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불
청 팀의 선발대가 10층을 넘어 11층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중, 머리숱이 없는 남자가 김동길에게 말했다.
“지점장님! 그냥 다 쓸어버리죠! 우리가 음식까지 줬는데, 진짜 너무 건방진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먼저 공격하면 저놈들도 반응 못 할 겁니다.”
뒤따르던 직원들은 잔뜩 열을 받아서는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하지만 오히려 김동길은 침착했다.
총이 있는 걸 안 순간부터, 두 팀 간의 전력은 확연하게 줄었다.
지금 쉽사리 공격해 들어간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이야.”
더 확실한 수가 있어야 했다.
총도 총이겠지만, 아까 그 남자.
상당히 위험한 남자였다.
어떻게 보면 총보다 위험한 전력이 바로 그 남자였다.
터벅, 터벅, 터벅.
김동길은 11층에 올랐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있던 수십의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모두 식칼과 몽둥이를 쥐고 있었다.
근처에는 고블린의 시체가 쌓아 올려져 있었고, 사람들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 본능이 깨어난 짐승의 눈동자였다.
김동길은 그들을 둘러보았다.
원래 작전은 그가 올라온 순간, 곧바로 본대가 내려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던 홍 팀을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동길은 작전을 철회했다.
지금 공격하면 안 된다.
“작전은 철회합니다. 다른 수를 생각하죠.”
김동길의 목소리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00시가 지났다.
그 순간, 허공에는 짙은 글자가 하나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라운드, 2일 차]
홍 팀 거주 지역, 7층 아동 매장.
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말했다.
“거주지를 1층으로 옮길 겁니다. 모두 바로 준비해 주세요.”
“아, 네…… 네!”
“서두르지!”
사람들은 곧바로 내 말에 동의했고, 청 팀이 가지고 온 음식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곳, 7층에 있는 건 위험하다.
아무래도 청 팀의 본진과 가장 멀리 있는 1층으로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1층부터 7층까지 남은 생존자들을 포섭해, 최대한 전력을 늘려야 했다.
아무리 총이 있다 하더라도 머릿수 차이는 극복하지 못한다.
전략적으로 청 팀을 격파해야만 했다.
정찰 준비를 마친 진재희가 내게 다가왔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문제없겠지?”
“응.”
난 진재희에게 상층부의 정찰을 지시했다.
어찌 되었건, 저들이 정찰을 왔으니 우리도 정찰이 필요했다.
정보는 언제나 부족하다.
모든 일은 결국 정보 싸움이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발각되면 곧장 지하 1층으로 와.”
“알았어.”
진재희는 검을 쥔 채, 반대편 계단 층으로 향했다.
저들은 불침번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층간 이동 수단은 총 3개.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계단.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순 없기에 우선은 계단으로 이동하는 것을 선택했다.
계단으로 이동해서 놈들의 주둔지를 살필 수 있다면 성공이다.
왕이 누군지도 알아낸다면 베스트다.
또 진재희에게는 정찰 중 만난 생존자를 포섭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건물 내에서 최대한 많은 인원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운드는 이제 겨우 1.
게임의 특징상 많은 인구수는 곧 전력을 의미한다.
현재 홍 팀의 인구수는 32명.
만약 생존자들을 보다 많이 포섭하여 청 팀과 인구수를 비슷하게만 맞출 수 있다면, 이 게임.
승리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니, 사람들은 내 말에 따라 필요한 물품만을 챙기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새 날 ‘리더’로서 인정하고 있었고, 신뢰하고 있었다.
난 그들의 신뢰에 보답해 이 게임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시온 씨.”
권경수가 조금 숨을 거칠게 쉬며 내게 다가왔다.
그의 양손은 고블린의 피로 얼룩져있었다.
“살점은 전부 발라냈고, 대충 20kg 정도 나온 것 같아요.”
“고생했어요.”
“이제 훈제를 위한 소금과 불이 필요한데…….”
권경수는 턱을 짚으며 주위를 살폈다.
마땅히 불을 지필 곳이 있지 않았다.
불을 붙이는 거야 라이터로 붙이면 그만이겠지만, 이곳은 밀폐된 공간이다.
한 번 잘못 불이 난다면 모두 사망이다.
난 권경수를 바라보았다.
난 그에게 살코기를 손질하라고 했지, 훈제하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권경수는 고기를 ‘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연 특수 부대 출신의 남자였다.
생존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풍부했다.
“어떡하죠? 건물 내부에 연기가 퍼지면 안 되잖아요.”
권경수는 내게 답을 얻고자 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건물 내부에 연기가 차오르면 안 된다.
환기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답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화장실로 가시죠.”
“화장실…… 이요?”
난 근처에 있던 고블린의 고기를 쥐었다.
깔끔하게 손질이 되어 있었다.
권경수는 어리둥절하니, 쭈뼛거리다 곧 날 따라왔다.
난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통 칸을 열었다.
변기통 위로 작동되지 않은 환풍구가 있었다.
그리고 변기 위에 올라가 그 위의 환풍구를 살폈다.
환풍구 입구는 손으로 툭툭 치니 떨어져 나왔다.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그 안을 여전히 들여다보며 권경수에게 물었다.
“경수 씨, 라이터 있나요?”
“네. 여기요.”
권경수는 내게 라이터를 건넸다.
난 라이터를 켜, 내부를 확인했다.
‘L자 모양으로 위로 향하고 있어.’
폭은 대략 50cm가 안 되었다.
이곳에서 불을 피운다면 연기는 위로 향하게 될 것이다.
환풍구는 세로로 건물의 맨 아래에서부터 맨 위로 뚫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건물 외벽으로 빠지는 중간 환풍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여기, 어때요.”
난 변기 위에서 권경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권경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풍구가 녹지 않을까요?”
“환풍구 안에서 피우면 안 되죠. 불을 피울 곳은 여기 변기 칸입니다. 연기는 자연스레 이쪽으로 빠져나갈 겁니다.”
“아…… 그렇군요.”
난 변기에서 내려왔고, 권경수가 대신 올랐다.
권경수는 환풍구를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겠습니다.”
“좋아요. 추가로 네 명 붙여 드리겠습니다. 위치는 이곳 7층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험을 감지하면 곧바로 내려오세요. 고기 다 버려도 되니까, 몸만 살아서 오세요.”
내 말에 권경수는 갑자기 벙찌더니, 이내 힘차게 대답했다.
아마 내 말이 위로가 된 듯했다.
하지만 난 식량보단 인원수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한 얘기였을 뿐이다.
“……네! 알겠습니다. 훈제가 완료되는 대로 내려갈게요.”
권경수는 씨익 웃어 보였고,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식량에 대한 해결점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운드를 오래 끌고 가선 안 되었다.
어찌 되었건 영양에 밸런스가 있는 건, 청 팀 쪽이었고 이쪽은 해 봐야 단백질과 지방일 뿐이다.
탄수화물과 식수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는 한, 여전히 우리가 불리하다.
뭐, 이제 출몰하는 몬스터와 그 밖의 변수들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자원이 부족한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럼 일단 불 한 번 붙여 보겠습니다.”
휴지 쪼가리를 모은 더미를 들고 와 변기통 위에 놓았다.
그리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내게서 건네받은 지포 라이터를 켰다.
칙-.
곧 어두운 환풍기 내부에 라이터 불이 켜졌다.
화르륵-.
불은 순식간에 휴지에 옮겨붙었다.
우리 둘은 그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곧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왜 인류 역사의 시작이 불인지, 이제야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불은 모든 걸 집어삼키는 동시에, 인간에게 따뜻한 보금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한다.
보금자리와 먹을 것이 충족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성장한다.
또한 불은 역사적으로도 인류가 가졌던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그리고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 자칫 불을 잘못 사용했다간 아군을 집어삼킬 수도 있기에, 조심히 다뤄야 한다.
그럼에도 불이 압도적인 머릿수의 청 팀에 대항할 유일한 무기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
권경수는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하하 웃더니 날 돌아보았다.
“성공이에요! 시온 씨. 연기가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네. 이거라면 훈제도 가능할 것 같네요. 방식은 제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래 봬도 군대에서 배운 게 있거든요.”
“불이 너무 커지면 안 됩니다. 그 점을 잘 봐 주세요.”
“물론이죠. 맡겨만 주세요.”
권경수는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난 저 불꽃이 홍 팀의 승리를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 * *
홍 팀은 주둔지를 옮겼다.
기존 지상 7층에서 지상 1층으로.
1층으로 이동하면서 홍 팀은 남은 생존자를 포섭했다.
5층에서 남녀 2명.
3층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3명.
그리고 2층에서 2명.
이것이 전부였다.
홍 팀은 이렇게 7명이 더 들어와 총 39명이 되었다.
나머지는 진재희의 활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층으로 내려와, 아웃렛의 출입문을 살폈다.
웬 여자가 세로로 나눠져 죽어 있었다.
출입구를 빠져나가는 동시에 ‘검은 안개’가 차올라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근처 유리문에는 피 묻은 손바닥 자국이 가득했다.
마치 좀비 영화를 연상케 했다.
알 것 같았다.
고블린에 쫓기던 사람들 무리가 출입구에 몰려들어 결국 떼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시체가 가득한 1층, 매장 입구.
하루만 더 지나면 부패하기 시작해, 냄새가 날 것이다.
사람들의 멘탈 관리도 중요했다.
시체 냄새와 시체가 가득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우선 이곳을 주둔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부터 시작했다.
난 사람들에게 말했다.
“시체를 2층 매장에 옮겨 놓죠. 모두 도와주세요.”
몇몇 사람들이 주춤거렸다.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물의 사체도 못 잡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람의 시체라면 그 거부감이 배가, 아니 몇 배나 될 것이다.
난 반으로 잘린 여자의 몸을 겨드랑이에 짊어졌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근처에 있던 한 여자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날 따라 시체를 하나 옮겼다.
그 뒤에 있던 남자가 당황해선 말했다.
“누나…….”
“응? 왜?”
여자는 자연스레 시체를 짊어지고 있었다.
하나의 불평불만 없이.
“……아냐.”
여자의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선 그녀를 따라 시체를 하나 짊어졌다.
곧 이곳에 있는 모두가 날 따라 시체를 옮기기 시작했다.
구토와 기침, 흐느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평불만은 없었다.
* * *
11층, 청 팀 주둔지. 영화관.
슥슥-.
김동길은 테이블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었다.
포크로 고기를 꼽아 게걸스럽게 입에 넣었다.
그 옆에는 직원 한 명이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르고 있었다.
김동길은 식사를 하던 와중,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반대편 에스컬레이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청 팀의 시민들이 포대기에 시체를 담아 옮기고 있었다.
김동길은 행커치프로 입을 닦으며 부하 직원에게 말했다.
“X발…… 역겹게. 저거 좀 빨리하라고 해. 밥 먹는데 말이야.”
“네, 지점장님.”
부하 직원은 김동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단 24시간 전까지만 해도 일반 회사원, 주부,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시체를 옮기고 있었다.
시체의 종류는 인간과 고블린이었다.
“빨리빨리 옮기시죠.”
부하 직원이 그들에게 차갑게 말했다.
청 팀의 시민들은 꾹꾹 참아 가며 일을 했다.
그러다 중년의 남성이 신경질적으로 대들었다.
“진짜, 거 너무 한 거 아니야?! 이봐요!”
남자의 큰소리에 김동길은 와인을 마시다 그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피를 닦아 내며 김동길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누가 안 한대요? 보채지만 말라고요!”
“…….”
부하 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김동길은 와인잔을 내려놓은 뒤,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청 팀의 시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인당, 일억.”
돈 얘기에 한순간에 이목이 끌렸다.
김동길은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
“그게 적은 돈일까요? 아저씨?”
“……으.”
남자는 김동길 앞에서 부들부들 떨어 댔다.
그러자 김동길은 그 남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여기서 제 말만 잘 들으면, 당신들 통장에는 1억씩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몇 시간이 될까요? 응? 거기 학생. 그쪽이 말해 봐.”
“네? 저, 저요?”
남학생이 자신을 가리키더니, 우물쭈물거리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기껏해야 3일! 길어야 일주일입니다. 여러분.”
김동길은 친히 답을 대신 해 주었다.
김동길은 청 팀 시민들 사이사이를 걸으며 말을 이었다.
“사회에서 일주일 동안 1억을 벌 수 있나요? 여러분들은?”
모두가 침묵했다.
김동길을 제외하곤.
“제 제안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그만두셔도 됩니다. 언제든지요!”
그의 큰소리에도, 모두가 침묵했다.
그러자 김동길은 피식피식 웃음을 내보였다.
“여러분, 이제 제 말을 자알~ 따르실 생각이 드셨습니까?”
김동길은 시민 사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남자에게 돌아왔다.
남자는 이제 잔뜩 겁을 먹어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남자에게 김동길은 말했다.
“다신 대들지 마세요. 아시겠나요?”
김동길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남자는 잔뜩 겁을 먹어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네. 지점장님…….”
“좋습니다.”
김동길은 남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하게 웃었다.
그때, 그의 예민한 코가 다시 실룩거렸다.
“이게…… 뭔 냄새죠?”
김동길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살폈다.
탄내였다.
그리고 화장실로 향하는 통로 쪽을 바라보았다.
“여, 연기입니다! 연기요! 지점장님!”
한 남자가 소리쳤고, 김동길의 표정은 다시 일그러졌다.
‘이 개새끼들이……!’
홍 팀의 반격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