. 작전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
시온의 말대로, 이미 서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작전은 시작되었다.
최명준.
그는 이미 명령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내부에서 조직을 무너뜨리는 일.
생각해 보면 그건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나에겐 이미 주어진 권리와 권한이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를 굳이 꼽자면, 경찰서 내부 시민들의 지지율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시민들이 얼어 죽든, 괴물에게 잡아먹히든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난 동생을 찾기만 하면 될 뿐이다.
내게 타인은 이용해야 할 도구일 뿐,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의 힘이 필요했고, 난 그들의 힘을 이용해야만 했다.
만약 주도권을 잡고자, 내가 갑자기 움직인다면 변수가 많았다.
시민들의 절대다수가 나를 지지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적절한 상황이 올 때까지.
경찰과 시민.
두 세력 간의 균열을 일으키고, 시민들에게 ‘혁명’이 필요할 때를 기다렸다.
그제 두 명의 경찰관이 죽였다.
어제는 세 명의 경찰관이 죽였다.
오늘은 한 명의 경찰관이 죽었다.
내가 최명준에게 명령한 것은, 밤사이 아무도 모르게 정찰 중인 경찰관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시민을 죽이면 의미가 없었다.
경찰을 죽여야 의미가 있었다.
경찰관이 한두 명씩 죽다 보면, 경찰 세력은 이를 시민들의 소행이라고 판단하고 억압하기 시작할 것이다.
계획대로 경찰관이 살해당한 시점에서 그들의 통제는 더욱 가혹해졌다.
균열의 시작이다.
그리고 억압에 참다못한 시민 세력들은 반항하기 시작할 것이다.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도 난 최명준에게 경찰관을 죽일 것을 명령했다.
오늘 죽은 경찰은, 어쩌면 바른 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던 충실한 경찰관일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같은 때가 아니라 사회에서 만났다면, 적당히 친하게 지냈을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 우린 짐승이다.
짐승이고, 살아남고 싶다.
그 욕망은 나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그 욕망이 결국 모두를 변화시킬 거다.
이른 아침.
해가 뜨지도 않은 복도 가득히 시민들이 가득 몰려들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관의 보복성 억압에 참다못한 시민들이 들고일어났던 것이다.
“체포조를 해제하라!!!”
“시민들을 해방하라!!!”
“체포조를 해제하라!!!”
“시민들을 해방하라!!!”
“경찰서장은 해명하라!!!!!”
복도 가득 시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는 경찰 세력을 복도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경찰들은 무장한 채, 방패를 들고 복도를 막고 있었다.
난 시위 세력 가장 뒤 열에 위치해서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경찰관이 한두 명씩 죽어 나가기 시작하자 경찰들은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민들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오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야이 X발! 밀지 말라고!!!”
휘릭- 터억!!!!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관이 휘두른 진압 봉에, 가장 앞 열에 있던 노인이 맞아 쓰러졌다.
털썩-!
노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었고, 이 사건은 ‘경찰은 시민에게 위해를 가한다’라는 사실을 시민들 눈앞에서 각인시켰다.
그것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니, 빼도 박도 못할 터.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바라보던 시민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경찰관을 바라보았다.
살의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침묵 속의 다수의 시선.
그건 참으로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
그 모습에 소름이 끼친 전열의 경찰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 무리들 중, 유일하게 오직 나만이 쓰러진 노인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