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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10화 (10/221)

#제10화. 선발대 (2)

청 팀이 먼저 움직였다.

선수를 친 것이다.

아마 저쪽 팀에도 적응력이 빠른 지도자가 사람들을 결집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첫수만 생각하고, 두 번째 수는 생각지 못했다.

저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선수를 쳤다면, 반대로 우리 역시 저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지점장이라고 소개한 사내는 7층 일대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뒤에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뭐해요? 어서 나눠 주세요.”

“네, 지점장님.”

남자는 김동길에게 예의를 차려 인사한 뒤, 이내 다른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 줄 것을 명령했다.

쇼핑몰의 직원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이 바구니 속 음식들을 꺼내었다.

고급진 음식들이었다.

빵과 과일, 스테이크, 우동, 라면, 튀김, 생수 심지어는 포장 초밥까지 있었다.

쇼핑몰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음식들이었다.

보통의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였다.

피비린내조차 잊을 정도로 달콤한 냄새가 매장에 가득 퍼졌다.

음식 냄새에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들었다.

김동길은 계속해서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였다.

“배고프셨죠? 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물도 있습니다. 천천히들 드세요.”

덜컹-! 조르르륵…….

그때 김동길은 옆에 있던 양동이를 엎질렀다.

“아, 이런.”

그는 실수라도 저지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결코 실수가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애써 담아온 물이 피와 섞여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난 곧장 상태 창을 살폈다.

[식수: 3 -> 2]

자원의 소비 역시 업데이트가 빨랐다.

직원들은 생수병을 집어 들어 사람들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 팀의 사람들은 쉽사리 그들이 건네는 물을 받지 않았다.

이쪽 사람들도 대강 눈치는 있다.

상대를 죽여야만 끝나는 게임에서 ‘적’이 주는 음식을 덜컥 받을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인간은 욕구 앞에선 한없이 나약해지는 존재였다.

킁킁.

코끝으로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퍼져갔다.

배고프지도 않았는데,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곯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유혹에 흔들릴 정도였다.

일반 사람들은 쉽게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이거 정말 먹어도…… 되나요?”

몇몇의 사람이 음식에 홀려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자.

김동길은 웃으며 뿌려 놓은 미끼를 단숨에 끌어 올렸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허겁지겁 음식들을 쥐어 들었다.

바리케이드 안에 있던 사람들도 가세하여 물과 식량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어느새 바구니 앞으로 일렬의 줄이 길게 늘어졌다.

김동길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있었다.

난 진재희에게 김동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남자가 왕이야?”

만약 청 팀의 왕이라면, 00시가 되는 순간 여기서 총을 꺼내 죽일 것이다.

그게 게임을 끝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재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모르지. 내가 전생에 있었던 건, 경남 일대에서 시작된 에리어였으니까.”

결론적으로 각 지역마다 시행되는 이 리그는 룰은 공식적으로 동일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지역마다 다르다는 소리였다.

그와 몇 마디 정도 대화를 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어찌 되었건 저들이 정보를 캐내려고 한다면, 이쪽도 정보를 캐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난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덥썩-.

그러자 진재희가 내 손목을 잡았다.

“네가 노출되면 안 돼. 보나 마나 정찰로 온 걸 거야. 내가 가겠어. 네가 괜한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네가 원한다면, 내가 놈들을 모두 죽여 줄게.”

재희는 날 뒤로 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난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조금 놀란 재희가 날 돌아보았고, 난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가는 거야.”

“…….”

그리고 그녀를 뒤로 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 * *

“천천히들 드세요. 음식은 많습니다.”

동길은 사람들을 살갑게 대했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생각했다.

‘바리케이드라.’

몰려드는 몬스터, 처음 보는 사람들, 어둠, 그런데도 이들을 결집시켜 나름의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홍 팀에도 꽤나 머리가 좋은 리더가 있다는 의미였다.

‘생각보단 쉽진 않겠어.’

김동길은 이곳 7층에 오기 전, 승리를 확신했었다.

청 팀은 식량을 거머쥐고 있고, 인구수로도 위치적으로도 다른 팀보단 우위였다.

김동길은 빠르게 청 팀을 결집시켰고, 자신과 부하 직원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만약 00시가 된 이후, 바로 돌격을 감행하면 어려움 없이 홍 팀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가 있다.

만약 홍 팀에서 이쪽에서는 대응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상황은 불리해진다.

김동길은 그것을 확인하려고 온 것이다.

그 ‘무언가’가 있는지 없는지.

김동길이 주변을 힐끗거리고 있을 때, 그의 눈앞에 한 남자가 서 보였다.

강시온이었다.

김동길은 주변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시온을 바라보았다.

죽은 눈동자였다.

감정이 없었으며 동정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였다.

터벅, 터벅.

그의 발걸음에는 힘이 없었다.

오늘 처음 마주한 남자인데도, 순간적으로 김동길은 오한이 저릴 정도였다.

대단한 살기였다.

“왜 내려온 거야.”

시온에 입 밖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는 뜻밖이었다.

어떠한 사전 인사나 서두 없이 본론으로 치고 들어온 것이었다.

김동길은 속으로 비웃었다.

‘시간 끌 생각이 없단 거네.’

눈앞에 강시온이 홍 팀의 ‘왕’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홍 팀에서 최강의 전력 중 하나임은 틀림없었다.

김동길은 이런 쪽에서는 눈썰미가 좋았다.

그랬기에 회사에서도 빠르게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동길은 애써 웃었다.

그는 어려운 상대를 대할 때는 언제나 웃음으로 시작했다.

“그야 여러분들께 식량을 나눠 드리려고 온 것이죠. 이 재앙 속에서 같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운드에 대한 설명을 못 받은 건 아닐 텐데?”

역시 주제를 돌리려고 해도, 강시온에겐 통하지 않았다.

동길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손사래를 쳤다.

철저한 연기였다.

“아뇨! 전혀요. 전혀! 학생,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김동길은 시온의 말에 강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저흰 그 미친 게임에 절대 동조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라뇨! 그 괴물 놈들 말을 왜 믿습니까? 저흰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때요?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힘을 합칩시다. 분명 이 건물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겁니다!”

김동길은 호소했다.

자, 어떻게 반응할 거냐.

김동길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알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홍 팀의 사람들이 식량을 먹으며 이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지금 김동길의 발언은 하나의 정의다.

이 미친 게임을 따를 생각이 없다는 자신의 생각.

그리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 재앙을 버텨내자는 생각.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선량한 시민에게는 그에 맞는 정의가 필요한 법이니까.

게다가 더욱이 음식을 준 사람이라면 그 신뢰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아, 완벽해.’

김동길은 처세술의 달인이다.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지난 20년간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능력이다.

이렇게 홍 팀의 인원들을 포섭한 다음, 00시가 넘어가는 순간 총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적이 방심했을 때가 가장 큰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김동길은 간과했다.

홍 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게임을 따르지 않는다면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그랬기에 김동길의 작전이 먹혀들 리가 없었다.

‘……어…… 어?’

이쯤이면 나한테 동조해야 할 텐데?

부동을 유지하는 홍 팀의 사람들을 보고 김동길은 생각했다.

그러다 시온은 한 발자국 더 앞서 나와 그에게 말했다.

“협력?”

“…….”

시온의 한 마디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온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그쪽 청 팀의 모든 인원들이 홍 팀으로 들어온다. 룰 북에 나와 있는 바에 따르면 왕이 수락한다면 언제든지 팀을 바꿀 수 있잖아. 그리고 그쪽 왕을 내 앞으로 끌고 와. 그쪽 왕만 죽이면, 단 한 사람만 죽고 이번 게임은 끝나. 우리와의 협력은 그 방안뿐이다. 어때? 그럴 수 있겠어?”

“아.”

동길은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을 두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온의 말이 정답이었다.

결과적으로 3명의 왕 중에 2명의 왕만 죽는다면, 다른 일반 ‘시민’들은 죽을 이유가 없었다.

시온은 우선 그걸 파악하고 있었고, 또 그걸 카운터펀치로 동길에게 휘두른 것이었다.

동길은 오히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 되었다.

시온의 말 한마디 때문에.

김동길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이 새끼 뭐야?’

김동길은 처음 보았다.

저건 연기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의 차분함.

그리고 그의 뒤에 선 사람들이 보내고 있는 신뢰의 눈빛.

괴물이다 이 사람은.

동길은 이제 떼쓰기에 들어갔다.

“아뇨! 저희는 어떤 살상도 원하지 않아요. 놈들이 정한 룰에 우리가 굳이 따를 필요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했던 말을 반복한다.

아이의 떼쓰기와 같다.

김동길은 주위를 둘러보며 동의를 얻고자 했다.

하지만 홍 팀의 사람, 그 누구도 그에게 동조하지 않았다.

“아, 그러니까 학생. 우리 한 번 손을 잡자고요. 곧 경찰도 올 거예요. 그때까지만.”

동길은 시온에게 손을 건넸다.

타악-!

하지만 시온은 매몰차게 동길의 손을 내쳤다.

시온은 그를 두고 말했다.

“다음은 없어. 다음에 이렇게 예고 없이 온다면 그때 너흰 다 죽는 거야.”

“…….”

식량을 나눠 주던 청 팀의 남자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김동길은 물끄러미 시온을 바라보다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이제 연기 따윈 필요 없었다.

이 남자에게는 자신의 처세술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김동길은 패배를 인정했다.

당장은 말이다.

“그래. 알겠다.”

김동길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는 오른 자켓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피워 댔다.

후우-.

김동길은 강시온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곤 곧장 기침을 내뱉어 댔다.

“콜록……! 콜록!”

사실 김동길은 담배를 태울 줄 몰랐다.

그저 허세에 불과했다.

부하 직원을 하대할 때나 겁을 줄 때 하는 행동이었다.

“크흠, 흠…… 근데 말이야. 너희 우리 매장에서 이런 짓이 용납될 거라고 생각해? 난 이곳의 지점장이다.”

김동길은 바리케이드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재앙은 재앙이고, 재산은 재산이다.

그것이 김동길의 논리였다.

김동길은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콜록! 콜록……! 카악! 퉤!…… 후…… 어떻게 생각해? 이거 우리가 나가서 법적으로 걸고넘어지면…….”

김동길은 강시온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눈으로 훑었다.

일용직 노동자의 의상이었다.

김동길은 피식 웃으며 말을 끝맺었다.

“……당신이 평생 벌어도 못 갚을 정도의 돈이겠는걸? 이걸 어쩌나.”

하하하.

동길이 한 차례 웃었고.

하하하하하하…….

청 팀의 선발대가 멋쩍게 그를 따라 웃었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도 시온은 당황하지 않았다.

시온은 생각했다.

눈앞의 이 남자, 생각보다 정말 멍청하다고.

“마음대로 해.”

김동길이라는 남자는 아직도 세상이 법과 규율에 의해 흐르고, 경찰이 질서를 유지해 주는 줄 안다.

이 빌어먹을 게임이 이 건물 내에서만 일어나는 줄 안다.

그런 멍청이를 두고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시온은 흥미를 잃은 듯,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동길은 이젠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제야 동길은 본성을 내보였다.

“이 건방진 애새끼가…… 너 몇 살이냐?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이젠 깡패 모드인가.

하아-.

시온은 다시 한숨을 내뱉고선 손목시계를 살폈다.

오천 원짜리 디지털 시계였다.

11시 55분.

00시까지 5분 남았다.

“00시부터는 서로 공격이 허용된다고 했지?”

“……!”

동길은 깜짝 놀라선 자신의 손목시계를 후다닥 살폈다.

이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였다.

동길은 시간을 확인하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홍 팀의 사람들이 어느새 밀대 봉을 쥔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온은 그에게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툭.

두 남자는 상당히 근접한 거리였고, 시온이 아래쪽에서 무언가를 꺼낸다고 해도 동길이 눈치챌 순 없었다.

동길은 조금  떨며 자신의 배에 닿은 물건을 바라보았다.

총구였다.

‘초…… 초…… 총…….’

홍 팀에는 총이 있다.

그 총의 모양이 김동길의 눈알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두고 시온은 말했다.

“꺼져. 다음에도 이딴 식으로 온다면 그땐 그냥 죽일 거야.”

근거 있는 협박이었다.

힘이 있는 위협이었다.

그 총 앞에 김동길은 한없이 초라해졌다.

뿌득-.

김동길은 이빨을 갈았다.

그의 일평생,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눈앞의 일용직 노동자에게 말로 진 것이었다.

자신은 한 쇼핑몰의 지점장인데. 연봉 4억에 고급 스포츠카,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데다 사회인으로서 성공까지 했는데, 일당 12만 원 일용직 노동자에게 기가 꺾였던 것이다.

‘하아, X발. 이건 반칙이잖아.’

김동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표출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은 없었고, 이곳은 청 팀의 인원이 홍 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다.

김동길은 주먹을 말아 쥐고는 뒤돌았다.

“가자.”

“지, 지점장님……?”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그냥 따라와!”

“네…… 네…….”

터벅, 터벅.

김동길은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시온은 그를 도발했다.

“아, 그래. 음식은 고맙다.”

청 팀이 들고 온 음식은 홍 팀 사람들의 체력이 될 것이다.

김동길은 쥐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에 버린 채,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시온은 표정을 거두었다.

바리케이드.

단결력.

그리고 총.

이로써 청 팀도 섣불리 공격해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시온은 몸을 돌려 바리케이드로 돌아갔다.

‘자, 시간은 벌었다. 이제 어떡할까.’

시간은 벌었다.

적어도 하루, 아니면 이틀의 시간이다.

청 팀이 공격해 올 것을 대비해 두어야 했다.

그리고 시온의 머릿속에 곧 하나의 작전이 떠올랐다.

시온은 그녀를 불렀다.

“진재희.”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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