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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39화 (39/221)

#제39화. 아티팩트

오랜 피로 속의 숙면이었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땐 추위보단 개운한 느낌이 먼저였다.

하지만 개운한 느낌도 잠시 후 추위가 엄습해 왔다.

난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상의를 몇 겹이나 껴입어서 몸을 쉽게 움직이기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희미한 시야로 보이는 건, 검을 쥐고 있는 진재희였다.

눈뜨자마자 보인 것이 그 장면이라 처음에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그것이 훈련의 준비라는 것을 깨닫곤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놀랐잖아.”

“이젠 정말 해야겠어. 13시간이나 잤어.”

“13시간이라고? 점호는.”

“오늘부터 우리 둘은 열외. 다행이지. 귀찮은 게 하나 빠졌으니까.”

난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가볍게 목을 돌렸다.

목을 돌릴 때마다 뿌득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진재희는 내게 생수병을 건넸다.

난 그녀에게서 생수병을 받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곤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난 어제 개방되었을 아티팩트를 확인했다.

인벤토리.

일반적인 세계의 물품은 넣을 수 없지만, 리그에서 규정된 아이템만 넣을 수 있는 곳.

그곳의 첫 번째 칸에 아티팩트가 있었다.

아직 개봉되기 이전의 아티팩트.

난 태연하게 그 아티팩트 박스 창을 눌러 개봉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재희가 조금 놀라선 말했다.

“바로 개봉하네. 원래는 이런 거 열 때, 조금 뜸 들이지 않아?”

“뜸 들여 봤자, 좋은 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파아앗-! 두구두구두구.

작은 사각형의 상자가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좌우로 흔들리다가 이내 눈앞에서 터졌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장난하나.’

분초 단위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이 세계에서, 관리자들이 설정한 인터페이스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상자 안에는 빛의 구가 있었다.

그것을 손으로 움켜쥐자, 자연스레 빛은 사라졌다.

[아티팩트를 개방합니다.]

[플레이어의 아티팩트는 ‘구’입니다.]

-아티팩트 세부 항목

-명칭: 구

-활성 스킬: 이동

-등급: F

단순한 형태의 상태 창.

그것을 바라보던 진재희가 내게 말했다.

“아티팩트를 눈앞에 구현하려면, 입으로 ‘개방’이라고 말하면 돼. 그게 시스템 기본 설정이야.”

“개방.”

난 곧장 그녀를 따라 말했다.

그러자 빛이 사라지면서 내 손바닥 위로 작은 구체가 떠올랐다.

빛이 터져 나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투명하거나 화려한 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짙은 회색의 쇠구슬 같은 구의 형태였다.

“구슬?”

난 이것이 무엇인지 묻기 위해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진재희는 조금 놀란 표정을 누그러뜨리더니 답했다.

“역시 구가 나왔네. 나쁘지 않은 능력이야. 압도적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무슨 능력인데?”

“에너지 볼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네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클론. 변형된 스킬에 대해선 나도 자세히는 몰라. 전생의 넌 너의 능력에 대해선 철저하게 숨겼거든.”

난 그녀의 말을 들으며 손바닥 위에 떠 오른 짙은 회색의 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맞은편 침대에 앉아 천천히 설명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마 성장형이기 때문에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동하는 것밖에 없을 거야. 아마 지금은 이동시키는 것도 벅찰 수…….”

난 구의 이동을 상상하며, 손가락으로 날려 보내는 지시를 내렸다.

휘릭-, 휙.

곧 구가 일직선으로 뻗어 왼쪽 공간으로 붕 떠올랐다.

“구의 형태는 변할 수 없는 건가?”

난 허공에 붕 떠오른 구를 바라보다,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입도 조금 벌려져 있었다.

난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곤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진재희는 조금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해. 아니, 솔직히 놀랐어.”

“뭐가.”

“오늘 이걸 처음 본 거 아냐?”

“그런데.”

휘릭- 휙.

또다시 구를 진재희와 나 사이 공간으로 돌려놓았다.

진재희는 그 구를 바라보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넌 강시온이니까. 강시온이니까. 강시온…… 아니, 그러니까 이러면.”

“얼버무리지 말고 똑 부러지게 설명해 줘.”

“어, 응. 미안.”

이내 마음을 정리한 진재희는 숨을 한 번 내뱉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티팩트를 다루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야. 나조차도 처음 아티팩트가 나오고선 일 년 동안은 제대로 사용할 줄도 몰랐으니까.”

“난 왜 이게 가능한데?”

휘릭, 휘릭-.

이젠 구를 빙글빙글 허공에 돌려 댔다.

진재희의 눈동자가 구를 따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처, 천부적인 재능인 거지. 사실 너의 능력은 초반 능력이 아니라, 후반 능력에 가까워. 성장형은 모두 그래. 성장에 따라 아티팩트의 등급은 차츰 올라가게 될 테니까…… 근데 안 어지러워? 지금?”

“응, 멀쩡해. 근데 아티팩트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능력이야?”

“아니. K가 말했다시피 특별한 플레이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야. 일단 아티팩트가 주어졌다는 건 시스템이 널 선택했다는 거지.”

난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빙글빙글 돌아가던 구도 허공에 멈춰 섰다.

그제야 진재희의 눈동자가 멈췄다.

난 구를 다시 거둬들여 손으로 쥐었다.

겉면은 맨들맨들 했다.

정말 그냥 쇠구슬 같았다.

이 쇠구슬을 내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으니, 마치 내가 초능력자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아티팩트 훈련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내 질문에 단숨에 대답해야 할 진재희가 우물쭈물거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대답을 기다리다, 답답한 마음에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난 검지손가락 위에 구를 올리곤, 농구공처럼 휘릭휘릭 돌려 대며 물었다.

“왜 그래?”

그리고 문득 구의 파괴력이 궁금해 왼쪽 벽을 향해 구를 날렸다.

휘릭- 푹.

구는 벽면에 닿아선 진동했다.

벽에 금이 가거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파괴력은 거의 없다, 인가.’

슉-.

난 다시 그 구를 진재희 머리를 향해 날렸다.

솔직히 그녀가 피할 줄 알았다.

그녀는 언제나 내 공격을 사전에 감지하고 피했으니까.

그저께 연습할 때도, 어제 연습할 때도 그녀는 내게 언제라도 기습해도 좋으니 유효타를 날려 보라고 했으니.

하지만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툭.

구는 그녀의 볼에 닿았고, 짓눌린 그녀의 볼살이 살짝 밀려 나왔다.

역시나 파괴력은 없어 보였다.

“이미 한…… 것…… 같은…… 데.”

“뭐?”

진재희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난 다시 물었다.

“훈련 내용이 뭐냐니까?”

“이미…… 다 했다고…….”

그녀는 볼에 닿은 구를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

난 그 구를 다시 내 손으로 되돌려, 손가락 위에 올렸다.

구는 다시 손가락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인데?”

“이미 넌 남들의 1년치 훈련량을 다 터득했다고. 그러니까…… 이제 성장 퀘스트나 다른 제작 스킬만 배우면 될 것 같아. 응. 아님 히든 던전 내의 보상을 획득하든가.”

난 우물쭈물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손가락 위에서 돌아가는 구를 바라보았다.

남들의 1년치 훈련량을.

난 아티팩트 개방한 지 1분 만에 마스터한 셈이었다.

* * *

‘말도 안 돼.’

진재희는 시온의 손가락 위에서 농구공처럼 돌아가는 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관리자가 선택한 플레이어라 그런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성장이 너무 빨라. 아니. 애초에 성장이라고 할 수 있나. 처음부터 완성형인데.’

S급 아티팩트를 선택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이 정도로 성장이 빠른 경우는 없었다.

당장 진재희는 S급 아티팩트를 지녔다.

S급, 검성.

검성은 이제 그녀가 거추장스럽게 진검을 차고 다니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능력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때, 어느 곳에서든 내재된 시스템 안의 검을 꺼내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재희조차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아티팩트를 구현해 낼 순 없었다.

아티팩트를 구현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정의는 없다.

세상이 멸망하고 그 현상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없으니, 관련 논문이나 기사 따위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아티팩트의 능력 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상상력.

아티팩트를 무기로써 사용할 수 있는 상상력이었다.

이 상상력은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야 하는 능력이었다.

만약, 진재희가 구현해 내려고 하는 검이 실제의 검과 오차가 발생한다면 능력은 발생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지력.

플레이어들은 이를 지력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력은 정신력과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지력은 상상, 생각과 더불어 인간의 두뇌가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이다.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다 한계에 다다른 순간, 정신을 잃게 된다.

해당 스킬의 회복력, 파괴력을 얼만큼 유지할 수 있느냐가 바로 지력의 역할이다.

이 또한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수도 없이 많은 연습을 통한 감각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당장 회귀자인 진재희가 스킬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회귀할 때 모든 능력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아티팩트 훈련법은 알았지만, 처음부터 완성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리그 내에서 이토록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자는 시온이 유일할 것이다.

그는 특별한 존재였다.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가.’

그런데 강시온은 위의 두 가지 능력을 단번에 마스터한 것이었다.

오히려 진재희 자신이 그의 아티팩트 능력을 배워야 할 판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특수 퀘스트나 특정 몬스터에게 드랍되는 ‘구’의 레벨 업을 위한 마석을 모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당장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건 모두 리그의 초반을 지나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

물론, 히든 던전을 발견한다면 모르는 일이겠지만.

“그래?”

재희의 말을 들은 시온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가 생각하기를 멈추자, 구체화 되었던 아티팩트 역시 사라졌다.

시온은 재희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 능력은 뭔데?”

진재희는 시온의 능력에 대해 생각하다,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시온은 다시 물었다.

“진재희.”

“어? 응. 내 능력 말이지.”

진재희는 침을 한 번 꼴딱 삼키곤 손을 뻗었다.

검성.

그 첫 번째 과제는 검의 구현화였다.

스스스……

그녀의 손에 밝은 빛줄기가 쥐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온의 동공도 조금 흔들렸다.

굉장한 섬광과 형태였다.

빛은 곧 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으윽……!”

순간 진재희는 정신을 놓칠 뻔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오늘부터 훈련을 하기로 그와 약속했는데, 여기서 자신이 아티팩트를 구현조차 못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빛이 더 강하게 일렁였다.

시온은 진재희의 손에 주목했다.

검날, 콧등, 손잡이까지 차례로 구현되고 빛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검을 구체화시키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부족했다.

“푸하……!”

진재희는 오랫동안 잠수를 하다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방의 온도는 냉장고 안에 있는 것처럼 추웠는데도 말이다.

“하아…… 하아…… 하아…….”

진재희는 좀처럼 숨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 정도까지 힘을 방출했던 것은 전생에도 별로 없었다.

지금 이렇게 무리했던 건, 시온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아…… 결국.’

하지만 실패했다.

진재희도 아티팩트를 개방한 지 한 시간이 안 되었다.

그녀도 이 정도의 구체화 능력이라면 충분히 아니, 굉장히 훌륭한 수준이었다.

물론 강시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미안.”

“뭐가?”

“아니. 그냥.”

진재희도 자신이 왜 그에게 사과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시온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는 그 생각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던 것이다.

시온은 태연하게 재희에게 말했다.

“미안할 거 없어. 훈련할 것이 없다면 내겐 오히려 더 좋은 거니까.”

그 말에 진재희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시온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집어서 손등도 바라보았다.

“솔직히 아티팩트 훈련에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순 없었어. 난 오늘부터 이 세력의 관리자야. 즉, 바빠진다는 소리지.”

“아, 응.”

진재희는 강시온 앞에선 한 마리의 순한 양이었다.

그는 생긴 것은 정말 앳되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여타 다른 군주들과 비교해도 위엄 있고, 낮고, 지조 있었다.

“군주의 칙령은 시민들에게 전해졌을 테니, 나에 대한 정보는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 내가 해야 할 건 경찰서 내부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거야. 가능하면 그들의 신임을 얻고 지지율을 높이고. 퀘스트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

시온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고 있던 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경찰서 내부를 살펴볼 거야. 지하도 가 보려고. 이젠 내게 권한이 있으니까.”

“난.”

진재희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시온이 문고리를 쥔 채,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강아지마냥 나만 쫓아다니지 말고. 네가 회귀자고, 네가 날 지키고자 하는 건 알지만, 적어도 이런 곳에선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아티팩트 훈련이 좋겠네.”

“아, 그게.”

끼익-

진재희는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쿵-!

하지만 시온이 먼저 방을 나가 버린 뒤였다.

그녀의 외로이 남은 손이 허공에 멈췄다.

홀로 방에 남은 진재희는 뻗은 손을 거둬, 아까 짓눌린 볼살을 손으로 문대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아려오긴 했다.

어느 정도 그의 능력에 대한 성장성도 알 수 있었다.

진재희는 마치 달걀 마사지하듯, 볼살을 계속 문대고 있다 읊조렸다.

“개방.”

파앗-!

오른손에 빛이 일렁였다.

아직까지도 희미한 빛의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지 완벽하진 않았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아직 자신의 아티팩트도 완벽하게 개방하지 못하는 와중에, 어떻게 그를 지킨다고 할 수 있겠나.

‘……나부터 성장해야 해.’

진재희는 방에 남아 아티팩트 훈련을 시작했다.

빠르게 성장해야 강시온을 지킬 수 있을 테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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