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비약적인 발전 (1)
1층, 홍 팀 주둔지.
시체를 모두 옮겼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주둔지 점검을 했다.
중간중간에 토사물들이 가득했지만, 지금 그것까지 신경 쓸 순 없었다.
전투가 한 차례 있었고, 시체를 옮기는 작업 그뿐만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주둔지를 옮기는 일까지.
사람들은 심히 지쳐 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6시 20분, 아침 해가 뜰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벌써 몇 시간째 잠을 자지 않았다.
노인과 아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신체 건장한 성인들 역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먹을 것도 변변치 않고, 냄새는 고약한 데다 불안감까지.
그들에게는 지금 휴식이 필요했다.
모두가 자고 있을 때, 청 팀이 공격해 온다면 뭐 하나 제대로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불침번을 정해야 했다.
“잠시만 주목해 주세요.”
사람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도, 날 바라보았다.
“불침번을 정하죠. 자원을 먼저 받겠습니다.”
단순하게 2인 1개 조로 총 3팀을 구성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 엘리베이터.
각각 1개 조씩 배정했다.
정찰 나가 있는 진재희 한 명 제외.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 권경수와 4인, 다섯 명 제외.
6명을 제외하면 총 33명의 인원이 이곳에 남아 있었다.
3개 조면 6인, 돌아가면서 2시간 간격으로 불침번을 선다면 24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인력의 생산성을 고려했다.
굳이 모든 인원을 불침번에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불침번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무엇보다 전력 강화였으므로 최소한의 인원만 빼내어 불침번 경계를 서게 만들었다.
“6명만 불침번 경계를 서도록 하겠습니다. 불침번은 2시간 간격으로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 대신, 모든 작업에서 열외시켜 드리겠습니다. 노인, 아이 중에 받죠.”
신체 건강한 장정들은 불침번에서 제외한다.
그 말에 몇몇 어른들이 손을 내렸다.
곧 아이 둘에 노인 넷이 앞으로 나왔다.
난 그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근무 중에는 단 한 순간도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화장실도 근처의 동료에게 경계를 부탁하고 다녀오세요. 불침번은 중요해요.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만약 위험을 감지하거나 어떤 일이 발생하면 우선 도망치세요. 명심하세요. 항상 목숨이 우선입니다.”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난 그중 키가 작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해봐야, 13살.
기껏해야 준호의 또래 정도로 보였다.
난 아이에게 말했다.
“이건 중요한 거야. 정말 중요한 거야. 남은 어른들이 해결법을 찾을 때 동안 너흰 우리들의 눈이 되어 줘야 해. 할 수 있겠어?”
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고,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앳된 아이의 얼굴이 피로 얼룩져, 마음이 아팠다.
준호 생각에 더욱 그랬다.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4명의 노인들을 두고 말했다.
“좋아요. 이제 가세요. 제 말들 명심하시고.”
그들은 저들끼리 순번을 정하더니 곧 3층으로 올라갔다.
남은 건, 전력 유지를 위한 휴식이었다.
“남은 분들은 이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세요. 정확히 5시간 뒤에 깨우겠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불침번을 정했으니, 그래도 이제 조금이나마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다행히도 쇼핑몰이었다.
1층 라운지는, 명품관과 더불어 옷들이 많이 있었다.
이부자리는 널렸다.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고가의 패딩들을 땅바닥에 무더기로 깔고, 그 위에 하나둘 몸을 뉘었다.
추위를 느끼는 사람은 그 위에 밍크 코트를 덮고 잤다.
명품 가방을 베개로 베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침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고.
난 아직 잠을 잘 순 없었다.
* * *
모두가 잠든 1층 라운지.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 한 편에서 난 촛불을 켰다.
환한 촛불 아래 여기저기서 주워 온 재료들을 바닥에 놓았다.
청 팀은 최소 병력 1명당 하나의 칼을 쥐고 있을 것이다.
레스토랑 층에 넘쳐 나는 것이 칼이었으니.
그랬기에 홍 팀은 자체적으로 무기를 생산해야만 했다.
밀대 봉은 타격 길이가 식칼에 비해 길었지만, 내구도와 공격성이 약하다.
다른 방법이 있어야 했다.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방법이라.’
일평생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고민이었다.
그랬기에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다시 도구들을 살폈다.
쓸데없는 잡생각에 빠져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고블린의 단검.
단검을 손에 쥐자, 희미한 아이템 상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마 플레이어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능력일 것이다.
●[임시]
고블린의 조잡한 단검 (+0)
랭크: F
공격력: 2
내구도: 2
특수 효과: x
습득 난이도: 하
공격력과 랭크, 특수 효과를 제외하고서라도 내구도가 기껏해야 2밖에 되질 않았다.
사람의 피부와 뼈는 생각보다 질기고 단단하다.
이 정도 날로는 식칼에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붕! 콰직!
땅바닥에 냅다 내려치니, 단검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걸로는 안 돼.’
난 산산조각이 난 단검을 바닥에 버려두고 다른 수를 생각했다.
더 정교하고 날카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인기척이 느껴졌다.
“근데 이거 창으로 사용하면 꽤 괜찮을 것 같지 않아? 휘두르는 거 말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웬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 밀대 봉을 요리조리 살피고 있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꽤 장발의 여자였다.
여자는 손에 쥔 밀대 봉을 흔들며 말했다.
“이거, 이거. 생긴 것도 창처럼 기다랗고 말이야.”
“찌르는 순간, 부러질 거야.”
밀대 봉은 기껏해 봐야, 플라스틱 소재다.
그런 걸로 사람의 피부를 뚫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흐음…… 그래?”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어 말했다.
“그럼 투창은?”
훽-. 덜커덕.
여자는 힘없이 밀대 봉을 던졌다.
밀대 봉은 앞으로 나아가다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안 되겠지. 무게가 없어서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명중률도 최악이잖아.”
“그럼 무게를 추가하면 되지!”
벌떡!
갑자기 여자는 신이 난 듯, 일어나 근처에 있던 옷가지들을 쥐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대 봉에 옷들을 말기 시작했다.
쇼핑몰 라운지에 있던 난잡하게 버려져 있던 의류들이었다.
“음. 됐다.”
여자는 밀대 봉을 쥔 채,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난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창을 쥔 손을 뒤로 빼내었다.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밀대 봉이 직선과 유사한 곡선을 그려 내며 전방으로 날아들었다.
철크덕.
밀대는 깔끔하게 날아가다 땅바닥에 떨어졌다.
“오.”
여자는 자기도 놀란 듯, 입술을 오므렸다.
확실히 옷을 밀대 봉에 두르니, 무게감이 있어 안정적이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괜찮은데.”
“괜찮지? 그치? 맞지?”
“응.”
밀대 봉을 투척용으로 활용하는 건 좋다.
하지만 창날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살상력이 떨어진다.
그러자 여자는 또다시 무슨 묘안을 생각해 내더니 봉 끝에 무언가를 꽂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한 발자국 더 다가가 그녀가 하는 짓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밀대 봉 끝은 동그란 홈이 있어, 그곳에 무언가를 삽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여자는 그 홈에 고블린의 단검을 가져오더니 억지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혀까지 비쭉 내민 채, 레고를 처음 만지는 아이처럼 즐기며 조립했다.
“흐음. 잘 안 되네. 잠깐만.”
결국 여자는 밀대 봉에 단검을 끼워 넣었다.
운이 좋게도 홈 안에 단검이 딱 들어맞았다.
“됐다! 한 번 던져 볼까?”
여자는 날 돌아보며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완성된 창을 쥐고선 주변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리고 옷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곳을 발견하곤 그곳에 창을 던졌다.
훼엑-. 포옥-!
창은 그대로 날아가 옷 무더기에 박혔다.
놀라웠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여자의 능력이었다.
결코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타고난 사냥꾼의 기질이 돋보였다.
창을 빼 보니, 두세 겹의 옷들에 검날 그대로 뚫려 있었다.
“어때? 이 정도면 되지 않아?”
여자는 날 돌아보며 말했다.
난 천천히 다가가 옷 무더기에 박힌 창을 빼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무기의 정보가 떠올랐다.
●
조잡한 창 (+0)(조합)
랭크: F
공격력: 3
내구도: 5
특수 효과: x
습득 난이도: 하
공격력이 1 증가하였고, 내구도는 무려 3이나 증가하였다.
단순히 무기를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아이템 설정이 바뀌었다.
생각해 보면 단순한 조합법이었다.
하지만 난 쉽게 생각해 내지 못했다.
고민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생각해 보니 아까부터 두통이 조금 있는 듯했다.
여자가 고안해 낸 창은 훌륭했다.
어차피 이곳에서만 사용하는 일회성 무기이다.
쇼핑몰을 나간다면 더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출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거 계속 만들어 줄 수 있어?”
난 창을 보며 물었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근이지.”
“한 50개 정도. 밀대 봉은 지상 7층에 있을 거야. 그곳이 인테리어 상점가이니까.”
“아, 50개? 그래, 그래. 그러지 뭐. 마침 심심했어.”
여자가 바로 일을 하려고 하자, 난 그녀를 말렸다.
“자고 일어나서 하도록 해. 피곤하잖아.”
“아냐, 나 안 피곤한데?”
여자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했고, 난 졌다는 듯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래, 그럼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 주상 전하. 소녀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배시시-.
여자는 마치 사극이라도 하는 듯, 날 그렇게 부르곤 여기저기서 재료들을 짊어지고 다녔다.
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 넌지시 물었다.
“이름이 뭐야?”
“나?”
어느새 단검을 두 손에 쥐고 있던 여자가 대답했다.
“이주연. 넌?”
“강시온.”
난 고개를 숙여 땅바닥에 있던 단검을 쥐었다.
“근데 너 말이야. 완전 머리 좋더라?”
“별거 없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단검을 모았다.
“내 동생도 완전 머리 좋거든. 진짜 천재야. 천재. 근데 난 완전 머리 쓰는 거 싫거든? 막 숫자만 봐도 토할 것 같아.”
굳이 대답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근데 진짜 몰랐는데, 내 동생이 너 친구더라?”
‘친구?’
난 단검을 쥐려고 하는 손을 우뚝 멈추었다.
친구.
내 인생에 친구 따윈 없다.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데?”
난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고, 그녀는 곧장 대답했다.
“이세범.”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난 중학교를 중퇴하고 곧바로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만약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이라면, 중학교 때까지의 교우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중학교 때, 이세범.
그럼에도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그래, 알겠어.”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친구라고 해도 내게 변화는 없다.
난 눈앞의 일에만 몰두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창 제작을 서둘렀다.
제작법은 알았으니, 생산만이 남았다.
밀대 봉과 고블린 단검, 옷가지를 조합해 새로운 무기를 만든다.
꾸우욱……
창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옷을 묶자, 눈앞에 또 다른 상태 창이 떠올랐다.
[조잡한 창 제작법을 습득하였습니다!]
[제작 스킬 + 1]
마치 일상의 모든 것이 게임처럼 변하였다.
단순히 무언가를 하더라도 꼭 상태 창이 떠올랐다.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어찌 되었건, 이 상태 창을 숙지해야만 앞으로의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여자를 따라 계속해서 창을 만들었다.
그때마다 스킬이 레벨 업되었다.
[제작 스킬 + 1]
[제작 스킬 + 1]
[제작 스킬 + 1]
처음에는 두 개에 한 번, 세 번에 한 번. 이제는 10개 정도 만들어야 겨우 레벨 업했다.
혹시 나만 이런 것이 아닌가, 여자를 돌아보았는데, 여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태 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물론 타인의 상태 창을 볼 순 없었다.
내가 바라본 건, 허공을 휘적거리는 여자의 손동작이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 창 제작에 서둘렀다.
시간은 이제 10시 30분.
불침번 교대가 한 번 있었고,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리고 22번째 창을 만든 순간, 내 눈앞에는 또 다른 상태 창이 떠올랐다.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