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인간 실격 (3)
청 팀의 왕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지점장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앙상하게 말라 갈비뼈가 훤했으며, 움푹 파인 두 볼살은 그가 좀비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차마 감지 못한 두 눈동자는 충혈되어 빨갰다.
그는 아사(餓死)했다.
김동길은 지난 6일간, 청 팀의 왕을 자신의 집무실에 가둔 채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던 것이다.
이 집무실 바깥에 잠금장치가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음식은 준 것 같았다.
하지만 김동길을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이 죽으면서 누구도 식사를 도와주지 못한 듯했다.
혼자서는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는 노인이었기에, 그는 여기서 굶어 죽었다.
노인은 김동길의 보험이었다.
시스템은 노인을 선택했고, 자신이 왕이 될 수 없었던 김동길은 그를 외부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보단 차라리 집무실에 가둬 놓고 보호하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김동길이 상태 창을 본 듯한 행동을 취한 것은?
아마 ‘위임’ 같은 시스템상 권한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나의 상태 창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각 왕이 가지는 시스템과 권한을 특정 인물에게 위임할 수 있었다.
김동길이 왜 3층 전투에서 피아 식별을 할 수 없었는지, 설명이 되었다.
그는 청 팀의 왕이 아니었으니.
결과적으로 김동길의 생각은 옳았다.
우리는 노인이 아사할 때까지 왕을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때, 권경수가 술 취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불규칙했다.
그러더니 쥐고 있던 작은 천을 노인의 얼굴에 덮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왔다.
모두가 참혹한 장면에 하나둘 지점장실을 나갔다.
이곳에 남아 있던 건, 나와 진재희뿐이었다.
홍 팀의 생존자는 복도 한 편에 몰려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지금 내 뒤에 11명의 사람 중 흑 팀의 왕이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어 줘야만 했다.
같은 공간 속에 날 노리고 있는 흑 팀의 왕이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제 내게는 더 이상의 지체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난 이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만약 흑 팀의 왕이 이대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수일을 보낸다면 내게는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난 하루라도 빨리 이 쇼핑몰에서 나가야 했고, 한시라도 빨리 흑 팀의 왕을 찾아야 했다.
그 걱정들이 한데 뭉치자, 난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투표를 통해 사람들을 한 명씩 색출하는 것.
결국 이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난 결국 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이 싸워 나간 팀원을 죽이는 방법을 떠올렸다.
흑 팀의 왕을 유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살아남은 11명 중 한 명씩 없애다 보면……!
그 생각까지 이르렀을 때.
무언가 소름 끼치는 감각이 등 뒤로부터 느껴졌다.
“하……!”
터억-.
내 오른 어깨에 손이 올려졌다.
난 깜짝 놀라 어깨에 올려진 손을 강하게 내쳤다.
타악-!
그곳에는 진재희가 놀라선 눈꺼풀을 꿈뻑거리고 있었다.
난 그녀를 노려보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힘이 든 것도,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숨이 찼다.
진재희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식은땀…… 괜찮아?”
그녀의 말에 나는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정말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하아.”
난 크게 숨을 내뱉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차가운 공기가 이마에 닿으며 땀을 식혀 주었다.
“우선 돌아가자. 돌아가.”
난 그렇게 두 번 말하고는 그들 사이를 터덜터덜 걸었다.
내가 지점장실을 나가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때, 진재희는 돌아서는 내게 속삭였다.
“걱정 마, 무슨 경우이든. 난 네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들렸지만, 난 애써 대답하지 않았다.
* * *
11층에 돌아왔을 때, 무언가 움직임을 포착한 재희는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K의 아기 천사들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타오르는 불을 진화하고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이다.
2회차 인생에 있어서도 저런 장면은 괴리감이 들었다.
시체를 태우고 있는 불을 진화하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한 천사라니.
진재희는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거둬 상영관 안으로 진입했다.
모두가 기진맥진한 채, 상영관에 도착하자마자 곳곳에 주저앉았다.
몇몇은 정신적인 고통이 심한 듯 보였다.
진재희는 그들을 쓱 둘러보곤 시온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자리에 앉아 무언가 고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서 진재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강시온은 전생에 가장 큰 규모의 군세를 가지고 있던 대군주였다.
그 누구도 위협하지 못할, 인류에게 있어선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던 남자다.
그런 남자가 지금 생각 중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생각 중이란 말이다.
그런 그에게 자신이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
진재희, 그녀의 역할은 그저 그를 지키는 것.
그리고 시험, 확인하는 것뿐.
단지 그뿐이다.
이제 라운드는 막바지였다.
강시온이 이 라운드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진재희는 두 눈 뜨고 바라만 봐야 했다.
만약 이 정도도 해결해 내지 못한다면, 이번 생의 강시온은 전생의 강시온이 아닌 것이다.
시온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다시 고개를 들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그의 곁으로 권경수가 다가왔다.
“식사하시죠. 배고프시지 않나요?”
걱정과는 달리 권경수는 양손에 통조림을 들고 걸어왔다.
그리고 시온에게 건넸다.
시온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참치 통조림, 그리고 생수 한 병이었다.
“포크 같은 건 없네요. 손으로 퍼먹을 수밖에.”
권경수는 멋쩍게 웃고선 참치 캔을 손으로 퍼먹었다.
지금 와서 위생이나 격식 따위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했다.
몰골들이 말이 아니었으며, 몇몇에게선 악취가 날 정도였다.
시온은 물끄러미 통조림을 바라보다 그것을 땄다.
참치의 기름을 입으로 빨아먹곤 손가락을 푹 찍어 참치를 한 입 베어먹었다.
“그러고 보니, 시온 씨가 뭔가를 먹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어느새 참치 통조림 하나를 후딱 해치운 경수가 시온을 두고 물었다.
시온은 이제 두 번째 것을 퍼먹는 중이었다.
“중간중간에 조금씩 먹었습니다. 육포라든지, 뭐…… 그런 거.”
텁-.
시온은 손가락에 올려진 참치를 다시 물었다.
오물거리며 맛보다는 포만감을 느끼려 했다.
오래 씹으면 많이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배에 채워지는 것은 없었지만 그런 기분이라도 내기 위해 오랫동안 씹었다.
권경수는 혀를 내밀어 참치 캔 안쪽에 있던 작은 조각까지 핥아먹었다.
땅그랑.
그리곤 캔을 왼쪽 벽 쪽으로 내던지곤, 담배를 하나 꺼내 물어 불을 붙였다.
“후우-.”
그의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물끄러미 담배 끝이 타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던 경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담배도 구할 순 없잖아요. 여기선.”
“…….”
시온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통조림을 먹었다.
아니, 오히려 신경 쓰고 있지 않았던 건 권경수였다.
시온이 듣든 말든 자기 할 말을 계속해서 이었다.
“그래서 시체를 뒤져서 담배를 가지고 오는 거예요. 참 나. 이게 무슨 전쟁 영화도 아니고. 알죠? 전쟁 영화. 적군의 시체 더미를 뒤져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뭐. 그런 거.”
여전히 시온은 대답이 없었다.
경수는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아니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게 잘못된 건 줄 몰랐습니다. 그냥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 거죠. 담배 없이는 여기서 일 분도 버틸 수 없을 테니까…… 예.”
스읍-, 후.
다시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권경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시온은 그의 담배 쥔 손을 주목했다.
동시에 왼편 엉덩이 밑으로 숨긴 손도 주목했다.
“이거 있잖아요. 이게 뭔지 알아요? 뫼비우스. 제가 이걸 굉장히 많이 봐 오던 브랜드예요. 교생 수업할 때, 아. 그러니까 입대하기 전 20대 초반에. 푸하하! 아, 그때 애들이 맨날 이것만 폈거든요. 놀이터 뒤편에서. 그래서 이걸 뭔 맛으로 피나…… 싶어서 따라 피기 시작했는데, 원.”
후-.
“그게 시작이었죠. 덕분에 지금은 10년째 골초가 되었지만요. 근데 이걸 누구의 품속에서 주운 줄 알아요?”
칙, 지지지…….
권경수는 땅바닥에 담배를 비벼 껐다.
시덥잖은 이야기가 계속 오갔다.
그때까지 강시온은 참치 캔 하나를 비우곤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이제 권경수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그는 세 번째 담배를 꼬나물었다.
“웬…… 중학생 교복을 입은 학생…… 이더라구요. 그 학생은 목 쪽에 피가 꿀떡이면서 나오고 있었고, 숨은 붙어 있었어요. 그 표정 어땠는지 알아요? 막 이래요. 잘 봐요. 꿰에에엑! 커헉! 커헉! 푸하하하! 아 그 표정을 우리 시온 씨도 봤어야 하는데!”
권경수는 갑자기 괴기한 표정을 짓더니 죽은 그 학생 시늉을 해 댔다.
지금껏 평정심을 유지해 오던 그의 모습과는 상반되었다.
그 순간부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시온이 통조림을 내려놓았다.
“경수 씨.”
“그런데 말이에요? 근데 진짜로. 제가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그때, 권경수의 오른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권경수는 시온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담배만 계속해서 피워 댈 뿐이었다.
시온은 인상을 찌푸리곤 다시 물었다.
“경수 씨.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아뇨, 아뇨! 시온 씨. 들어보세요. 제발요! 그냥 제 얘기를 좀 들어주세요.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마지…… 막?”
그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시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눈앞의 권경수란 남자는 심히 불안정하였다.
몸도 수시로 떨고 있었고, 지금껏 평정심을 유지하던 사람이 울음을 터트리려고 하고 있었다.
권경수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채,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멍때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거냐면. 그러니까…… 아. 아……! 그 죽어 가는 학생이 막 살려 달라고…… 그러는데, 저는 그 학생의 품에서 담배를…… 담배를 꺼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담배가 있나 뒤적거리고 있었지요. 스읍- 후-. 근데 정말 무서운 것이 뭔 줄 아세요? 저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는 겁니다……! 스읍- 후우-. 푸하하! 그건 당연한 게 아닌데 말이죠! ……왜요. 시온 씨? 왜…… 지금 떨어요? 스읍- 후우-”
권경수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시온을 돌아보았다.
담배 연기는 시온에 부딪혀 흩어졌다.
흠칫.
시온은 조금 몸을 떨었다.
그리고 시온은 권경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양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광대를 지나 턱에 맺히고 있었다.
권경수는 자신의 눈물을 닦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근데 이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그쵸? 시온 씨도 사람이라면!!!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잖아요! 네!?!!! 말해 봐요!!!”
“위험해. 물러서.”
벌떡!
그때, 시온의 뒤에 있던 진재희가 앞으로 나오며 권경수를 가로막았다.
권경수의 눈앞에는 빛나는 검날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영관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선 그제야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권경수는 그 검날을 바라보았다.
“하아…… 하하하. 아, 참. 재희 씨는 계속 방해만…… 하시네요. 그냥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돼요?”
시온은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권총을 꺼내었다.
그리고 권총을 등 뒤로 숨긴 채, 언제든지 쏠 준비를 하였다.
그제야 권경수는 자신의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근데 있잖아요…… 어차피 제 역할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일어나.”
진재희는 칼을 권경수의 목에 들이밀며 명령했다.
하지만 권경수는 꿈쩍하지 않았다.
“전…… 흑 팀의 왕입니다. 그리고 제 역할은 끝이 났죠.”
“그럼 죽어.”
스응-!
진재희는 검을 휘둘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빠른 순간이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스피드였다.
하지만 그 순간, 권경수는 몸을 비틀어 진재희의 몸을 자빠트렸다.
“?!”
꾸당!
권경수는 진재희의 몸을 넘어트리곤 두 다리로 그녀의 가슴을 압박했다.
그는 거의 광기에 사로잡혀선 진재희를 향해 소리쳤다.
“넌 네가 최고인 줄 알지? 아니, 틀렸어!!!”
권경수는 침을 질질 흘리며 다리 밑의 진재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밑의 진재희는 아무 말없이 권경수를 노려볼 뿐이다.
일부러 빈틈을 보이고 쓰러졌다.
아무리 몸이 약하다고 해도 일반 사람을 상대로 제압당하진 않는다.
하지만 진재희는 권경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지금 이 순간 강시온은 스스로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가 이 리그에서 우승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강시온은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했다.
진재희는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 순간, 강시온은 총을 꺼내 들어 단숨에 권경수를 쏘려고 했다.
하지만 권경수가 한 수 더 빨랐다.
휘릭- 탕!!!!
권경수는 자신을 쏘려고 하는 시온의 팔을 가로채며 뒤로 꺾었다.
권경수를 향해 쏜 탄알은 천장에 꽂혔다.
남은 총알은 이제 한 발뿐이었다.
권경수는 애달프게 소리쳤다.
“시온 씨……!!! X발. 총은 그렇게 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누가 그렇게 근접해서 총을 쏩니까! 예?! 이게 영화야?!!! 처음부터 잘못되었잖아!!! 시온 씨. 군대 안 나오셨죠? 전 총만 10년을 잡아 오던 사람입니다. 지금껏 몇 번이나 당신의 총을 가로챌 수 있었죠. 근데 제가 왜 안 그랬을까요? 그 답. 듣고 싶지 않으세요? 네? 네?? 네???”
“크흐윽…… 으으윽!!!”
경수는 시온의 팔을 더 꺾어 들었다.
시온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시온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권경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남자의 피지컬 차이는 상당했다.
권경수는 180cm가 넘는 키에 몸이 다부진, 건장한 체격의 전직 특전사 출신.
강시온은 170cm가 안 되는 키에 마른 체형의 그저 일용직 노동자.
두 남자가 정면에서 마주했을 때, 승부는 뻔했다.
그때, 이주연과 이세범이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권경수는 시온을 포박한 채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
“멈춰! 아님 쏠 거야.”
그 소리에 두 남매는 그곳에 멈춰 섰다.
이세범의 오른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결코 시온이 죽게 내버려 둬선 안 되었다.
이세범은 천천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 돼…….”
“왜?”
“원하는 게 뭐야…… 뭐든.”
“원하는 거? 글쎄. 많지.”
권경수는 허탈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의 품에는 여전히 강시온이 안겨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총구는 강시온의 관자놀이에 닿아 있었다.
권경수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흑 팀의 왕이 승리하는 조건은 6일간, 이 쇼핑몰 내에서 생존하는 것. 그렇게 된다면 앞서 몇 명의 왕이 살아남아도 내가 승리하게 돼.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 우린 이곳에 온 지 7일째가 돼.”
그 소리에 이세범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살폈다.
11시 50분.
그의 말대로 10분 뒤면 이 게임이 시작한 지 이제 7일 차가 되는 날이었다.
권경수는 조금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조금…… 생각해 보았어.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행했던 모든 것을 신께서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것…… 그런 거 말이야.”
“……기다려.”
권경수의 품에 있던 시온이 말했다.
그는 조금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10분만 더 지나면 네가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신분을 노출한 거야. 모순되잖아.”
“…….”
시온의 말이 맞았다.
권경수는 그냥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면 자신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부러 시온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고 성공할지도 모르는 기습을 펼쳤다.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습이었다.
권경수는 눈물을 흘리며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당신은 끝까지 그렇구나…… 하하. 그래. 뭐…… 그 이유, 말해 줄게.”
그 순간이었다.
시온을 부여잡은 그의 오른팔이 미칠 듯이 떨려 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남자의 떨림이었다.
시온은 그 떨림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말했지? 난…… 더 이상 나로서 살 수 없을 거 같다고.”
시온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있던 그는 총을 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상황은 뒤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손아귀에는 총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생각했거든. 과연 내가 살아남아도 되는지 말이야. 여기서 당신을 죽이면 당신을 포함한 10명은 모두 죽게 될 거잖아. 맞지?”
“겨, 경수 씨이……! 지, 진정해요!”
“제, 제발! 일단 그 총부터 내려놓고!”
“시온 씨가 죽으면 우리도 다 죽는단 말이에요!”
오히려 다른 홍 팀의 생존자들이 더욱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권경수는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두 눈에선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길 나가면…… 어차피…… 어차피 이런 일들의 연속일 게 분명하고……! 그러면 난 언젠가 미쳐 버리게 될 거고……? 계속 생각했단 말이야. 난 과연 최후에 어울리는 남자인지 말이야……! 어? 시온 씨. 제가 최후에 어울릴까요? 아까 말했죠. 왜 당신의 총을 뺏을 수 있었는데도 안 뺏었냐고. 그리고 깃발 뽑기 할 때…… 그때 남몰래 나가 몬스터를 잡았던 것도…… 당신들에게 청 팀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사실도 발 빠르게 알린 것도…… 내 행동은 모순덩어리였어요. 하지만 그…… 이유야…… X나게 간단한 거였어요. 전 저울질 중이었어요.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할 사람이 당신인지…… 아님 나인지!”
“…….”
권경수의 품에 있던 시온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주연은 혼란을 틈타 뒤로 조심스럽게 빠졌다.
그리고 석궁을 집어 들었다.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세범은 이주연을 발견하곤 조심스레 권경수의 시야를 가렸다.
이주연은 화살 한 발을 홈 안에 끼워 넣었다.
‘반드시 맞춰야 해. 반드시……!’
주연은 그렇게 혼자서 되새겼다.
그리고 조심스레 밴드를 당겼다.
권경수는 울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최후에 어울리는 남자는 내가 아니란 말이야. 시온 씨. 시온 씨는 이런 와중에 태연하더라? 응? 설마…… 즐기고 있던 건 아니지? 여긴 지옥이야. 지옥. 이젠 지옥이 펼쳐진 거라고!”
이주연은 조심스럽게 석궁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권경수의 머리를 노렸다.
두 손이 미친 듯이 떨려 왔다.
하지만 주연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이 한 발.
맞추지 못하면 홍 팀은 모두 끝장이었다.
이주연이 그를 겨누고 있을 때, 진재희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재희가 마음만 먹는다면 단 한 순간에 권경수의 목을 베고 상황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고, 결국 지금 상황이 어떻게 종료될지 진재희로서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전생의 강시온은 자신이 없는 경우에서 1라운드를 클리어하고 그렇게 군주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만약 겨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번 생의 강시온은 최종 라운드에 오를 그릇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재희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권경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난 지옥에서 탈출하는 거야. 난…… 난 탈출하는 거야. 잘 가라. 잘 가세요. 여러분. 잘 가세요!!”
훽-!
그 순간 총을 쥔 권경수의 손이 올려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주연은 화살을 담은 밴드를 놓았다.
슉!
화살은 권경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총이 먼저였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곧 알림 창이 떠올랐다.
[1라운드 종료.]
[생존한 팀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