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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27화 (27/221)

#제27화. 경계의 너머 (2)

안양, 과천 방면 8차선 도로.

아침이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의 차들로 가득 찬 도로.

리그가 개최되었을 때는 퇴근 시간이었기에 안양, 의왕, 군포 방면의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이주연과 이세범은 일부러 차로 가득한 도로를 걸었다.

세계가 멸망한 뒤로 자동차는 단순한 고철덩이에 불과했다.

피난 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를 버리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몇몇은 차 안에 남아 있지만, 이미 얼어붙은 시체가 되었을 뿐이다.

세범은 커다란 스포츠 가방에 사람들의 소지품을 뒤져 가며 필요한 물품들을 챙겼다.

이세범은 차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라이터부터 의료 용품, 맥가이버 칼이나 담배, 마스크, 건전지 등 필요할 거라고 생각되는 건 모두 뒤졌다.

어떤 물건을 집을 때마다, 해당 아이템이 가지는 정보 창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물건들을 집어 드는 순간에도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정보 창에 세범은 진절머리가 났다.

그리고 도로의 끝에는 피난 가던 자동차들을 막고 있는 포신이 휘어진 전차가 있었다.

그 옆으로는 얼어서 죽어 버린 군인 세 명이 있었다.

이세범은 단숨에 그곳으로 올라가 해치를 열었다.

전차 내부로부터 한기가 올라왔다.

군인 2명이 그 안에서 죽어 있었다.

그들의 품에는 총이 있었다.

세범은 전차 안으로 들어가 그 총을 쥐었다.

하지만 무언가 가벼웠다.

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내 알림 창이 떠올랐다.

[금지된 무기입니다.]

“금지된 무기……?”

그들이 차고 있던 수류탄도 권총도 집어 들었지만, 똑같은 알림 창이 떠올랐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리그에서 기존 인간들의 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대로 권총 슬라이드를 당겨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격발되진 않았다.

‘강시온이 가지고 있던 건…… 뭐였지?’

세범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전차를 나왔다.

어느새 이주연이 다가와 전차 위로 올라왔다.

“뭐 좀 있었어?”

“아니. 아무것도.”

세범은 전차에서 내려왔고, 주연도 그를 따랐다.

리그가 개최된 이후의 도시는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의 수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서로를 경계하느라 도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2라운드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모두 각자의 1라운드를 클리어했다는 의미였다.

1라운드를 클리어했다는 건, 다시 말해 사람을 죽여 봤다는 의미다.

‘그들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우리라고 다를 건 없지만.’

남매는 계속해서 도로를 나아갔다.

세범을 뒤따르는 순간에도 주연은 힐끔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세범이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어? 아니…… 그 애가 걱정되어서.”

주연이 말하는 이는 빨간 목도리를 둘러 준 소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소녀는 쇼핑몰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아이였다.

세범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이제 잊어.”

“하지만.”

“잊어. 누나. 잊지 않았겠지? 쇼핑몰 안에서 내가 했던 말.”

“……응.”

주연은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을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세범의 말.

“우선 우리가 살 것만 생각해.”

세범은 주연의 손목을 잡아끌며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주연은 세범의 머리통을 잡고선 숙였다.

쿵!

“……?!”

남매는 트럭 옆에 바짝 붙어 위협으로부터 몸을 숨겼다.

그때, 세범의 눈동자에 들어온 건, 거대한 발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발.

무슨 동물의 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발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발은 자동차를 쉽게 으스러뜨릴 만큼 컸다.

그 발은 원래 없었지만, 갑자기 반대편 도로에서 나타났다.

주연은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곤, 동생과 함께 숨었던 것이다.

주연은 손가락을 입술 앞에 대며 숨을 죽이라고 표현했다.

세범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곤 그 발을 바라보았다.

구웅…… 궁…… 구웅……

괴상한 울음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찾는 듯, 콩콩거리며 도로를 뛰어다녔다.

마치 스카이콩콩처럼 뛰어다니다 남매가 숨어 있는 트럭으로 다가왔다.

꼼짝없이 당했다고 생각한 그때, 반대쪽 자동차의 운전석 문이 덜컹거리며 열렸다.

“아아아악! 악!!! 죄송해요. 죄송해요!”

“꺄아아악!”

“으악! 도망쳐!”

네 명의 사람이 차 문에서 튀어나와 반대편으로 뛰었다.

보나 마나 1라운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무리였다.

쿵, 쿵, 쿵!

거대한 발은 통통 뛰어오르며 곧장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실제로 그 모습을 볼 순 없었다.

이세범과 이주연은 숨을 죽이고 몸을 완전히 숨기고 있었기에 차마 그 광경을 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쿵, 쿵, 비명 소리, 꾸직거리는 소리, 무언가 납작 눌리는 소리까지.

남매는 숨죽여 괴물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별안간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몇 번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곧 괴물의 발걸음 소리는 멀어져 갔다.

먼저 고개를 든 건, 이주연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사람들이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그 뒤를 세범이 조심스럽게 따랐다.

“…….”

“…….”

짓밟힌 사람의 시체를 마주한 남매는 그곳에 얼어붙었다.

아스팔트 도로에 바짝 달라붙은 시체.

피와 내장, 그리고 살점들이 어우려져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심하게 짓밟힌 4개의 껌딱지가 있는 듯했다.

“우욱.”

이주연은 입을 가리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세범은 반대편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투명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세범은 그곳에 다가가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놓았다.

마치 창문을 만지는 듯했다.

허공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남매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곳은 쇼핑몰의 외벽과는 다른 또 하나의 경계였다.

그리고 그것에 정신 팔린 나머지 두 남매는 뒤에서 접근해 오는 사람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범이 뒤돌아봤을 때, 수십 명의 사람들이 칼을 쥔 채 남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했던 건, 그들 모두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앞 열에 있던 여자가 세범을 바라보더니 이내 마스크를 내리며 웃음 지었다.

“차, 찾았다……. 하하하. 오늘 할당감이다.”

* * *

끼이이익-.

열린 문틈 사이로 악취가 올라왔다.

코끝을 자극하는 구린내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안쪽 방으로부터 무언가 꿈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난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어 방 안을 비추었다.

사박. 사박.

방에는 온통 라면 부스러기, 먹다 만 캔 통조림, 페트병들이 가득했다.

주방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식칼을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다가갔다.

안방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무언가가 들썩이고 있었다.

난 그 방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꿈척…… 꿈척…….”

“쩝쩝…….”

그곳에는 고모가 있었다.

고모와 함께 젊은 여자도 함께였다.

그들은 몇 겹의 옷을 껴입었는지, 몸집이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거대했다.

그리고 두 여자가 돼지처럼 손으로 퍼먹고 있던 보존 음식들.

통조림, 라면, 냉동 만두, 햇반, 음료 등.

그 모든 음식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모으고 모았던, 보존 식량이었다.

이런 일을 대비해 모아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그런 건강 밥상보단 냉동식품, 보존 식품이 더 쌌기 때문에 사 두었다.

그 보존 식량을 쟁여 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이곳에 오는 내내 했다.

왜냐하면 동생이 이곳에 혼자 있다면, 보존 식량만 먹어도 충분히 버틸 만했으니까.

동생이 내가 하나하나 비축해 놓고 있었던 보존 식량을 잘 먹으면서, 버텨 주길 바랐다.

그 생각들은, 지금 눈앞에 마주한 두 짐승들을 마주하고선 산산조각이 났다.

꿈척, 꿈척, 쩝, 쩝…… 쭈압, 쩝쩝.

두 짐승들은 내가 방 안에 들어온 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그야말로 돼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라면을 잘게 부숴, 죽처럼 만든 플라스틱 용기 속 음식을 손으로 퍼, 아가리에 계속해서 음식을 처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고모가, 아니 과거에는 ‘고모라고 불렸던 돼지’가 날 돌아보았다.

늙은 돼지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지레 겁먹고선 자지러졌다.

“시온…… 시온아! 시온아!”

그리곤 갑자기 바닥을 기다시피 다가오더니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시온아. 시온이. 강시온! 살아 있었구나! 정말 오랜만이다. 정말 오랜만!”

늙은 돼지는 다시 엉금엉금 기어가선 어린 돼지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예영아. 예영아. 네 사촌 오빠. 시온이다. 시온이.”

“아, 놓으라고! 밥 먹는데 방해하지마!!”

어린 돼지는 늙은 돼지를 밀치고선 음식들을 허겁지겁 마저 챙겨 먹었다.

늙은 돼지는 다시 무릎으로 기어와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응? 응? 응? 밥 안 먹었으면 여기로 와서 같이 먹자. 고모가 밥. 밥. 밥 맛있게 했으니까.”

저걸?

저 돼지 밥만도 못한.

다 썩어 문드러진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섞은 데다 네놈들의 침이 버무린 사료 같은 것을 같이 먹자고?

“밖에 춥지? 엄청 추워. 엄청 추워. 엄청 추워. 엄청. 엄청. 고모가 보일러를. 보일러를. 보일러를 켤게. 그보다. 이것부터. 이것부터 먹어.”

늙은 돼지는 금반지를 네 개나 낀 손으로 그 정체불명의 음식을 한 움큼 집어 들더니 내게 가져왔다.

난 눈동자만 내려 그것을 바라보았다.

늙은 돼지가 손아귀에 힘을 줄 때마다 음식들이 조금씩 조금씩 삐져나오고 있었다.

“왜. 왜. 아. 안 먹어? 마. 맛있는데?”

식칼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온몸이 미친 듯이 떨려 왔다.

지금 눈앞의 괴물의 얼굴이 마구잡이로 소용돌이쳤다.

팔레트의 작은 점이었던 검은 물감이, 붓에 의해 마구잡이로 헝클어지는 듯한 그런 장면이었다.

“머어억. 먹어. 강. 시…… 온.”

“강…… 시…… 오오온…… 먹…….”

“시………… 온……………….”

목소리조차 끊겨 들렸다.

정녕 눈앞에 있는 이 생명체가 내가 예전에 알던 그 고모가 맞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남겨진 우리 두 형제에게 이제 걱정 말라며, 고모 집에서 지낼 거라고 했던 그 고모가 맞나.

부모의 보험금을 모두 가로챈 뒤에, 우리 형제를 차가운 길가에 버려 버린 그 여자가 맞나.

내 인생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 건, 아니 확실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던 건 고모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차마 용서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는 있었다.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고모가 밉다고 해서, 우리 형제를 버렸다고 해서 당시의 내가 고모를 죽일 순 없는 법이었으니까. 난 동생을 보살피고, 키워야 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세상이 멸망하고 남겨진 동생이 있어야만 하는 이곳에서 동생을 위한 음식을 모두 먹고 있는 당신들은 인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이들에겐 죽음이라는 형벌조차 관대하게 느껴졌다.

문득 권경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계는 지옥이라고, 자신은 이 지옥을 탈출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이 세계는 원래 지옥이었다.

권경수처럼 이 지옥을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선(善)과 연민 같은 감정이었다.

그들은 죽음으로 이 세계를 탈출하려고 하지만, 탈출한 그 세계는 천국이 아니다.

천국은 없다.

지옥만이 있다.

이 세계는 선이 부정한 것이다.

이 세계에선 선으로는 살 수 없다.

그것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다시금 다짐했다.

이 세상이 지옥이라면, 난 기꺼이 악마가 되겠다고.

악마가 되기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쇼핑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권경수는 악마가 되기를 거부했고, 난 악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 온…… 시온아…… 안 먹어?”

덥썩!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돼지의 머리칼을 쥐었다.

늙은 돼지는 머리칼이 잡힌 채로 날 올려다보았고, 나는 차갑게 물었다.

“준호는 어디 갔어.”

늙은 돼지는 입술을 오므리곤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 주…… 준호? 글쎄…… 어디 갔지?”

난 그 순간 주먹으로 늙은 돼지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까아아아악-!!!! 아악……!”

늙은 돼지는 땅바닥에 자지러져선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내질렀다.

그 와중에도 어린 돼지는 먹을 것에 정신 팔려 있었다.

난 자지러진 늙은 돼지에게 다가갔다.

쓰러져 있는 늙은 돼지를 두고 되물었다.

“어디 갔어.”

덥썩.

다시 머리칼을 쥐었다.

이젠 늙은 돼지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모, 모, 몰라! 워, 원래 같이 있었는데. 아, 아니. 우리 집이 박살 나서. 박살. 박살 나서…… 그래서. 너희 집. 먹을 거 찾으러 왔는데……!! 준호. 준호 애새끼. 아니 그 애가. 형 찾는다고 나갔어. 사, 삼 일 전에 나갔어. 1라운드 끝나고. 응. 응…….”

“왜 안 말렸어.”

난 돼지의 양 볼을 손으로 움켜쥐며 물었다.

돼지의 입술이 쭈욱 튀어나왔다.

“내. 내. 내가 왜. 왜? 먹을 것도 별로 없는데. 애. 애새끼는 이제 필요 없잖아. 이 세상에서. 바, 방해만 될 테고. 응? 응? 시온아. 너 남자잖아. 성인이잖아. 세상은 이제 힘이 지배하잖아. 근데 애. 애새끼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치? 우. 우리라면 함께 살아갈 수 있어. 시온아? 그치? 우, 우리 가족이잖아.”

짜악-!

다시 볼을 후려쳤다.

늙은 돼지는 다시 땅바닥에 자지러져선 비명을 내질렀다.

그제야 어린 돼지가 쿰척거리며 이곳을 돌아보았다.

양 볼에는 음식이 가득해 그것을 씹어 대고 있었다.

“어디로 갔는지. 말해. 정확한 위치를.”

“모, 몰라악!!! 공사판에 갔겠지! 너! 공사판에서 일하니까!”

늙은 돼지는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소리쳤다.

공사판은 이쪽에서 동남쪽이다.

공사판은 안양시 바로 아래 있는 의왕시에 있었으니까.

문득 며칠 전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 동생에게 말했던 기억이 났다.

만약 그때, 내가 동생에게 어디에서 일한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동생은 여기 남아 있었을까?

글쎄…….

모르겠다.

난 천천히 칼을 움켜쥐고 방문을 닫으며 두 모녀에게 다가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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