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악어 거북의 늪 (2)
악어 거북.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는 거북이다.
생김새는 꼭 공룡과 같으며, 울긋불긋한 등껍질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악어 거북은 여타 다른 거북처럼 움직이며 사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어 거북은 아가리만 벌린 채, 물고기가 자신의 입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악어 거북은 마치 바닷속의 바다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놈의 혀에 화려한 색의 돌기가 있는 이유도 물고기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물고기가 자신의 입에 들어온 순간, 놓치지 않고 입을 닫는다.
악어 거북의 아가리에 들어간 먹잇감은 반드시 잡아먹힌다.
바로 눈앞의 노랑머리 남자처럼.
“악어 거북이야.”
“…….”
난 눈을 힐끗거리며 진재희를 살폈다.
처음으로 진재희는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거북의 얼굴이 갑자기 나왔어. 어떻게 된 거야?”
난 몸을 경직시킨 채, 눈알만 돌려 주위를 살폈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괴물의 얼굴은 그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렇게 거대한 얼굴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까지, 이곳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런 거대한 얼굴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진재희는 침을 꼴깍 삼키곤 대답했다.
“당연히 알 수 없지. 실제 악어 거북에게 잡아먹히는 물고기도. 그것이 악어 거북의 혀라는 걸 모르니까. 악어 거북은 위장이 뛰어나. 그러니까 인간의 눈으로는 어떤 것이 악어 거북인지 알 수 없을 거야.”
“……주변에 어떤 사물이 놈의 혓바닥인지도 모르는 거야?”
“그걸 모르기 때문에 큰일인 거야. 아마 이 건물 전체가 놈의 혓바닥일 수도 있어.”
그토록 거대한 괴물의 혓바닥이 주변 물건들로 위장해 인간들을 잡아먹는다.
실로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실제로 노랑머리 남자는 그저 벽을 손으로 슥슥 문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쪽 벽이 악어 거북의 혓바닥이었고 노랑머리 남자는 결국 잡아먹혔다.
그때, 이청춘이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그의 손이 마구잡이로 떨리고 있었다.
난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전 경찰입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고요. 제가…… 미끼가 될 테니. 여러분들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건물 밖으로 뛰세요.”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은 살았다는 안도감인가.
당연한 본능적인 미소였겠지만, 난 그것이 조금 역겹게 느껴졌다.
이청춘이 팔을 조금 움직이며 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진재희가 그를 막았다.
“소용없어. 악어 거북의 입은 즉발이니까.”
“……네?”
“악어 거북이 쳐놓은 덫은 즉발이라고. 그냥 닿는 순간, 자동문처럼 곧바로 입이 닫히는 구조라고. 이 건물 안에 악어 거북이 몇 마리가 있는지도 몰라. 소용없는 짓이야.”
진재희의 말에 이청춘은 멈춰 섰다.
그러자 반대편 테이블 위에 있던 한 여자가 진재희에게 소리쳤다.
“그, 그럼 어떡해요!!!”
진재희는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냐.”
“그게 뭔데, 빨리 말해!”
이번엔 그 옆에 있던 남자가 진재희에게 소리쳤다.
진재희는 다시 조금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악어 거북은 숨을 쉬기 위해, 반드시 움직여야 해. 놈이 움직이면 위장이 풀려서 우리가 볼 수 있어. 그때 도망치면 되겠지.”
“그, 그, 그럼 그놈은 언제 숨 쉬는데?!”
진재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 상황 속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진재희가 당황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황한 그녀의 모습에 난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몰라. 10년이 될 수도 있어.”
“1…… 10년?”
“말도 안 돼…… 10년이라니. 10년에 한 번 숨을…… 쉰단 말이야?”
“그럼 우린 10년 동안 여기서 이렇게 꼼짝없이 있어야 하는 거야?”
사람들은 절망했다.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회귀자인 진재희가 당황할 정도였으니.
결국 우린 악어 거북의 늪에 제 발로 기어들어 온 꼴이었다.
그때, 한 중년의 여자가 고개를 뒤흔들었다.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너…… 관리자야?”
사실 그 질문을 제일 먼저 했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재희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년 여자의 두 눈망울은 촉촉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난 너 못 믿겠어.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여자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 방향은 밑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모두가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짓말이잖아. 거짓말이니까 저리 당당한 거잖아. 그치. 거짓말. 거짓…… 거짓말.”
여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도 충돌을 느끼고 있었다.
진재희 말이 거짓말일 것이라는 희망과 정말 그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절망.
그리고 여자는 무언가 홀린 듯이 앞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 나갔다.
몇 발자국 문제없이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자 여자는 웃으며 뒤돌아보았다.
“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응? 아하하. 아무렇지도 않잖악-!”
아그작-!
그녀가 한 발자국 더 내밀었을 때, 또다시 괴물을 얼굴이 나타났다.
괴물은 여자의 몸을 집어삼키곤 다시 허공에서 사라졌다.
여자가 있던 곳은 사방으로 터져 나간 붉은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아…….”
“으……!”
“아아…….”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날은 어느새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밤은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단 한 발자국도.
* * *
세 시간이 지났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밤은 찾아왔고, 숭숭 뚫린 창문 사이로 한기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몸을 벌벌 떨었고, 두 눈은 꿈뻑거렸다.
풀썩-!
그리고 한 남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결국 있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몇 시간이고, 아니 며칠…… 아니지.
몇 년이 지날지도 모를 기다림.
대책이 없는 것이었다.
난 지난 3시간 동안 눈동자를 쉬지 않고 움직였다.
좌우상하.
일말의 변화도 놓치지 않기 위해 힘썼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현상에는 반드시 해법이 있다.
난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반드시 살아 나갈 것이다.
진재희는 내게 말했다.
“……움직임을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야.”
“알고 있어.”
움직임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건, 다른 것이었다.
눈동자.
어디선가 우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숨은 오랫동안 참을 수 있더라도, 눈동자만큼은 계속해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악어 거북의 눈동자가 테이블 위의 작은 가위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벽면 모서리에 달린 CCTV일지도, 아니면 엘리베이터의 조그마한 버튼일 수도 있었다.
진재희의 말에 따르자면, 악어 거북의 위장 능력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났다고 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결국 놈의 함정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만 했다.
침착하게 사건을 정리하고 해결점을 찾아야만 했다.
단순히 두려움에 떤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우린 움직여야 한다.
시간은 악어 거북의 편이었으니.
이건 지뢰 찾기 게임이다.
어릴 적, 초등학교 컴퓨터실에 가서 하던 지뢰 찾기 게임.
지뢰 찾기 게임의 공략법은 간단하다.
내가 서 있는 위치부터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
“진재희.”
“응. 말해.”
내가 부르자, 진재희는 곧장 대답했다.
난 패딩을 벗어 들어 조심스럽게 발밑에 놓았다.
패딩을 벗고 바람막이도 벗고 후리스도 벗고 후드티도 벗었다.
그제야 흰 티가 나왔고, 난 흰 티마저 벗었다.
“뭐 하는 거야?”
진재희가 날 돌아보며 물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내복 상의를 벗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엄청난 한기가 맨살에 부딪혔다.
내복 상의를 벗어 들곤 서둘러 다른 옷을 차례차례 입었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난 다시 패딩을 입고 목 끝까지 지퍼를 올렸다.
그리고 벗어 놓았던 내복을 입으로 뜯기 시작했다.
찌직, 찍.
입으로 잘 뜯어지지 않자, 군용 단검으로 베어 냈다.
최대한 길게 만들어, 그것을 끈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내복으로 만든 끈을 길게 펴 보니, 대략 1m 50cm 정도의 길이를 확보했다.
그것을 단검 끝과 이었다.
“지금부터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물건이라면 물건 모두를 이걸로 찔러봐.”
난 내복 끈과 이은 단검을 진재희에게 던졌다.
진재희는 그것을 받아 들곤 지켜보더니, 이내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해 볼게.”
난 눈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검을 잘 다루는 진재희가 던지는 것이 옳았다.
추위는 더욱 거세졌고, 무방비하게 노출된 우리들의 몸은 금방 저체온증에 시달릴 것이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진재희는 단검을 던졌다.
휘릭- 쨍그랑!
그녀의 단검에 식탁 위에 있던 접시가 깨졌다.
움직임은 없었다.
접시는 놈의 일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재희는 단검과 연결된 내복 끈을 조금씩 당겨서 다시 단검을 회수했다.
반복, 반복, 반복, 또다시 반복.
휘릭- 땅그랑!
휘릭- 쨍!
휘릭- 푹!
식기, 시체, 초인종, 냉동 고기, 포크, 의자, 쿠션.
사물이라면 사물.
시체라면 시체.
진재희는 모든 것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후우-.”
그녀의 입술 사이로 입김이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밤이 깊어질수록 호흡이 어려워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까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다.
진재희는 자신 주변의 모든 물건을 건드리곤 그제야 한 발자국 움직였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이었다.
건물 입구까지는 도대체 몇 걸음일까.
그 생각을 하니, 더욱 아찔했다.
다시 몇 시간이고 작업이 이어졌다.
이곳에선 고요 속에 단 두 가지의 소리들만이 가득했다.
사람들의 신음 소리.
무언가 깨지는 소리.
풀썩-!
밤이 깊어지니,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추위와 피곤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었다.
이제 그녀가 움직인 걸음 수는 겨우 다섯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쓰러진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모두가 추위를 이겨 내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던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작업.
마치 작은 막대기 하나로 드넓은 초원에서 지뢰를 찾는 꼴이었다.
결코 이런 식으론 우리가 목숨이 붙어 있기 전에 건물을 나설 수 없을 것이다.
추위는 계속되었고, 우리의 체온은 낮아졌다.
몸이 한계에 부딪히면, 뇌 역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당장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안 돼.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강시온……!”
진재희가 날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마치 모기가 왱왱거리는 듯, 그녀의 목소리가 왼쪽 오른쪽 번갈아 울렸다.
툭. 툭.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쳐댔다.
자면 안 된다.
자면.
“……어쩔 수 없어. 그냥 내가 해볼게.”
스응-.
그때, 희미한 시야 앞으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난 그제야 고개를 살며시 들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진재희는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서 악어 거북을 죽일 생각이었다.
창문을 통해 쏟아진 달빛이 반사된 검날 빛.
그 반짝이는 빛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난 그 반짝이는 빛을 보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진재희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밀려고 했다.
‘그래…… 그거였어. 역시 방법은.’
방법은 있었다.
역시 난 여기서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난 희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살며시 웃었다.
“기다려.”
진재희는 우뚝 멈춰선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찾았어.”
그 말에 아직까지 정신을 붙들고 있던 모두가 날 바라보았다.
난 입가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리고 허리를 세워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