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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38화 (38/221)

#제38화. 칙령 (3)

“우리 솔직해집시다. 당신들은 그냥 꼭두각시가 필요한 거잖아요?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꼭두각시. 내가 그 꼭두각시가 되겠습니다.”

시온이 말하자, 회의실은 침묵했다.

그리곤 길인호의 다음 말을 차분히 기다렸다.

‘미끼는 던졌어.’

이제 그가 물어 주기만을 기다렸다.

거만하게 의자를 뒤로 젖힌 길인호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시온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은 이어졌다.

그때, 길인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푸흐흐흐.”

곧 회의실 가득 그의 호탕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푸하하하하하! 아, 제가 졌습니다. 시온 씨.”

길인호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선 고개를 저어 댔다.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연신 웃어 대더니, 곧 이청춘 경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경사님의 말이 맞네요. 강시온 씨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엔 웬 중학생이 걸어오길래…… 아니.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이게 뭐람. 복덩이네요. 복.”

“하하하,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의원님.”

그제야 경찰서장도 그를 따라 웃으며 분위기를 맞췄다.

길인호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인스턴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정찰 팀이 편의점에서 공수한 커피였다.

그뿐 아니라, 책상에는 과자들과 젤리, 음식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풍족한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솔직히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어도 시온 씨를 제가 거둬들이고 싶군요. 요즘 젊은이 중에 당신만 한 사람은 없으니까. 훌륭합니다. 아, 제대로 한 방 먹었습니다. 정말. 당신 말대로 제 말 한마디면 당신을 살인마 아님, 위인으로 만들 수도 있죠. 그래요! 까짓것 우리 솔직해져 봅시다! 전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제가 직접 행하면 안 될 일도 있죠.”

의원 곁에 앉아 있던 경찰서장이 눈치를 보며 살살 그를 따라 웃어 댔다.

시온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길인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시온 씨라면 다를 거예요. 당신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제가 당신을 이곳의 영웅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 일이죠. 언론? 기자? 제 말 한마디면 그저 받아 적기 바쁘죠. 신문 1면에 난세의 영웅! 시민의 영웅! 강시온!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제가 당신을 정치적으로 키울 수도 있고요! 이렇게 세간에 퍼트리는 것도 일도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고요.”

길인호 의원은 반대를 말할 때, 약간 힘을 주어 강조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시온 씨. 전 지금 당신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 당신 같은 사람을 너무 좋아합니다. 포부, 자신감, 확신…… 무엇보다 기백. 무례하게 군 건, 사과드리죠. 미안합니다. 제가 당신을 아주 잘못 보고 있었네요. 워낙에 이 상황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죠. 이 정치질을 오래 하다 보면,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만 해도 그 사람의 그릇을 알 수 있어요. 당신의 그릇은 거대합니다. 제가 당신을 영웅으로 만들 겁니다.”

그 말을 한 뒤로 시온은 남몰래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무래도 설득이 먹힌 모양이었다.

길인호는 손가락을 깍지 끼고선 인중에 대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차분해졌다.

“당신을 관리자로 임명하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길인호는 곧바로 조건에 대해 말했다.

“추위를 해결해 보십시오.”

“…….”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추위를 해결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더 이상 추위 문제를 방치할 순 없었다.

두 개의 화이트보드 중, 한 곳에 추위 문제에 대한 회의 내용이 가득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해 보죠.”

시온은 대답했고, 길인호는 다시 강조했다.

“해 보죠, 가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길인호는 무겁게 분위기를 잡았다.

하지만 이젠 강시온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큰 효과를 얻어 내려면 그에 맞는 합당한 권한이 있어야 했다.

“어떤 권한을 주시느냐에 따라 다르죠.”

“푸흐흐! 역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네요. 물론이죠. 시온 씨. 서장님.”

“예. 의원님.”

“첫 번째 칙령을 내리시죠.”

“아, 예! 알겠습니다.”

서장은 의원의 말에 허공을 손가락으로 휘적거렸다.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군주’의 창이었다.

시온은 진재희에게 들은 내용을 떠올렸다.

칙령.

군주 전용 퀘스트를 수행하고 얻은 보상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군주만의 특권.

어째서인지, 시온은 군주 이전 단계에서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원래는 군주만이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1라운드는 군주 임시 상태 창 항목만 확인할 수 있었고, 2라운드부터 본격적으로 추가된 시스템이다.

결과적으론 눈앞의 서장을 없애고, 언젠가 자신이 차지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저 시스템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렇게 타인을 설득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력을 운영할 수 있다.

시온은 저 시스템을 원했다.

길인호가 시온에게 말했다.

“원래는 그 어떠한 칙령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테러범과의 교섭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어요. 무슨 일이든 해야 하니까요. 당신이 말하는 권한. 바로 이 칙령이죠?”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제까지 책임을 질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만난 시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결국 책임 떠넘기기였지만, 오히려 그것은 시온에게 득이 되었다.

“경찰관과 이곳에 있는 분들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에 대해서 현 시간부로 시온 씨에게 통제권을 부여합니다.”

“칙령. 제1조 1항 선포.”

그 순간, 허공에 알림 창이 떠올랐다.

군주에 의한 선포.

그것은 시스템이 규정한 군주의 첫 번째 권력이었다.

절대 권력.

시스템이 규정하는 힘을 이용해, 군주들은 자신의 세력을 제어할 수 있다.

[만안 제1세력, 군주 박건우]

[칙령 선포]

[선포자: 박건우]

[1조 1항: 세력에 포함된 인원 중 경찰 신분과 귀빈으로 규정된 사람을 제외한 모든 관리 권한을 ‘강시온’에게 위임한다.]

칙령에 대한 선포 사항은 군주를 제외하고도 세력 구성원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그 선포 알림 창을 바라보던 길인호는 경찰서장에게 말했다.

“예외 사항을 하나 넣죠.”

“예, 말씀하시죠.”

“서장님과 제가 원할 시엔 언제든지 그 직위를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는 길인호의 묘수였다.

강시온에게 주는 권력은 단지 빌려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위치보다 위일 수는 없었다.

길인호는 이 조항으로 강시온에 대한 최소한의 보험을 걸어 두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길인호의 제안을 받아들인 서장은 추가 사항을 기재했다.

[1조 1항: 세력에 포함된 인원 중 경찰 신분과 귀빈으로 규정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시민에 대한 관리 권한을 ‘강시온’에게 위임한다. 단, 군주 박건우와 시민 길인호가 원할 시 해당 직위를 해제할 수 있다.]

[위반 시, 처벌 수위를 설정해 주십시오.]

“처벌 수위?”

“유치장 감금으로 하죠.”

“그럽시다.”

[위반 사항을 입력했습니다.]

[기재된 칙령을 선포하시겠습니까?]

“선포한다.”

경찰서장이 말한 순간.

파앗-!

회의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몸에 황금색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경찰서장이 선포한 대로 이곳에 포함된 내부 구성인들의 인터페이스에 저장된 것이었다.

시온은 일렁이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신은 해당 칙령에 귀속된 사람이었다.

대단한 힘이었다.

분명 인간인데도,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해당 칙령이 내부에 저장된다.

그리고 그 힘은 오로지 군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단지 말 한마디로 수백 명의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힘.

그야말로 신의 힘이었다.

길인호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제 시온 씨는 매일 오후 6시에 일과에 대한 보고를 위해 이곳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위한 개별 방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개별 방요?”

“예. 힘을 가진 자는 마땅한 위치에 있어야 하죠. 사무실을 하나 내어 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아래의 좁은 곳보단 훨씬 넓고 쾌적할 것입니다. 아, 그리고 이제 화장실이나 식량 같은 경우에는 저희 담당관에게 말씀해 주시면 횟수 제한 없이 사용 가능합니다.”

특권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부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도 빈부는 있었던 것이다.

시온이 이 혜택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확실한 휴식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

강시온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시온 씨.”

“예.”

“절 실망시키지 마세요. 기대가 큽니다.”

길인호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시온은 그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자신 역시 기대하고 있다고.

어차피 길인호 시 의원, 박건우 경찰서장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손으로 죽여, 이 세력을 거머쥘 테니까.

* * *

난 회의실을 나와 이청춘을 따라 걸었다.

그는 날 5층 한 편에 마련되어 있던 당직 경찰관들을 위한 당직실로 안내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침대가 하나,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몇 개의 종이 박스가 구석에 쌓아 올려져 있었고, 창문은 없었다.

“침대를 하나 더 가져오도록 할게요. 진재희 씨도 오셔야죠?”

“예.”

두 명이 지내기에는 확실히 넓은 방이었다.

아래층에서 사람들과 비집고 지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찰 한 번으로 세력 내에서 받는 대우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다.

“추위는 어쩔 수 없습니다만, 두꺼운 이불을 몇 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이청춘은 구석에 있는 종이 박스를 들어 밖으로 빼내며 말했다.

난 그런 그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감사합니다. 절 추천해 주셔서.”

“예. 뭐.”

이청춘은 종이 박스를 모두 내놓은 채, 문턱에 기대었다.

그는 한숨을 조금 내뱉더니 내게 말했다.

“그만큼 시온 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목숨도 구해 주셨는데,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죠. 또 부탁하실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난 다시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고, 이청춘은 웃어 보이더니 이내 문을 닫으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 난 천천히 걸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단은 성공인가.’

이청춘 경사의 신임을 얻어, 수뇌부에 근접하겠다는 계획은 생각보다 쉽게 달성했다.

어찌 되었건, 악어 거북이 우리들의 목숨을 앗아 갈 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놈 덕분에 이청춘 경사의 신임도 얻게 되었다.

이젠 다음 수를 생각해야 했다.

수뇌부의 신임을 얻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길인호가 내게 명령한 ‘추위’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추위라.’

고개를 뒤로 누어 침대에 몸을 담았다.

푹신했다.

눈을 감으니 당장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계가 멸망해 버리기 전, 난 침대라는 것에 누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와 동생은 언제나 땅바닥.

이불을 몇 겹이나 바닥에 깔곤 베개를 베고 잤다.

동생과 난, 어릴 적부터 변변찮은 개인 공간이 없었다.

사실 부모님이 있을 때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가난했기 때문에 학업을 기대하긴 어려웠고 외식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난 항상 동생과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철없던 시절에는 혼자 잘 수 있는, 편안한 침대를 하나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가 멸망해 버리고서야 난 내 침대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더럽게도 푹신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산더미 같은데, 피곤함에 잠이 먼저 쏟아졌다.

당장 어젯밤부터 악어 거북과 전투를 벌이고 아직까지 잠을 자지 못했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던 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왜인지 내 삶이 더욱 윤택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거다.

평소라면 말도 붙이지 못할 사회의 기성세대들과 담판을 벌이거나, 타인의 마음을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든다거나.

하루 4시간 자는 것도 아쉬워하며 일했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당장의 이부자리도 원래 있던 세계보다 좋았다.

지금의 삶에서 유일하게 부족했던 부분은 내 곁에 동생이 없다는 것뿐.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우선 세력권 수뇌부들의 신임을 얻는다.

길인호는 내게 기대가 크다고 했지만, 나 역시 내가 받게 될 권력에 대해 기대가 컸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내게 넘겨주게 될 것이다.

난 우선적으로 내부 세력 안에서의 지지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시민들을 위해, 모든 걸 바꿀 것이다.

내부 시스템, 활동 방식, 음식, 화장실, 난방 시스템까지.

어차피 길인호와 서장은 자신들의 안전에만 신경 쓰기 급급하지, 외부 상황을 모를 것이다.

“추위라.”

그것의 해결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몇 번의 움직임을 느꼈다.

침대를 놓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몇 명이 나가더니 다시 한 명이 들어왔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티팩트 개방까지 앞으로 2시간 정도야.”

“…….”

진재희였다.

눈을 살짝 떠, 반대편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침대 끝에 다소곳이 앉아 다리를 모으고 있었다.

그녀는 발끝을 살랑이며 흔들고 있었다.

난 다시 눈을 감으며 물었다.

“안 잤어?”

“응. 개방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

그 뒤로 말을 이어 나가진 않았다.

난 조금 침묵을 지켰다.

무언가 문대는 소리.

그리고 거친 숨소리.

궁금함을 자극하는 소리들이었다.

난 다시 눈을 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재희는 바지 끝을 올려 붕대를 풀고 있었다.

스윽-, 슥.

종아리에 길게 베인 상처가 있었다.

아직 피가 완전히 멎지 않았는지, 붕대에는 피가 가득했다.

진재희는 붕대를 교체하고 있었다.

네펜데스로부터 날 지키다가 생긴 상처였다.

진재희는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조심스레 바지 끝을 살짝 끌어 내렸다.

그리곤 말했다.

“칙령 확인했어. 잘 되었네.”

“응.”

“이걸로 남은 퀘스트는 잘 수행할 수 있겠어.”

난 침대에서 일어나 끝에 걸터앉았다.

진재희는 피 묻은 붕대를 돌돌 말아 다시 가방 안에 넣으며 말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하자. 네 능력이 내 전생과 같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훈련에 대해서는 내가 준비할게. 이렇게 방도 얻었으니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을…….”

“그보다. 다리는 괜찮아?”

난 상처에 대해 물었고, 그러자 진재희는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조금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진재희는 조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가 미소를 지은 이유를 몰라 물었다.

“왜 웃어?”

“아냐. 그냥.”

지익-.

진재희는 가방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넌 누구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말에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다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이상해?”

“아냐. 그냥. 그냥. 아냐.”

진재희는 필요 이상으로 당황해선 말을 얼버무렸다.

그녀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개방까지는 두 시간이지?”

“응. 맞아.”

“그래. 난 잠 좀 자야겠어.”

“내가 시간 되면 깨워 줄게.”

“너도 자.”

난 옆으로 누웠다.

그리고 이청춘이 가져다준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포근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진재희는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아냐. 그럴 순 없어. 누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넌 빠르게 성장해야만 하고. 동생도 찾아야 하잖아. 개방된 순간 깨울 수 있도록 할게.”

“진재희.”

“응.”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녀의 표정, 생각 따윈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나보다 더한 피로가 쌓여 있을 것이다.

“자 둬. 그깟 아티팩트 개방 몇 시간 늦는 거 크게 신경 안 써.”

“어……?”

“그니까 자라고. 네가 깨워도 난 안 일어날 거니까.”

이불 속에 몸을 더 집어넣곤 몸을 돌아누웠다.

진재희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나보다 더 내 주위를 신경 쓰고, 위험이 없나 사전에 감지하고, 안전하다고 판단되어도 자리를 지키니까.

육체적인 피로에 정신적인 피로까지 겹쳐 있을 것이다.

지금 그 두 시간 더 빨리 훈련했냐, 안 했냐 때문에 동생을 찾냐 안 찾냐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쉬어야만 했다.

잠이 쏟아져, 정신이 몽롱해졌다.

당장이라도 자야 했지만, 정신을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 위함이었다.

완전히 잠이 들기 전, 그녀의 낮고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어. 고마워.”

그녀의 대답을 듣고서야, 난 정신을 놓고 꿀 같은 잠을 청했다.

* * *

모두가 잠든 새벽.

진재희는 여전히 잠잘 수 없었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시온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오므리곤 쪼그려 앉아 있었다.

시온을 바라볼 때면 언제 어디서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반드시 지켜야 해.

얼굴이 피로 가득한 남자가 죽어 가는 얼굴과.

-알잖아.

남자를 감싼 채,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과.

-그만이 우리 모두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을 사람이야.

뺨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남자의 손도.

-……원래 세계에서 만나.

그녀는 죽어 버린 남자의 몸을 품은 채, 오열했다.

지금도 사무치는 그리움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아마 지금쯤 그는 부산 일대에서 리그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적으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이곳에 있어야만 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만이 우리 모두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을 테니.

그리고 원래 세계에서 다시 만나는 거다. 같이 음악하고, 꿈을 꾸었던 그 원래 세계에서.

진재희는 자신의 품 안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남자의 체온이 아직까지도 느껴졌다.

딱 지금과 같이 차갑고 싸늘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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