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23화 (23/221)

#제23화. 인간 실격 (2)

“지금부터 흑 팀의 왕을 잡을 겁니다. 모두 준비하세요.”

난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며 홍 팀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일어난 순간, 허벅지가 찌릿찌릿하니 아팠다.

아직 완전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이주연이 깜짝 놀라 내게 다가왔다.

“아, 너 움직이면……!”

“지금부터 단독 행동은 불가합니다.”

내가 강하게 사람들에게 말하자, 이주연은 곧장 꼬리를 내렸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한 중년의 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난 그의 얼굴을 기억했다.

제일 앞장서 청 팀을 무자비하게 창으로 찔러 대었던 사람이다.

체격은 꽤 컸다.

키가 평균 이하였던 내게는 무척이나 큰 덩치였다.

그는 마치 위협하듯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단독 행동이 불가하다니, 그건 어떤 의미죠?”

“말 그대로예요.”

그 말을 한 뒤, 난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란 소리입니다.”

“마, 만약! 벗어나면 어떡합니까?!”

중년 남자의 뒤에 있던 꽤 젊은 축의 남자가 소리쳤다.

그의 한쪽 안경알은 깨져 있었다.

난 그 안경 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일 겁니다.”

그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두가 경직되었으며 사색이 되어선 몸을 조금 떨어 댔다.

맨 앞쪽에 있던 중년 남자가 소리쳤다.

“주, 죽인다니요?! 그, 그게 말이 됩니까?!”

“현 시간부로 제 시야에서 벗어나면 흑 팀의 왕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하건대, 의심받을 행동하지 마세요.”

그들이 어떤 불만을 가지던, 난 흑 팀의 왕을 잡을 것이다.

얼추 몇 명이 후보군에 올랐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없었다.

아직 확인해 보지 못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개인 활동은 금지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활동이 허용되는 순간, 생각해야 할 변수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발을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었다.

안경 남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말 적당히 하세요!”

확실히 전과는 다른 태도였다.

이세범의 말대로 저들끼리 무슨 말이 오간 듯 보였다.

안경 남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모두가 주목했다.

안경 남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계속 소리쳤다.

“당신이 왕인 건 맞지만, 우릴 멋대로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잖아요? 당신이 대통령입니까? 당신이 내 부모예요?! 이건 심하잖습니까!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하실 수 있는 거죠?”

몇몇 홍 팀의 사람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감정이 일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지금 한 발자국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죽고 싶음 마음대로 해.”

“아.”

이제 지겨워졌다.

어쭙잖은 저들의 요구 때문에 내 일을 뒤로 미룰 순 없었다.

지금까지는 외부의 적에 대처하기 위해 합심했다면, 지금부터는 내부의 적을 적출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말을 듣지 않고, 개인 활동을 펼친다면 난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내겐 강력한 무기인 권총이 남아 있었으니.

그들은 내 권총 약실에 앞으로 몇 발의 총알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

두 발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홍 팀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덜컹-!

그때, 상영관 입구로부터 권경수가 뛰어 들어왔다.

“하아…… 하아……!”

권경수는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권경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뒤로 진재희가 따라 들어왔다.

* * *

홍 팀의 인원들은 지하 1층부터 다시 수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목적은 흑 팀의 왕을 찾는 것.

만약 이번 원정에서 흑 팀의 왕을 찾을 수 없다면, 난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내 앞으로 걸어가는 11명 중, 흑 팀의 왕이 있다는 것을.

“권경수가 흑 팀의 왕일 확률이 커. 대비해야 해. 아니면 지금 처단하던가.”

내 곁에서 걷던 진재희가 넌지시 말했다.

난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근거는.”

“너에게 계속해서 총을 요구하고 네가 잠들었을 때에는 계속해서 쇼핑몰 내부를 배회했어. 처음에는 음식을 조금 가져오더니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더라. 뭔가 수상해.”

진재희는 주변을 힐끗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난 걷던 길을 멈추고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추측이지.”

물론 권경수가 흑 팀의 왕일 것이라는 생각은 여러 번 들었다.

그가 내게 계속해서 총을 요구하는 것이나, 아니면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얘기한다는 것.

무엇보다 이세범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만약 내가 권경수를 의심하는 것을 ‘흑 팀의 왕’이 유도했다면 난 놈에게 끌려다니는 꼴이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우선 이 쇼핑몰 내부에서 청 팀의 왕을 찾는 것이 우선이야. 청 팀의 왕을 찾는다면 뭔가 실마리가 풀리겠지. 왜 청 팀의 왕이 지금 죽었는지 말이야.”

난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진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청 팀의 왕이 죽었을 때, 그곳에 없었던 건 너도 포함이잖아? 그렇다면 네가 왕일 수도 있다는 의미겠지. 네가 회귀자라고 밝힌 것도 의도적인 거라면.”

내 말에 깜짝 놀란 진재희가 자신을 변호하려고 들었다.

“아, 하, 하지만 난.”

“하지만 난. 뭐?”

“아…….”

진재희는 당황한 듯 눈꺼풀이 흔들리더니 이내 고개를 픽 숙였다.

“아, 아냐. 네 말이 맞아.”

진재희는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꾹꾹 참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녀의 다음 말을 들어줄 여유 따윈 없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이제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홍 팀은 지하 1층을 살피고 지상 1층으로 올라왔다.

몇 시간 전까지 치열하게 전투를 펼쳤던 현장이다.

그 모습은 끔찍했다.

사람들이 손전등만 어수선하게 비춘 채, 2층으로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들을 불러 세웠다.

“시체를 창으로 한 번씩 찌르세요.”

확인 사살, 그 목적보다는 흑 팀의 왕이 ‘시체’로 둔갑해 있을 수도 있는 변수를 생각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저들끼리 힐끗거리며 망설였다.

제아무리 그들이라도 이미 죽은 자의 시체를 찌르긴 싫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찔러야 했다.

흑 팀의 왕이 우리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체 중에 있는 것이라는 희망.

확률은 적지만 난 그 경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둘 밀대 창을 쥔 채, 시체 사이사이를 걸었다.

푹! 푹!

사람의 신체는 너무나 쉽게 뚫렸다.

생살과는 너무나 달랐다.

뚫린 피부 사이로 걸쭉한 피가 흘러내렸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체는 찌르기만 해도 부패한 내용물이 튀어나왔다.

몇 시간 동안의 작업이 이어졌다.

1층부터 7층까지.

시체를 찌르는 작업과 수색.

육체적인 고통보단 정신적인 고통이 더 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사람들은 심히 지쳐 있었다.

그때마다 권경수가 말했다.

“저기…… 시온 씨. 사람들에게 조금의 휴식을 부여하는 게 어때요?”

“안 됩니다.”

그럴 때마다 난 단호하게 거부했다.

나의 죽음은 홍 팀의 모두가 죽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홍 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따를 수밖에.

시체를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사람들은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르는 와중에도, 오로지 살고자 하는 의지로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흑 팀의 왕은 치밀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확실하게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소리였다.

난 그런 흑 팀의 작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흘렀다.

우린 11층까지 모두 확인했다.

그럼에도 생존자는 없었다.

또 청 팀의 왕이라고 할만한 존재도 찾지 못했다.

물론 흑 팀의 왕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두가 11층에 주저앉아 기진맥진한 채 쓰러져 있었다.

몇몇이 구시렁거리며 불만을 토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속속 들려왔다.

“늙은 노인네를 상대로…… 하…… 차암…… 하이구야…….”

“허리며 종아리며…… 몸이 성한 데가 하나 없네요. 조금 쉬면서 해 주지.”

대부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불만을 가졌다.

난 그 불만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해결해 줄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목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로 전부 끝이야.”

진재희가 넌지시 다가와 말했다.

난 조금 고개를 끄덕이곤 피가 번진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붕대는 피가 다시 차올라 붉게 물이 올라 있었다.

식은땀이 조금 났다.

사실 걷는 것만으로도 많이 벅찼다.

“정말 끝이야?”

난 진재희를 두고 재차 확인했다.

정말 이것이 끝이라면, 이젠 결단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진재희는 조금 고민하더니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 말했다.

“엘리베이터 층에 시체를 버렸어. 한 30구쯤 될 거야.”

“엘리베이터?”

난 그녀의 말을 듣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문을 열어 아래를 손전등을 비추니, 그곳에는 시체들이 엉키고 엉켜 쌓아져 있었다.

볼살을 갉아먹던 쥐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내가 밑을 들여다보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진재희가 같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 시체를 꺼내서 일일이 다시 확인하는 건 역시 무리야.”

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목표 점이 있더라도 저 시체를 하나하나 다시 끄집어내서 확인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해결 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전부 소각해.”

불태우면 된다.

진재희는 내 말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알겠어.”

그녀는 어디론가 가더니 곧 기름이 가득 담긴 통을 들고 왔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대용량 식용유 통이었다.

그녀는 고민도 않고, 식용유를 엘리베이터에 내리부었다.

콸콸콸-.

식용유가 폭포처럼 시체 더미에 쏟아졌다.

갑자기 쏟아지는 기름에 깜짝 놀란 쥐들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진재희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어 불을 붙인 뒤, 빨아 들었다.

담배에 불을 붙여 장초를 그곳에 떨어트렸다.

새하얀 연기 사이로 장초가 떨어졌다.

빙글, 빙글.

장초는 옅은 빛을 내며 떨어져 시체 더미에 부딪혔다.

곧 불이 치솟았다.

화르르르륵-!

검은 연기가 엘리베이터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곳에 있는 자들은 결코 산 자들이 아니다.

난 그 어떠한 동정도 연민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명복을 빌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다, 알림 창이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권경수가 있었다.

권경수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상기된 표정을 하고선, 두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권경수는 나를 마치 괴물을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와 눈을 마주치자, 자연스레 시선을 회피했다.

방금.

무언가 그와 나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반대편으로부터 이세범이 달려왔다.

그는 한 차례 숨을 고르곤 내게 말했다.

“청 팀의 왕…… 찾은 것 같아.”

난 인상을 찌푸렸다.

청 팀의 왕?

흑 팀이 아니라?

그의 말에 모두가 이세범을 돌아보았다.

우린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나섰다.

* * *

그곳은 11층에서 올라갈 수 있는 숨겨진 층이었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열면 그곳에는 또다시 계단이 나왔다.

생존자들은 계단을 따라 올랐다.

뚜벅, 뚜벅.

그들이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알 수 없는 적막이 흘렀다.

계단의 끝에는 12층이 있었다.

일반 손님이라면 들어갈 수도 없는 12층.

그곳은 직원들이 이용하는 사무 공간이었다.

딸깍.

제일 앞 열에 있던 시온이 손전등을 켜며 어두운 공간 속으로 점점 걸어갔다.

이곳에는 시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깨끗한 모습 그대로였다.

차마 세계가 종말한 뒤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양쪽으로 일반 직원의 사무 공간, 그 복도 끝에는 지점장실이라는 명패가 달린 문이 있었다.

시온은 그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끼이이익-.

그들은 그 방 안에 있던 사람을 보고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