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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45화 (45/221)

#제45화. 안양역 (1)

구름 한 점 없는 겨울의 하늘.

그 하늘을 배경 삼은 거대한 영상에 누군가 나타났다.

K였다.

[금일부로 2라운드 혹한 2단계로 격상.]

[안녕하세요! 일일 기상캐스터 K입니다.]

[현재 안양시 온도는 영하 20도, 체감 온도 영하 35도 이상입니다! 와우! 너무 춥겠는걸요? 참고로 저희가 관측한 바로 지구 역사상 가장 추웠던 겨울이 영하 76도라고 합니다. 음…… 그렇게 생각하니 아직 많이 먼 것 같기도? 하하!]

[오늘은 날씨가 많이 추운 관계로 외출 시, 두꺼운 패딩이나 내복을 겹겹이 입어 주세요! 그리고 빙판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히 다니셔야 할 것입니다. 하아-. 이런 날 저도 그냥 집에서 쉬었으면 좋겠네요. 흑흑.]

[그럼 이만. 기상캐스터 K! 였습니다. 모두들 해피 2라운드 보내세요~!]

해당 영상은 오전 9시에 나타나, 오후 3시까지 반복 재생되었다.

영하 20도.

건물 바깥은 지옥이었다.

눈은 더 쌓여, 이젠 2층 높이의 낮은 주택들은 모두 잠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바깥으로 나가면, 5분 안에 얼어 죽을 것이다.

혹한 2단계가 되면서, 경찰서에서는 아주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이젠 동상에 걸려 죽는 이들이 속속 발생했다.

하루에 많으면 다섯 명, 적으면 세 명.

노인과 아이들 대부분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사망했다.

보일러 재가동을 시도한 지,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진재희는 아티팩트 훈련에 매진했고, 강시온과 노동자들은 보일러 가동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빠른 시일 내, 추위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모두 다 죽는다.

그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시온은 지난 일주일, 전 노동력을 동원하여 보일러 가동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완성하게 되었다.

만안 경찰서, 1층.

그곳에는 거대한 가열 통이 놓여 있었다.

가열 통은 방 한 칸은 채우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가지고 온 철로 된 물통이었다.

가열로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코팅을 몇 겹이나 덧칠했다.

가열 통을 지지하는 철근들은 일일이 작업자들이 설치했으며, 그 밑은 화로가 자리했다.

그 주위로는 추위와 눈보라로부터 보호할 천막들이 자리했다.

가열 통에는 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추위에 겨우 눈만 내놓은 작업자들이 이곳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중요한 건, 이 불을 꺼트리지 않는 것입니다. 관리자님.”

연소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름, 석탄, 전기, 숯, 연탄.

그 어느 것도 구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연탄입니다. 연탄은 쉽게 태울 수 있고, 지속 시간도 오래가니까요. 다행히 몇 번의 정찰 도중 연탄 몇 개를 구했지만…… 이걸로는 며칠이나 갈지.”

“이 일대에선 연탄을 찾기 어렵죠.”

연탄을 쓰는 가정집은 드물다.

대부분이 가스보일러를 사용하지, 연탄은 이미 구시대적 난방 방식이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시온은 곁에서 꾸벅꾸벅 졸던 김수경을 불렀다.

“김수경 씨.”

“아, 예!”

김수경이 깜짝 놀라선 시온에게 바짝 다가왔다.

“내부에 있는 모든 가연성 물품을 전부 가져오세요.”

“아…… 네!”

“부탄가스나, 연탄도 남은 것이 있다면 전부. 그리고 마른 잎이나 태울 것도 전부. 잠깐만. 그냥 태울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가져와 주세요.”

“자, 잠깐만요. 부탄가스랑…… 연탄이랑…….”

한 달간 경찰들은 꾸준하게 정찰 팀을 운영했다.

지하 창고에는 식품뿐만 아니라 여러 물품들도 보관 중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열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당장의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 내야 되기 때문이다.

시온은 보일러 담당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하시죠. 이젠 할 수밖에 없어요.”

정말 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더 추워지면서 사람이 죽기 시작했다.

이젠 돌이킬 수도 없고, 그간 해 온 노력이 결실을 맺어야만 했다.

“그럽시다. 준비하겠습니다.”

이종철이 보일러를 가동하기 위한 최종 준비를 서둘렀다.

강시온은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 * *

세력 내, 수뇌부들과 시민들이 모두 연통이 이어진 복도로 나왔다.

1층으로부터 이어진 연통은 쭉 올라가 지상 5층까지 이어져 있다.

연통은 가열된 수증기를 운반하는 통로이다.

증기의 위로 올라가는 성질 때문에 가열된 수증기는 자연스럽게 건물을 보온한 뒤,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연통 중간중간에는 해당 관리자가 있어, 발견한 문제점들을 점검하고 있다.

시온은 연통을 따라 걸었다.

연통 양쪽으로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이 수없이 있었다.

터벅, 터벅, 터벅.

시온이 걸어가자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최근 일주일간, 강시온이 걸어온 발자취를.

이곳에 있는 모두를 살리고자 그가 실행한 말도 안 되는 작전을.

멸망해 버린 세계에서 보일러를 가동한다는 것 자체가, 보통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지 않을 구조대를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보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강시온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 시온을 바라보았고, 시온은 오로지 연통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최종 점검만 남았다.

점검이 끝나고 보일러가 가동하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지도자가 시온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시온은 천천히, 세세하게 마지막 연통까지 점검했다.

‘좋아. 완벽해.’

입술 사이로는 입김이 하염없이 새어 나왔고, 발가락은 얼어붙을 것 같았다.

당장 2단계가 이 정도 추위인데, 3단계, 4단계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시온은 좁은 복도에 들어섰다.

그 가운데로 연통이 길게 뻗어 있고, 양 벽면으로는 시민들이 서 있었다.

오들오들 떨며, 아이는 부모에게 꼭 안겨 있다.

‘괜찮아. 여기도 좋아. 좋아. 좋아. 다시. 좋아. 좋아.’

점검, 점검, 점검.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

무조건 성공해야만 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관리자님.”

“관리자님…… 관리자님.”

“관리자님. 관리자님……!”

시온이 걸을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넌지시 들려오는 목소리들.

시온은 모든 목소리를 귀에만 담아 둔 채,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5층에 올랐다.

점검 결과, 상태 양호.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시온은 가열 방에 있던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해요.”

그의 말에 불을 붙였다.

보일러가 가동되었다.

* * *

한 노인이 있었다.

4일 전, 40년간 함께했던 그의 아내가 얼어 죽었다.

시신은 경찰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버려졌다.

그저께에는 아들 부부의 어린 딸이 얼어 죽었다.

얼어 죽은 손녀를 안아 든 손바닥에는 아직까지도 그 차가움이 남아 있었다.

어제는 아들 부부가 경찰서를 뛰쳐나갔다.

이곳에선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인은 5인 가족으로 이곳에 들어왔지만, 결국 남겨진 건 자신뿐이었다.

털썩-!

그런 노인이 연통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 연통에 손을 대었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오른뺨을 연통에 갖다 댔다.

“…….”

“…….”

복도에 있던 모두가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노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 감사합……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손바닥과 뺨으로부터 올라오는 따듯한 온기.

한 달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감각이었다.

보일러는 가동되었다.

강시온의 계획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아아…… 그분이 옳았어…… 그분…… 하하…… 아아…… 따뜻해애…… 하하 따뜻하다고! 이 통이 따뜻해.”

노인의 감격스러운 눈물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너도나도 연통에 달라붙었다.

희미했지만, 분명 따뜻한 온기가 피부에 전해졌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하나둘 연통으로 모여들었다.

재앙으로부터, 어떤 대상에게 구원받으면 대상은 신격화된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 주고 새로운 미래를 준 대상을 선망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이 보일러는 그들에겐 구원이었다.

보일러에 홀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길인호 의원은 살며시 웃어 보였다.

“서장님. 제가 뭐랬습니까. 그 사내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와-. 허허허. 아니, 정말 대단합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보일러를 만들 줄이야.”

길인호 의원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담배를 물었다.

후우-.

길인호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지금 느껴지는 이 시민들의 선망과 존경.

‘……구조된 이후에는 전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강시온이 이뤄 낸 이 업적들은 한마디면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시 의원, 길인호의 권력이었다.

결국 강시온이 무언가를 계속해서 이루면 이룰수록 자신의 업적이 될 것이다.

길인호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하하하. 더 해라. 더.’

길인호는 담배를 복도에 떨어트려 꺼 버리곤 피식피식 웃어 댔다.

그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가는 듯, 실실 웃고 있었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다.

길인호는 아직까지도 정부가 기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자신이 망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깡깡깡-!!!

김수경 순경이었다.

4층에서 올라온 그는 숟가락으로 양은 냄비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연통에서 벗어나세요!! 어서요!!! 비키세요! 관리자님의 명령입니다!”

김수경은 연통을 따라 달리며 열심히 냄비를 두드려 댔다.

* * *

경찰서 1층.

보일러 담당관 이종철이 연통에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곤 활짝 웃었다.

“과, 관리자님! 서, 성공입니다! 성공이에요! 와하하-! 저희가 보일러를 재가동시켰습니다.”

주변 작업자들이 작은 환호를 내질렀다.

씨익-.

그때, 시온은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경찰서에 온 뒤로 처음으로 지은 미소였다.

“다행입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요.”

그의 말대로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당장 가동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그것을 해결해야만 완전히 보일러를 재가동시켰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을 추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완전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급한 불은 껐다.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아래층으로부터 김수경이 활짝 웃으며 올라왔다.

보일러가 닿는 마지막 층인 5층에 있었던 김수경이었다.

“관리자님! 성공입니다. 5층에도 온기가 확실하게 전달됩니다. 하하하.”

가장 끝 쪽도 온기가 전달되는 모양이다.

시온은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가열 통 내부의 물을 끓여 발생한 온기를 연통을 통해 건물 곳곳으로 보낸다.

그리고 열은 다시 이곳 가열 통에 오며, 보일러는 일정한 수분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외부 충격만 없다면, 불을 꺼트리지만 않는다면, 열의 온도가 계속해서 건물을 따뜻하게 유지할 것이다.

“시민들이 아주 연통에 들러붙고 껴안고 난리가 났습니다. 추위 때문에 하루하루 병들어 가던 시민들이 맞나 싶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관리자님!”

김수경은 웃으며 말했지만, 시온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동시에 보일러 관리자들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수경 씨. 지금 당장. 경찰 병력 총동원해서 시민들한테 연통에서 떨어지라고 해요.”

“아, 예? 왜…… 요?”

“시키면 하라는 대로 해요. 당장!”

“아…… 아, 네!!!”

김수경은 후다닥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연통은 정말 약하다.

아무리 금속이라고 할지라도, 성인이 조금만 힘을 줘도 찌그러질 정도다.

조금의 구멍이라도 나면, 설비를 다시 해야 했다.

기껏 일주일 동안 잠도 설쳐 가며 만들었는데, 이대로 망가지게 둘 순 없었다.

특히 난방에 목말라 있는 시민들이다.

그들의 욕구를 쉽게 잠재울 순 없을 것이다.

시온은 당장의 난방 가동만을 생각하다, 가장 기본적인 걸 놓쳤다.

“아-, 실수네요. 제 관리 책임입니다.”

시온은 티 나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주변 작업자들이 만류했다.

“아니, 관리자님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맞아요. 관리자님이 없었더라면 이런 거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작업자들은 시온에게 너도나도 한 마디씩 건넸다.

원래라면 삼촌 조카 할 정도로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다.

하지만 이젠 그들 모두가 조카뻘인 시온을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나서 같이 작업을 시작한 지는 겨우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일주일 동안 결국 기적을 만들어 냈다.

기적을 만든 사람이야말로, 그들의 지도자로 적합했다.

“감사합니다. 관리자님.”

보일러 담당관 이종철이 고개를 조금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시온은 그런 그를 보며 조금 쓰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아래로 내려갔던 김수경이 헐레벌떡 다시 뛰어 올라왔다.

“하아…… 하아……! 다 전달하고 왔습니다! 과, 관리자님…… 하아……! 지금 경찰관…… 명령까지…… 전부. 네…… 하아.”

김수경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날씨가 춥다 보니, 조금만 뛰어도 폐가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김수경은 숨을 천천히 고르고는 다시 물었다.

“관리자님…… 다음은 뭐죠?”

김수경은 숨을 크게 몰아쉬곤, 강시온을 바라보았다.

시온은 담장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안 경찰서는 꽤 고지대에 있어, 웬만한 도시의 풍경은 전부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도시는, 온통 눈밭이었다.

사람이라곤, 아니 생명체가 살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할 정도였다.

시온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김수경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모두가 그의 말에 놀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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