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경계의 너머 (3)
강시온이 집에 들어간 지 30분이 지났다.
그동안 진재희는 빌라 입구 계단에 앉아, 몬스터를 경계했다.
동시에 플레이어에 대한 경계도 잊지 않았다.
아직 완전한 ‘군주’가 나오지 않은 이 도시에선 가장 위험할 수 있는 것이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라운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에, 플레이어들도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목격한 사람은 앞서 대교 밑을 지나가던 4명의 사람 무리가 전부였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다닌다면, 그 무리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진재희는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툭툭.
자연스레 담뱃갑 밑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곤 비닐을 뜯어 하나를 꺼내 물었다.
담배는 라운드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희귀 자원에 속했다.
그래서 있을 때, 마음껏 피워 놔야 했고 시온을 위해서 모으기도 해야 했다.
앞으로 담배는 이 리그에서 ‘화폐’로써 사용될 테니.
그녀가 라이터 불을 켰을 때, 안쪽 빌라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진재희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기억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일정한 발걸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은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라서, 의식하지 않은 이상 바뀔 리는 없었다.
진재희는 그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그가 강시온인지 알 수 있었다.
발걸음 소리는 계단을 타고 올라오다 서서히 멈췄다.
진재희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고, 강시온은 자연스럽게 그녀 곁에 앉았다.
시온은 숨을 깊게 몰아쉬고 있었고, 그의 몸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묻지 않아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강시온이었다.
“……하나만 약속해 줘.”
구슬픈 목소리였다.
강시온은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냥 시선이 가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재희는 다시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곤 대답했다.
“응.”
강시온은 쥐고 있는 식칼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얼마나 강하게 움켜쥐었는지, 쥐고 있는 손이 떨릴 정도였다.
그의 감정과 생각과 깊은 슬픔이 진재희에게 전해져 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동생만 찾게 해 줘.”
진재희는 여전히 담배를 물고 있고, 강시온은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시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모든 것이…… 아니. 그냥…… 난 동생과 같이 있고 싶으니까. 그거면 되니까.”
그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감정을 정리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충격에 말을 잘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정리한 진재희는 강시온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진재희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다리 사이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니, 연기는 자연스레 위로 올라와 잠시 시야를 가렸다.
전생에서 보았던 강시온.
그리고 현재의 강시온.
그 앞의 자신.
진재희는 감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응. 알겠어.”
반쯤 피운 담배를 눈밭에 던지니, 담배는 하얀 눈 속으로 폭 파고들었다.
담뱃불은 주위의 눈을 녹여 내며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
진재희는 생각했다.
아마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이 남자는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탁할 것도 없었고, 어차피 그들은 끝까지 함께할 운명이었다.
그렇게 진재희는 모든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이런 비참한 살육 게임도, 도시를 어지럽히는 이계 생물도, 그걸 웃고 떠들며 즐기는 관리자 너머의 머나먼 신적 생명체도 전부 없애 버릴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우리의 세계.
그 세계 속에선 강시온도, 그의 바람처럼 동생 준호가 대학에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겠지.
리그에서 우승한다면 우리 둘 모두가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비천한 몸 따윈 언제든지 바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두 번째 기회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었고, 진재희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재희는 고개를 돌려 산이 있는 도시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투명한 막이 도시 전체를 둘러 일렁이고 있었다.
2라운드의 경계.
보이지 않는 철창이었다.
* * *
난 동생이 사라진 건물로부터 조금 나와 걸었다.
그 뒤로 진재희가 따랐다.
그리고 문득 쇼핑몰 내부에서 볼 수 있었던 상태 창에 대해 떠올렸다.
난 나지막이 상태 창을 불렀다.
하지만 나타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집단을 이루지 않아서일 거야. 들어서 알겠지만, 1라운드는 선택에 의해 왕이 선정되었지만, 2라운드부터는 쟁취니까.”
난 진재희의 말을 들으며 앞서 걸어갔다.
지금 나의 상황이 어떤 집단이라고 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소리였다.
그 조건 속에서는 인원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어찌 되었건, 동생을 찾기 위해선 동생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가야 했다.
도시는 넓다.
사람 한 명이 혼자서 수색하기엔 건물도, 도로도, 골목길도 많았다.
결국 동생이 갔을 만한 곳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동생은 이곳에서부터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경계란 것이 존재하는 이상, 반드시 이 도시 안에 있다.
1라운드의 종료는 각 건물마다 다르다.
진재희 말에 따르자면, 일주일이나 걸린 건 꽤 오래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이 2일이나, 3일 정도로 끝이 난다.
그랬기에 보다 못한 K가 게임에 관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2라운드 진출자들의 주도권은 거리를 점령한 이들에게 있어.”
난 진재희와 거의 나란히 걸었다.
아무것도 없는, 아니 그러니까 시체도 없이 폐차가 열 지어 서 있을 뿐인 이 눈길을 걸었다.
이 대도시에 우리 둘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오묘한 것은 둘째 치고, 우린 사주를 경계하느라 눈동자가 쉴 틈이 없었다.
“1라운드를 거리에서 시작한 플레이어들이 도시를 점령하기 유리할 거야. 건물 출신의 사람들을 포위하고 자신의 팀으로 끌어들이거나, 죽이겠지. 아마 이미 큰 세력군을 이루고 있을지도.”
난 그 말을 들으며 조금 걷다, 반대편 거리에 쌓아 올려진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런 것이 거리 영역 싸움의 결과인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어.”
사람의 시체가 마치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려져 있었다.
그것들은 신호등 높이에 거의 근접할 만큼 높게 올려져 있었다.
누가 소각했는지, 시체는 모두 타 버린 탓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 주위에 저 시체들을 소각한 사람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선택해야 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그들에게 대항할 건지. 아니면 그들의 세력 안으로 들어가 기회를 엿볼 것인지.”
“…….”
2라운드는 1라운드와는 다르게 관리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왕’을 선정하진 않았다.
2라운드의 목표는 단지 이 겨울을 보내는 것.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라면 집단을 형성하는 건 불가피했다.
아무리 진재희가 사람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의 시체 더미를 쌓아 올린 집단에 대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결과를 위해선, 확실한 수를 두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동생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을 것이다.
빌라에서 1라운드를 끝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4일 전이라면.
4일간 이동할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사람들 무리.
안양시 내부의 거리 상황.
동생이라면 어디로 향했을까.
지금 내가, 만약 동생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진재희가 내 곁에 다가오며 넌지시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총이 없는 이상 상대에게 대항할 수단이 없을 거야. 그 상대가 인간이든, 몬스터든.”
“…….”
맞는 말이었다.
지금의 내 몸은 여타 다른 성인 남자들에 비해 약하기 그지없었다.
마지막으로 키를 쟀던 것이 일용직 노동자 교육, 19살 신체검사할 때였으니.
165cm, 54kg.
그것이 나의 신체 스펙이었다.
아직 난 내 몸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약한 상태였다.
그때, 진재희는 내게 물건을 하나 건넸다.
그것은 호신용 전기 충격기였다.
버튼을 누르니 파지직거리며 스파크가 튀었다.
“이런 종류는 왜인지 모르게, 금지 품목이 아니라서 미리 챙겨 두었어. 받아. 그리고 아티팩트 개방은 일주일 뒤. 그전까지는 거주지를 만들어서 안전을 확보해야 해.”
난 그 파지직거리는 스파크를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아티팩트가 개방된 이후에는 내가 널 반드시 이곳에서 가장 강한 자로 만들 거야. 솔직히…… 2라운드는 잘 모르겠지만, 경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괴물들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니까.”
난 전기 충격기를 받아 살펴보았다.
과연 날 위한 안성맞춤의 무기였다.
이 전기 충격기면 신체 스펙이 아무리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한 방에 보내 버릴 수 있으니까.
이것은 그녀가 회귀자라는 이점을 이용해, 미리 준비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쇼핑몰에서 건네주지 않았던 건, 약간 의문이었다. 그녀는 분명 처음부터 내게 접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혹시 날 시험했던 것인가?
진재희는 주위를 힐끗거리며 내게 말했다.
“거주지가 확보되면 아무리 아티팩트가 개방되지 않은 시기라 할지라도, 훈련에 돌입할 거야. 봐주는 건 없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난 전기 충격기를 패딩 주머니에 넣곤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녀를 제대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았다.
동생의 행방을 확인하고 나서야, 타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던 탓이다.
진재희는 두꺼운 회색 야상을 입고 있었고, 털 달린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털모자 안의 얼굴은 긴 속눈썹과 오똑한 코, 보기 드문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모자 밖을 삐져나와 쇄골까지 떨어져 있었고, 말할 때마다 핑크빛이 도는 입술 사이에선 계속해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바지는 조거 팬츠로 수납공간을 확보한 듯 보였다.
그 아래로는 발목 부분이 긴 워커를 신고 있었다.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살피니, 그녀는 리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것이 보였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진재희는 물었다.
“왜?”
“……결론이 뭐야?”
난 눈을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타인의 생김새를 이렇게 살폈던 것이 도대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도로를 향해 한걸음 걸었을 때, 진재희는 내 물음에 답했다.
“세력 밑으로 들어가는 거지.”
“세력?”
“응. 솔직히 내키지 않겠지만, 우린 1라운드에서 대부분의 사람을 잃었어. 우리에게 남은 건 기존에 형성된 세력으로 들어가 왕을 죽이고 그 세력을 차지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기 위해선 안정적인 세력을 찾아야겠지만…… 또 쉬운 일은 아니겠지.”
요약하면 결국 ‘흑 팀’처럼 되자는 것이다.
지난 라운드에서 우리 팀에 숨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권경수처럼.
이전에는 당했지만, 이번에는 놈들의 휘하에 스며들어, 기회를 엿보다가 해당 세력군을 차지한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당장 2명으론 동생을 찾을 수도, 세력을 키워 나갈 수도 없었으니.
난 눈밭을 헤쳐 나가며 말했다.
“만안 경찰서 근처의 세력군에 붙자.”
“만안 경찰서 근처……? 그곳에 세력군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어?”
“응.”
“어떻게?”
내 뒤를 진재희가 뒤따르며 물었다.
푹. 푹.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발이 푹푹 꺼졌다.
발을 내딛는 것보다, 발을 눈에서 빼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간단한 원리야. 네가 만약 위기에 빠졌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아?”
“…….”
진재희는 조금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위기의 근원지를 찾아가 파괴?”
엉뚱한 답변에 난 그녀를 한 번 돌아보았다.
진재희는 두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고, 난 다시 전방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틀렸어. 일반 시민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거야.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대피소야. 실제로 재난 매뉴얼에도 가장 먼저 대피소로 대피하라고 적혀 있고.”
반대편 건물에 웬 큼지막한 구멍이 나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결코 인간이 낼 수 있는 구멍이 아니었다.
“대피소로 가자는 거야?”
“대피소도 좋겠지만. 내가 고려하고 있는 건, 네 가지야. 세력. 안전. 동생의 행방. 그리고 법에 대한 믿음”
“법에 대한 믿음?”
“법이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 어찌 되었건 시민은 위기에 빠졌을 때, 국가가 자신을 구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 쉽게 설명해서 구조대를 기다리겠지.”
이젠 아파트 단지 외곽 도로까지 나왔다.
쇠창살로 이어진 아파트 단지 내부에는 몇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놀이터에서 나무를 모아다 불을 지피고 있었고, 그중 몇 명과 눈이 마주쳤지만 공격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들을 경계하며 그곳을 지나갔다.
여전히 내 뒤로 진재희가 뒤따르고 있었다.
“결국 재난이 발생하면, 거리에 있던 시민들 대부분은 대피소보다는 가까운 경찰서나 군부대를 찾겠지. 아까 말했던 법에 대한 믿음 때문에.”
“응.”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 경찰이라면, 1라운드가 끝난 뒤에도 정부 세력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응.”
신호등 앞으로 걸어갔다.
습관적으로 멈춰 섰다.
하지만 곧 상황을 다시 파악하곤 건넜다.
이제 신호등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진재희는 조금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난 이해하기 쉽게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아까 네가 말했던 세력권. 가장 질서가 잡혀 있고, 안정적인 데다 규모가 거대한 무리는 결국 경찰들이 만들어 낸 세력이라는 거야.”
“아.”
그제야 진재희는 깨달았는지 소리를 내었다.
“동생도 그곳으로 갔을 확률이 크고. 무엇보다 내부 안정성은 다른 세력보다 낫겠지. 솔직히 김동길 같은 세력의 밑으로 들어간다면 내부 불안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거 아냐.”
결국 난 내가 가장 염려하고 혐오했던.
따지고 보면 권경수 같은 사람이 리더를 맡고 있는 세력권을 선택하는 꼴이었다.
진재희는 중얼거렸다.
“대단하네.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생각해 내는 거야? 항상 의문이었어. 전생에도. 지금도.”
“가장 합리적인 경우를 선택할 뿐이야…… 이쪽이야.”
난 황량한 거리를 돌아 들어갔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눈의 깊이는 거리마다 달랐다.
어떤 곳은 종아리까지 올라왔지만, 어떤 곳은 배꼽까지 차오른 곳도 있었다.
또, 눈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눈이 없는 거리에는 대신 인간의 시체가 듬성듬성 쓰러져 있었다.
눈이 치워졌다는 것은 곧 이곳이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의미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곳은 도로를 중심으로 두 사람 정도 지날 수 있는 폭으로 제설되어 있었다.
나는 반대편 건물 옥상을 확인하고, 다시 주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이쪽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란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상가 건물 한 편에서 돌아 나오는 사람 무리들.
대부분이 두려움에 떨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중 몇 명만이 무기를 들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중년의 경찰이 권총을 쥐고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난 그 권총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K를 통해 알고 있었다.
주도권을 가진 경찰들과 그들의 보호를 받는 민간인들.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이곳은 경찰들이 형성한 세력이었다.
그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난 그 세력을 이용할 셈이다.
그리고 세력을 통째로 집어삼킬 것이다. 준호를 찾기 위해서.
중년 경찰은 내게 총을 겨누며 말했다.
“멈춰요. 경찰입니다. 무기를 버리세요.”
난 천천히 두 손을 들었고, 진재희는 들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