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재회 (2)
“내가 동생이 있는 줄 네가 어떻게 알지?”
그의 눈동자는 어떠한 감정도 품고 있지 않았다.
재희는 순간, 간담이 서늘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조심성이 많은 시온에게 이렇게 섣불리 사건을 진행시키면, 당연히 위험해질 것이라는 걸.
특히 동생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섣부르게 그에게 ‘동생’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건, 재희의 계획이다.
시온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신의 목표를 생각하며 가장 좋은 방식을 취한다.
지금껏 몬스터를 죽이고 온 재희의 실력.
그리고 진검.
그 모든 걸 바라본 시온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온은 재희를 곁에 두려고 할 것이다.
재희는 이곳에서 무력으로는 최강임을 눈앞에서 증명했으니.
하지만 그 무력을 어떻게 얻었는지, 또한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랬기에 숨기지 않았다.
회귀자라는 사실을.
숨기는 순간, 눈앞의 강시온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재희 역시 시온을 필요로 했다.
무엇이 되었건, 눈앞의 강시온이라는 인물은 전생에서 가장 우승에 근접한 남자였으니.
이렇게 해야 가장 빠르게 강시온에게 신뢰를 얻고, 그의 조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라면 회귀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조심스레 움직였을 것이다.
천천히 강시온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 이 빌어먹을 게임을 헤쳐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진재희에게는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였으니.
‘……예상대로 리볼버는 이른 시간에 획득했네.’
재희는 눈동자만 내려 총구를 바라보았다.
관자놀이에 겨눠진 리볼버의 총구가 차가웠다.
시온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아냐니까? 안 들려?”
목소리는 싸늘하고 차가웠다.
시온은 정말 쏜다.
지난 전생을 통해 그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재희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이곳에서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툭.
재희의 입술에서 자연스레 떨어진 꽁초는 지면에 떨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나는 방향으로 총구가 따라왔다.
권경수는 옆에 어물쩍하게 서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 총.’
그에게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아니,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어선 총을 든 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건, 범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을 의미했다.
애초에 일반인이 총을 소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하지만 경수의 눈에 시온은 그저 순진무구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결코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피 말리는 침묵 속에서 재희는 시온에게 말했다.
“장소를 옮기지.”
불특정 다수가 들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동생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나는 여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총구는 여전히 여자의 머리로 향해있었고, 여자는 두 손을 올리고 있다.
화장실로 향하는 코너를 돌아,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었다.
난 걸어가는 그녀에게 말했다.
“멈춰. 이제 말해.”
내 말에 여자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말했다.
“총은 내려 줘.”
거절했다.
“안 돼.”
총알을 낭비할 순 없다.
만약 저 여자가 적이라면, 난 고민 없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여자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마지막 기회다, 말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그녀와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보란 듯이 말을 이었다.
“뭐부터?”
여자의 목소리는 태연했고, 떨리지 않았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이다.
결코 자신에게 총이 겨누어져 있는 상태에서 말할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난 물었다.
“네가 어떻게 내 동생을 알고 있는지. 그것부터 말해.”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가족, 친척 중에는 없었다.
애초에 우리 형제에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옆집 사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어쩌다 한 번 마주친 사람일 수도 없다.
설마 준호 학교 선생님?
아니다.
딱 한 번, 준호의 참관 수업을 갔을 때 선생님은 남자였다.
또 이렇게 젊은 여자일 리가 없다.
여자는 말했다.
“알고 있었으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
여자의 말은 근거가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 나갔다.
“난 널 모르는데.”
“넌 날 몰라도, 난 널 알아. 네 동생도. 이름 뿐이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만약 내 동생을 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아이의 형이라는 걸 알 순 없을 테고, 그렇다고 우리가 알던 사이도 아니잖아?”
“우린 알던 사이가 맞아. 적어도 나한테는.”
“말장난을 하는 거라면 그만둬. 난 지금 장난치고 싶지 않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빙글-.
여자는 갑자기 뒤를 돌았다.
난 총 손잡이를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여자는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고, 난 여전히 그녀의 이마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회귀했어.”
“뭐?”
“이걸로 두 번째 게임을 진행 중이야.”
“…….”
난 그제야 가늠자에서 눈동자를 떼,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윽-.
그곳에는 자신의 팔뚝을 내보인 여자의 모습이 있었다.
여자의 팔뚝에는 수많은 칼날 자국이 선명했다.
“우리가 만난 건, 이미 내 시간으로는 몇 년 전. 현 시간으로는 7년 후야. 우린 성남 일대에서 처음 만났고 파이널까지 갔지만 결국 둘 다 죽었어.”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야?”
솔직히 믿고 싶지 않았다.
“네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도 알아. 모든 걸 전부 알 순 없지만.”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우린 반드시 이 리그에서 승리해야 돼. 내가 도와줄게.”
“입 닥쳐.”
“날 믿어, 강시온. 이걸로 마지막이야.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조용히 하라고!”
“네 동생을 찾도록 내가 도와줄게. 나라면 가능해.”
“…….”
“…….”
언쟁 끝에 조금의 침묵이 찾아왔다.
총구는 여전히 그녀의 이마를 향해있었고, 여자는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난 널 해치지 않아. 난 네 동생을 찾을 수 있어. 그 방법을 알고 있어. 반드시 네 도움이 될 거야. 넌 날 반드시 믿어야만 해. 그리고 너도 이것이 단순한 테러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잖아? 이건 신들에 의해 진행되는 게임이야.”
그녀는 나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자신을 믿어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어떤 가능성이든 열어 두고 있었다.
갑자기 발생한 검은 연기.
그리고 그 연기로부터 물밀듯이 터져 나오는 외계 괴물들.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눈동자.
상태 창까지.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믿을 수 없었지만, 이곳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상들을 바라보았을 때, 지금 여자의 말을 못 믿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름대로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회귀자라면, 내 과거도 알겠지?”
“……그래.”
“그렇다면 말해 봐. 네가 회귀자라면 알겠지. 지금 네가 말해야 할 답을 말이야.”
여자는 침을 삼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내 빌어먹을 과거.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목숨을 같이했던 동료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우리 형제의 어두운 과거를 말이다.
두근 두근.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분명 총을 겨누고 있는 건 나였는데, 되레 긴장하는 것 역시 나였다.
왜지.
왜일까.
그녀가 정말로 내 과거에 대해 알고 있을 거란 추측 때문에?
아니, 아니면 어떤 이유인지.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사물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떼어진 두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면서 어떤 단어를 입에 담았다.
“……고모.”
“그만.”
비틀-.
조금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리를 조금 숙였고, 숨이 가빠졌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어두운 과거였다.
그거면 됐다.
어느 정도 그녀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미래에서 왔다는 건.
“좋아. 믿을게. 당장은 말이야.”
“그래. 다행이야.”
여자는 안심한 듯, 그제야 손을 내렸다.
난 그런 여자를 두고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친한 척 굴지 마. 널 완전히 신뢰한다는 건 아니니까.”
“그래. 알겠어.”
총구를 내렸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열어 총을 집어넣었다.
그녀를 믿냐, 믿지 않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자는 회귀자든 아니든, 1라운드를 헤쳐 나가는 중요한 열쇠이다.
어떤 식으로든 난 동생에게만 가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 여자가 도움이 된다면 될 일이었다.
빙글-.
몸을 돌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 순간, 궁금해졌다.
난 다시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 게임이라고 했지? 날 알고 있다고 했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의 전생에서 내 동생은 어떻게 되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여자는 날 따라오다 멈춰 섰다.
그리곤 조금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래도 궁금해?”
손이 조금 떨려 왔다.
하지만 결코 그녀에게서 시선을 벗어나진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는 조금 숨을 내뱉더니 말했다.
“나비 효과라고 알아? 아주 조그만 변화 때문에 미래가 완전히 바뀐다는 현상 말이야.”
“그래.”
“잘 들어. 이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도 미래가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해. 그래도 듣겠다면 알려 줄게.”
그 말에 조금 겁이 났지만, 난 알아야만 했다.
“그래. 말해.”
내 심장은 콩닥거렸고,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죽었을 거야.”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져, 울음을 터트리고 싶을 정도였다.
손은 마구잡이로 떨려 왔고, 시선은 차마 그녀를 마주 볼 수 없었다.
‘침착해…….’
모든 감정은 모든 일들이 벌어진 뒤에 토해 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냉정해야만 할 때이다.
그건 전생의 일이다.
아직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여자가 말한 동생의 미래는 아직 내게 실현되지 않은 결과이다.
난 침착해야만 했다.
주먹을 핏줄이 퍼렇게 이르도록 쥐었다.
그때 여자는 내게 한 발자국 다가오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었다고 확신할 순 없어.”
“……?”
난 그제야 그녀를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내게 다가와 있었다.
“내가 만났을 때, 넌 감정이 없는 남자였거든. 그러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고 추측할 뿐이지. 아마 네가 동생을 잃고 필드를 배회했을 거라고.”
“…….”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나도 이곳에 오기 전, 네 동생을 찾아오고 싶었지만…… 알잖아. 난 네 동생의 이름만 알아. 얼굴도, 생김새도 모르지.”
여자는 내 말을 기다리는 듯, 조금 침묵을 가졌다.
난 다시 고개를 떨궈, 잔뜩 해진 공사판 안전화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인가, 진실인가.
아니, 아니다.
거짓말이면 어떻고, 진실이면 어떻나.
지금 마주한 진실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더라도, 수가 없다.
당장 쇼핑몰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난 이곳에 갇혀 있고, 이 빌어먹을 게임을 이겨 내야만 한다.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이 게임을 반드시 이기고, 살아남아서 집으로 간다.
그리고 동생을 구하는 것이다.
비록 시체일 뿐이라도.
그 과정에서 눈앞 여자의 강함은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난 몸을 돌려 복도 바깥으로 향했다.
이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때였다.
그때, 여자는 날 불러 세웠다.
“내 이름. ……진재희. 모르잖아.”
자기소개를 하는 여자를 두고 고개만 돌려 대답했다.
“……내 소개는 필요 없겠지?”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난 다시 걸었다.
터벅, 터벅.
어깨는 추욱 처진 채, 앞이 아른거렸다.
난 지금 슬퍼할 여유조차 없는 상태인데도, 어째서인지 동생과 관련된 일이라면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속으로 되새겼다.
툭!
허벅지를 주먹으로 때렸다.
찰싹!
왼 볼도 손바닥으로 때렸다.
속으로 되새겼다.
살아남는다, 살아남아.
내겐 그것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코너를 돌자 나온 사람은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은 숨을 고르며 우리에게 말했다.
“저…… 저……! 죄송한데! 지금 빨리 나와 보셔야 될 것 같은데……! 저…… 저기에!”
매장에 시끌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여학생을 따라나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