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안양역: 지하상가 (2)
“우욱……!”
우당탕-!
난 놈의 머리로부터 굴러떨어져 머리를 감싸 안았다.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곧장 고개를 들었다.
구구궁……!
그때, 오우거가 몸을 뒤척이더니 옆으로 몸을 돌렸다.
오우거의 거대한 머리가 날 덮치려고 들었다.
“……!”
서둘러 일어나 반대편 벽 쪽으로 기듯이 도망쳤다.
쿠웅-!
다행히 놈의 머리통이 날 덮치는 일은 없었다.
놈은 잠결에 뒤척이는 수준이었지만, 나에겐 그것이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커헝……! 커허어어억.
오우거는 잠자리가 불편한 듯 불규칙한 코골이를 하고 있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생각했다.
‘왜지. 태양이 뜨려면 아직 멀었을 텐데.’
순식간에 일어나서, 차마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오우거는 거대한 몸집에 비해 날렵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고, 진재희는 날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난 마구잡이로 떨리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오우거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었다.
진재희의 것이었다.
순간 심장이 덜컹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찾아야만 했다.
희미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그녀를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손전등 빛도, 달빛도 드리우지 않은 지하상가에서 그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눈앞의 오우거의 머리만 보였을 뿐이다.
우선 손전등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서 손전등 빛이 쏘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난 단숨에 다가가 손전등을 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오우거를 살폈다.
-드르릉…… 드르르릉…….
오우거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등을 붙이고 자는 자세에서, 옆으로 돌아눕는 자세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오우거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어떻게 날 공격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태양 빛을 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텐데, 놈은 분명히 손을 들어 날 공격했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
우선 그녀를 구해야 했다.
난 손전등 빛을 돌려 대며, 그녀를 찾았다.
분명 놈의 손바닥에 맞아 어디론가 날아갔을 것이다.
손전등 빛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손이 떨렸던 탓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 바로 그녀에게 다가가 살폈다.
그녀는 벽면에서 튕겨져 나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차마 살아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상처였다.
뼈가 전부 으스러진 듯 보였다.
이런 상태면 만약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걷지 못할 것이다.
아니, 걷는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이런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젠장…… 젠장.”
숨이 거칠어졌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그녀를 살폈다.
출혈이 심해, 얼마나 더 숨이 붙어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항상 소지하고 있던 진검도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충격이 컸다.
검보다 약한 그녀의 뼈는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평소에 그녀를 봤다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마음 편할 정도였다.
하지만…….
‘살려야 돼.’
살려야 했다.
그녀는 내게 큰 힘을 주는 존재였다.
이 리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진재희의 힘이 필요했다.
옷을 벗었다.
의식을 잃은 사람은 체온을 유지하기 어렵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이 추위 속에서 그녀의 체온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과다 출혈보단 저체온증을 방지해야 했다.
야상, 후리스, 조끼까지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나 또한 이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옷을 세 개만 벗었을 뿐인데, 뼈까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아침이 되기 전에 이곳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놈들이 깨어나기 전에.
손전등 빛으로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생각해, 생각해. 생각하는 거야.’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진재희가 전투 불능이 되는 순간, 그간 안전하게 느껴졌던 이 공간이 이젠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만큼 진재희의 역할이 내겐 컸던 것이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유일한 출입구였던 통로는 다른 놈이 누워 있는 바람에 막혔다.
또 다른 통로는 애초에 시체 더미에 가로막혀 지나갈 수 없었다.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지는 놈의 몸뚱이를 넘어야 했다.
‘다른 방법은 없어.’
놈이 몸을 다시 뒤척이지 않은 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띡띡띡.
재빠르게 전자시계의 타이머를 재설정하였다.
해가 뜰 때까지는 이제 4시간 남짓.
그전까지 이 던전을 탈출해야만 했다.
난 그녀를 짊어지려고 했다.
50kg에 육박하는 사람의 무게에, 몸에 두른 옷만 하더라도 10kg은 될 것이다.
세계가 멸망해 버리기 전, 내 체중이 65kg가 안 나갔으니, 며칠 동안 못 먹은 나의 체중은 더욱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난 필사의 정신으로 그녀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살려야 돼…….’
그 생각 하나만 했다.
반드시 살릴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놈의 몸 부위 중 가장 얇은 목 부분에 그녀를 끌고 갔다.
-드르르르렁! 쿠우…… 드르르렁!
정신없이 코를 골며 자는 오우거의 목 부분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한 번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자, 몇 번이나 더 찔러 넣어 발판을 만들고 그곳에 올라서려고 했다.
‘제발……!’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내 육체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계획을 바꿔, 내가 먼저 목에 올라섰고 그녀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그녀의 팔을 두 손으로 움켜쥐곤, 있는 힘을 모두 짜내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어림도 없었다.
‘한 번만……!’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그녀를 땅바닥에 떨어트리기를 여러 번.
밑에서 그녀를 올려 보기도 했고, 다른 부위를 통해 넘어가려고도 해봤다.
다시 주변을 살펴 다른 통로는 없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아티팩트를 활용하려고 했지만, 조그마한 구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시도했다.
나의 몸과 그녀의 몸이 차가운 지하상가 바닥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놈의 목에 계속해서 단검으로 찔러 넣으며, 필사적으로 기어올랐다.
나의 처절한 구조 행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빨이 저절로 부딪혔고, 시야는 희미해져 갔으며, 손발은 얼어붙는 듯했다.
도대체 몇 번의 시도를 했는지도 잊을 만큼, 나의 처절한 사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단지, 그녀를 짊어지고 오우거의 몸을 넘기 위해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타이머가 울리기 시작했다.
띠띠띠. 띠띠띠. 띠띠띠.
오전 07시 01분.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체력을 전부 소모했고, 살 떨리는 추위에 잠이 쏟아졌다.
난 장장 4시간 동안 그녀와 함께 이 던전에서 빠져나가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빈약한 몸으로는 사람을 짊어지고, 저 거대한 몸뚱이를 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후…… 흐. 후. 흐…… 흐. 후…….”
숨이 거칠었다.
추위 때문에, 그리고 체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난 다시 그녀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다시 넘어야 했다.
이제 곧 아침이다.
이제 곧 아침이…….
“…….”
우뚝.
가는 길을 멈췄다.
희미해져 가는 시력 속에서도 눈앞에 마주한 것을 보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난 그것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
기괴하기 짝이 없는 놈의 눈알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충혈된 흰자 안의 검은 눈동자가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난 여전히 진재희를 짊어진 채로 놈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구구궁…….
놈이 옅은 진동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4시간 동안 넘지 못했던 반대쪽 통로가 그제야 열렸다.
한 마리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자고 있던 세 마리도 동시에 일어났다.
‘도망.’
슥-.
본능적으로 뒷발을 주춤거리며 물렀다.
놈들은 허리를 뒤틀어 괴기한 자세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들이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없을 만큼 지하상가가 좁았던 탓이었다.
그리고 놈의 거대한 입가에는 침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구으으으윽……
오우거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친근함의 표시가 아닌, 위협적인 동작이었다.
난 진재희를 짊어진 채로 고개만 들어 손바닥과 마주했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난 몸을 웅크렸고, 놈은 손바닥을 그대로 내리쳤다.
쿠웅-!!!
* * *
“…….”
심장이 콩닥거렸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곤,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다시 떠 보았다.
그리고 은빛의 보호막이 나와 진재희를 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디언 가호 발동 중.]
눈앞에 나타난 알림 창.
몸에 은빛의 찬란한 보호막이 형성되었다.
날 내려친, 놈의 손바닥은 보호막에 따라 원형으로 뚫려 있었다.
-구어억……?
오우거는 손을 들어 보이며 거대한 바람구멍이 생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구멍의 단면에는 은빛을 지닌 불꽃이 불타고 있었다.
보호막이 놈의 손바닥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거의 포기하려던 찰나, 이 보호막이 몸을 감쌌다.
이토록 죽음에 근접했던 순간이 없었다.
쇼핑몰에서 느꼈던 공포와, 악어 거북에게 느꼈던 공포, 그 어떤 공포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때, 진재희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정확히는 조금씩 진동하고 있었다.
난 어깨에 두르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자연스레 놓아 주니, 진재희는 둥실 떠올랐다.
“……너.”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진재희는 눈을 감고 있었다.
스응- 스응- 스응-.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세 개의 은 검이 자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몸이 떠오르더니, 그녀의 몸으로부터 퍼져 나간 섬광이 이내 어두웠던 지하상가 내부를 밝게 비추었다.
눈앞에는 또 다른 알림 창이 연이어 나타났다.
[가디언 발동 중, 시전자 강시온.]
[명령어를 입력해 주십시오.]
이상했다.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스킬이 시전되고 있었음에도, 마치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알림 창이 나타났다.
-과아아아악!!!!!!!
오우거가 잔뜩 성을 내며 괴성을 내질렀지만,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진재희가 뿜어내고 있는 은빛의 섬광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대체 무엇인가.
인간이 아닌 건가.
무엇보다 ‘시전자’ 강시온이라니.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데리고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을 뿐이었다.
아티팩트 역시 아니었다.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은빛 섬광이 진재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오른 채, 앞으로 조금 나아갔다.
이제 그녀는 완전히 내 앞을 가로막곤 지켜 주고 있었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알림 창이 다시 나타났다.
[명령어를 입력해 주십시오.]
명령?
명령이라면,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거지.
눈앞에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한 저 괴물 놈들을 죽여 달라고 한다면 명령이 수행되는 것인가.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눈앞의 오우거 4마리, 상태 불능으로 만들어.”
반신반의였다.
이것이 정말 내가 명령할 수 있는 스킬인지, 아니면.
[명령어가 입력되었습니다.]
[가디언 가동합니다.]
파앗-! 콰지지지직…….
반신반의한 상태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령어가 입력되었다는 알림 창과 함께, ‘가디언’ 진재희는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일순간의 일이었다.
-구어어어억!!!!
-가아아아아악!!!
-갸아아악! 갸아아악!!!
오우거 네 마리의 두 발이 모두 잘려 나간 것은.
오우거들은 바닥에 쓰러져 괴성을 내질렀다.
차마 눈이 따라가지도 못할 스피드였다.
“……!”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정말 단 일순간의 일이었다.
적을 섬멸한 가디언은 검을 거두었다.
그리곤 천천히 내게로 날아들었다.
그녀는 아직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명령어 수행 완료.]
[몸을 회복하기 위해 수면 상태에 빠집니다.]
그 순간, 진재희의 몸에서 은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몸을 감싸던 은빛이 사라지자, 허공에 떠올라 있던 진재희는 지면으로 떨어졌다.
풀썩!
난 떨어지는 그녀를 품에 받아 냈다.
“푸흐…… 흐…….”
그녀는 기절한 채, 옅은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이게 대체…….’
진재희는 틀림없이 기절해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마치 무기와 같았다.
나의 아티팩트 구와 마찬가지인, 시전자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무기.
전생의 난, 도대체 어떤 스킬을 그녀에게 심어 두었던 것인가.
‘…….’
난 품에 안긴 그녀를 조금 밀어내곤 얼굴을 살폈다.
여지없이 눈을 감고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이것도 가디언의 능력이었다.
시전자, 강시온.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
난 그녀를 안아, 짊어졌다.
어찌 되었건, 한시라도 빨리 이 빌어먹을 던전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리가 잘린 오우거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로 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그녀를 어깨에 짊어지곤 햇빛이 드리우는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