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칙령 (1)
여왕의 방에는 두 개의 유리관이 있었다.
둘 중 하나는 비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한 여자가 갇혀 있었다.
여자는 두 손, 두 발이 묶여 꼼짝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야 할 때는 왼쪽에 연결되어 있는 끈을 이빨로 흔들어야 했다.
딸랑- 딸랑-.
그러면 두 명의 사람이 다가와 여자를 꺼내 주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여지없이 유리관에 갇혔다.
먹는 것도 서서 먹어야 했고, 자는 것도 서서 자야 했다.
여왕만의 컬렉션이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과 남성을 잡아 와, 유리관에 넣어 두었다.
정말 그야말로 관람용.
그리고 남자 쪽 유리관은 비어 있었다.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의자에 앉아 있던 세범이 물었다.
여왕은 호화스러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왕은 오로지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맡에는 과자와 음료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세범은 밧줄에 묶인 자신의 두 손을 힘을 줘, 풀어내려고 했지만, 밧줄은 끄떡하지 않았다.
여왕은 케이지를 응시 중이었다.
케이지 안에는 여왕이 세계가 멸망해 버리기 전부터 키우던 햄스터가 있었다.
햄스터는 쳇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여왕은 그것을 바라보다 침대 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옛날에나 쓰던 기름 난로 속에서 고구마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호일을 조심스럽게 까니,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여왕은 그것을 세범에게 건넸다.
“먹을래?”
그제야 세범은 여왕과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앳된 얼굴이었다.
20대 초, 단발머리, 대학생.
키는 작았다.
해 봐야 160cm 정도로 보였다.
학과 내에서도 꽤 인기가 있을 정도로 외모가 출중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안양 제1세력, 동안구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지닌 군주였다.
세범은 그녀가 쥐고 있는 고구마로부터 시선을 거둬, 자신의 ‘의자’를 바라보았다.
나체의 두 남녀가 엎드려 있었고, 그것이 의자였다.
둘은 엎드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안 먹을 거야?”
다시 여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범은 다시 여왕을 바라보았다.
여느 대학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괴기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될 수도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여왕은 태연했다.
“배고플 텐데. 이곳에 와서 물만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여왕은 세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오른 어깨를 손으로 감싸곤 눌렀다.
세범 밑의 두 남녀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여왕은 뒤에서 세범을 감싼 채, 그의 왼쪽 어깨에 턱을 올렸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숨결이 세범의 귓가에 속속 박혔다.
“이러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해?”
꿈척.
여왕은 고구마를 껍질째 씹었다.
세범은 그녀의 쿰척거리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어야만 했다.
세범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에 있는 1분 1초가 고통스러웠다.
세범은 누나, 주연의 행방을 알아야 했다.
여왕은 세범의 어깨로부터 손길을 거둬 침대로 나아가, 그 끝에 앉았다.
여왕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해 보고 싶었는데?”
“뭐……?”
세범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여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리를 꼬아 앉고선 고구마를 먹었다.
침대 옆의 탁자에는 여왕을 위한 우유도 있었다.
“그냥…… 왠지 해보고 싶었어. 잔혹한 걸 보고 싶었어. 궁금하기도 했고. 세상은 따분하기 그지없잖아?”
그녀는 고구마를 놓고 우유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남들처럼 학교 가고, 친구 만나고, 노래방도 가고, 가끔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만나거나, 돈까스를 먹거나, 부모님한테 용돈도 좀 드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웹툰 좀 보다가 가끔 술도 마시고…… 반복, 반복, 반복. 햄스터 쳇바퀴처럼. 물론 난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어. ……아마도?”
여왕은 입술에 묻은 우유를 손등으로 닦아 냈다.
그러고선 옆으로 누워 자신의 손가락을 침대 위에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하나둘, 걷기 시작했다.
“햄스터는 그 좁은 케이지에 갇혀 있으니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할 거 아냐? 나도 마찬가지야. 그냥 내가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이 궁금해. 그런 일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원래 부부 사이였던 남녀가 지금은 서로 묶인 채 의자라는 도구가 된다면…… 미칠까? 아님 꿋꿋하게 버틸까?”
여왕의 말투는 나른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던 여왕은 눈동자를 돌려 세범을 바라보았다.
“지겹잖아. 매일 같은 것을 겪고, 느끼다 보면. 안 그래?”
세범은 이를 갈고 있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새빨간 핏줄기가 흘러내려 턱에 맺혔다.
뚝.
턱에 맺힌 피가 떨어져 의자였던 남자의 등에 떨어졌다.
사이코패스.
정신병자.
미친년.
그 세 가지 외에 여왕을 정의할 단어가 없었다.
세범은 그녀에게 말했다.
“넌…… 미쳤어.”
“아니. 난 안 미쳤어.”
여왕은 곧바로 반박했다.
“미친년이야. 넌. 미친 사이코 새끼라고!”
“그래? 글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그냥 솔직한 거야.”
여왕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넌 솔직하지 못한 거고.”
똑똑.
그때, 그녀의 방문이 두들겨졌다.
문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색대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여왕은 물끄러미 세범을 바라보다 이내 말했다.
“응. 들어와.”
여왕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선,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으로 몸을 감췄다.
문을 열고 들어온 수색대장 이수은은 그녀 앞에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여왕에 대한 예였다.
“응. 수은아. 짭새들은 어때?”
여왕은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민 채 물었다.
여왕과 이수은의 나이 차는 명확해 보였다.
둘이 같이 다닌다면 모녀 사이로 볼 정도였다.
이수은은 조금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이제 일번가 쪽으로 진입했습니다.”
“일번가?”
“예. 여왕님.”
“그래?”
일번가는 동안 제1세력, 그녀가 이끌고 있는 세력 역시 노리고 있는 번화가였다.
일번가만 잡는다면 그녀의 세력은 안양에선 더 이상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력 싸움은 결국 식량이 열쇠였다.
식량만 확보한다면 안양을 자신의 세력권 밑으로 넣을 수 있었다.
여왕은 이불 속에 누운 채,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다 말했다.
“그래. 그럼. 뭐.”
여왕은 생각했다.
만안 세력의 기를 한 번 꺾을 필요가 있었다.
짭새들이야.
언제나 믿을 족속들이 못 되니까.
짭새들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세력들이니까.
“남은 짭새. 모두 처형해. 그리고 그 목을 잘 포장해서 선물로 줘.”
그 말에 이수은 수색대장은 침묵했다.
하지만 여왕의 말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녀의 칙령은 절대적이기 때문이었다.
이수은은 다시 고개를 조금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예.”
그때였다.
그 말이 끝난 뒤, 세범이 앉고 있던 의자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남자가 일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세범은 자연스레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남자는 묶인 채로 여왕 앞에 바짝 다가가더니 무릎을 꿇었다.
“제발……! 제발!!!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의 아내만이라도. 제발.”
의자였던 여자는 바닥에 엎드린 채, 훌쩍이고 있었고 남자는 두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
여왕은 조금 상체를 들어 올렸다.
스르륵 흘러내리는 가운 사이로 그녀의 맨살이 드러났다.
여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에게 되물었다.
“내가 왜?”
“호, 호, 혹시……! 그때 그 일이라면…… 제가 전부…… 제가 전부 해명할 수 있습니다. 정말요!”
“필요 없어.”
“박지수 님. 박지수 님……! 아니, 여왕님! 그때 그 사건은 용의자로 지목된 그 사람들. 그 X새끼들! 전부 저희 과장님이 뒷돈 받고 감형받은 거예요. 저희는 그냥 윗선에서 시키니까 한 거고…… 그리고 저희 아내는 아무 잘못도 없고…… 아. 여왕님.”
그때 두 명의 사람이 들어와 무릎 꿇고 비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여왕이 입을 열었다.
“알아. 아내분. 죄 없는 거.”
“아…… 그…… 그럼 왜?”
덥썩!
여왕의 부하들이 경찰 부부를 질질 끌고 갔다.
여왕은 웃었다.
그 곁에서, 아니 정확히는 모텔 땅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 여왕의 표정을 적나라하게 본 세범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참. 몇 번이나 말해야 돼? 난 그런 건 다 잊었어. 응? 어차피 대한민국 경찰이 가해자만 챙기는 것도 다 알고…… 수사 처리도 엉성하다는 거…… 무죄라는 것도 다 알아.”
여왕은 한쪽 손으로 턱을 받치곤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여왕은 정말이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선 말을 이었다.
“그냥 재밌잖아. 안 그래? 세범아.”
그 순간, 세범은 처음으로 인간의 미소에서 공포를 느꼈다.
여왕은 낄낄 웃다가 뒤로 벌러덩 누웠다.
“아. 뭔가 심심한데. 칙령.”
그녀의 명령에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동안 제1세력, 군주 박지수]
[칙령]
[1조 1항: 세력에 포함된 모든 인원들은 여왕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
[1조 2항: 세력에 포함된 모든 인원들은 결코 여왕의 이름을 부르거나, 험담해서는 아니 된다.]
[1조 3항: 세력에 포함된 모든 인원들은 매주 자신의 할당량을 수집하여 군주에게 바친다.]
[추가 칙령 2조 개방을 위해서는 업적 포인트 50필요.]
여왕 박지수는 홀로그램 스크롤을 계속해서 내렸다.
업적 포인트 50.
포인트는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얻어지는 것이었다.
어서 빨리 포인트를 얻어 자신만의 법을 확립하고 싶었다.
“다음은 뭐로 해야 하나.”
칙령에 기재된 법률은 시스템에 의해 강제된다.
즉, 여왕이 보지 못해도 느끼지 못해도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선별해 칙령을 어긴 존재를 여왕에게 알린다.
군주의 시스템은 강력한 권력이었다.
그녀는 이 시스템을 가지고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박지수는 지금 행복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껏 살아온 21년의 인생보다, 당장 세계가 멸망하고 난 2주의 시간이 더 행복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였다.
마치 게임처럼.
“세범아. 언제까지 거기 자빠져 있을 거야?”
힐끔.
박지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이세범을 바라보았다.
이세범은 자빠진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를 보며 박지수는 힐끗 웃음을 보였다.
“누나 살리고 싶지 않아? 누나는 지금도 고문받고 있을 텐데…… 아프겠다. 그치?”
“이 X발…… 너…… 내가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그래, 그래. 네가 나한테 딱 맞는 최상급 남자였으면, 저기 유리관 언니처럼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근데 어떡해? 넌 그냥 상급인걸.”
유리관 안의 여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박지수는 뒤로 기대며 말을 마쳤다.
“올라와. 명령이야.”
세범은 그 자리에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그의 눈앞에 알림 창이 나타났다.
[동안 제1세력, 군주 박지수에 의한 칙령, 1조 1항]
[1조 1항: 세력에 포함된 모든 인원들은 여왕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
[60초 이내, 수행하지 않을 시 페널티 부여.]
페널티는 곧 죽음이다.
세범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여왕의 침대로 올라갔다.
* * *
동안구에 잡혀 온 총 35명의 경찰관들이 일렬로 서서 죽음을 맞이했다.
1세력의 처형자가 거대한 재난용 도끼로 경찰관들의 목을 마구잡이로 찍었다.
한 번으로는 목뼈가 잘리지 않았기에, 두세 번 찍어야 했다.
의자였던 경찰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동안 1세력의 사람들은 경찰관의 목들을 고이 포장하여 선물할 준비를 하였다.
문방구에서 알록달록한 상자와 포장지를 가져와 그 안에 목을 하나씩 담았다.
툰툰이 끌고 온 폐차에 그것들을 하나둘 실었다.
만안구에 있는 경찰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 * *
우리는 세 시간에 걸쳐 이동한 끝에 만안 경찰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가 기진맥진해 있었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경찰서를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순경이 우릴 발견하곤 튀어나왔다.
“반장님!!! 무사하셨어요?!”
“반장님!!! 아, 다행이다.”
젊은 경찰관 두 명이 후다닥 뛰어나와 이청춘에게 다가갔다.
같이 온 우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와 진재희는 눈물겨운 재회 장면을 지나쳐 건물로 향했다.
휴식이 절실했다.
그런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이청춘이 붙잡았다.
“잠깐만요. 시온 씨.”
난 가던 길을 멈추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청춘은 조금 앞으로 다가오더니 내게 제안했다.
“혹시 서장님을 보시겠습니까? 긴히 같이 얘기를 나눠야 할 사안이 있어서요. 시온 씨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
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서장을 만난다는 것.
이곳 세력권의 수장과 대면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이청춘이 날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피곤하고, 추웠고, 당장 눕고 싶었지만, 그에게 대답했다.
“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