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죄의식 (1)
“쿨럭! 쿨럭……!”
난 두 차례 기침을 하고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러자 이세범이 단숨에 와서 날 부축했다.
“야! 괜찮아?!”
“하아…… 하아…….”
난 그에게 기댄 채, 앞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보였던 건, 진재희가 남은 모든 청 팀 병력들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우리 홍 팀은…… 으…….
순간 시야가 희미해졌다.
마치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총을 쥐고 있던 주연이 금세 다가와 내 상처를 돌봤다.
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산소가 폐에 공급이 안 되는 듯이 찌릿찌릿했다.
조금 추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세범아, 눕혀. 바닥에 푹신한 것 좀 깔고.”
“응.”
“서둘러!”
“노력하고 있어!”
세범은 빠르게 이동해 바닥에 옷가지들을 덮고선 날 눕혔다.
어두컴컴한 천장만이 보였다.
또 보이는 거라고는 이세범과 이주연뿐이었다.
주연은 내 상태를 살피고는 내 몸 이곳저곳을 매만졌다.
그리고 세범에게 말했다.
“쇼크야. 기도 확보해.”
그녀의 말에 세범이 내 목을 들어 올렸다.
“스읍……! 후아…… 하아!”
그제야 난 숨을 쉬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주연은 한사코 내 상처를 들여다보며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세범은 주연에게 물었다.
“누나, 어떡해야 해.”
“……카, 칼을 빼내야 해.”
이주연은 아직까지도 허벅지에 박혀 있는 과도를 두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숨은 쉴 수 있었지만, 이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세범은 허벅지에 박힌 칼을 쥐려고 했다.
그러자 이주연은 그를 막아섰다.
“기다려. 칼이 동맥을 건드렸다면 빼내는 순간 과다 출혈로 죽을 수도 있어.”
“그럼 어떡해야 하는 건데?!”
“그대로 두는 것도 출혈 때문에 안 돼. 결국 카, 칼을 빼내긴 해야 할 텐데……!”
“어떡하란 거야!”
되려 이세범은 잔뜩 화가 나선 말했다.
이주연은 두 눈을 질끈 감곤 소리쳤다.
“나…… 나도 몰라! 내가 의사도 아니고! 아는 거라곤 부대에서 배운 응급 처치법뿐이야.”
“그거라도 해야지! 아니면 우린 죽는다고!”
“뭐……?”
주연은 깜짝 놀라 세범을 돌아보았다.
세범은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룰! 잊었어?! 왕이 죽으면 우리도 다 죽는 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세범아, 너.”
“콜록!”
나의 기침에 둘의 대화가 끊겼다.
주연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는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곤 속삭였다.
“절대 정신을 잃어선 안 돼. 숨을 계속 쉬고 몸에 긴장을 놓지 마. 내가 최선을 다해서 뭔가 해 볼 테니까, 무조건 버텨. 내가 손을 놓는 순간까지 말이야.”
“흐으, 흐우…… 흐윽……!”
난 고개를 두 차례 끄덕였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난 그녀의 말대로 정신을 붙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주연이 이세범에게 무언가를 부탁하자, 이세범은 단숨에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이주연은 내 곁에 머물며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나도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 굉장히 무서웠다.
죽음이라는 영원한 잠보다 동생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공포가 더 컸다.
하지만 난 살아남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잠시 뒤 이세범이 허겁지겁 달려와 물건들을 건넸다.
그 물건을 분명 봤는데도 눈앞이 흐릿해 확인할 수 없었다.
곧 이세범이 과도 손잡이를 쥐었다.
그의 손이 조금 흔들릴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주연은 손가락을 들어 내게 수를 세었다.
셋…… 둘…… 하나.
그 순간 이세범은 단숨에 과도를 빼내었다.
그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의도할 수 없는 본능적인 비명이었다.
“아아아악!”
이주연은 때를 놓치지 않고 어디선가 주워 온 깨끗한 헝겊으로 상처 부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피 묻은 옷을 몸쪽 가까운 곳에 둘러 강하게 묶었다.
있는 힘을 다해.
꾸우우욱-!
이세범은 이주연에게 바늘과 파란색 실을 건넸다.
그렇다.
옷을 수선할 때나 쓰는 바늘과 실이었다.
이주연이 세범을 두고 뭐라 말하자, 세범은 주연을 대신해 내 오른손을 쥐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이주연은 이제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침을 삼켜 가며, 바늘이 내 살집을 꿰뚫어 반대편으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졸린 상태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분명 시야에는 그들의 모습이 담겼지만 머릿속에 담기는 내용은 없었다.
그저 난 천장과 이주연, 이세범 그리고 조금씩 흔들리는 몸의 감각만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이세범이 내 손을 스르르 놓자, 그제야 난 정신을 잃었다.
* * *
“가아악…… 아아악…… 푸흐흐…!”
김동길은 가래침을 내뱉으려다 이내 웃었다.
그는 목 끝에 칼날이 닿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재희는 인상을 찌푸리곤 단숨에 그의 오른 어깨를 베었다.
서걱! 푸슛.
그의 오른 어깨로부터 피가 솟았다.
그러자 김동길은 또다시 웃었다.
“배가 뚫렸는데…… 이까짓 어깨 하나 벤다고…… 뭐 달라져……? 멍청한…… 새…… 끼…….”
그의 말은 느리고 애처로웠다.
그러자 진재희는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더 고통스럽게 해 줄 수 있어. 손톱부터 이빨까지 그리고 말만 하면 되니까 눈알도 뽑아 줄 수 있어. 귀도 필요 없겠네.”
스윽-.
진재희는 무릎을 접어 김동길과 시야를 마주쳤다.
김동길은 부들거리면서도 진재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금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야. 난 알아. 빨리 그냥 죽고 싶겠지. 그냥 죽여 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진재희의 말투는 살얼음처럼 차가웠다.
어떤 감정도 실고 있지 않았다.
“난 사람을 아주 많이 베어 봤어. 정말 많은 사람을 말이야. 그러니까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죽이는 방법도 알고 있지…… 여기부터 여기.”
진재희는 친절히 손가락으로 김동길의 목 부위를 그었다.
“목뼈가 가장 느슨한. 이 이어진 부분을 칼날로 내려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 거야.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자비다.”
김동길은 물끄러미 진재희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웃었다.
그리곤 침을 뱉었다.
“퉤.”
피가 섞인 그의 걸쭉한 피가 재희의 오른뺨에 달라붙었다.
침은 걸쭉하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진재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지금껏 내가 이 얼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내장, 피, 침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겨우 침 따위로 도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진재희는 검을 검집에 넣고선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단검을 쥐었다.
“귀부터 잘라 줄게.”
“……X신 같네.”
“애초에 왕은 바뀔 수 없고…… 지금까지 왕 행세를 하던 네가 왕이 아니라면…… 일부러 엿 먹이려고 숨겨 둔 건가? 어차피 시간문제일 텐데.”
진재희는 계속해서 물었지만 김동길은 침묵했다.
그때, 김동길은 생각했다.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최고에 있을 순 없다고.
그에게 있어서 이곳에서의 결말은 딱 두 가지였다.
모두 사는가, 모두 죽는가.
결국 결말은 후자였다.
귀를 자르려던 진재희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전생에 이어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던 재희에게도 그 장면은 믿을 수 없이 기괴하고 비이성적이어서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응그으윽기으으으윽……!”
김동길은 자신의 혀를 삐죽 내밀고 있었다.
그것을 피가 철철 나도록 깨물고 있었다.
아래턱은 좌우로 갈 듯 움직였으며, 두 눈은 충혈되어 당장이라도 진재희를 죽일 것처럼 부릅뜨고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입꼬리는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우둑!
그는 곧 자신의 혀를 잘라 냈다.
그의 눈동자가 위로 뒤집어지더니, 곧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 죽음 앞에 진재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귀에 대고 있던 칼을 거둘 뿐이었다.
* * *
청 팀과 홍 팀의 전쟁은 끝이 났다.
홍 팀의 사상자는 많았다.
32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12명뿐이었다.
하지만 청 팀은 모두 죽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부상으로 부들거리는 사람까지 합하여, 괴멸했던 것이었다.
홍 팀은 승리했지만 침묵했다.
“으으…… 내가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아…….”
“우웩! 어어웨웩!”
토를 하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그중에는 절망에 빠져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훌쩍이는 사람도 있었다.
이주연과 이세범은 시온을 돌보는 중이었다.
대부분이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살아남은 존재 중에, 누구 하나 찌르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세 명의 홍 팀 학생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중생이 칼을 쥔 채, 묵묵히 시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체는 이곳에서 만나 조금이지만 연(緣)을 쌓았던 옆 학교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의 몸은 칼로 난도질 당해 있었고, 두 눈은 모두 뜬 채로 죽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소녀는 물었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누구를 특정해서 물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무나 대답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더 이상 이곳에는 사회가 규정한 ‘어른’ 따윈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약한 존재들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소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흐느끼거나 미쳐 버린 머리를 감쌀 뿐이었다.
그때, 매장 한 구석이 요란했다.
“히이이익!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시체 더미에서 죽은 척하던 청 팀의 사람이었다.
그 앞에는 권경수가 서 있었다.
남자는 사십 대로 보였고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
남자는 권경수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선 사정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저, 저, 저, 저한테는 중학생 딸이 있단 말이에요. 저, 저한테는.”
권경수는 차마 그 남자와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리곤 두 눈을 질끈 감고선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자 남자는 더 애달프게 소리쳤다.
“우, 우, 우리 이러지 맙시다…… 네? 같은 대,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정말…… 꼭 이래야 합니까? 네??? 허어엉.”
남자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마치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 부모 앞에서 훌쩍이는 아이처럼 울었던 것이다.
“허어엉! 허어어엉…… 제발…… 제발……!”
권경수는 두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굳이 우리가 이렇게까지 싸울 필요가 있나.
어차피 상황은 다 끝났는데.
그렇지 않는가.
권경수는 남자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진재희가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검으로부터 피가 뚝뚝 떨어졌다.
살기를 느낀 권경수가 진재희를 막아섰다.
“잠깐만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대를 두고 굳이 그럴 필요 있어요?”
“전의? 조금 전까지는 그것이 살의였지. 잊었어? 만약 상황이 반대였다면 저 남자는 네 목에 칼을 들이밀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죠. 현실은 지금 이 상황이고. 이 이상 불필요한 살상은……”
“불필요한 살상?”
진재희의 반박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진재희는 한 발자국 더 권경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똑바로 말했다.
“착한 척 굴지 마. 너도 방금 전까지 사람을 죽였잖아? 그건 어쩔 수 없이 죽인 거야? 그리고 이건 불필요한 살상이고?”
“아…… 아…….”
권경수의 얼굴이 사색으로 질렸다.
조금 전, 상황.
진재희는 혼자서 수십 명의 청 팀 인원들을 베어 냈다.
그 모습을 권경수도 똑똑히 보았다.
눈앞의 여자는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였다.
그 존재 앞에선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재희는 쐐기를 박았다.
“웃기지 마. 넌 그냥 네 죄의식을 이렇게라도 해소하고 싶은 거야.”
“…….”
권경수는 그 말 앞에서 무력했다.
아무런 대답도,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진재희는 입술 옆에 묻어 있던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곤 이어 말했다.
“알겠으면 비켜. 죽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진재희는 그를 두고 지나쳤다.
그 순간이었다.
타악-!
권경수는 진재희의 손을 낚아챘다.
진재희는 그 자리에 멈춰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살인이라는 거 변명하지 않겠어요. 그게 내 죄의식을 해소하는 거라고 해도 변명하지 않겠어요. 그냥, 그냥 이젠 안 돼. 더 이상의 살인 행위는. 내가 용납할 수 없어요!”
“……유치한 영웅 놀이는 딴 데서 하고. 손 놔. 아니면 베겠어.”
“못 놔요. 차라리 내 손을 베.”
“못 할 줄 알아?”
진재희는 혀를 찼다.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었다.
진재희는 힘을 주어 벗어나려고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권경수의 팔을 베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두를 경직되게 한 인물이 있었다.
푹!
“커헉! 어어욹…… 칵……!”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곳에는 이미 목에 칼이 박혀 부들거리고 있는 청 팀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칼을 쑤신 사람은 다름 아닌 홍 팀의 살아남은 여중생이었다.
소녀는 남자를 찌르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터벅터벅 돌아갔다.
그리고 구석 진열대에 다가가서 그곳에 앉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곧 소녀는 소리 죽여 울었다.
처절하고 애달프고 비참한 울음이었다.
이곳에 있던 모두가 그 광경에 침묵했다.
모두가 이미 괴물이었다.
같잖은 연민, 동정감 따윈 없는 살육 괴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