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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29화 (29/221)

#제29화. 정부의 개 (1)

경찰이 지배하는 세력.

예상대로 그들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헌법에 근거한다는 것은, 적어도 이 세력 안에서는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인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곧 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은신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찰과 대치하는 와중, 우린 어렵지 않게 그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들 내부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경찰들은 거리의 생존자들을 모으는 중이었고, 우린 그 정찰 중에 발견된 생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앞서 걸어 나가던 경사가 조금 뒤를 돌아보더니 진재희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 검은 조심해 주셔야 합니다. 경찰서 내부에선 절대 검을 외부로 노출시켜선 안됩니다. 아시겠죠?”

진재희를 보며 말했지만, 정작 그녀는 그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경사는 그녀의 반응을 보곤 고개를 조금 뒤흔들더니 앞서 걸어갔다.

경찰서는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그 경찰서를 보자마자 난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거대한 성벽.

경찰서 주변을 두르고 있는 언덕의 담벼락은 그야말로 거대한 성벽을 연상케 했다.

주변에 빌라와 원룸촌들이 있었지만, 경찰서에 견줄 만한 큰 건물은 없었다.

경찰서가 이 일대를 장악하는 중심부인 셈이었다.

경사는 경찰서 정문 앞 바리케이드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순경이 그에게 경례했다.

“충성.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예상대로다.

경례를 한다는 것이 아직까지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몇 겹으로 둘러져 있었다.

쇼핑몰에서 만들었던 간이식이 아니라, 공장에서 제조된 철제 바리케이드였다.

바리케이드 뒤로 순경 몇 명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검문을 마친 순경은 바로 바리케이드를 열어 주었다.

“어서 오시죠. 이쪽입니다.”

경사는 앞서 걸어 나가며 나와 진재희를 비롯한 생존자들을 인도했다.

경찰 병력은 많았다.

그들은 저마다 총과 삼단 봉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경사는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잠시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 내부 안전을 위한 검사이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몇몇의 순경들이 소지품 검사를 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때 재희는 날 돌아봤고, 내 생각을 묻는 듯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그들을 적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선 신뢰를 얻어야 했다.

남경 두 명이 다가와 몸을 뒤졌다.

진재희 쪽은 여경 한 명이 다가갔다.

그러다 여경이 진검을 발견하곤 그것을 가리켰다.

“이건 소지 불가합니다.”

여경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을 뺏으려고 하자, 진재희는 여경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진재희가 움직임을 취하자, 주위에 있던 경찰들이 순식간에 총을 꺼내 들어 겨누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그때,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던 경사가 손을 휘저으며 경찰들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내가 소지 허가했어.”

“반장님 무슨……?”

의문을 가진 경찰 한 명이 총을 겨눈 채 묻자, 경사는 진재희를 훑어보며 대답했다.

“정찰대에 적합할 것 같아서 말이지. 인력 한 명 한 명이 소중하잖아. 총 내려.”

그 말에 경찰들은 의심하면서도 겨누고 있던 총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제야 진재희도 검 손잡이로부터 손을 거두었다.

“올라가시죠. 시장하시죠? 식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식사라는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우린 경사를 따라 경찰서로 올라갔다.

* * *

만안 경찰서는 지상 5층 구조로 지하는 2층까지 있었다.

구조된 시민들이 생활하는 구역은 지상 2층부터 4층이었다.

먼저 5층으로 이동해 간단한 신문 조사를 실시했다.

시답지 않은 조사였다.

밖의 상황은 어떤지, 정부와의 접촉이 있었는지, 괴물과의 접촉은 있었는지.

시온과 재희는 모두 ‘아니오’로 일관되게 대답했다.

그리곤 경사를 따라 배치된 거주지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2층으로 내려갔다.

원래는 민원을 처리하던 경찰서 내부가 이젠 시민들의 거주지로 자리 잡았다.

한눈에 보아도 200명은 넘어 보이는 인원이 100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에 몰려 있었다.

남녀노소.

그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변변찮은 이부자리를 펼치고, 몇몇은 머리를 써 작은 텐트를 만들기도 했다.

어디선가는 가스버너로 물을 데우고 있었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한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몰려드는 추위에 사람들은 몸을 똘똘 뭉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벼랑 위에서 어미 새를 기다리는 아기 새들과 같았다.

우린 걸을 때도 발밑을 살피며 걸어야 했다.

사람들의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4층까지는 시민 여러분들께서 사용하고 계시고, 5층은 저희 경찰 병력들의 거주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밖에 거주지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거주지를 더 확보한다고 합니다. 정찰대가 그만큼 수고해 줘야겠지만요. 두 분은 여기를 쓰세요. 남매시니까 한 자리 쓰는 거…… 불만 없으시죠?”

경사는 2층 계단 층으로 향하는 소화전 밑, 좁디좁은 자리를 둘에게 소개했다.

그 옆으로는 노부부가 있었고, 그 앞으로는 젊은 남자들, 그 오른쪽으로는 고아 둘이 있었다.

차마 두 발을 쭈욱 뻗기에도 비좁은 공간.

그것도 생판 모르는 사람과 다닥다닥 붙어서 생활해야 했다.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화장실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거. 두 분 다 받으시죠.”

경사는 시온에게 두 개의 플라스틱 스틱을 건넸다.

빨간색과 파란색이었다.

경사는 재희에게도 두 개의 스틱을 건넸다.

“파란색 스틱은 화장실 이용할 때, 저희 통제관에게 제출하시면 됩니다. 빨간색 스틱은 식사 배분할 때 제출하시면 되고요.”

“하루에 한 번 식사, 한 번 화장실이 이용 가능하단 말씀이신가요?”

시온은 그 스틱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경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저희는 그렇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식량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화장실 문제가 가장 심각해서…….”

경사는 눈을 감더니 이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쇼핑몰에 있을 때엔 화장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시의 수도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라운드가 시작된 지금, 아무래도 수도가 막힌 모양이었다.

“수도가 안 나오는 모양이죠?”

시온은 경사 너머의 화장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사의 말대로 화장실에는 두 명의 경찰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시민들은 파란색 스틱을 건네어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사용하는 데에도 화장실 줄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지금은 눈을 녹여 물을 충당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도 인력 문제가 엄청 심각해서 말이죠.”

“…….”

시온은 경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하긴. 온 세상이 눈 천지인데, 물 부족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눈을 녹일 인력이 필요하고, 그 인력들이 아주 쓸데없는 노동에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장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였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더라도, 차마 야외에서 엉덩이를 까고 변을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인간이기에.

그 권리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시온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매일 아침 6시 반. 저희가 인원 체크 및 점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개의 스틱은 점호 때 다시 한 쌍씩 나눠 드리고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모두가 비좁고, 모두가 힘듭니다. 조금만 참으시고 같이 이겨냅시다.”

“이곳에 있는 시민들은 아무것도 안 하나요?”

되돌아가는 경사를 시온이 불러 세웠다.

경사는 뒤돌아 시온을 바라보았다.

“당장은 그렇습니다만.”

경사는 시온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온은 전방의 무언가를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 들여다보더니 이내 경사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시온은 재희와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다.

경사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옮겼다.

* * *

5F, 경찰관 거주지.

“반장님. 여자가 진검을 가지고 있었다고요?”

젊은 경위의 말을 뒤로 한 채, 이청춘 경사는 5층으로 올라서며 경찰모를 벗어 들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지친 듯 몸을 뒤로 누였다.

만안 경찰서 5층.

이곳도 일반 시민 거주지와 마찬가지로 바닥에는 온통 이부자리였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엉겨 붙어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했다.

경찰관들 역시 두 가지의 스틱을 배당받아, 먹을 것이나 화장실에 갈 때엔 스틱을 제출해야만 했다.

이는 경찰서장이 내린 지침이었다.

이청춘 경사는 의자에 앉아 조금 고개를 뒤로 젖혀 휴식을 취하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끼익-.

의자의 경첩 소리가 요란했다.

이청춘에게 젊은 경위가 말했다.

“반장님. 여자가 진검을 가지고 있었냐니까요?”

“그래요.”

“위험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 사람을 왜 들인 겁니까?”

이청춘 경사 뒤로 젊은 경위가 따라왔다.

이청춘은 사무실 한 편에 마련된 사무 창고로 향했다.

그곳은 문짝이 없었으며 사무 창고 입구를 책상으로 막고 있었다.

식량을 배급하기 위해선 모두 이곳에서 빨간 스틱을 제출해야 했다.

이청춘 경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틱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그 맞은편에 앉아 있던 순경이 그것을 받아들곤 빵과 물이 담긴 페트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청춘은 빵과 물을 받아들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여전히 그의 옆에 있던 경위가 쫑알거리며 시끄럽게 말을 걸어왔다.

“반장님. 2일 전에 그 미친 사이코 새끼 꼴 나면 어떡합니까?”

2일 전.

생존자를 찾아 나선 만안 경찰서 정찰 팀에 의해 발견된 두 청년이 이곳에서 난동을 부렸다.

칼부림을 한 탓에 두 명이 죽었고 네 명이 다쳤다.

두 청년은 지금 지하 1층 유치장에 갇혀 있다.

그로 인해 경찰서의 사기가 떨어진 것을 염두에 두고 경위는 걱정했던 것이다.

이청춘은 자리에 앉아 빵을 우걱우걱 씹어 댔다.

그의 사무 책상 한 켠에는 가족사진이 있었다.

이청춘은 사진을 바라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눈을 녹여 만든 물을 페트병에 일일이 담아 두었던 것이었다.

경위는 이청춘의 책상에 두 손을 올려놓으며 다소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반장님…… 제발……! 전 정말 아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팀장님. 경찰 일…… 20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입힐지…… 아님 득이 될지.”

“하아…… 반장님! 그건 그냥 촉이잖아요.”

“그래요. 팀장님. 제 20년 촉을 한 번 믿어주시겠어요?”

이청춘은 빵을 우적우적 씹으며 젊은 경위를 올려다보았다.

경위는 답답한 듯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에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간부 학교 출신의 젊은 경위였다.

계급상으로는 이청춘보다 위였지만, 경력으로는 이청춘이 그를 훨씬 앞섰다.

젊은 경위는 경찰모를 살짝 들어 벅벅 머리를 긁어 댔다.

긁을 때마다 비듬이 후두둑 떨어졌다.

씻은 지가 오래된 탓이다.

씻는 것이나 위생 같은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무언가 고민하던 경위는 표정을 거두곤 조심스레 이청춘에게 물었다.

“설마 정찰 팀에 데리고 온다는 건 아니겠죠?”

“정찰 팀에 데리고 올 겁니다.”

“……네?”

경위가 놀란 듯 이청춘을 바라보았지만, 이청춘은 빵을 다 먹고선 이제 쉬려고 눈을 감았다.

“반장님. 반장님……?”

이청춘은 아무 말 없이 책상에 발을 올리곤 잠이 들었다.

14시간 연속 근무였다.

이청춘은 몰려드는 졸음을 쫓지 않았다.

“하아-.”

그런 이청춘을 두고 젊은 경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난 진재희를 데리고 사람이 비교적 적은 계단 층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녀에게 설명했고,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퀘스트 창?”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창이었다.

난 무덤덤하게 그것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퀘스트 창.”

“월드 보스 아님 히든 던전? 어떤 종류인데? 아니. 그보다 테두리 색은?”

진재희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늘어트렸다.

그녀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황금색.”

“황금색?”

그녀는 기억을 되짚어 보려는 듯 턱을 짚고선 생각에 빠졌다.

진재희도 창에 대해선 모르는 것 같았다.

아마 전생의 내가 그녀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퀘스트 창은 헛것이 아니었다.

관리자나 제3자가 개입한 것이 아닌, 나에게만 주어진 개인 퀘스트라는 의미였다.

나는 퀘스트 창에 적힌 내용 중 유독 보상 부분에 눈길이 갔다.

“내용이 뭔데?”

진재희는 다시 물었고, 난 조금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이걸 진재희가 안다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퀘스트는 나에게 있어선 엄청난 이점임은 분명했다.

“내용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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