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정부의 개 (2)
난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창에 대해 진재희에게 설명했다.
[퀘스트: 정부의 개]
[업적 달성:
●시민들의 안락함 수치 30% 이상 달성 (현재 수치 3%)
●지속적인 식량 보급 경로 해결 (0/1)
●경찰력 내부 가용 노동력 수치 100% 달성 (현재 수치 20%)
★ 보상: 업적 포인트 - 150 ]
보이는 모든 문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다.
진재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조금 고민을 하더니 내게 말했다.
“업적 포인트는 군주들의 점수야. 그리고 업적 퀘스트는 게임 중후반에 열리는 거지. 대부분의 업적들은 ‘선포’나 ‘칙령’을 내릴 때 필요해. 물론 초반에 쓸 수도 있지만, 아직 세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네가 그걸 얻었다는 게 조금…… 납득이 가질 않아.”
어떻게 생각해도 지금을 게임 중후반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중후반에 얻어야 할 업적 포인트가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났다.
단순 시스템 오류?
그건 말이 안 되었다.
세계를 이 지경으로 만들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신적인 존재가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그런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결국 눈앞에 있는 이 퀘스트 창은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하나의 혜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결론 짓자,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나인가.
진재희는 조금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뒤흔들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전생에 비슷한 사례가 없어. 오류라고 생각해도 그건 말이 안 되고. 일단…… 그건 엄청난 이점임에는 틀림없어.”
“우연일까?”
내 물음에 진재희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관리자의 시스템에 우연 따윈 없어. 네게 그런 이점이 주어진 건 반드시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그 말은 오히려 내게 불안을 증폭시키는 꼴이었다.
관리자는 왜 나에게 이러한 혜택을 주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오직 나만의 혜택인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수수께끼뿐이었다.
“……알았어. 이점이라고 하면 최우선으로 클리어할 과제라고 생각할게.”
“응. 당장은 그게 좋아. 나도 도울게.”
어찌 되었건 이것을 해결하면 내게 커다란 이점을 준다는 것이니 뜸 들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 업적 포인트라는 것이 중후반에 군주들의 점수로써 사용되는 가치가 있다면, 난 이것을 지금부터 모아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우선 동생을 조금 찾아볼게.”
동생이 이곳에 왔을 확률이 농후했다.
원래 이곳으로 향했던 이유도 동생이 이곳에 왔을 거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진재희는 내게 말했다.
“도와줄까?”
“됐어.”
어차피 7층 규모의 건물이다.
하루면 동생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 * *
“강준호라고 키는 요만하고. 네.”
“혹시 강준호라는 애 보신 적 있으세요. 키는 제 명치 정도 오고요. 짧은 머리에.”
“저, 죄송한데.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네. 키는 요만하고요. 나이는 열세 살입니다. 네. 혹시 보시면 저는 2층에 있으니까.”
강시온은 하루를 꼬박 경찰서를 돌아다녔다.
경찰서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한 층에 어림잡아 200명의 사람이 있다면, 4개 층이 모두 생존자들로 미어터졌으니, 대략 이 건물에는 800명의 사람이 있는 꼴이었다.
800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동생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동생은 없었다.
시온의 동생 준호는 만안 경찰서로 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하는 경찰관들이 통제하고 있어서 다가갈 수 없었다.
그들의 말로는 기밀 보안 유지를 위한 일이라고 하는데, 통제하고 있는 구역에 준호가 갈 일은 없었다.
2층부터 4층까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물었고, 하나같이 본 적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시온은 근처를 돌아다니던 간부급 경찰을 붙잡아 물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 중에 다시 나간 사람이 있나요?”
“……예. 뭐. 나가는 건 자유입니다. 저희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실 분들은 몇 분 나가시기도 했고…… 추방도 있었고.”
경찰관은 졸린 듯,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며 대답하곤 다시 자리를 벗어났다.
결국 누구에게도 시온이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낼 순 없었다.
물론 이곳에 있다가 다시 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동생은 어리고, 아이는 두려운 상황 속에서 어른과 함께 있고 싶은 법이니까.
당장에 이곳을 나가서 동생을 찾으러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건 또 미련한 짓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진재희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은 지금 약한 존재였다.
바람 앞의 등불이었고, 동생을 찾기 위해선 강해져야만 했다.
아티팩트건 개인 상태 창이건, 퀘스트건.
지금은 당장의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때였다.
‘조급해하지 말자.’
조급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시온은 그렇게 속으로 되새겼다.
어느새 창문 밖 풍경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은 도시의 밤은 보고만 있어도 공포스러울 정도로 어두웠다.
가끔 달빛에 비친 구름 사이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거대한 실루엣은 신비함을 넘어 영적일 정도였다.
시온은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대의 사람들이 고래나 대왕오징어, 자연재해를 보고 왜 신적인 존재를 상상해 냈는지 알 것만도 같았다.
시온이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경찰관 하나가 계단을 내려오다 그를 발견하곤 말했다.
“곧 통제 시간입니다. 배정된 장소로 되돌아가 주세요.”
시온은 그를 바라보았다.
젊은 경찰관이었다.
많아 봐야 30대 초반.
시온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2층을 내려갔다.
그곳에는 휴대용 불빛에 의지한 사람들이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재난 때, 체육관에서 다 같이 잠을 청하는 피난민과 같은 풍경이었다.
시온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배정된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진재희가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온이 그곳에 앉자, 재희가 자연스레 물었다.
“동생. 찾았어?”
그녀는 소곤거리며 말했지만, 그 말이 크게 들릴 정도로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다.
시온과 재희를 남매라고 착각하고 같은 공간에 배정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재희는 곧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곳곳에 옅은 신음과 기침 소리,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당장 시온이 위치한 옆자리에선 남자가 자고 있었고, 그의 발 쪽에 위치한 곳에는 노인이 자고 있었다.
시온은 하나의 패딩을 같이 뒤집어쓴 노인들을 바라보며 재희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퀘스트를 수행할 거야.”
“응.”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
“따를게. 대신 너도 해야 할 일이 있어.”
“뭔데.”
“시간이 날 때마다 훈련을 하게 될 거야.”
“훈련?”
시온이 되묻자, 재희는 조금 침묵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훈련. 네 몸은 아직 너무 약해. 그러니까 만약 내가 곁에 없는 상황에 대비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어야 돼. 그것을 위한 훈련이야.”
시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진재희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시온에게 말했다.
“정말 힘들 거야. 난 봐주는 것 따윈 없어. 모두 널 지키기 위함이니까.”
재희는 조금 몸을 움츠렸다.
시온은 재희를 한 번 돌아보았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몸을 천천히 누웠다.
시온은 누운 채로 조금 눈을 감는가 싶더니 재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자 둬. 체력을 보충해야 하니까.”
재희는 털모자 속에서 쪼그린 채,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눈을 조금 감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잘 거야. 네가 잠들면.”
“…….”
시온은 재희의 말에 조금 생각을 하다 이내 그만두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지쳤기에, 잠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시온은 곧 곯아떨어졌고, 재희는 주변에 위험인물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그의 옆에 누웠다.
2라운드 1일 차가 끝났다.
이제 겨우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난 셈이었다.
‘…….’
재희는 물끄러미 지난날의 전생을 떠올리다 곧 잠에 들었다.
그들의 꿀 같은 잠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벽 6시 반.
경찰들이 손전등 빛을 쏘아 대며 잠이 든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 * *
통제된 삶.
그것은 힘을 지닌 권력자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1층 주차장 지역.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6시 반이 되면 경찰서 안에 있는 모든 인원들이 이곳으로 나와 열을 맞추었다.
밤새 폭설이 내렸다.
점호를 하는 와중에도 눈은 멈추지 않고 내렸다.
난 계단을 내려가 사람들 무리 속에서 걸었다.
2층, 3층, 4층.
각각의 층에 맞게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어서 추위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2층! 열 맞춰 서 주세요. 금방 끝나니까. 열 맞춰 서요!”
“아저씨!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요. 어서요.”
“자! 성함 한 번씩만 부르겠습니다. 지석호 씨? 김용표 씨?”
대열을 갖춘 사람들에게 경찰관들이 여기저기서 괴성을 내질렀다.
나와 진재희는 대열 안에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줄을 섰다.
솔직히 추위 때문에 차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체감상 영하 10도 아래인 것 같았다.
의식하지 않아도 두 이빨이 다닥거리며 마구잡이로 부딪혔다.
추위.
그것은 고통이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정도의 추위를 느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다를까.
누구든 지금의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의 추위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종원 씨! 송승보 씨! 강진석 씨!”
맨 앞 열부터 경찰관이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두 개의 스틱을 나눠 주며 인원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추위 때문에 눈앞이 아찔했다.
당장이라도 손발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그때, 오른 주머니로 무언가가 찔러져 들어왔다.
스윽-.
“…….”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뜨거운 핫 팩이 들려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머리끝까지 털모자를 뒤집어쓴 진재희가 있었다.
진재희가 내게 핫 팩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준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조금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마. 여기서 핫 팩은 그야말로 금보다 귀하니까. 그거 30시간도 더 가는 핫 팩이니까. 다시 차가워지면 말해. 다른 걸로 바꿔 줄게.”
그 말을 끝으로 진재희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난, 그녀가 준비성이 철저한 회귀자여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추위에 오들거리던 감각이 핫 팩 하나로 녹아들었다.
지금 이 순간, 핫 팩이야말로 인류 문명에 가장 큰 발명품이라고 생각들 정도였다.
그때, 경찰관이 내게 다가와 스틱 두 개를 건넸다.
“강시온 씨.”
“예.”
“두 개 받으시고, 뒤에 분은 진재희 씨?”
난 경찰관이 건네는 두 개의 스틱을 건네받았다.
어제 화장실도 음식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나에게는 총 4개의 스틱이 있었다.
경찰관은 진재희까지 스틱을 주곤 다시 뒷열로 사라졌다.
추위 속에 기다림은 지루함을 넘어 화생방 가스실과 같았다.
1분이 1시간 같은, 지독한 기다림이었다.
어느새 몇백 명의 인원 검사를 마친 경찰관들이 하나둘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삼단 봉과 권총을 차고 인원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몇몇 경찰관들이 그 앞에서 담배를 태우더니 곧 경찰서로부터 한 명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난 핫 팩에 손을 녹이며 단상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짙은 회색의 하늘.
앞 열 수많은 사람들의 뒤통수.
휘날리는 눈바람.
경찰들이 뿜어내는 손전등 빛.
그리고 한 남자가 단상에 올랐다.
나이가 있는 중년의 남자였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어서도 단상에 오른 남자는 정갈한 복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시민 여러분. 5일 차 날이 밝았습니다. 현재 저희는 본부와의 교신을 계속해서 시도 중이며, 정부의 지침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지금 몸도 마음도 심히 지쳐 있으실 거라는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경찰은 결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시민 여러분들의 재산과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어제, 저희 경찰서로 30명의 사람이 추가로 들어왔습니다. 또 12명의 사람이 무단으로 이탈했습니다. 감히 제가 시민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밖은 지옥입니다. 여러분. 벌써 저희 경찰관 12명, 자율 방범대 22명이 정찰 임무 수행 중 순직했습니다. 여러분들 이곳이 힘들더라도, 또 지겹고, 괴롭더라도. 저희 경찰들을 믿어 주십시오. 여러분들은 저희의 통제에 따라 주셔야만 합니다. 저희 경찰이 여러분들을 반드시 따뜻한 가정의 품으로, 집으로 되돌려 놓겠습니다.”
한 노인이 박수를 한 번 치기 시작하자, 곧 여기저기서 힘없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박수를 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건 눈앞의 경찰들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렇게 삶이 통제되었음에도 그들이 만족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경찰서장의 말처럼 이곳을 벗어나면 지옥이었으니까.
이 경찰서만이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열렬한 지지에도, 난 결코 박수를 칠 수 없었다.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는 단상 위의 남자.
만안 경찰서장.
난 그를 제거하고, 이 세력군을 차지할 생각이었으니까.
“후우-.”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에선 눈이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서장이 들어간 뒤, 경찰들은 인원들을 통솔하여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의 할 일.
그것은 정부의 개라고 불리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
난 사람들의 대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니, 이제야 먼 지평선 너머 산자락으로부터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태양 빛은 무너진 도시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