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악어 거북의 늪 (3)
시온은 쪼그려 앉아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시온이 가방에서 꺼낸 건 통조림이었다.
꽁치 통조림.
시온은 통조림을 하나씩 꺼내어 발밑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밥…… 밥을 먹자는 거예요?”
그 옆에 있던 눈썹까지 얼어붙은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방법이야? 아……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청춘 경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 먹으면서 에너지를 보충해 버틸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건 단순히 시간 벌기에 불과하잖아요. 악어 거북은 10년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면서요……?”
이청춘은 그 말을 하곤, 진재희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진재희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청춘의 말이 맞았다.
악어 거북은 10년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
인간에게 10년이라는 세월은 긴 시간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식량을 먹으면서 겨우 버틴다고 해도.
일주일?
아니,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곳은 늪이다.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더욱 절망하게 되는.
‘……어쩔 셈이야.’
진재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시온을 바라보았다.
시온은 여전히 통조림을 하나씩 꺼내어 탑처럼 쌓고 있었다.
도무지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진재희는 그가 행동했다는 것에 상당히 안도했다.
그는 결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누가 먹는데?”
휘릭-.
그 순간, 허공에서 날아오는 통조림.
진재희는 그것을 겨우 받아 내었다.
시온은 통조림을 하나씩 쥐어, 남은 생존자들에게 던졌다.
생존자들은 각자 겨우 그것을 받아들곤, 시온을 돌아보았다.
시온은 조금 가쁜 숨을 쉬고 있었고, 꽁치 통조림을 쥔 채 어깨를 돌리고 있었다.
몸을 푸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어리벙벙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신호를 주면 뛰어. 망설이면 바로 죽을 거야.”
“……아.”
“네……?”
모두가 시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중, 오로지 진재희만이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시온이 몸을 틀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드리운 창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온은 잠시 그 창문을 응시하다가, 통조림을 단단히 쥐고는 창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와장창-!
산산조각 난 유리 조각들이 허공에 흩어졌다.
허공에 날린 작은 유리 조각들은 달빛에 반짝였고, 이들은 창밖의 거리로 떨어져 내렸다.
“……그거였어.”
진재희는 지금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단숨에 깨달았다.
결국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녀는 쥐고 있던 통조림을 있는 힘껏 던졌다.
와장창창-!
그녀가 던진 통조림은 더욱 큰 소리를 내며 창문을 깨트렸다.
유리 조각들이 반짝이며 흩어졌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행동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곧 그들을 따라 통조림을 창문에 던졌다.
힘이 약한 사람은 던져 봐야 창문을 깨트릴 수 없었다.
하지만 던져야 했다.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니, 사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모르지만.
그들의 본능적인 감각이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와장창-! 와장창창!!!!
창문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이후 강시온의 계획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사사사사샤샤삭!
눈밭에서 숨어 있던 스노우 네펜데스.
반짝이는 것에 반응하여 공격해 오는 몬스터.
창문이 산산조각이 나며, 반사되어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이 놈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놈들이 뻗어 낸 엄청난 수의 촉수들이 4층 창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리리릭-! 콰광!!!!
촉수들은 4층 셀프 바를 마구잡이로 뒤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놈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감지한 악어 거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쩌억-, 아그작!
악어 거북은 촉수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세 마리의 악어 거북의 얼굴이 계속해서 나왔다.
놈들은 촉수를 물어뜯었고, 촉수는 악어 거북의 얼굴을 휘감았다.
이들을 확인한 시온이 소리쳤다.
“지금이야!”
* * *
스노우 네펜데스는 반짝이는 것에 반응한다.
그것은 이곳에 오면서 얻었던 정보였다.
난 그 정보를 이용한 것이다.
스노우 네펜데스는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반응해 움직일 것이고, 악어 거북 역시 움직이는 네펜데스에게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계획은 적중했다.
스노우 네펜데스 수십 마리가 4층을 덮쳐들었다.
움직임을 감지해 먹잇감을 사냥하는 악어 거북은 인간의 움직임보다 더욱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네펜데스를 놓치지 않았다.
아그작, 아그작-!
악어 거북은 휘몰아치는 촉수들을 마구잡이로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지금이야!”
난 단숨에 네펜데스가 가득한 창문으로 달려들었다.
계단 쪽이 가까운 사람들은 계단 쪽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계단 쪽으로 향한 사람들은 아마 죽을 것이다.
계단은 오히려 위험하다.
그곳은 여전히 지뢰밭이다.
악어 거북이 몇 마리가 잠복해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말해 줄 여유 따윈 없었다.
이것이 악어 거북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긴 했지만, 네펜데스로부터는 안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앗-!
창문 문턱을 넘어 허공에 몸을 날렸다.
그 밑으로 솟구쳐 올라온 수십 개의 네펜데스의 뿌리가 보였다.
이곳은 4층이다.
원래라면 무조건 골절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 키 높이까지 쌓인 거리의 눈밭은 분명 에어백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휘릭- 푹!
난 눈밭에 쏙 들어갔다.
역시 충격은 없었다.
난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눈밭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사방에서 네펜데스의 소리가 들려왔다.
사사사삭, 사사사사삭.
촉수가 눈밭을 헤치며 들리는 소리였다.
난 마치 태풍 속 바다에 빠진 사람처럼 눈밭을 허우적거렸다.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촉수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몸에 들러붙지 못했다.
솨악- 서-걱!
어느새 다가온 진재희가 검으로 모든 촉수를 베어 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검날을 돌려 다시 왼편에서 달려드는 촉수를 베었다.
그녀는 쉬지 않았다.
베고, 베고, 또 베었다.
자신의 몸에 휘감긴 촉수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내게 달려드는 촉수만 모조리 베어 냈다.
오차 따윈 없었다.
그녀가 왜 회귀자인지.
왜 가장 강한 인간인지.
그녀는 내 눈앞에서 그것을 증명했다.
네펜데스들은 진재희의 검에 베어져 픽픽 쓰러졌고, 곧 스멀스멀 눈 속으로 도망쳤다.
놈들도 그녀의 강함을 인지한 것 같았다.
“하아, 하아.”
진재희는 조금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추위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한 탓이었다.
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들려오는 소리에 건물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이청춘 경사와 두 명의 사람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이청춘 경사는 단숨에 달려왔다.
아직까지도 건물 외벽에는 네펜데스의 촉수가 휘감고 있었다.
네펜데스는 악어 거북에게 밀려 물러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무너진 창가에서 놈의 얼굴이 잠시 나타났다.
가아아악-.
기이한 울음소리.
철갑보다 단단해 보이는 껍질.
용의 눈처럼 날카로운 눈.
그리고 인간들의 피로 얼룩진 이빨과 턱.
악어 거북은 인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못 내려오는 건가.’
난 입가를 손등으로 쓸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묻어 나왔다.
난 그 피 묻은 손등을 한 번 바라보곤, 눈앞의 손을 바라보았다.
진재희가 있었다.
그녀는 내게 손을 건네고 있었다.
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그녀의 손을 쥐며 일어났다.
툭툭.
허리춤에 묻은 눈을 털어 내고, 다시 그녀를 돌아보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주변에 있던 이청춘과 두 명의 사람도 내게 말을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 정말 다행입니다. 시온 씨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들은 내게 한 마디씩 건넸고, 난 물끄러미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우선 서두르죠. 아직 밤이고, 네펜데스는 금방 눈으로 돌아올 겁니다.”
아직 우린 안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거리는 어두웠다.
고요했고, 추위는 살인적이었다.
우린 최소한의 눈만을 파내 가며 서벅서벅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
그곳 일번가에는 수십의 스노우 네펜데스가 마치 대나무 숲처럼 솟아 있었다.
아니, 대나무 같진 않았다.
그것들은 흐물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미역 줄기처럼.
그리고 스노우 네펜데스 수십 마리가 내비치는 달빛을 향해 몸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기괴하고도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 *
시온이 달빛에 몸을 살랑이는 네펜데스를 보고 있던 그 시각.
여섯 명의 사람들이 상가 건물 옥상에서 그것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턱스크를 한 채, 담배를 피우며 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 할 만한 것 같아? 짭새들 말이야.”
그런 그녀에게 또 다른 여자가 다가오며 물었다.
여자는 옥상 난간에 다리를 올리곤, 종아리 부분을 손으로 긁적였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짭새들은 문제없어. 저 두 사람이 문제지.”
머리카락이 긴 여자, 수색대의 대장을 맡고 있던 여자는 눈밭을 헤쳐 나가는 경찰의 정찰 팀을 보며 말했다.
그중, 대장이 말했던 건 두 사람이었다.
강시온, 진재희.
두 사람이 앞서 보여 준 활약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큰 위협이었다.
대장 옆으로 또 다른 여자가 다가와 말했다.
“여왕께서 말씀하신 남자와 비슷하지 않아?”
그 목소리에 대장은 조금 고민하다 담뱃재를 털었다.
“글쎄, 무엇이 되었든 잡아 봐야 알겠지.”
“경찰서에는 몇 명의 사람이 있을까?”
수색대원이 대장에게 묻는 말이 많아졌다.
원래 그들은 경찰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본 활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만만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두렵게 느껴졌다.
그 생각은 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2라운드에 승리하기 위해선, 아니 그보다 여왕의 ‘칙령’에 부합하기 위해선, 어찌 되었건 최고의 남자를 잡아야만 했다.
여왕은 한 남자를 찾고 있다.
그녀의 성적 욕망과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일이었다.
여왕은 1라운드 때부터 빠르게 리그에 적응해 권력을 장악했다.
세력의 수가 100명이 넘어가는 세력의 수장에겐 ‘칙령’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이 주어졌다.
세력에 소속된 모든 인원은 칙령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결국 칙령 때문이었다.
칙령만 잘 수행한다면, 그들도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장은 담배를 땅에 버리곤 마스크를 올려 썼다.
“가자.”
그리고 건물을 내려갔다.
골목 사이, 그곳에는 사슴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툰툰.
여왕에 의해 가축화되고 이름이 지어진 몬스터.
그리고 이 툰툰의 등에 타고 움직이면, 스노우 네펜데스나 여타 다른 몬스터의 위협에 덜 노출된다.
그녀들은 만안구에서 동안구로 넘어갔다.
동안구는 크게 두 가지 세력이 있었다.
시청, 범계역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과 호계 쪽의 세력.
벌써 몇 번의 충돌이 있었다.
여왕은 이번 전쟁을 통해 안양 동안구를 완전히 장악하려고 들었다.
전쟁의 참상은 범계역 근처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휘릭- 서걱!
쓸모없는 존재들은 공개 참수형을 당했다.
참수형 당한 인간들은 툰툰의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과거에 주점과 상권으로 유명했던 범계역 거리는 이제 동안구 제1세력의 거주지가 되었다.
곳곳에선 모닥불을 피워서 정체불명의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건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거주지가 확정되고, 대부분 거리에 나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잡아 온 몬스터의 손질.
호계 제2세력의 포로들 연행.
포로들을 성별로 나누어 관리.
참수형.
고문.
바리케이드 건설.
혹은 그냥 뻘짓들.
단 이 주일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여왕’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수색대는 툰툰을 타고 범계역 사거리에 들어섰다.
그들을 발견한 경계병이 소리쳤다.
“수색대장 이수은 님이야.”
“대장님이다.”
“대장님!”
수색대가 돌아오자, 근처에 있던 여자들이 몰려나왔다.
이수은은 여왕의 직속 부하로서, 이곳에선 권력을 지닌 여자였다.
이수은은 범계역 사거리를 지나, 로데오 거리를 걸었다.
그곳에 있던 정보병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여왕님은.”
“안쪽에 계십니다.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노예들이랑 같이.”
“응.”
이수은은 툰툰을 병사에게 건네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5층.
모텔로 사용되는 곳이다.
엘리베이터는 작동되지 않았기에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과거에는 모텔이었지만, 지금은 여왕의 별장에 불과했다.
5층에 들어서자, 벌거벗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선 일렬로 있었다.
차마 그들은 이수은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들은 여왕의 노예들이었다.
이수은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이곳의 스위트룸.
그 앞에는 두 명의 전사가 지키고 있었다.
“하아-.”
그 앞에 선 이수은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2라운드에서 가장 큰 세력을 보유하고, 비정상적인 성욕과 소유욕을 지닌 데다, 망상에 빠져 있는 여왕.
그녀를 마주할 때면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문 앞에서 시간을 가진 뒤,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똑똑-.
“수색대장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수은은 목소리를 내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안쪽으로부터 여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