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인간 실격 (1)
조심스레 눈을 떴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역시나 이주연과 이세범이었다.
이젠 익숙한 장면이었다.
난 이곳에서 벌써 두 번이나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
“아, 깼다. 다행이다.”
이주연은 웃으며 기뻐했다.
난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데자뷔 같았지만, 분명 두 번째 경험하는 일이다.
난 이곳에 와서 두 번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좀비처럼 깨어났다.
허벅지에는 피로 물든 헝겊이 덮여 있었고, 그 위로 붕대가 감겨 있었다.
난 그 상처를 보며 물었다.
“상황은?”
그러자 곁에 있던 주연은 질린다는 듯 말했다.
“와…… 이 와중에 상황 먼저 묻는 거야? 일단 네 상태부터.”
그때 세범이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대답을 대신했다.
“기절한 지 10시간 정도 지났고, 오늘로써 6일 차야.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어. 그리고 청 팀은 끝났어.”
“끝났다는 건?”
난 상처 부위를 손으로 매만지며 되물었다.
아직까진 욱신거렸다.
“청 팀은 왕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고, 홍 팀의 남은 생존자는 열두 명. 지금은 모두 휴식 중이야. 몇몇은 식량을 얻으려고 나갔고.”
“왕?”
“그래, 청 팀의 왕이 아직 죽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청 팀의 왕은 결국 김동길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리고 김동길은 자신 나름대로의 보험을 들어 두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솔직히 청 팀의 한 명 정도는 이제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가 무얼 하든 이제 홍 팀에게 대적할 순 없을 테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몇몇은 담배를 연달아 태우고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술을 한 잔 기울이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이젠 얼굴만 보고도 그들이 홍 팀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문제는 흑 팀뿐이었다.
“……정찰은?”
“순번대로 돌고 있어. 남은 청 팀의 왕을 찾기 위해 말이야.”
그래서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구나.
그때, 내가 깨어난 걸 보고선 홍 팀의 몇 사람이 다가왔다.
“시온 씨. 깨어나셨군요?”
“다, 다행입니다…… 아…….”
“저희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홍 팀의 사람들은 내 주위로 옹기종기 모였다.
그들은 내게 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고 있었다.
자문을 구하는 것이었다.
“글쎄요.”
하지만 나도 모른다.
이제 알아 가야만 할 일이었다.
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작은 힘이 팔뚝으로부터 느껴졌다.
스윽-, 털썩.
정말 작은 힘인데도 난 그 힘에 의해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 돼.”
이주연이 내 옷자락을 쥐고선 다시 눕혔던 것이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은 무조건 휴식.”
“……?”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이주연은 더 강하게 말했다.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다 또 벌어지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이거든? 당장 의사 만나기 전까지는 움직이면 안 돼. 오늘은 무조건 쉬어.”
“……그럴 순 없어. 어서 빨리.”
내가 다시 상체를 들어 올리자, 주연은 이젠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내 몸은 그 손가락으로 콕 찍는 힘에도 힘없이 쓰러졌다.
다시 누워 상영관 천장을 바라보니, 정말 내 몸이 많이 지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겨우 손가락에 쓰러질 정도였으니.
불쑥, 시야에 다시 두 남매의 얼굴이 나타났다.
“무조건 휴식인데, 무조건 일을 해야겠다면, 난 무조건 널 막을 수밖에 없어.”
주연은 ‘무조건’을 강조하며 말했다.
푹신했던 것이 머리에는 두꺼운 패딩을 돌돌 만 베개가 받쳐져 있었다.
주연은 날 두고 이어 말했다.
“너 그리고 뒤통수도 찢어졌더라? 상처가 깊은 것이 아니어서 봉합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여튼 네 몸 상태는 지금 말이 아니니까.”
“알겠어.”
난 조금 몸을 뒤흔들곤 눈을 감았다.
“그래, 쉴게.”
확실히 난 휴식이 필요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데, 걷는 건 더욱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이대로 내가 쇼핑몰을 배회한다면 ‘흑 팀’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뿐이다.
‘…….’
눈을 감으니 자연스레 동생 준호가 생각났다.
동생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려 노력했다.
동생만 살아 있고, 우리가 만나기만 한다면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동생을 만난 뒤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모해야겠지.
준호는 학교에 가는 것이 싫다며 징징거렸는데, 이젠 학교가 없어져서 어떡하나.
멸망해 버린 세상 속에서 학교라도 만들어야 하나.
이왕이면 동생이 이과 계열로 나아가 어엿한 엔지니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문과로 가더라도 법 쪽이나 경영 쪽이 낫겠지.
난 공사판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때마다 동생의 미래를 생각하며 버텼다.
그것만이 내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준호는 나와는 다르게 꼭 성공해야 했으니까.
적당한 졸음이 몰려왔다.
평소에도 난 눈을 감은 이 순간만큼은 즐겼다.
내게는 변변찮은 취미 거리도 없기에 수면만이 내 유일한 즐길 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때만은 모든 걸 잊고 몸의 피로를 녹일 수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 근접했고 난 눈을 뜨려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말했다.
“자는 채로 들어.”
이세범이었다.
세범은 내 손 아래로 총을 쥐여 주었다.
총은 내 손에 닿자마자 자연스레 사라졌다.
아마 인벤토리로 들어간 것이다.
세범은 말했다.
“네가 기절해 있을 때, 권경수가 그 총을 자신한테 넘기라고 했어.”
조금 놀라 눈을 뜰 뻔했지만 참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말들.
난 그 말들을 들으며 감정을 가다듬었다.
세범은 마지막으로 신신당부했다.
“그러니까 무조건 몸의 회복이 먼저야. 재희 씨한테 들어보니 ‘왕’으로 선정된 플레이어는 몸의 회복이 다른 사람보다는 빠르다고 해. 그러니 오늘 하루는 무조건 쉬는 게 좋아.”
이세범은 말을 끊었다.
아마 주위를 흘낏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네 주변은 나와 누나, 그리고 재희 씨가 번갈아 가면서 지키기로 했으니까…… 알겠으면 새끼손가락만 살짝 움직여 줘. 대답하지 말고. 우린 감시당하고 있으니까.”
난 새끼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곧 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난 아무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간신히 잡아 오던 어떤 끈을 놓는 기분이 들었다.
분노.
아니, 그것보단 허탈함뿐이었다.
* * *
시온은 눈을 감고 있었다.
정확히는 대략 7시간 동안 잠든 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이세범과 이주연, 진재희가 번갈아 가며 지키고 있었다.
몇몇 살아남은 홍 팀의 생존자가 깨어 있는 세범에게 다가갔다.
“학생…… 이것 좀 들어요. 안 피곤해요?”
중년의 여자는 세범에게 통조림과 물 한 통을 건넸다.
아마 몇 번의 정찰 때 얻었던 식량일 것이다.
대부분이 청 팀이 쟁여 두었던 보존 식량들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통조림과 음식들을 몇 개씩 가지고 있었다.
세범은 그 통조림을 받아 냈다.
“감사합니다.”
통조림에 독을 풀 가능성은 없었기에 세범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자 앞에서 묵묵히 통조림 캔을 땄다.
복숭아 통조림이었다.
후르릅, 후릅.
숟가락도 없이 캔에 입술을 댄 채 마시는 세범을 두고 여자가 말했다.
“좀 주무시지 그래요. 시온 씨는 이제 제가 보살필 테니까.”
“괜찮습니다. 걱정 감사합니다.”
세범은 단숨에 복숭아 통조림을 해치우고선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세범이 거부하자, 여자는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여자는 세범의 팔을 쥐려고 했다.
“아, 그러지 마시고. 좀 쉬세요. 네?”
그 순간.
타악-!
세범은 여자의 손을 내쳤다.
여자는 놀라 세범을 바라보았다.
세범은 차갑게 여자에게 말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세요.”
“아…… 네. 미안해요.”
여자는 당황해선 되돌아갔다.
그리곤 한 편에 모여 있던 무리들 사이로 걸어가 앉았다.
그들은 소곤거리며 세범을 힐끗거리더니 저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입에는 계속해서 통조림이나 고블린 육포 같은 보존 식품들을 욱여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범은 혀를 찼다.
“칫.”
세범은 혀를 차고선 시온을 돌아보았다.
분명 눈을 감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 깨어 있었다.
세범은 조용히 말했다.
그들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넌 날 모르겠지만, 난 널 알고 있어. 우린 같은 중학교 같은 반이었으니까.”
세범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정확히는 감시하던 것이었다.
“네가 중학교 이후로 사라졌을 때, 난 솔직히 네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옷…… 보니까, 공사판에서 일하다 온 모양인데.”
세범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곧 감정이 치솟았다.
“넌 내 목표이자. 유일한 희망이었어. 지루함밖에 없던 내 인생에서 넌 유일하게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으니까.”
세범은 시온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세범은 천재였다.
그저 입발린 소리가 아닌 정말 천재.
검사 아버지와 대학 병원 교수 어머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이세범은 어릴 적부터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악기, 운동, 공부, 그림까지.
세범은 인생을 살아가며 모든 일에 대해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입학 시절, 키는 이미 170cm가 넘었으며 외모 역시 출중했다.
이미 그 주위 사람들은 그런 세범을 두고 엄친아 중의 엄친아, 천재 중의 천재라고 입을 모았다.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뽐내기도 했다.
모두의 존경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지라 상대적으로 세범은 거만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세범에게 인생이란 시시한 존재일 뿐이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도전이나 목표 의식이 없으면, 인생이 따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세범에게 벽을 느끼게 한 존재가 있었다.
그것이 중학교 때 만났던 강시온이었다.
전교 석차가 발표되는 날, 세범은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1등, 강시온]
[1등, 이세범]
처음으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졌던 순간이었다.
물론 둘 다 만점으로 공동 1등이었지만, 달랐다.
세범은 개인 과외에 공부 환경, 모든 학업적 요소를 다 갖췄었지만, 시온은 그저 학교 수업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런 남자에게 졌다.
시온은 공부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대표로 나갔던 중학 영재 대회에서도 일등.
학교에서 있던 운동회에서도 항상 일등.
그는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세범은 그런 그를 질투함과 동시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런 시온이 중학교 3학년 무렵, 돌연 자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세범은 적잖이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일하게 친구라고 생각했던 소년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세범은 무한히 뛰어난 것을 쫓는 성격이었는데, 그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가 학업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어린 세범은 삶의 목표조차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시온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세범은 무료한 인생 속에서 무난하게 고등학교 1등, 무난하게 서울대 법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세상이 멸망하고서야,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강시온은 변해 있었다.
그전까지의 시온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의 시온은 그저 목표만을 쫓는, 어쩌면 어릴 적 세범과도 닮아 있는 그런 괴물이었다.
‘젠장.’
까득!
세범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는 손톱을 계속 물어뜯으며 시온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동경, 그리고 목표.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시온은 세범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세범은 한숨을 짧게 내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영관 내부의 사람들은 모두 숨죽여 이야기하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세범이 이들을 보며 다시 과거의 상념으로 빠져들 즈음이었다.
쿠궁!
갑자기 영화관의 불이 밝아졌다.
놀란 몇몇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온은 그제야 두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영화관 상영 스크린에 푸른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청 팀의 왕이 죽었습니다.]
[남은 왕은 이제 두 명.]
“뭐……? 아니.”
세범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곳에는 진재희와 권경수를 제외한 10명이 모여 있었다.
쇼핑몰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도.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홍 팀은 생존자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도 몇 시간에 걸쳐서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청 팀의 왕이 죽었다.
지금 말이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그 곁에 새우잠을 자던 이주연이 침을 흘리다 깜짝 놀라선 일어났다.
“어, 어? 뭐야, 뭐야.”
주연은 손등으로 침을 닦아 내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당황해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때, 시온이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조금 어지러운지 머리를 짚고 있다가 태연하게 말했다.
“난 친구 같은 거 안 둬.”
그건 이세범을 두고 한 말이었다.
세범은 그런 말을 한 시온을 바라보았다.
시온은 조금 머리를 짚고 있더니, 이내 세범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사람도 믿지 않아.”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절뚝거렸지만 상태는 많이 호전된 듯 보였다.
시온은 이곳에 있던 홍 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지겹다. 이제 끝내자.”
시온의 그 말은 너무나 차가웠고, 매서웠다.
그가 끝낸다는 말을 입에 담았을 때, 그가 얼마나 잔인한 결말을 만들어 낼지 세범은 알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의 강시온, 그리고 앞으로의 강시온.
세범은 순간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시온은 홍 팀에게 다가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