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건설: 교량 (2)
또다시 눈 내리는 아침 점호.
“지금 눈앞에 무릎 꿇은 이 자가!!! 이렇게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며 시민들의 감정을 더욱 짓밟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길인호 시 의원은 속옷만 입은 채, 단상 위에 포박되어선 무릎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경찰서장이 마구잡이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자는! 어젯밤 01시 03분경. 저희 세력의 청년이었던 이재순 씨를 강제적으로 겁탈하고 간악하게 포박했으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서장이 한 사람을 범죄인으로 몰아가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설령 그가 정치인이라도.
이곳에서 서장의 말은 곧 강력한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길인호는 희미한 시야 사이로 이재순을 바라보았다.
이재순, 그녀는 서장의 새 애인이었다.
자신이 아닌 서장의 애인 말이다.
근데 지금 길인호가 그녀를 겁탈한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재순 씨. 일로 와 보세요.”
서장은 이재순의 상의를 조금 올려 그 속의 상처를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다.
멍 자국이 가득했다.
동시에 할퀸 자국이나, 물어뜯은 자국들이 있었다.
모두 서장의 더러운 성욕의 결과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모두 길인호의 짓이 되었다.
“아냐…… 내가…… 아냐…… 내가…… 안 했어…….”
길인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덥썩-!
그가 입을 열자, 뒤에 있던 경찰관 한 명이 다가와 길인호의 목을 잡아챘다.
“조용히 해라.”
경찰관은 단번에 길인호를 제압했다.
경찰서장의 말이 쩌렁쩌렁 단상 위에서 울렸다.
“이자가 폭력을 저지른 이 행위를 보십시오! 이 어린 처자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길인호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경찰서장이 길인호를 하루아침에 범죄자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한 도시의 의원이라는 자가! 이렇게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자를 가만히 내버려 둬서 되겠습니까? 경찰은 질서를 유지하는 것! 저희 경찰은 사태가 이렇게 되었어도 질서를 유지하는 데 힘을 쓸 것입니다!”
몇몇 시민들이 추위 속에서도 고개를 들어 길인호 시 의원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선동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공동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경찰서장은 처음부터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에는 동안구의 세력.
그리고 내부의 범죄자.
모두 ‘공동의 적’이었다.
이를 통해 단합을 일궈 내고, 권력을 장악해 나가려고 했다.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쉬운 일이었지만 시온과 마찬가지로 서장 역시 그들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했다.
시스템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저 강제성에 불과한 것이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진 않기 때문이다.
“저는 이런 범죄자들로부터 여러분들을 지키기 위해 이 한 몸을 온전히 바칠 것입니다! 그러니 지지해 주십시오! 응원해 주십시오!”
길인호는 착각하고 있었다.
경찰서장이 멍청해서 자신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놀아나고 있었던 건, 정작 자신이었다.
길인호는 탐욕스러운 경찰서장과의 정치 놀음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
“유치장에 가둬라! 이 범죄자 놈을! 이 더러운 놈! 이 개 같은 놈! 감히 선량한 시민을!”
퉤-!
서장이 시 의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의 걸쭉한 침이 시 의원의 눈썹에 맞아 흘러내렸다.
경찰관 두 명이 길인호를 끌고 갔다.
그때였다.
붕-!
서장의 말에 동조한 한 시민이 그에게 돌을 던졌다.
퍼억!
길인호의 오른 관자놀이에 돌멩이가 꽂혔다.
그의 피부가 찢어져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이 괴물!”
“쳐, 쳐 죽일 놈! 감히……! 감히!”
“인간 말종!”
서장이 사전에 크림빵을 주겠다며 섭외해 두었던 스파이 시민들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간단했다.
선동에 동조하는 것.
그리고 심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은 선동에 취약했다.
서장이 예상했던 대로 그들에겐 공동의 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쁜 놈! 쳐 죽일 놈!”
“역시 의원 따윈 믿는 게 아니었어!”
“우리가 다 이렇게 된 것도 너 때문이야! 정부가 문제라고! 대책을 어떻게 세우는 거야!!!”
“쳐 죽일 놈! 저런 못된 놈!”
“유치장에 가둬라!”
스파이들의 동조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려왔다.
가만히 그들의 목소리를 듣던 서장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 *
길인호는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그곳은 1라운드 때부터 서장이 애용하던 ‘고문실’이었다.
지금껏 자신에게 반기를 든 모든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고문했다.
피가 가득했고, 내부는 냉장고 안처럼 추웠다.
길인호는 발가벗은 채, 의자에 묶였고, 서장의 심복들이 각종 고문 도구들을 들고 와 길인호를 바라보았다.
길인호는 피를 토해 내며 빌었다.
“살려 줘…… 살려…… 살려만 주면 뭐든…….”
“…….”
경찰서장의 심복들은 대답하지 않고 고문을 시작했다.
그들의 고문은 종일 이어졌다.
의원의 비명은 계속해서 들렸다.
어느 순간, 길인호는 더 이상 살려 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이제 죽여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 * *
난 1층 복도에서 길인호가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하 유치장으로 질질 끌려갔다.
아마 저번 최명준을 만나러 갔을 때, 확인해 두었던 안쪽 고문실로 향하는 것이다.
단상에서 내려온 서장이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조금 걸어오더니 날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아~! 관리자님! 여기 계셨군요. 어제부터 찾았는데, 안 보여서요.”
“예.”
난 짧게 대답했다.
서장이 바짝 다가와선 내게 친근하게 물었다.
“교량 일은 순조롭나요?”
“이번 주 내로 완성될 것 같습니다.”
거짓 없이 보고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경찰서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내 등을 토닥였다.
“그래요. 전 관리자님을 믿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시민들이 관리자님을 제일 잘 따르고 있으니. 하하. 이러다가 제 자리도 빼앗기겠습니다.”
난 그의 말에 내색하진 않았지만,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 자리…… 라고?’
그 의미는 즉, 서장은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시스템에 따르고 있다는 것.
서장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어 댔다.
“하하하! 장난입니다. 장난! 관리자님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서장은 끌끌거리며 웃곤 날 지나쳤다.
그는 내게 장난이라고 했지만, 결코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저건 떠본 것이다.
서장은 몇 걸음 걸어가더니 뒤돌아선 내게 물었다.
그의 눈썰미가 날카로워졌다.
“그…… 공략조라고 했나요? 아, 그게 말이죠.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사용하고 있는 도구 조사를 조금 해야 될 것 같아요. 망치라든가 톱. 뭐 그런 거요.”
“…….”
“그리고 무기로 분류되는 도구들은 앞으로 저희 경찰 측에서 우선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맞잖아요? 앞으로 작업 나가는 공략조나 작업자들은 퇴근하실 때, 모두 도구를 반납해 주세요. 안전을 위해섭니다.”
마냥 멍청한 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영악한 놈이었다.
어쩌면 어제 있었던 칙령 선포도 노림수일 수도 있었다.
해당 사건을 공론화시켜, 세력 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결과적으로 그 노림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지지율은 10%나 떨어졌다.
시 의원을 공개적으로 제거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관리자라고 앉혀 놓은 난, 그의 한마디면 언제든지 해당 직위가 해체될 수 있었다.
서장이 내게 물었다.
“왜요. 싫으세요?”
하지만 그건 서장만의 착각이다.
“아뇨. 공략조나 작업자들에게 일러두겠습니다. 명령대로 반납하도록 하죠.”
지렁이 새끼가 발악하는 것 같았다.
“좋습니다. 관리자님. 말을 잘 들으셔서 마음에 드네요. 언제 한번 제 집무실로 올라오세요. 술 한잔하셔야죠?”
서장은 웃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난 그 웃음을 뒤로 한 채, 다시 바깥으로 걸어갔다.
‘길인호가 제거되었다라…….’
길인호는 대내외적으로 경찰서 세력의 1인자였다.
하지만 시스템이 선택한 군주는 ‘박건우’ 경찰서장이고, 그가 왜 선택되었는지는 오늘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길인호를 죽인 건, 시민들로 하여금 동조와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가 이번 일로 얻고자 하는 건 하나였다.
자신의 위치, 권력을 재확인하는 것.
누구든지 자신의 위치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길인호처럼 될 것이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
특히나, 내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길인호가 제거되었으니, 경찰서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은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이미 나에게 대응하기엔 너무나 늦었다.
난 이곳에 들어온 첫날부터,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니까.
“관리자님. 가시죠.”
작업조 남자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입구를 나섰다.
* * *
만안 경찰서로부터 안양 일번가까지.
건물 옥상 사이를 이어 만들어 낸 교량은 작업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되던 날에 완성되었다.
각 건물들의 옥상 높이는 다르다.
그랬기에 사다리를 교량으로 놓은 곳은 거의 반쯤 기어 올라가야 할 정도로 경사가 가팔랐다.
게다가 안전을 생각해서 만든 교량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건너기 위해선 위험을 어느 정도 부담해야 했다.
그럼에도 완성된 교량은 장관이었다.
시온은 직접 경찰서에서 일번가까지 그 교량을 따라 걸어갔다.
아슬아슬한 교량들을 건너며 최종 점검을 끝냈다.
원래 정찰조가 일번가까지 가기 위해선 3시간이 족히 걸렸으나, 교량이 완성되자 이젠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건물 옥상에 도착해서야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퀘스트: 정부의 개]
[업적 달성:
●시민들의 안락함 수치 30% 이상 달성 (현재 수치 35%) / 달성!
●지속적인 식량 보급 경로 해결 (1/1) / 달성!
●경찰력 내부 가용 노동력 수치 100% 달성 (현재 수치 100%) / 달성!
★ 보상: 업적 포인트 – 150]
[퀘스트: 정부의 개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업적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30일 이내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티팩트 강화 물질 (하급) X 1]
시온은 추가 보상 소식에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인벤토리는 시스템이 규정한 아이템을 보관하는 플레이어 개개인의 창고였다.
[아티팩트 강화 물질 (하급) X 1]
[아티팩트를 강화할 때 사용되는 초급 광물]
리볼버가 사라진 뒤로, 시온의 인벤토리 창은 항상 비어 있었다.
하지만 ‘군주’의 자격을 얻게 된다면 달라질 것이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하나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니, 또 다른 퀘스트가 나타났다.
진재희의 말로는 퀘스트는 중반 이후의 것인데, 벌써부터 그의 앞에 나타났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시스템이 규정한 세계 안에서는 우연 따윈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이었다.
지금 시온의 눈앞에 나타난 상태 창도 결국 필연에 의한 결과물일 터다.
[퀘스트: 혁명]
[업적 달성:
●서장 제거 (0/1)
●지지율 60% 이상 달성 (현재 수치 38%)
●칙령 선포 (0/1)
★ 보상: 업적 포인트 – 200]
‘…….’
그리고 보란 듯이 시스템은 시온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혁명.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창이 마치 그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때가 되었다고.
시온은 고개를 들어 함께 온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곁에는 여느 때처럼 진재희가 지키고 있었고, 그 뒤로는 최명준을 중심으로 뭉친 특공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온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온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 밤, 시작합시다.”
모두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날 밤.
경찰 세력의 가장 큰 전투력은 체포조에 소속해 있던 200명의 전투원들이었다.
그 외에는 대략 50명의 내부 질서 유지군.
그들은 삼단 봉과 경찰 방패로 무장하고 있다.
새벽은 여전했다.
통제의 시간이다.
복도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오로지 경찰뿐이다.
경찰들은 두 명씩 조를 이뤄 2시간 단위로 불침번을 섰다.
2층부터 4층.
거주 공간의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손전등을 쥔 채, 시체처럼 널브러진 사람들의 몸을 피해 가며 걸었다.
곳곳에서 코 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 속에서 두 명의 경찰관들이 조용히 걸었다.
손전등을 좌로 돌려도, 우로 돌려도 보이는 광경은 똑같다.
하나같이 두꺼운 옷을 입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툭, 털썩!
“……?!”
그때, 경찰관 중 한 명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말 그대로 암흑밖에 없는 2층 거주 공간 속에서 갑자기 빛과 함께 사라진 것이었다.
반대편에 있던 경찰관이 깜짝 놀라 그를 불렀다.
“이봐…… 이봐……?!”
터벅, 터벅.
남겨진 경찰관이 사람들 사이사이를 지나가며 사라진 경찰관을 찾으려고 했다.
경찰관은 경찰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띈다.
곧 손전등으로 비춘 장소에서 동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남겨진 경찰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뭐해. 넘어진 거야? 거참. 조심 좀…… 아.”
쓰러진 경찰관에 다가가던 그의 몸이 멈칫거렸다.
손전등을 조금 위로 올려 얼굴을 확인했다.
“우욱…… 커허억…… 어억……!”
세 명의 남자가 쓰러진 경찰관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으며, 경찰관의 목에는 과도가 꽂혀 있었다.
푸슛…… 푸슛!
과도가 꽂힌 목에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세 명의 성인 남자가 입을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에,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던 것이다.
“쉬잇……”
셋 중 한 명이 손전등을 든 경찰관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문댔다.
하지만 경찰은 기겁해선 소리쳤다.
“포…… 폭동……! 폭동이야……!!!”
그 순간, 소리치려던 경찰관에게로 세 명의 남자가 달려들었다.
털썩-! 우당탕!
남자들은 경찰관을 쓰러트리곤 먼저 쓰러진 경찰관과 같이 입을 틀어막고 목을 그었다.
경찰관 두 명이 완전히 제압당하자, 그제야 2층 거주 공간에는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1시 정각.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방 안은 코골이와 이갈이로 가득했지만, 이젠 그들의 옅은 숨결만이 가득 찼다.
정찰 중인 경찰관이 죽자, 상황을 주시하던 한 남자가 조용히 그들에게 손짓했다.
남자가 손짓하자, 경찰관을 살해한 무리들이 다시 자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러곤 태연하게 다시 자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