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4화 (14/221)

#제14화. 깃발 뽑기 (1)

“깃발 뽑기! 입니다.”

지잉-.

또다시 쇼핑몰의 홀로그램 지도가 펼쳐졌다.

각 팀의 거주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선, 난 그 지도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게임이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느껴지던 불안.

그 어느 층에도 ‘흑 팀’의 거주 지역 표시는 없었다.

물론 흑 팀의 목표 깃발은 표시되어 있었다.

흑 팀은 인원수도 전력도 알 수 없지만, 분명 이 쇼핑몰 내부에 있다.

그것이 룰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홀로그램 지도를 살폈다.

3층에는 청 팀의 깃발.

6층에는 흑 팀의 깃발.

9층에는 홍 팀의 깃발.

각각 다른 층에 꽂혀 있었다.

“각기 다른 깃발이 다른 세 개의 층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차례로 3층은 청 팀의 목표, 6층은 흑 팀의 목표, 9층은 홍 팀의 목표입니다. 어때요? 쉽죠?”

결과적으로 생각하자면, 홍 팀은 청 팀과 가까운 층인 9층에 있는 깃발을 잡아야 한다.

반대로 청 팀은 홍 팀과 가까운 3층에 있는 깃발을 잡아야 한다.

말로는 쉽다고 말했지만, 결국 공수 밸런스를 생각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목표 깃발을 수거하지 못하는 팀에게는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부여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목표 깃발을 무조건 잡아야만 한다는 거죠.”

빙글-, 빙글-.

K는 허공을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누워 버렸다.

말 그대로 허공에서 누워 버린 것이다.

페널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만 들으면 죽음과 필적하는 페널티일 것이다.

아마 그걸로 게임의 판도가 뒤집힐 것이다.

이번 게임, 무조건 깃발을 회수해야만 했다.

“여러분들이 하도 안 싸우니까, 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빨리 싸우셨어야죠. 막 피도 튀고, 내장도 쏟아지고! 네?”

K는 힐끗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날 지켜보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K는 빙글빙글 손가락을 돌리며 설명을 이었다.

“제한 시간은 지금부터 4시간입니다. 참고로 이번 게임에서도 왕을 죽인다면 그 시점에서 1라운드는 끝. 규칙은 간단하죠?”

뽕!

K의 손에 팝콘이 나타났다.

그녀는 팝콘 통 안을 휘적거리더니,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무심하게 말했다.

“그럼 게임 스타트.”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2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두 명이 뛰어 내려왔다.

그들은 헐떡이는 숨을 꿀떡 삼키며 소리쳤다.

“뭔가 있어야! 뭔가 있어!! 깃발을 머리에 꽂은 쥐새끼가 있어야!”

“3층에 몬스터가 있어요!”

불침번을 맡겨 놓았던 두 사람이었다.

난 그들을 한 번, K를 한 번 돌아보았다.

옆에 있던 이세범이 넌지시 물었다.

“어떡할 거야?”

그 순간, 그의 물음이 왜인지 이상하게만 들려왔다.

어떡할 거냐고?

다른 방안이 있나.

눈앞의 상황을 마주하는 것밖에는.

“시작해야지.”

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사람들이 상기된 표정을 한 채, 하나둘 내게로 모여 들었다.

이제 본격적인 청 팀과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난 찰나의 순간, 어떤 묘수를 생각해 냈다.

“잠깐. 이세범, 이주연.”

두 남매를 불렀다.

* * *

11층 청 팀, 거주 지역.

“자. 이해하셨죠? 그럼 바로 시작해주세요.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이곳에 있던 K 역시 그들에게 특별 게임에 대한 규칙 설명을 끝냈다.

그러자 김동길은 K를 보며 말했다.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있다는데, 그게 뭐지?”

그러자 K는 인상을 팍팍 구기며 김동길을 돌아보았다.

“그런 것까지 알려 줄 의무는 없습니다만. 그걸 알려 줘야 했더라면 제가 진즉에 알려 줬겠죠. 질문 또한 받지 않겠다고, 몇 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조금만이라도 생각하고 말씀해 보세요. 동길 님.”

“…….”

그녀의 말에 김동길은 조용히 손을 내렸다.

‘X 같은 년.’

복잡하게 되었다.

청 팀은 결국 식량과 식수 유지력으로 홍 팀을 압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K에 의해 완전히 무너진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홍 팀에 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싸움을 걸어야 했다.

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어떡하죠, 지점장님?”

“……10명만 뽑아. 건장한 애들로만. 우선 9층을 지켜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이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을 선별했다.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들로 10명을 뽑았다.

청 팀 내에서도 말썽을 부리는 깡패 무리였다.

그들은 이따금씩 김동길에게 반기를 드는 무리였다.

그들을 공격대에 편성하자니, 제아무리 김동길이라도 무리가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을 수비대로 편성했다.

김동길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기를 쥘 것을 지시했다.

그들은 식칼과 나이프로 무장했다.

적어도 무기로는 홍 팀을 압살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김동길의 생각일 뿐이었다.

공격 준비를 끝낸, 부하 직원이 김동길에게 다가와 말했다.

“준비되었습니다. 지점장님.”

“출발해.”

그의 지시 아래, 총 89명의 공격대가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제한 시간 24시간.

짧은 시간 내에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 만큼 우리도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건, 운용할 수 있는 인력자산이 우위인 것도 청 팀이고 개개인의 무장 수준이 우위인 것도 청 팀이다.

“이, 이거면 됐어요?”

“이쪽도 죄다 모아 왔습니다.”

“형. 이 정도면 돼요? 소화기.”

학생들로 이루어진 3명의 팀이 매장 곳곳에 비치된 소화기를 모았다.

등에 멜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난 그 세 명의 학생에게 말했다.

“너흰 내 명령에 맞춰서, 그 소화기를 분출하기만 하면 돼. 명심해. 내 명령에만 움직여. 그리고 항상 내 곁에만 붙어 있어.”

“……네!”

“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화 부대(1)가 창설되었습니다.]

난 재빠르게 다음 사람들을 살폈다.

완성된 석궁을 사용하는 3명의 인물.

이세범, 이주연 그리고 나.

그래도 한 번씩이라도 사용해 본 사람들이 드는 것이 옳았다.

우린 매장 내, 구비되어 있던 가방을 메어 그 안에 화살을 가득 담았다.

화살을 담고 있는 동안 한 사람이 내게 달려왔다.

“저, 학생. 이쪽도 준비 다 되었어.”

난 중년 남자의 말을 듣곤 반대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밀대 창을 두 개씩 어깨에 짊어진 총 22명의 주력 공격 부대가 서 있었다.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어른들.

그래도 이곳에서 건장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였다.

그럼에도 청 팀의 수에는 당해 내질 못할 것이다.

청 팀은 적어도 70명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좋습니다. 열 맞춰서 에스컬레이터 앞에 대기해 주세요.”

“알겠어요, 학생.”

[투창 부대(1)가 창설되었습니다.]

지이익-!

우리 셋은 각각 17발의 화살을 스포츠 백에 넣고선 등에 메었다.

[석궁 부대(1)가 창설되었습니다.]

왜인지 신이 난 이주연이 웃으며 말했다.

“왠지 두근거리는데? 서바이벌장에 온 것 같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두근거리는데? 누나, 그게 말이야?”

“아, 왜 또 짜증이야. 그냥 해 본 말이잖아.”

시끄러운 두 남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전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정찰병 1명 / 식량 제작 4명 / 불침번 6명 / 석궁병 3명 / 투창병 22명 / 소화병 3명.

총 39명이 구성하는 홍 팀이다.

불침번 6명에게는 주둔지를 방어하라고 지시했다.

어찌 되었건, 그들의 침투 경로를 모두 파악할 수 없었으니 주둔지를 지킬 병력도 필요했다.

이곳에는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바리케이드도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 9층의 깃발을 차지하는 것이다.

3층의 깃발 방어전은 온전히 운이었다.

페널티만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결의에 차 있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난 그들을 두고 말했다.

“제가 지시한 대로만 움직여 주세요.”

난 그들에게 이번 작전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설명을 듣던 사람들은 놀란 듯, 상기되더니 이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반드시 살아남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것이고요. 믿고 따라 주세요.”

난 그 말을 끝으로 그들 사이를 걸어 나갔다.

그리고 제일 먼저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내 뒤로 28명의 사람이 뒤따랐다.

* * *

7층, 식량 보급처.

화장실에서 고블린 육포를 만들고 있던 권경수는 느껴지는 인기척에 조심스레 입구를 살폈다.

그러자 안쪽에서 잔불에 입바람을 불던 여자가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경수 씨, 왜 그래요?”

“쉿, 누가 오고 있어요. 불 꺼요.”

후-.

경수의 말에 사람들이 서둘러 잔불을 꺼트렸다.

그들은 경수의 말을 기다렸다.

경수는 조심스레 화장실에서 나와 7층을 살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청 팀의 인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그들을 확인한 권경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 팀은 대열을 맞추어 내려오고 있었다.

적어도 50명, 아니 그보다 많은 인원이 각자 무기를 쥔 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위엄 있으면서도 당당했다.

그리고 맨 앞 열에는 지점장, 김동길이 걸어가고 있었다.

탈출 경로는 생각해 두었다.

이곳에서 바로 왼쪽으로 돌면 계단이다.

“서두르죠. 청 팀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권경수는 다급하게 고블린 육포를 챙겨 들었다.

그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허둥지둥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어서 빨리 이 사실을 시온에게 알려야 했다.

권경수와 팀원들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다 권경수는 내려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머, 먼저 내려가세요!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겨, 경수 씨?!”

그리고 그는 후다닥 다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경수는 팀원과 합류하여 강시온이 있는 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온 그의 옷자락에는 피가 조금 묻어있었다.

* * *

김동길은 9층에 방어 인원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의 주력 부대는 7층을 넘어 6층으로 내려갔다.

“……젠장.”

6층에 온 김동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김동길은 진열대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깃발을 머리에 꽂은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쫑, 쫑, 쫑.

키는 1m가 안 되었다.

맨들맨들한 피부에 다리는 있지만, 팔은 없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깃발을 꽂고 있었다.

6층의 깃발은 흑색이었다.

깃발 몬스터는 이쪽 무리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 층을 배회하고 있었다.

‘젠장, 이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 버린 건지.’

뿌득-.

김동길은 이빨을 갈았다.

쇼핑몰 지점장이 된 지 이제 3개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이곳까지,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약자를 처절하게 짓밟으며 올라왔다.

흙수저 김동길이 사는 방식이었다.

이제야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데, 드디어 누구든 우러러볼 위치에 섰는데.

세상이 멸망해 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조금의 자비는 남아 있었다.

사람이기에 남아 있던 자비였다.

“먼저 공격하지 마. 싸움을 포기하는 자들은 생포해.”

“네, 지점장님.”

저들도 결국 우리와 마찬가지인 사람.

시스템이 규정한 원칙 아래,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입장에 놓였다.

하지만 김동길은 굳이 피를 보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선택할 뿐이다.

첫 번째 시도 역시 최대한 피를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들의 항복을 유도했다.

그것이 김동길의 방식이었다.

“3층입니다. 지점장님.”

“준비하세요.”

모두가 김동길의 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청 팀의 주력 부대는 서서히 3층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의 손전등이 어두컴컴한 3층을 비추었다.

고요했다.

소름 끼치도록.

어디선가 시체 썩은 내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반대편 상점 앞에 청 팀의 깃발 몬스터가 있었다.

“지점장님. 저기 있습니다.”

“아직 움직이지 마.”

홍 팀에는 상당히 위험한 사내가 있다.

그가 단순히 아무런 저항도 없이 몬스터를 내주진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동길은 신중했다.

곧 변화가 시작되었다.

취이이익-! 취이이익!!!!

전방으로부터 무언가 분출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청 팀의 인원들이 움츠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새하얀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연기라기보다는 마치 밀가루를 하늘에 흩뿌려 놓은 듯한 움직임이었다.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추어 보아도,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

청 팀은 순식간에 당황했다.

김동길은 소매로 코와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그 연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소화기?”

그가 연기의 정체를 알아챈 바로 그 순간이었다.

쉐엑-!

연기를 뚫고 나오는 화살.

‘화살?!’

김동길의 눈에 마치 슬로 모션이라도 걸린 듯, 화살은 그대로 그를 스치듯 지나가 곁에 있던 부하 직원의 이마에 꽂혔다.

폭!

새빨간 피가 허공에 튀었다.

“어…… 어……?”

부하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더니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쿵!

부하 직원은 이마에 화살이 박힌 채로 죽었다.

상황을 대비하기도 전, 또 다른 화살이 날아들었다.

쉐엑-!

이번에는 김동길의 오른뺨을 스쳐 갔다.

“윽!”

조금이라도 빗맞았다면 즉사였다.

그의 오른뺨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김동길은 떨리는 두 손가락으로 피를 매만졌다.

그리고 그 새빨간 피를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이…… 이……!”

김동길은 휘청거렸다.

곧 주변 인물들이 그를 부축하며 일으켰다.

사방은 하얀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불리했다.

원래라면 그는 이성적으로 대응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홍 팀을 인간적인 판단으로 살려 두려고 생각했던 그 생각 때문이었다.

오만이었다.

욕심이었다.

결국 서로 죽고 죽이는 ‘적’이었을 뿐이다.

지금껏 김동길이 살아온 인생처럼.

약육강식.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강자가 필요하다.

과도한 연민은 오히려 죽음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일었다.

그의 뺨에서 흘러내린 핏줄기가 턱에 맺혔다.

그는 중얼거렸다.

“모조리…… 죽여……”

“지, 지점장님?”

슉!

또다시 날아드는 화살.

뒤에 있던 여자의 어깨에 명중했다.

여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그제야 김동길은 소리쳤다.

처절하게.

“한 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죽이라고-!!!!! 전부 돌격해!!!!”

그의 처절한 소리침과 함께, 청 팀의 주력 부대 총 79명이 안개 속으로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식칼이 들려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