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44화 (44/221)

#제44화. 겨울나기 (3)

나는 진재희에게 사냥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에는 일관되게 무표정이었다.

이어서 점차 눈썹을 찡그리곤 심각한 듯 주먹을 인중에 붙이더니, 마지막엔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생에선 몰랐던 내용이라 조금은 의아해.”

“전생에선 몬스터를 이용할 생각은 안 했나?”

“응. 전생의 넌 그냥 시민들을.”

“시민들을?”

그 말 뒤로 진재희는 침묵하더니, 이내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냐. 아냐. 아무것도.”

진재희는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을 떨며 부정했다.

전생의 내가 어떻든, 중요한 건 현재였다.

전부 부질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내일부터 보일러를 재가동하기 위해선 체력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잘 거야?”

그녀가 물었고, 난 다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럴 리가.”

보고가 끝났으니 다시 일할 차례였다.

이곳엔 잠시 진재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왔을 뿐이었다.

시간은 이제 오후 7시.

적어도 12시까진 내부 점검에 힘 쓸 것이다.

문고리를 돌려 다시 복도로 나섰다.

* * *

시온은 기술자들과 함께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이종철이 생각하고 있던 보일러 재가동 문제에 대해 강시온이 현실적인 부분을 짚어 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속해서 계획했다.

그들은 시간에 쫓기고 있었기에.

시온은 이보다 더 추워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 놓고 휴식할 순 없었다.

밤은 깊어 갔다.

그들의 작업은 새벽 3시를 넘어서까지 이어졌고, 시온은 잠깐 눈을 붙인 뒤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시온은 아침에 일어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곤 문을 나섰다.

* * *

관리자로 임명된 뒤, 이튿날이 밝았다.

전날 배급받았던 물로 세수를 하니, 볼이 따끔거렸다.

춥고 건조한 탓에 피부가 갈라졌던 것이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살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아 경찰서 내부는 어두웠다.

그럼에도 몇몇 노동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전날 작업에 대한 지시를 전달받은 최하층의 작업자들이었다.

“대단해. 하루 만에 이렇게나 바뀌다니.”

뒤에 서 있던 진재희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온종일 방 안에만 있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루아침에 경찰서는 활력을 되찾았다.

난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오늘 할 일에 대해 살폈다.

오늘 하루도 엄청나게 바쁠 예정이었다.

“가자.”

난 종이를 안주머니에 넣으며 앞장섰다.

지하 유치장으로 향했다.

지하실을 지키고 있던 순경들이 단번에 날 알아보고는 허겁지겁 문을 열어 주었다.

우린 순경들이 열어 주는 문을 통과하며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었다.

“재소자인 거야?”

뒤따라오던 진재희가 물었고,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소자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리그 이전의 세상이지, 이전의 헌법에 따르면 내가 범죄자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을 죽여 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피차일반이다.

안쪽으로부터 손전등에서 비춰진 빛기둥들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미리 와 있었던 수뇌부 측의 검사관이 인원들을 추리고 있었던 것이다.

재소자들을 선별하는 과정이었다.

유치장 안의 재소자들은 오랜만에 보이는 빛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중 오직 한 사람만이 자리를 지킨 채, 우직하게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제 만났던 건달이었다.

“김기수, 안창석, 우태헌 나와.”

세 명의 남자가 몸을 오들오들 떨며 유치장에서 나왔다.

이미 나와 있는 재소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모두 수갑으로 묶여 있었고, 경찰관들에 의해 통제 중이었다.

난 인원들을 호명하고 있는 검사관 옆에 서서 명단을 살폈다.

검사관을 날 발견하곤 고개를 살짝 숙였다.

“관리자님, 오셨습니까.”

“저 사람은 관리 대상입니까?”

난 바로 본론으로 돌려 반대 벽에 앉아 있는 건달을 가리키며 물었고, 검사관은 서류철을 넘기며 살펴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만. 최명준은 전과 8범에 특수 폭행 건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풀어 주고 있는 재소자들은 대부분 경범죄에 해당되지만, 최명준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역시 최명준은 선별 과정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철창에 가까이 다가갔다.

최명준도 날 의식했는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생각해 봤어?”

난 유치장 한 켠에 있던 접이식 의자를 철창 앞에 끌어다 앉았다.

최명준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조금의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최명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단, 조건이 있다.”

난 곧바로 대답했다.

“말해.”

내가 수용 가능한 조건이면 수용할 생각이다.

하지만 터무니없거나 시건방진 태도를 고수한다면, 난 그를 가차 없이 버릴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유치장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그는 안에서 얼어 죽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를 죽게 만들 것이다.

최명준은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하루에 한 갑. 담배를 줘. 그거면 돼.”

담배라.

난 진재희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진재희는 조금 내 눈치를 보더니, 이내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겹쳐서 건네었다.

아프리카 아이스 잭이었다.

최명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철창으로 걸어왔다.

난 그에게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건네기 전,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하나만 기억해. 단 한 번이라도 내 말을 거스르면, 다시 유치장행이야. 알아들어?”

훽-.

그때, 최명준은 철창 바깥으로 손을 빼내 내 손아귀에 있던 담배를 낚아챘다.

최명준은 금단현상인 듯, 서둘러 담배 비닐을 벗겨 내곤 한 까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쳇, 아이스 잭. 빌어먹을 고삐리 새끼들만 피우는 거.”

칙-.

어두컴컴한 유치장 내부에 라이터 불이 동그랗게 퍼져 나갔다.

곧 불이 사그라들며 그는 크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 들었다.

그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흡입되는 니코틴의 양에 따라 누그러졌다.

“스으으읍-…… 후, 아아…… X이발. 이거지. 이게 X발 인생이지. 스으읍-.”

자욱한 담배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최명준은 황홀한 듯한 표정을 짓고선, 손을 벌벌 떨어 댔다.

그는 전투적으로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마치 이 세상에 담배가 한 까치만 남은 것처럼, 필터 끝이 말려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벅벅 피워댔다.

그리고 연달아 두 개째를 물곤 다시 피워 댔다.

난 그가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대답해. 내 말을 거스르면.”

톡-.

그때, 아이스 잭 캡슐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최명준은 내게 미소를 보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는 내 말을 가로챘고, 이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끝맺었다.

“……형님.”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 담배 연기를 안면에 맞으며, 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무력으론 안양시에서 제일가는 싸움꾼을 영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눈앞의 이 거대한 남자는 필시 나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건방진 새끼.”

이 건달 놈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난 보지도 않고 경찰관에게 명령했다.

“열어 줘요.”

경찰관은 흠칫 놀랐다.

지금껏 자신을 죽인다는 미친 건달 새끼와 대면한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경찰관으로선 별수 없을 것이다.

난 일시적으로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난 시민들의 관리자다.

달달달-.

유치장 문을 여는 경찰관의 손이 무자비하게 떨려 댔다.

덜컹-! 끼이이익…….

유치장 문이 열리고, 키가 2m에 육박하는 거구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어깨까지 오는 장발에 다부진 근육.

그리고 어느새 입에 문 다섯 까치의 담배까지.

“잘 부탁합니다. 행님아.”

눈앞에서 그를 마주하니, 마치 거인과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가자. 할 일이 많으니까.”

“예. 그럼요.”

터벅, 터벅.

나의 발걸음과는 다르게 그의 발걸음은 묵직했다.

최명준은 지레 겁먹은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경찰관의 귀에 불이 붙은 담배를 올려놓으며 웃었다.

“안 잡아먹어. 당장은 말이야.”

그 말을 뒤로 최명준은 내 뒤를 뚜벅거리며 따라왔다.

남겨진 경찰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 * *

“야, 여자. 너 X나게 예쁘다. 몇 살이야? 난 29살인데.”

최명준은 앞서 걸어가는 진재희 뒤에 슬그머니 붙으며 말했다.

제일 앞서 걸어가는 시온의 귀에 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들은 어두컴컴한 지하 복도를 걷고 있었다.

탁, 탁, 탁.

최명준은 담배를 문 채로 손바닥에 주먹을 쳐 대며 야릇하게 말했다.

“오늘 밤, 연애할래? 오빠가 X나게 잘해 줄게.”

그의 도발에도 진재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재희는 묵묵히 앞서 걸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최명준은 더욱 호감이 갔다.

“너 형님 꺼야? 와-. 울 형님 능력 개쩌네. 생긴 건 어디 동네 중딩처럼 생겼는데. 능력 좋아? 어? 뭐 어때. X발. 아니면 세 명이서.”

스응-.

그때, 최명준의 목에 단검이 겨누어졌다.

차마 최명준으로선 눈에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발도였다.

최명준은 멋쩍게 웃으며 두 손을 들어 올리곤 말했다.

“하하. 왜 이래?”

최명준은 웃으며 넘기려고 했지만 진재희는 여전히 그의 목에 단검을 겨눈 채, 살의에 찬 눈동자를 하곤 말했다.

“아가리 닫고 조용히 따라와. 그리고 한 가지만 명심해. 나에 대한 모욕은 넘어가겠지만, 저 사람에 대한 모욕은 절대 못 참아. 네놈을 거기서 꺼낸 것도, 자비를 베푼 것도, 생명을 쥐여 준 것도, 모두 강시온이라는 걸 잊지 마. 허튼 수작 부리는 순간, 죽일 거야. 망설임 없이 죽일 거야. 시온이 널 인정한 거지, 결코 내가 널 신뢰하는 것이 아니니까. 알아들었어?”

“……하하. 네, 네. 알겠슴다.”

최명준이 꼬리를 내리자, 진재희는 다시 단검을 거두곤 앞서 걸었다.

최명준은 여전히 두 손을 올린 채,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강시온이 말했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여자였던 모양이다.

“퉤-. 오줌 찌리겠네. 찌리겄어.”

최명준은 바닥에 침을 내뱉곤 그들을 뒤따라갔다.

* * *

1F. 로비 층.

점호를 마친 노동자들이 어제 있었던 장소에 모여 있었다.

시온이 그들에게 다가가자, 어제 밤을 새며 인력 조사를 했던 김수경이 다가왔다.

김수경의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이 선명했다.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씻지도 못해 컨디션이 최악이었지만, 김수경은 강시온의 명령을 밤새 수행했던 것이다.

“어제 추가로 들어온 56명과 무단 이탈자 12명을 제외한 총원 856명…… 총조사 결과 노동력으로 사용 가능한 인원은 410명 남짓입니다. 아, 그리고 이건 어제 부탁하신 소주 한 병입니다.”

김수경은 지쳤는지, 낮은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시온은 김수경이 건네는 소주병을 받아들곤 조사 내용에 대해 물었다.

“나머지 446명은 상태가 어떤데요?”

“뭐, 정신적 문제라든가, 동상이 대부분입니다.”

시온은 아직 사용할 수 없는 노동력은 추위가 해결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김수경은 눈을 힐끗거리며 시온의 등 뒤에 있는 두 명에 대해 살피고 있었다.

한 명은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였다.

꼬질꼬질한 티도 하나 없었고, 이곳 안에서도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 한 명은 아까부터 담배만 벅벅 피워 대는 거구의 남자.

그는 이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지, 계속해서 유리문 바깥의 눈 덮인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가서 쉬세요. 나머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시온은 명단을 살피다가 김수경에게 말했다.

김수경은 그제야 마음 한 켠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였다.

김수경은 지긋지긋한 경찰모를 벗어 내리며 천천히 숙소로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시온이 다시 붙잡았다.

“아, 잠깐만요. 추가로 오늘 작업에 들어가지 않은 인원과 작업에 들어가는 인원을 나누어 표를 하나 더 만들어 주시겠어요?”

완전한 평등은 없다.

오늘 작업에 나가는 인원들은 그에 맞는 수당이 있어야 했다.

시온의 말을 들은 김수경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네……?”

“부탁합니다.”

시온은 그 말을 하고선, 노동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김수경은 그 자리에 무뚝뚝하게 서서 시온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점호 단상 아래로 노동자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시온은 단상 위로 올라섰다.

그의 왼손에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 오른손에는 미개봉 소주가 들려 있었다.

그의 시선 밑으로 4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었고, 모두가 시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과거, 그 어떠한 경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온의 이야기를 들어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시온의 말에만 따르고,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그건 하나의 권력이었고, 또 책임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모두의 앞에 선 자리였음에도, 시온은 조금도 떨지 않았다.

진재희는 단상에 오른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전생의 군주 강시온을 떠올렸다.

찰랑-.

시온은 소주를 한 번 흔들었다.

소주가 찰랑거리며 좌우로 흔들렸다.

툭.

시온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소주병을 올려 두곤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건 시온이 그들로 하여금 최대의 노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 자극제였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잘 볼 수 있게 플라스틱 의자 위에 소주를 올려놓았다.

시온의 목소리가 울렸다.

“소주의 어는 점은 영하 17도입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입술 사이로는 입김이 하염없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의자 위에 놓인 소주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모두의 이목이 소주병 하나에 집중되었다.

“일반 가정집 냉장고의 냉동실이 영하 18도 정도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온은 한 발자국 더 나와 단상 끝에 섰다.

“그러므로 소주가 얼기 시작하면, 이곳에 있는 여러분 모두가 죽을 겁니다. 당신도, 저도, 위층에 생존자들도, 경찰도, 아이도, 노인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전부가 얼어 죽을 겁니다. 다른 건 전부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의 행동, 생각, 감각, 지식, 노동을 모두 이곳에 집중시키세요. 여러분들은 저와 기술자들의 말만 따라야 합니다. 여기서 다 죽을 순 없습니다. 우린 반드시 이곳에서 살아남을 겁니다. 소주가 얼기 전에, 우리 해 봅시다.”

시작하자는 시온의 한 마디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우르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작업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자-! 연통 채집! 어제 얘기 나눈 사람들 일로 모이세요!”

“기술자, 그리고 공구 담당관!”

“식수는 여기로 오십시오!”

“어제 얘기 나눈 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얘기 나눈 대로! 아줌마! 아줌마는 어제 담당이 뭐였죠?”

“그러니까 잘 들으세요. 자기가 손재주가 좋다. 아님 뭐, 다리미질을 잘한다. 다 좋습니다.”

30명 남짓의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새벽잠을 설치며 계획했던 대로였다.

시온은 한동안 단상 위에서 그들을 지켜보다 내려왔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지옥 같은 경찰서의 변화는.

* * *

노동자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 노동자로 분류된 사람들은 근처에 자리한 빌라촌에서부터 연통을 채집했다.

다행히 빌라촌에는 식품만 없을 뿐이지, 다른 노동 가치가 있는 물품들은 남아 있던 상태였다.

그곳은 경찰서 바로 앞에 위치한 빌라촌으로, 거리도 멀지 않았다.

한 빌라에서 나올 연통이 도대체 얼마큼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움직였다.

보일러 책임자로 임명된 이종철은 노동자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대부분이 벽걸이나, 아님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는 연통일 겁니다. 만안 일대의 빌라들이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건물이라 다행입니다. 하지만 내부에 있는 장판을 다 뜯어내기엔 인력도 시간도 부족하니까 밖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만 채집하는 겁니다. 칼로 원형을 따라 도려내되, 절대로 통로 중간에 구멍이 나 있으면 안 됩니다.”

노동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렬로 빌라로 향했다.

그들은 경찰서 정문에 위치한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이곳에 오고서 처음으로 넘는 바리케이드였다.

채집조는 네 명씩 조를 나눠, 빌라에 들어가 연통이란 연통은 모조리 채집했다.

추가로 연통을 연결하기 위한, 산업용 목공 본드와 일반적인 작업에 필요한 공구들도 빠짐없이 챙겼다.

그들은 광부였다.

빌라라는 거대한 보석 동굴에 들어가는 광부.

광부들의 행렬은 오고 가며 번잡하게 이루었지만, 누구 하나 쉬는 사람은 없었다.

보일러 담당관이 그들을 지휘하며 필요한 용품들을 공수하고 있었다.

하루가 빠르게 지났다.

노동자들은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

이종철과 핵심 전문가들은 경찰서 내부를 돌아다니며 대략적인 생산 설비를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건, 연통과 온수를 담을 가열 통 작업이었다.

강시온과 이종철은 작업 내내 붙어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걷는 현장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었다.

보일러 전문가와 관리자의 생각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더 높은 차원의 정답을 이끌어 냈다.

강시온은 계속해서 효율, 효력에 대해 생각하며 의견을 제시했고, 이종철은 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단 삼 일이 되었을 뿐이었다.

강시온이 실권을 잡은 지, 삼 일 만에 경찰서 내부에선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채집한 연통을 실어 나르고, 곳곳에는 기술자들이 배치되어 상세한 작업에 대한 방향을 잡았다.

연통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선 대공사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기에, 외부로 연결시켰다.

계단에서 시작해 복도에 그대로 둔 채로 연통들을 연결시켰다.

3층에 거주하고 있던 시민들은 차례로 2층으로 내려가 생활했고, 3층에서는 수많은 작업자들이 들어와 공사를 진행했다.

경찰서는 활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강시온의 계획대로 진행 중이었다.

이제까지 회의실에서 처박혀 있던 길인호 시 의원도 가끔 복도에 나와 상황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 경찰서장이 따라 나와 말했다.

“오. 뭔가를 하려나 봅니다? 굉장하네요. 하루 이틀 사이에 이런.”

“…….”

길인호는 담배를 태우며 복도 중앙에 길게 나열된 연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두고 보죠. 꼬맹이가 얼마나 잘할지, 말입니다.”

작업은 순조로웠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성공 여부는 바로 알 수 없었다.

경찰서 내부의 거의 모든 인원이 시온에 의해 움직이고, 그의 계획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라운드가 시작된 지는 한 달이었다.

그간 자리를 지켜오던, 단상의 플라스틱 의자 위에 있던, 소주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의 눈앞에 또다시 새로운 알림 창이 나타났다.

그 알림 창은 다시 모두를 절망에 빠뜨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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