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선전포고 (2)
동안 세력의 도발 이후, 경찰서의 내부 생활은 변했다.
지금껏 회의실에만 있던 서장이 이젠 직접 복도를 나서며 사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07시.
점호 단상 위의 경찰서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이는 명백한 국가에 대한 도전입니다. 나라가 위기인데도, 그 위기를 이용하려는 적폐 무리를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 합니다!”
단상 위에서 쏘아지는 손전등 빛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점호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더 이어졌다.
시민들은 그만큼 추위 속에서 몸을 오들오들 떨며 서장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시민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희 경찰 병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명예시민 경찰단을 꾸려, 여러분들 모두를 경찰력으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서장이 시민들에게 원하는 건 하나였다.
경찰에게 힘을 보태는 명예 경찰이 되어 테러범을 끌어내리자는 것.
그 말은 즉, 서장이 시민에 대한 정당한 명령권을 쥘 수 있도록 그들의 신분을 바꾸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지금껏 대한민국의 정부 아래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정부의 혜택을 받고 살아온 시민들입니다!”
서장의 열정적인 연설과 달리 단상 아래 모인 시민들의 반응은 참담했다.
서장은 혹한 2단계가 발령된 지 벌써 수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실외 점호를 주장하며 그 명분으로는 질서 유지, 기강 확립이라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실외 점호는 경찰들에게 통제의 수단일 수 있으나, 시민들에겐 고문이었다.
“이젠 국가에게 여러분들의 그 힘을 보탤 때가 되었습니다! IMF 때의 기억을 되살리십시오!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가를 되살린 시민 여러분들의 그 힘으로 도와주십시오!”
풀썩-!!
그때, 경찰서장의 연설을 듣던 노인이 추위에 못 이겨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노인을 일으켜 내부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들이 진압 봉을 쥔 채 막았다.
“아직 점호가 안 끝났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아니……! 이보게. 지금 사람이 쓰러졌소.”
“우리 아이들이랑 어르신들만이라도 조금 먼저 들여보내 줘요. 네?”
시민의 말에도 경찰관은 꿈쩍하지 않았다.
“돌아가세요. 경찰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면 경찰서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서장님께서 정한 규칙입니다.”
잔인한 조치였다.
도시 내에서 유일하게 보일러가 가동되는 경찰서에서 나가라는 건, 곧 죽으라는 의미였다.
그 사실을 시민들 역시 알고 있었다.
경찰서장의 목소리가 단상 위에서 더욱 울려 퍼졌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매일 같이 따뜻한 물과 데운 밥을 먹는 경찰서장이 다른 이들에 비해 체력이 좋은 건 당연했다.
그의 목청이 쩌렁쩌렁 울렸다.
“당장 내일! 우린 동안구로 출동할 것입니다. 반역자를 처단하고 다시금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여러분들은 오늘부로 모두! 만안 경찰서의 명예 경찰이 되어 제 명령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건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경찰서장은 두 팔 벌려 환호를 유도했다.
자신의 뜻에 동참하라는 제스처였다.
“…….”
“……콜록! 콜록!”
“…….”
하지만 기침 소리만 간혹 들려올 뿐, 그 누구도 서장의 말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들은 하나같이 단상 아래에서 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서장은 고요한 군중들을 바라보다 눈썹을 찡그렸다.
‘이 개돼지들이…… 내가 자기들을 지켜 주는 줄도 모르고. 이 새끼들도 대한민국 경찰을 아주 좆으로 보는 거지? 어?’
서장은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군주에 의한 칙령.
서장은 대외적으로는 테러범의 시스템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것이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안 경찰서 서장, 박건우.
그는 만안 제1세력의 군주였으니까.
그때, 서장이 악바리를 쓰며 소리쳤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선포한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서장이 소리치자, 시민들 눈앞에 칙령에 대한 알림 창이 나타났다.
군주에 의한 칙령 선포 창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광경에 시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제1조 2항. 모든 경찰서 내부의 시민들은 ‘명예 경찰’이 된다.”
[만안 제1세력, 군주 박건우]
[칙령 선포]
[선포자: 박건우]
[1조 2항: 모든 경찰서 내부의 시민들은 ‘명예 경찰’이 되어 군주 박건우의 명령 수행 의무를 진다.]
시스템은 자동으로 경찰서장의 말을 그의 생각에 따라 바꾸어 표현되었다.
“위반 사항!”
서장은 남은 포인트를 몽땅 써 버릴 생각이었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서는 소리쳤다.
“유치장 감금.”
그 목소리에 시민들이 놀랐다.
그 말은 즉, 서장의 말이 대한민국의 헌법 위에 있다는 소리였다.
유치장이란 것 자체가 헌법에 기초하여 범죄자를 유치하는 공간인데, 그걸 서장 멋대로 유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서장이 법 위에 군림한 셈이었다.
이 말로 서장은 결국 모든 경찰서 내부 권력을 쥐고, 경찰들의 복수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생각을 다잡았다.
[위반 사항을 입력했습니다.]
[기재된 칙령을 선포하시겠습니까?]
“선포한다.”
파앗-!
또다시 황금빛이 모든 시민들의 몸을 감싸 일렁였다.
개개인의 신체 시스템 안에 저장된 것이다.
서장의 명령이.
광기에 사로잡힌 서장은 그대로 단상을 내려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5층 창가에서 바라보던 시온은 자신의 퀘스트 창을 살폈다.
[퀘스트: 정부의 개]
[업적 달성:
●시민들의 안락함 수치 30% 이상 달성 (현재 수치 33%) 달성!
●지속적인 식량 보급 경로 해결 (01)
●경찰력 내부 가용 노동력 수치 100% 달성 (현재 수치 100%) 달성!
★ 보상: 업적 포인트 - 150]
방금 경찰서장의 선포로 가용 노동력 수치가 100%에 도달했다.
지금 일번가로 향하는 보급로에 건설 중인 ‘교량’만 완성한다면 식량 보급 경로도 해결된다.
퀘스트는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건 시온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친놈. 시민들을 아주 노예처럼 부려 먹을 셈인가 봅니다.”
시온의 곁에 있던 보일러 담당관이 답답했는지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시온은 묵묵히 창틀을 통해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시민들이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경찰서 내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 관리자님. 제가 말씀 안 드린 게 있습니다만.”
보일러 담당관은 주변을 힐끗거리더니 시온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곤거렸다.
“저희끼리 있을 때 하는 얘기입니다만, 이제 세상이 역변했다는 거 저희 애들도 전부 아는 사실인데. 저 미친 서장 새끼만 부정하는 거 아닙니까?”
“…….”
시온은 말없이 보일러 담당관의 말을 들었다.
“군주로 오르시지요. 관리자님. 저희 애들도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리자님이 2주 동안 변화시킨 것 좀 보십시오.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다른 시민들도 이제 모두 관리자님의 업적을 기리는 마당에…….”
그 말에 시온은 보일러 담당관을 바라보았다.
시온이 돌아보자, 그는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했다.
“군주가 되시지요. 관리자님. 이대로 가다간 저희 다 죽게 생겼습니다. 멍청한 서장 때문에. 뭔가 방법이…….”
그들은 시온을 구원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시온을 지지하고 있었다.
시온만이 멸망해 버린 이 세계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었다.
시온의 목적은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온의 목적은 세력을 키워 안정화시킨 뒤, 동생을 찾는 것이었다.
모든 건 동생 준호를 위함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시민들은 보여지는 결과로만 시온을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것은 시온이 노린 것이었다.
“아니요. 잘 되어 가고 있어요.”
시온은 보일러 담당관의 말을 가로챘다.
그리곤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보일러 담당관은 뒤돌아 걸어가는 시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잘…… 되어 가고 있다니?’
담당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 * *
난 4층으로 내려가 최명준에게 다가갔다.
그곳에는 최명준이 모은 공략조와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형님, 오셨습니까.”
최명준은 건달처럼 내게 고개를 숙이더니 옆으로 붙었다.
난 다가온 그에게 말했다.
“공략조 중 특공대를 중심으로 믿을 수 있는 인원들만 모아. 어차피 공략조는 내가 체포조로부터 빼낼 수 있으니까.”
“얼마나 모읍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많이. 아니, 아니지. 경찰에 대한 불만이 많은 사람. 그래. 유치장에서 해방된 사람 위주로 모아 놔.”
내일부터 서장이 이끄는 체포조가 동안구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많은 인원들이 체포조로 동원될 것이고, 경찰서에 남은 인원은 기껏해야 노동자들과 내가 꾸린 공략조일 것이다.
‘빠른 시일 내로 잡는다.’
서장은 시스템이 보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랬기에 서장이 그 힘을 사용하기 전에 제거해야만 했다.
시민들이 내 쪽으로 돌아섰다면, 이제 남은 건 경찰 병력과 정찰조 그리고 체포조뿐이었다.
아무래도 체포조가 강제력을 동원한 만큼 압도적인 수를 보유할 테니, 그들이 출동 나가 있는 동안 경찰서를 접수할 것이다.
그리고 최명준을 대장으로 나만의 특공대를 꾸린다.
경찰들 입장으론 공략조가 원래부터 무기를 소지한 집단이니 의심할 수 없을 테고.
내부 상황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건, ‘흔들기’뿐.
“2일 뒤, 새벽. 그때부터 시작해.”
난 최명준에게 일러두었고, 그는 곧장 명을 받들었다.
* * *
“…….”
진재희가 다시 눈을 뜬 건, 던전 공략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고선 침대에서 일어났다.
“윽…….”
곧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누군가 갈비뼈를 안쪽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진재희는 앞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손으로 쓸었다.
‘반응…… 못 할 줄이야.’
오우거의 약점이 눈인 것에 대해서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자동 반사는 금시초문이었다.
놈은 숙면을 취하는 도중에도 약점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본능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로 놈은 시온을 공격했고, 자신은 그를 가까스로 구하긴 했지만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아티팩트가 개방된 이후에 사고가 나서 다행이었다.
선택된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자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능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죽었을 것이다.
차디찬 오우거의 식량 창고 안에서, 언제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비상식량이 되어서.
‘시온……?’
정신을 차린 진재희는 이내 강시온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온의 안전이었다.
시온만 무사하다면, 자신의 목숨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시온은 반대편 침대에 앉아 있었다.
시온은 주전자를 들어선 컵라면 속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일어났어?”
그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자상했다.
아니, 그녀만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컵라면에 물을 붓는 그의 움직임이 섬세하게 느껴졌다.
줄줄줄.
시온은 다시 다른 용기에도 따뜻한 물을 부었다.
시온이 보일러를 가동한 뒤, 경찰서에 소속된 시민들은 따뜻한 물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보일러를 가동하고 남은 열로 가열한 물이었다.
따라서 컵라면 같은 즉석식품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시온의 모습을 본 진재희는 안심한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시온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컵라면을 쥐고선 재희에게 다가갔다.
“먹어. 이런 것밖에 없지만.”
“…….”
진라면 순한 맛.
재희는 아무 말없이 그가 건네주는 컵라면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시온은 아무렇지 않게 되돌아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두 손에 폭 들어온 작은 컵라면 용기가 따뜻했다.
재희는 컵라면 용기를 가만히 쥐고 있다가 이내 그에게 말했다.
“아, 저기…….”
“괜찮아.”
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시온이 말을 가로챘다.
뚝.
시온은 나무젓가락을 양쪽으로 뜯고선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라면의 모락모락한 김이 시온의 얼굴을 덮쳤다.
“난 괜찮으니까. 아무 생각 말고, 회복에만 집중해.”
“…….”
후룹.
그 말을 한 뒤로 시온은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진재희는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멸망한 세계를 살아왔지만, 눈앞의 장면만큼은 몇 번을 보아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문명이란 것이 파괴된 세상 속에서 문명의 잔재물을 먹는 소년.
어디서 주워 온지도 모를 낡은 침대 위에 걸터앉아, 나무젓가락을 쥐고 라면을 먹는 소년.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
라면 뚜껑을 여니 꼬불꼬불한 면이 빨간 국물에 잠겨 있었다.
“응.”
진재희는 젓가락으로 집어 든 라면을 조신하게 입 안에 넣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