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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47화 (47/221)

#제47화. 안양역 (3)

공략조는 곧장 경찰서로 복귀했다.

오우거와 마주한 순간부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온은 경찰서로 돌아온 뒤로도 도통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놈들은 코끼리 세 마리를 나란히 세워 놓은 듯한 거대한 몸을 가졌고 눈동자는 하나뿐이었지만, 손은 자동차를 한 손에 쥘 정도로 거대했다.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아. 다리 위를 주로 공략하면 돼. 쓰러지면 등에 올라타 목 부분을 베면 되고.”

반대편 침상에 걸터앉은 재희가 시온에게 말했다.

그녀는 마치 방금 말한 것들이 아주 쉬운 듯이 말했다.

시온은 그녀를 한 번 힐끗 보곤, 다시 시선을 거둬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실내 온기는 따뜻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추위는 많이 가셨다.

더 이상 실내에선 패딩을 입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24시간 연소 작업자들을 배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끄러미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던 시온은 단검을 뽑아내며 말했다.

“죽이려고 하는 게 아냐. 포획해야지. 그리고 죽이는 것에 목적을 둬야 할 이유도 없어. 놈들이 경찰서를 침범한 것도 아니고, 괴물은 피하면 그만이니까.”

손톱이 많이 자라 있었다.

사각, 사각.

그는 군용 단도로 조금씩 손톱을 잘라 내며,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포획할 방법을 생각해야 해.”

진재희는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가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생각에 빠진 듯, 침묵을 지키다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약점은 하체와 눈이야. 오우거는 눈만 공략할 수 있다면,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야.”

“무력화시킨다니?”

“말 그대로 무력화시킨다는 거야. 눈이 없는 오우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냥을 나설 수도 없고, 마치 바위처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리고 유일하게 재생되지 않은 부위도 눈이고. 그래서 사냥하기 쉬운 편에 속해. 눈만 공격한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안 하거든.”

뜨득-. 뜩.

시온은 여전히 단검으로 손톱을 자르며 말했다.

“내부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이젠 외부에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해. 경찰서의 수뇌부들은 또 새로운 업적을 남기길 원하니까.”

“또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재희가 되레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어차피 그들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길인호 시 의원이나, 경찰서장은 강시온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되려 시온이 그들의 힘을 이용하고 있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였다.

시온의 행동 중에 계획에서 벗어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진재희는 단검으로 손톱을 깎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경찰서 실권을 잡으면, 그 사람들은 어쩔 셈인데?”

“……그야.”

뜨득-!

시온은 잘못 힘을 주어, 손가락을 베었다.

베인 손가락으로부터 새빨간 핏줄기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쭙.

시온은 그 손톱을 손가락으로 빨았다.

그리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 죽일 거야.”

그는 곁에 있던 헝겊으로 베인 손가락을 꾹 눌렀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벽에 기대어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온은 그렇게 고개를 치켜들고 내리깔며 바라보는 자신의 표정이 타인에겐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실제론 그럴 의도가 아닐지라도.

옆으로 째지고 어두운 눈, 며칠은 잠을 자지 않은 듯이 피곤한 눈빛, 염색기 하나 없는 흑발.

그리고 내리까는 눈빛은 진재희조차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다.

시온은 손가락에서 헝겊을 벗겨 내며 말을 끝맺었다.

“……의사 빼고.”

그는 후환을 남겨 두지 않은 사람이었다.

* * *

오우거의 서식지를 발견한 날로부터 난 매일 같이 안양역으로 향했다.

공략조는 그 규모를 줄였다.

거사가 있기 전까지는 그들이 공략에 나설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략조에 나서는 건, 나를 포함해 진재희, 최명준뿐이었다.

관찰은 나만 했다.

최명준은 짐꾼 역할이었다.

가방에는 조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득 담았고, 그걸 멘 최명준은 계속해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댔다.

진재희는 최명준과 주위 몬스터를 감시하거나 아티팩트를 연마했다.

그러다 최명준이 그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진재희는 ‘꺼져’라며 차갑게 굴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난 오우거의 행동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코를 파는 행위, 엉덩이를 긁는 행위, 변을 보는 행위, 돌아누운 행위, 주워 온 시체를 가지고 노는 행위, 시체를 먹는 행위, 알 수 없이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위, 네펜데스와 싸움을 벌이는 행위, 안양역 벽면을 기어오르다가 넘어지는 행위, 몇몇 생존자가 그 앞을 지나가다 꼼짝없이 잡아먹히는 장면까지 모두 관찰했다.

모든 건, 곧 관찰에서 비롯한다.

관찰을 통해 결과가 나온다.

난 항상 그렇게 살아왔다.

공부도, 학교도, 막노동도.

처음 하루 이틀은 가만히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거나, 그들의 사고방식을 파악한다.

공부? 독서? 마찬가지다.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해당 책으로 가르치는 선생이 어떤 습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출제 유형, 빈도, 난이도, 성격까지.

심지어는 지금 날 가르치는 선생이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 그냥 대충 가르치는지, 선생의 수업을 듣는 것이 시간 낭비는 아닌지, 그냥 자습하는 것이 나은지.

모든 걸 파악하고, 시간을 투자했다.

중학교 때.

사람들은 날 두고 천재라고 불렀다.

난 그것에 대해 부정했다.

난 그들만큼 머리 회전이 빠른 것도 아니었고, 암기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한 번 본 수학의 공식을 단번에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관찰했을 뿐이었다.

방정식, 함수.

그것 역시 관찰을 통해 알아냈다.

방정식이 어떠한 원리로 숫자를 풀어내는지, 함수가 어떠한 원리로 숫자를 풀어내는지.

문제는 왜 이렇게 출제되었으며, 어떤 식의 풀이가 가장 정답에 근접한지.

세 가지의 길이 놓여 있을 때, 그 길 앞에 서서 과연 어떤 길이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인지.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나의 관찰은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하나도 빼먹지 않고 작은 수첩에 적었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부실하지만, 전체적인 몸을 지탱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루에 세 번, 사냥을 나서는데 사냥은 인간의 시체, 괴생물체, 나무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먹지 않는다. 먹기 전, 반드시 죽인다.

-눈동자는 사람처럼 동그랗고 흰자에는 핏줄이 일어 있다.

-눈을 보호하는 눈꺼풀은 두꺼운 가죽 갑옷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두껍다.

-눈에 미세한 변화가 생기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활동을 정지하고 눈에 낀 이물질에 대해 파악한다.

-밤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변의 색은 짙은 노란색이다.

어느새 수첩 빼곡히 놈에 대한 관찰 일지가 채워졌다.

* * *

슥슥슥-.

시온의 볼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그의 오우거 관찰 일지는 수첩 1권으로도 부족했다.

눈으로 관찰하고, 손으로 곧바로 옮겨 적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종이에 적어 나갔다.

그 관찰로도 부족했는지, 시온은 기어이 놈을 밤까지 관찰한다.

시야를 뺏긴 놈들이 어떤 일을 벌이는지, 그것을 알아야 했다.

그 정보가 없으면 죽이는 건 고사하고, 사로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우거 4마리는 해질녘이 되면 다시 움직였다.

사냥을 나서거나, 주변을 탐색하는 행동 외의 새로운 움직임이었다.

오우거는 무너진 안양역 안으로 들어갔다.

한 마리씩 줄지어 안양역 지하상가로 내려가고 있던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대한 몸집을 지닌 놈들이 저 좁은 곳을 둥지로 사용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들의 몸으로는 그곳에서 걸어 다니기는커녕 기어 다녀야 할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으니까.

목적이 있을 것이다.

시온은 그 목적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오늘은 옥상을 벗어날 참이었다.

“가자.”

시온은 무장을 점검하고, 옥상 난간을 부여잡았다.

그의 소리에 깜짝 놀란 최명준이 다가와 물었다.

“어이, 어이. 형님. 어딜 간다는 거요?”

“지하상가.”

시온은 지상을 살피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최명준이 계속해서 물었다.

“저길? 왜? 방금 저 괴물 새끼들이 들어가는 거 똑똑히 봐놓고? 아니, 저녁까지 관찰은 오케이. 어차피 옥상 위니까. 근데 저런 놈들 주먹으로 대가리 한 번 맞으면 바로 토마토 되는 거여. 알고 하는 말이여. 형님?”

“그래서 들어가는 거야.”

시온은 지상을 확인했다.

눈이 지상 2층까지 쌓여 있었다.

그냥 지하상가로 걸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가장 가까운 지하도를 따라 내려가야 했다.

시온은 진재희를 불렀다.

그녀는 곧장 그에게 다가왔다.

“6번 지하도로 들어갈 거야. 놈들이 들어간 출입구 가까운 건물로 최대한 근접해서, 대략…….”

시온은 시계를 확인한 뒤, 다시 말했다.

“……새벽 3시까지 관찰할 거야. 무리야?”

시온은 그녀에게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무리인지 물었고, 재희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재희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줘.”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의사를 확인했다.

그는 가방끈을 조여 매고, 운동화 끈도 다시 단단하게 묶었다.

아무래도 놈들의 소굴에 들어가는 것이니,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시온은 옥상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최명준이 다가가 시온의 어깨를 움켜쥐려고 했다.

“자, 잠깐만! 형님!”

휘릭- 타악!

그때, 진재희가 시온에게 뻗으려던 최명준의 손을 잡아 반대로 꺾었다.

꼼짝없이 당한 최명준은 비명을 내질렀다.

“흐악……!”

“허튼짓하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진재희는 최명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야이 X…… 발. 허튼짓이 아니라 잠깐 붙잡는 거잖아. 놔!”

꾸우우욱…….

그의 소리침에 진재희는 놓기는커녕, 더 비틀었다.

최명준의 비명에 시온은 옥상 문고리를 쥐려다 돌아보았다.

“놔줘.”

시온의 말에 진재희는 곧장 최명준을 놔주었다.

최명준은 그녀에게서 벗어나 중얼거렸다.

“아, X발. 더럽게 빠르네.”

최명준은 구시렁거리며 부어오른 손목을 조심스레 돌려 댔다.

강시온은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리고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최명준에게 물었다.

“문제 있어?”

“문제야…… 조온나게 많죠…… 형님아…… 아. 손목.”

최명준은 손목이 아직까지도 아픈 듯 인상을 구기곤 시온을 바라보았다.

시온은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형님. 뭔가 착오가 있는데…… 형님은 분명 나한테 쓸모 있을 데가 있다고 했죠.”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근데요. 형님아. 나도 저렇게 큰, 괴물은 못 이겨요. 예? 내가 무슨 UFC 세계 챔피언도 아니고. 아니, 세계 챔피언도 저건 못 이겨요.”

시온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지하상가를 들어가는 건, 뻔히 자살 행위인데 그걸 같이 들어가자고요? 그냥 들어가면 죽는 거요. 형님아. 형님 그 돌격의 거인 모르오? 내 어렸을 때 보던 애니메이션. 아, 젠장. 우리 딱 그 꼴 난다니까? 형님. 형님이요…… 형님을 지키라고 절 유치장에서 꺼내 준 건 고마운데. 예?”

최명준은 답답한지, 푹푹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시온의 눈은 똑바로 마주치지 않았다.

평생을 싸움판에서 살아온 최명준조차도, 시온의 눈만큼은 똑바로 마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시온의 눈은 매섭고 날카로웠으니.

최명준이 지금 가지는 감정은 정상적인 것이었다.

지금 시온이 행하려고 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무리 건달 출신에, 쇠 파이프와 각목이 휘둘러지는 싸움판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한들, 바로 앞의 죽음에 대해선 공포감이 들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최명준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던 게 하나 있었다.

“알아. 너 저 괴물 못 이기는 거.”

시온은 그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너가 약해 빠진 양아치 새끼인 것도 잘 알고.”

시온은 다시 한 발자국 그에게 다가갔다.

이제 최명준은 시온의 눈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바로 앞에서 시온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더러 날 지키라고 유치장에서 꺼내 준 것 같아? 네가 유치장에서 보여준 정신력, 의지력 그리고 그만큼 갇혀 있었는데도 몸집을 유지하는 천부적인 몸. 넌 짐꾼이야. 힘꾼이고. 난 널 최강의 노동력으로 판단하고 그곳에서 꺼내 준 거야. 알아들어? 지켜 줘? 네가 날?”

“…….”

최명준의 동공이 흔들렸다.

반면 강시온의 동공은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넌 날 지킬 수 없어. 착각하지 마.”

그 말을 들은 최명준은 말문이 턱 막혀선 어벙하게 있다가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외관이었다.

근육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 봐야 검을 찼을 뿐인데, 그의 신뢰를 받고 있다.

최명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벙하게 서 있는 최명준을 두고, 시온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말했다.

“넌 지금 다시 돌아가 유치장에 들어가.”

“형님……?”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넌 필요 없어.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몸에 손대지 마. 손가락 하나도 용서할 수 없어. 알아들어?”

그 말을 끝으로 시온은 옥상 문으로 걸어갔다.

“형님. 아니, 그게 형님.”

시온은 몇 걸음 걸어가다 다시 최명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래. 지금 도망가도 돼. 근데…… 유치장 말고 갈 때가 있을까? 바깥은 괴물 천지일 텐데.”

“……그게 형님! 죄송합니다……!”

시온은 최명준 앞에서 차갑게 돌아서 옥상 문으로 걸어갔다.

그를 따라 진재희가 따라나섰다.

최명준이 시온을 따라가려 하자, 진재희는 힐끔 돌아보며 검 손잡이를 쥐곤 위협했다.

“따라오면, 베겠어.”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최명준은 얼어붙었다.

끼이이익…… 텅!

옥상 문이 닫히고, 최명준은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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