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죄의식 (2)
소녀의 울음이 들리는 와중, 권경수는 이빨을 갈았다.
또다시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린 학생에 의해.
그동안 권경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일어난 비인간적인 일을 보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무력함 앞에 권경수는 절망했다.
‘시…… 발.’
권경수는 감정을 죽여 가며 생각했다.
어쩌면 진재희의 말이 옳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그를 보호하려 했던 것은 인간으로서 남아 있는 아주 작은 동정과 연민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을 죽인 직후인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내보인 얄팍한 동정심은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었다.
저 중학생 소녀마저도.
그 앞에서 무력한 자신만을 한탄할 뿐이었다.
“너.”
진재희는 부들거리는 권경수를 불렀다.
권경수는 눈동자만 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새빨간 핏줄이 일어 있었다.
그의 내면으로부터 강한 분노와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솟아났던 것이다.
진재희는 그런 그를 두고 차갑게 말했다.
“거슬려. 조심해.”
스응- 착.
그 말을 한 뒤, 진재희는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갔다.
강시온이 쓰러져 있던 장소로.
말아 쥔 권경수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나쁜 놈이야? 내가 이상한 놈인 거야……? 이상한 건 오히려 너희잖아.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거냐. 우린 인간이잖아……!’
권경수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숨겼다.
묵묵히 애꿎은 아랫입술만 깨물었다.
* * *
살아남은 홍 팀의 생존자는 차례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홍 팀은 11층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정했다.
이세범이 제안했고 모두가 동의했다.
사실 동의했다기보다는 그저 따를 뿐이었다.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온은 세범이 등에 업고 이동했다.
김동길이 죽음으로써 이제 쇼핑몰에서는 홍 팀에 대항할 세력은 없어졌다.
어찌 되었건 이걸로 당장 잠시 동안의 평화가 찾아온 셈이었다.
11층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쇼핑몰 내를 살폈지만, 생존자를 찾을 순 없었다.
9층 이상으로는 아직까지 불이 남아 있었지만, 스프링클러로 인해 거의 다 진화되었다.
지금 이 쇼핑몰 내부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12명을 빼고선.
11층에 올랐다.
영화관이었다.
곳곳에 첫 번째 전투 때 죽은 시체들이 보였다.
아마 대부분이 고블린에 당한 사람들일 것이다.
“상영관 내부가 좋겠어요. 그곳에는 적어도 시트가 있으니까요.”
권경수의 말에 사람들이 동의했다.
1 상영관을 휴식 거점으로 삼았다.
그곳에도 고블린과 인간의 시체는 즐비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시체를 치웠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진재희가 말했다.
“엘리베이터에 버려.”
사람들은 그녀의 ‘버리다’라는 표현이 거슬렸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마땅히 시체를 보관할 만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드드드드륵!
진재희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이곳은 하나의 깊은 구덩이였다.
멈춰 있던 엘리베이터 천장으로 시체들이 하나둘 던져졌다.
시체는 마치 테트리스 블록처럼 쌓여, 곧 4층까지 차올랐다.
사람들은 다시 1 상영관에 돌아왔다.
이제 그들로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강시온이 기절한 와중,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강시온만을 의지하고, 그가 하자는 대로 했는데, 리더를 잃으니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와중에 이주연은 계속해서 강시온의 상태를 살폈다.
강시온을 중심으로는 세범, 경수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쩌적-. 츄르륵.
청 테이프로 붙여 두었던, 그나마 깨끗한 헝겊을 떼어 내니 피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꽤 큰 상처였기에 지혈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시온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죽진 않겠지?”
“죽진…… 않겠지. 근데 병원도 없을 텐데…… 이대로 내버려두면 잘 걷지도 못할 거야.”
세범의 물음에 주연이 힘없이 답했다.
그런 주연을 두고 세범은 차갑게 말했다.
“상관없어. 쇼핑몰만 나가면 이젠 남이니까. 그때까지만 살아 있으면 돼.”
“세범아, 너.”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세범은 매섭게 주연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의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 없었다.
두 남매와 강시온은 만나야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지인’조차 되지 않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룰’에 의해 서로가 묶여 있는 상태였지만 남매로서는 시온에게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주연은 고개를 숙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제가 식량을 조금 구해 볼게요.”
곁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권경수가 끼어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홍 팀 생존자들은 누워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쉽게 나설 것 같진 않았다.
그런 와중 권경수는 자진해서 식량을 구하러 상영관을 나섰다.
권경수가 상영관 문을 열자, 그 열린 틈으로 진재희가 들어왔다.
그녀는 혼자서 어딘가 갔다 온 모양이었다.
권경수는 조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지만 진재희는 무시했다.
그녀는 곧장 이주연에게 다가갔다.
진재희는 이주연에게 쥐고 있던 붕대를 건넸다.
깜짝 놀란 주연이 재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을 주연에게 건넸다.
그 속에는 각종 의료 기구들이 가득했다.
“이, 이건 어디서?”
“내가 가져온 거. 소염제, 붕대, 거즈. 전부 있으니까.”
“아…… 고마워요.”
주연은 재희에게서 가방을 받아 내곤 그 속의 물품을 살폈다.
제대로 된 의료 기구였다.
병원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걸 보고 주연은 웃음을 보였고, 시온의 상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임시 거즈를 떼 버리고 소염제를 시온의 상처에 부었다.
콸콸.
그 순간, 시온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잠에서 깨어나진 않았다.
주연은 정성스레 깨끗한 거즈를 상처에 덧대어 붕대로 감았다.
아직 출혈이 있는 관계로 예비로 묶어 놓은 지혈대는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히 묶었다.
그래도 다행히 과도가 동맥을 비껴갔다.
만약 동맥을 건드렸다면 이주연으로서도 별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네. 정말.”
이주연은 잠들어있는 시온을 두고 쓰린 웃음을 지었다.
진재희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뭐 또 필요한 거 있음, 말해.”
“아. 네. 고마워요.”
그리고 진재희는 말없이 상영관을 나왔다.
끼이익-.
상영관 문이 피로 얼룩져 부식되었다.
요란스런 경첩 소리가 거슬렸다.
그녀는 담배 하나를 꼬나물고선 상영관 입구에 앉았다.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누가 오지 않나, 상영관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후우-.”
입에서 새어 나온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먼 곳에는 시체가 저마다 흩어져 있고, 악취가 났다.
원래 재희는 담배를 태우지 않았다.
전생 5년 차까지만 하더라도.
하지만 빌어먹을 세상과, 역겨운 시체 냄새는 제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담배를 피우며, 그 냄새를 단시간이나마 잊으려고 했다.
스윽-.
재희는 담배를 문 채, 몸을 움츠렸다.
외로운 싸움의 연속.
첫 번째 라운드는 이제 거의 끝이 났다.
지금 상영관 내의 인원들은 이제 전부 끝났다고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게임은 이제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1라운드는 겨우 본격적인 게임에 앞선 체험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
재희는 몸을 웅크린 채, 조금 떨었다.
그가 죽으면 완전히 끝이다.
자신은 우선 그를 시험하는 것과 더불어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두어야 했다.
진재희가 그를 내버려 뒀던 건, 시험의 일환이었다.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판단된 것만 처리했다.
어찌 되었건, 이번 생의 강시온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각인시켜야만 했으니.
그런데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다가 정작 시온을 죽게 내버려 둘 뻔했다.
손가락에 힘을 준 나머지 비틀어진 담배를 다시 물었다.
“정신 차리자…….”
재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두 번의 실수는 없을 것이다.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해내야만 했다.
2라운드가 시작되면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오로지 시온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모든 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함.
그걸 위해선 몇 번이고 사람을 죽일 것이다.
“……몇 번이고.”
재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담배를 몰아 피웠다.
어둡고, 시체뿐이고, 썩은 악취가 나는 영화관 한 편에서.
* * *
주연은 시온을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졸았다.
이미 몇 시간 동안이나 잠을 자지 못했다.
게다가 육체적 피로도 이젠 한계였다.
그런 주연을 두고 세범이 불렀다.
“누나.”
주연은 깜짝 놀라선 고개를 흠칫 떨었다.
그리곤 입가의 침을 닦아 내곤 세범을 바라보았다.
“어? 어어…… 왜?”
“누난,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
“어?”
세범이 무겁게 분위기를 잡았다.
그 소리에 주연은 단번에 잠이 달아났다.
세범이 이렇게까지 무게를 잡고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세범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린 자선 단체가 아니야. 봉사 단체도 아니고. 또 누군가를 구할 의무를 지닌 것도 아냐. 동시에 위인도 아니지.”
세범은 좀 전, 이주연과 시온을 두고 말다툼을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세범으로서는 누나에게 확실히 말해 놔야 했다.
지금까지 바라본 누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장면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주연은 조심히 물었다.
“왜 그래, 세범아.”
세범은 짜증은 냈었지만, 단 한 번도 주연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주연의 나이는 스물일곱. 세범의 나이는 겨우 스물.
나이 차도 나이 차였지만, 세범은 어릴 적부터 누나를 많이 따르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유복한 가정 밑에서 자란 주연과 세범.
주연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못했고 놀거나 먹기를 좋아했다.
그런 주연을 두고 부모는 달갑지 않아 했다.
하지만 세범은 달랐다.
세범은 공부도 잘했고 부모의 말을 잘 따랐으며, 부모를 뛰어넘을 인재였다.
그래서 세범은 주연이 좋았다.
온통 공부밖에 모르는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뜻대로 살고 자신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주연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맞고 집에 들어오면 고등학생이던 누나는 항상 학교에 찾아와 자신을 때린 나쁜 아이를 혼내 주었다.
무슨 일이 있든.
어떤 일이 있든 세범은 주연의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우린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어.”
“하, 하지만. 너도 그랬잖아. 이 남자가 죽으면 우리도 끝장이라고.”
“난 그걸 두고 말하는 게 아냐!”
타악!
세범은 주연의 손목을 낚아챘다.
세범은 잔뜩 열이 올라선 그녀를 두고 말했다.
“누나는 이 남자의 간호를 할 때, 단순히 우리의 목숨이 걸려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간호한 게 아니잖아?”
“……그게 뭐…… 어때서?”
“착각하지 말란 소리야!”
세범은 더욱 흥분하였다.
몇몇 자고 있는 사람이 몸을 뒤척였지만 깨어나진 않았다.
세범은 흥분된 어조로 주연에게 똑바로 말했다.
“이 남자는…… 지금 여기 누워 있는 남자는……! 단지 우리 남매가 여기에서 살아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야. 이 남자도 우릴 도구로써 사용하고 있을 뿐이고. 내 말이 틀려?”
“세범아 너……! 그게 무슨.”
“지금 누나가 하고 있는 그 반론이! 내가 말하는 누나의 문제점이라고! ……잘 들어, 누나.”
세범은 조금 주연의 손을 끌었다.
주연은 놀란 듯, 눈꺼풀이 흔들렸다.
세범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착한 놈이 살아남는 세상은 이제 끝났어. 난 나와 누나를 반드시 살리고야 말 거야. 그게 이 남자를 따르는 거라면 난 그렇게 할 거야. 사람을 죽여야만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할 거야. 왜? 그게 우리 남매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니까.”
“…….”
“그니까 누나도 사적인 감정은 집어치워. 같잖은 연민 따위 말이야. 누구한테도 그 이상의 감정을 품지 말란 말이야. 바보같이! 이 변해 버린 세상이 정말 장난 같아? 사람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 나가는데?”
주연은 조금 고개를 숙였다.
“조금 냉정해져. 누나. 우린 우리야. 이 사람은 이 사람일 뿐이고. 이 사람은 저울질할 줄 아는 남자야.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우리를 버릴 거야. 난 알아. 강시온이라는 남자를. 아주 예전부터 말이지. 이제 알겠어?”
스르륵.
세범은 그제야 주연의 손을 놓아주었다.
세범이 쥐고 있던 주연의 손에 불그스름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주연은 조심스레 그 손자국을 쥐었다.
손목 부분이 얼얼했다.
하지만 그보다 심장이 더 아려 왔다.
그녀는 조금의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곧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알겠어…… 미안해.”
남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권경수.
그는 세 시간 전 식량을 구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잠에 든 걸 확인하고선 조심스레 몸을 뒤척였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몸을 웅크린 채, 영화관 의자에 앉아 숨죽였다.
그는 뿌득뿌득 이빨을 갈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