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건설: 교량 (1)
이른 새벽.
“방패!”
척, 척!
경찰관들이 방어복을 입고, 방패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번 테러범 진압 작전에 투입된 체포조의 대장은 이청춘이 맡았다.
그들은 서장의 명령에 따라 동안구 일대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경찰 병력 108명.
명예 경찰 병력 213명.
총 병력 321명.
경찰 세력 내에서 노동력으로 차출된 인력을 제외한 유일한 전투 부대였다.
서장은 그들에게 소리쳤다.
“반드시 테러범을 잡는다. 알겠나!”
“악!”
“악!”
군기가 차오른 경찰들이 소리쳤다.
도시엔 눈보라가 휘몰아쳤고, 방어복만 입은 경찰관들은 추위를 버텨 내면서 단상 위의 서장을 바라보았다.
서장은 계속해서 윽박질렀다.
“너희 동료들을 죽인 테러범이다. 인정사정 봐줄 것도 없어! 출동해.”
“악!”
“악!”
동료들이 죽었다는 말에 경찰관들은 쉽게 감정이 동조되었다.
그들은 서장의 명령에 따라 동안구 일대로 나아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섰다.
이청춘은 그들을 최전방에서 이끌면서도 염려했다.
과연 이 정도의 전투 병력을 꺼내어도 경찰서가 안전할지.
내부 질서를 유지할 병력까지 뺀 상황에서 폭동이라도 일어나는 순간, 세력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이청춘은 거리로 나서다, 경찰서와 인접한 건물의 옥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관리자에 의해 차출된 노동자들이 ‘교량’을 만들고 있었다.
무너진 도시를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 건물 옥상에 잡다한 재료들을 모아 제작해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건물 위로 수십 명의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시온 씨가 있으니 괜찮겠지만.’
그가 이미 시민들의 열렬한 신임을 받고 있으니,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정에 나서는 이청춘은 알지 못했다.
경찰들이 믿고 있는 바로 그 강시온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경찰들의 열렬한 신임을 얻어 의심에서 벗어난 뒤, 세력을 접수하려는 그의 계획도 알지 못했다.
이청춘은 거리를 따라나섰다.
체포 명령이 떨어졌어도, 눈이 가득한 도시에서 동안구까지 가는 길은 혹독했다.
* * *
경찰서 인근 옥상.
나는 옥상 난간에서 경찰 병력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경찰 병력은 제설조와 더불어 동안구까지의 도로를 개척 중이었다.
그들은 제설 장비를 총동원해 길을 개척하려고 들었다.
난 그들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노동자들이 기다란 철판이나 사다리 등을 이용해, 건물 옥상 사이를 잇는 다리를 짓고 있었다.
“거기 조심하고.”
“이쪽으로 조금만 더 당겨 봐. 그래.”
보일러를 가동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던 노동력들은 이제 교량을 짓기 위해 동원되었다.
교량을 건설하는 건, 생각보단 쉬운 일이었다.
옥상 사이 공백을 단단한 철판이나 사다리를 겹쳐 놓아 난간에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기본적인 건설에 필요한 공구들도 충분했다.
망치, 못, 톱, 케이블 타이 등등.
경찰서부터 일번가까지.
그곳까지 이어지는 건물 옥상에 교량을 설치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눈이 높게 쌓인다고 하더라도 이동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네펜데스나 악어 거북의 위협에도 안전했다.
교량을 짓기 위해 동원된 노동자의 수는 대략 100명.
원래라면 100명까지는 필요 없는 작업이었지만, 일부러 더 인력을 빼내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건, 단지 교량 건설 작업 때문만은 아니었다.
쿠데타를 위한 준비.
이 건물의 옥상은 하나의 비밀 기지로서 활용되었다.
난 그들을 모아서 경찰서 내부의 지도를 확보하고 여론이나 서장, 의원의 동태를 파악했다.
교량 입구 건물의 옥상에선 경찰서가 훤히 보이는 구조였고, 무엇보다 서장의 눈에는 우리가 단지 교량을 건설한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날 중심으로 똘똘 뭉친 노동자들과 공략조원들이 곳곳에서 수집한 무기류를 모았다.
망치나 칼, 휴대용 라이트나 건전지 같은 것이었다.
“이런 건 필요 없습니다.”
난 그들의 수집 활동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난 수집해 온 무기들 중 해머를 집어 들곤 옆으로 빼내었다.
해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옥상 바닥에 떨어졌다.
“경찰서 복도는 매우 좁기 때문에, 해머와 같은 큰 무기는 필요 없어요. 오히려 이런 게 좋습니다.”
드라이버를 쥐며 설명했다.
난 이미 소규모 전투를 경험한 바가 있었다.
해머와 같은 거대 둔기류는 좁은 통로에선 오히려 독이다.
실내에선 빠르게 공격하고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는 무기가 중요했다.
“제일 중요한 건, 필요한 살상만 하는 것입니다. 세력의 지배 계층이 뒤바뀌면 어차피 피지배 계층은 다시 새로운 세력의 귀중한 노동력이 될 테니까요.”
나의 설명이 이어 나가는 도중에도 곳곳에서 공사판의 소리가 들려왔다.
꽤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기 전, 노동 현장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들.
“근데 관리자님. 세력을 접수한다고 하더라도 동안구 세력들의 그런 도발 행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반대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물었다.
난 쥐고 있던 드라이버를 다시 무기를 모아 놓은 곳에 던져 두며 대답했다.
“물론 용인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세력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안전.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대상이 누구든지 처리해야 합니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이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세력을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이곳에 모인 구성원 모두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끄덕였다.
“하지만 관리자님. 동안구의 규모가 우리보다 크다면, 정면으로 충돌하면 저희 측의 피해만 더 크지 않겠습니까?”
왼편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난 여자의 말에 반대편 교량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작업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교량 건설을 서두르고 있었다.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에는 교량이 완성될 것이다.
“그 전에 거사를 치를 겁니다. 그들의 세력이 우릴 아득히 뛰어넘기 전에 말이죠.”
완성되지 않은 세력은 달걀과 같다.
겉보기에는 견고해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만 힘을 쥐어도 으스러져 버리는.
파도 앞 모래성.
바람 앞의 등불.
작은 규모의 세력이 무너지는 건 오히려 세력을 형성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다.
지금 경찰서의 세력은 총 세 가지다.
경찰 세력과 특공대 그리고 노동자들로 구성된 작업조.
특공대의 대부분이 유치장에 감금되어 있다가 시온 덕분에 해방된 인물들이었다.
그만큼 경찰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노동자 집단 역시 나에 의해 뭉친 집단이었다.
세력 내에서 가장 힘이 센, 핵심 청년들이 대다수.
계획은 간단하다.
경찰서를 장악하고, 내부 시민들을 통제한다.
존재하는 무력을 모두 없애고, 수뇌부들을 제거한다.
그리고 신임을 얻은 뒤, 새로운 군주로서 시스템으로부터 인정받는다.
이미 시민들의 신임은 경찰에게서 멀어졌기에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더, 더 필요해.’
시민들을 더 강하게 흔들 필요가 있었다.
난 옥상 바닥에 대충 그려 놓은 경찰서 내부의 지도를 살폈다.
“잘 들으세요. 이건 경찰의 방패병들을 무너뜨릴 전략입니다.”
난 ‘특공대’에게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경찰서 5층, 내부 집무실.
서장의 집무실로 경찰서에서 가장 넓은 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장의 생활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곳이었다.
두꺼운 매트리스와 솜이불.
방 곳곳에는 난방 기구가 세 개나 배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서장이 거주하는 방 안의 온도는 한여름을 연상케 할 정도로 후덥지근했다.
서장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침대에서 자신의 새 애인과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길인호 시 의원은 소파에 앉아 서장의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단아하게 찍은 그의 아내와 딸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길인호는 담뱃갑을 쥔 채, 고개를 돌려 매트리스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경찰서장 박건우가 있었다.
길인호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지금 그의 기분은 굉장히 불쾌했다.
서장이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길인호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서장님. 동안구로 체포조를 꾸리게 되면 내부 질서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요. 저랑 상의라도 하셨어야지. 어째서 혼자서 저지르셨는지.”
서장은 답이 없었다.
길인호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본부와의 교신을 기다리면서 방어적인 전략으로 나서는 것이 어떤지.”
칙-.
길인호는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우리에겐 정당한 공무 집행이라는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테러가 안양시 내부에서만 그런 것임은 분명한데, 얼마 안 가 본부에선 특공대를 꾸릴 것이고 그때까지만 버틴다면…….”
후우-.
길인호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제 그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 짭새 새끼가 기어오르네.’
서장은 여자와 노느라 자신의 말은 귀띔으로도 듣고 있지 않았다.
길인호는 지금까지 자신이 완전히 서장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안 세력의 도발 이후, 서장이 바뀐 것 같았다.
어느새 서장은 여자의 위에서 내려왔고, 매트리스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의 새 애인은 엎드린 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하아…… 후우…… 이거야 원. 나이를 먹으니…… 한 10년만 젊었어도.”
서장은 두세 번 숨을 더 고르더니, 근처에 있던 소주병을 집어 들어 꿀떡꿀떡 마시며 물었다.
“뭐라고요? 의원님. 다시 말씀해 주시죠.”
“독단적인 행동은 자제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본부와의 교신을 차분하게 기다린 뒤, 그 후에 나서도 충분히 늦지 않지 않습니까?”
길인호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서장은 물끄러미 의원을 바라보다 이내 웃으며 답했다.
“하하. 거참. 본부는 없습니다.”
“……뭐라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서장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서장은 한껏 개운한 듯 웃어 보이며,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길인호는 인상을 찌푸리곤, 서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본부가 없다뇨. 그 말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이면 됩니까? 경찰서장?”
길인호 입장에선 경찰서장의 말에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야 그럴 것이 길인호는 서장과 같이 본부와의 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인호가 생각하는 건 단순했다.
아직 정부는 유효하고, 테러범의 행위는 안양시 내부에만 국한된다.
즉, 저 외각에 있는 정체불명의 보호막만 처리된다면 자신들은 다시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건 길인호만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서장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받아들이긴요. 의원님. 본부가 유효하지 않다면, 당신은 여기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이 말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덥석-!
서장은 엎드려 숨죽이고 있던 여자의 머리칼을 잡아챘다.
여자의 머리는 서장의 손에 이끌려 들어 올려졌다.
여자는 눈동자만 돌려 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망울에선 눈물이 맺혀 있었다.
서장은 그런 그녀에게 나긋하게 말했다.
“자기야, 나가요~ 어른들 얘기 좀 나누게.”
“…….”
여자는 반쯤 죽어 있는 눈동자를 하고선 주섬주섬 옷을 챙겨 나갔다.
끼이익- 쿵.
그녀가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갔다.
이제 서장의 집무실에는 길인호 시 의원과 경찰서장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부터 길인호의 심장이 미친 듯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달라졌다.
경찰서장의 저 눈웃음이 둘 사이의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키고 있었다.
칙, 칙-.
서장은 담배에 불을 붙인 채, 피워 대기 시작했다.
후우-.
서장은 발가벗은 채, 책상 위에 앉아 의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원님. 세계는 멸망한 거 맞고, 당신이 의지할 정부는 괴멸했습니다. 물론 경찰 본부도 없어요. 저도 처음에는 본부와의 교신을 시도했습니다만.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헬기도 없고, 무전 상태도 엉망이고…… 스읍…… 후우-. 그게 무슨 말이냐?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신이 가진 권력, 지위? 시 의원? 이곳에선 다 개털만큼도 가치가 없다는 의미죠.”
“서, 서장……! 당신 지금!!”
길인호가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서장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멍청하긴. 병신이.”
서장은 담뱃재를 털며 능청스럽게 이어 말했다.
그는 사타구니 안쪽이 가려운지 긁어대며 말했다.
“아이고~ 의원님. 제가 왜 의원님을 높게 평가하고 이곳에서 대장 노릇 하게 내버려 둔 줄 아세요? 그야 희망 고문을 위한 재료이기 때문이죠. 당신은 사람들의 희망 고문을 위한 도구. 응? 나는 정부가 아직 건재하다고 믿지 않지만…… 일부 경찰관이나 시민들은 아직 정부가 건재하다는 걸 믿고 있다고. 그 사람들 폭동 안 나게 잘 케어하려면 우리 위대하신 대한민국의 의원님을 좀 이용해야 되잖아요. 응?”
벅벅.
경찰서장은 여전히 털이 가득한 자신의 사타구니 안쪽을 긁어 댔다.
경찰서장은 두 손가락에 끼워 놓은 담배로 길인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장이 말할 때마다 입술 사이에선 연기가 끊어지며 나왔다.
“당신이 제격이잖아. 길인호 씨. 그러니까 앞으로 너무 기어오르지 말란 소리야.”
그 말에 길인호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 당신. 채, 책임질 수 있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짓거리를 벌이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내가 경찰청 본부에 아는 고위 간부만 몇 명인 줄 알아?!?!!! 내가 말했지!!!”
벌떡!
길인호는 말하다가 흥분해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저벅저벅 걸어와 책상에 앉아있는 경찰서장의 면전에다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 말만 잘 따르면!!! 이 사태가 끝나고 너 승진시켜 주겠다고. 본부 발령? 임원급? 어? 내가 다 할 수 있어. 이 사람아. 내 말만 잘~ 들으면!!!…….”
“하아~ 우리 시의원님.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너무 기어오르지 말라고? 근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경찰서장은 담배를 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에서 일어서선, 길인호 시 의원을 내려다보았다.
서장을 바라보던 길인호 시 의원의 동공이 마구잡이로 떨리고 있었다.
서장은 조용히 시 의원에게 속삭였다.
“여기선 내가 왕이고 대통령이고 신이다.”
그리고 서장은 다시 기본 좋은 미소를 지은 채로 시 의원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내 말에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