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나만 지킨다-6화 (6/221)

#제6화. 재회 (1)

마흔다섯 마리……

마흔여섯 마리……

서-걱!

검날이 고블린의 목을 베어 갈랐다.

고블린의 목이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 마네킹에 맞아 쓰러졌다.

그녀가 지나온 자리에는 세 가지의 물체뿐이었다.

고블린의 목.

고블린의 몸통.

그리고 인간의 시체.

재희는 그 사이사이를 걸었다.

서걱!

재희는 오로지 고블린의 목만을 베어냈다.

전생에 그녀는 고블린만 수백 마리를 잡았다.

고블린보다 상위 클래스의 몬스터도 수천 마리를 잡았다.

검의 감각, 회전, 움직임, 발도, 경계, 자세, 반격.

어떤 식으로, 어떻게 베어야만 적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지 그녀는 완벽하게 체득하고 있었다.

이미 검으로서 그녀는 정점에 오른 사람이었다.

진재희는 빠르게 치고 나갔다.

지하 2층 주차장부터 지상 6층까지.

한 마리도 빠짐없이 남은 몬스터를 모두 죽여 왔다.

이미 그녀의 온몸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검을 쥔 팔이 조금 떨렸고, 다리에는 날붙이에 긁힌 상처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 플레이어 능력이 개방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이 시기 그녀의 몸은 완전하지 않았다.

조금만 역동적으로 움직여도 몸에 무리가 많이 갔다.

하지만 쉴 순 없었다.

재희는 에스컬레이터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7층.

여기까지 오는데 꽤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남은 쇼핑몰 층수는 5층이었다.

“후우…….”

재희는 숨을 한 차례 고르고선 반대편 매장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두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맞아. 저 사람도 여기서 시온과 같이 시작했다고 했지.’

조금은 반가운 얼굴.

재희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돌아섰다.

전생을 알고 있는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의 그는 여기서 죽지 않을 것이다.

시온과 함께하는 자이므로.

물론 그 옆에 있던 자는 죽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뒤돌아 다시 7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6층, 스포츠 전문관.

“꾸에엑……! 에엑…….”

주연의 발길질에 고블린의 안면이 완전히 짓뭉개졌다.

쓰러진 고블린을 두고 주연은 곰곰이 생각하다 놈의 시체를 발로 치워 버렸다.

그리고 그 계산대 안에 있던 초코바를 들어 봉지를 뜯었다.

덥썩.

직원들이 마련한 아이들을 위한 작은 간식거리였다.

“세범아. 안 다쳤어?”

주연은 초코바를 오물거리다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곳에는 그녀의 동생, 이세범이 야구 방망이로 고블린의 머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꾸직! 꾸직-!

고블린은 힘없이 추욱 늘어져선 숨이 멎었다.

그러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곤 주연을 바라보았다.

이 난리통에 초코바를 문 누나의 모습을 보고 이세범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나. 지금 이 상황에 그게 입에 들어가?”

“……아, 또 잔소리 시작했네. 원래 체력 소모하면 당 보충 해 줘야 하거든? 으휴, 이래서 미필이란. 행군을 해 봤어야 알지.”

이주연은 707 특임대 출신의 전역자였다.

그런 누나를 바라보던 이세범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사방에는 시체가 가득한데. 한가롭게 초코바나 빨고 있는 게 말이 되냐고. 누나. 왜 이렇게 멍청한 거야.”

“……멍청한 게 아니라. 순수한 거야. 순수.”

이주연은 초코바를 문 입을 오물거리며 동생을 째려봤다.

그러자 이세범은 더 역정을 내었다.

“그걸 두고 멍청이라고 하는 거야. 하아-. 미쳐 버리겠네. 정말, 나랑 같은 DNA 맞아?”

세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뒤흔들며, 주연을 지나쳤다.

그 동생 ‘놈’의 말에 주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냅다 그의 엉덩이를 발로 차 버렸다.

훼엑- 퍽!

“그게 누나한테 할 소리냐?”

세범은 아픈 티도 안 낸 채, 주연을 돌아보았다.

“어. 할 소리다.”

주연은 한 번 인상을 찌푸린 채, 반대편 코너로 돌았다.

그곳에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고블린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주연은 고민도 않고, 괴물의 안면을 워커로 짓밟았다.

그녀가 한 번 짓밟을 때마다 초록색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범은 숨을 고르게 쉬고는 이마를 짚었다.

세범은 이제 세계가 미쳐 돌아가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젠장…….’

창밖으로는 검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의 상황도, 내부적 상황도 모른 채 괴물만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정확히는 어릴 적 봤던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던 몬스터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고블린들은 인간을 죽이고 잡아먹었다.

우선 누나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아야만 했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 있어선 생존권 보장이 최우선 순위였으니까.

‘……집단을 만들어야 해.’

외부에 위험이 존재할 때, 집단을 이루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다.

그리고 이세범은 그 본능에 충실했다.

이세범, 이주연 남매에게는 지금 함께 이 역경을 헤쳐 나갈 동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괴물들의 손에 죽었고, 살아남은 일부도 미쳐 버려선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세범이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이었다.

웬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괴물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아악!”

털썩!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중앙 쪽에서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야, 뭐 해.”

“쉬, 쉿! 조용히 해.”

이세범은 주연의 입단속을 시키곤 몸을 숙여 여자를 살폈다.

여자는 검을 쥐고 있었으며, 단숨에 몇 마리의 고블린을 죽였다.

그리고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세범은 그 여자를 두고 생각했다.

‘……너무 자연스러워. 당장 오늘 이런 일을 마주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야.’

마치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 왔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이 상황 속에서 저런 태연함은 있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세범과 주연을 돌아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7층으로 향했다.

‘……제기랄.’

뜨득-.

세범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가 고민할 때면 나오던 버릇이었다.

이세범은 갈등했다.

그녀는 위험하다.

동시에 강했다.

하지만 세범의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따라와. 누나.”

“어? 엉?”

이세범은 본능이 이끌리는 대로 움직였다.

그들 남매도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서 저 정도의 적응력을 보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만이 이 쇼핑몰 내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 * *

7층, 아동 전문관.

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 역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조금의 헐떡임으로 그녀가 지금 지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저 여자의 시선이 이 많은 사람들 중 내게 꽂혀 있는지 그걸 알 수 없었다.

우연?

난 우연이라는 걸 믿지 않는다.

모든 사건 현상에는 이유가 있고, 반드시 경과가 있다.

단순히 이곳으로 내려와서 사람들을 발견한 것이라면 둘러보거나 안도의 눈빛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오로지 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정말 오래전부터 날 알고 지낸 사람처럼.

“아가씨! 여기로 들어오세요! 어서요!”

권경수가 여자에게 소리쳤다.

여자는 다시 권경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바리케이드 쪽으로 다가왔다.

그그그그그…….

쇼핑몰 바닥에 끌리는 그녀의 칼날 소리가 날카로웠다.

“아가씨. 괘, 괜찮아요? 피가……!”

권경수는 여자의 몸에 잔뜩 뒤집어쓴 피를 두고 걱정했다.

그는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몸이 지쳐 바리케이드를 넘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단숨에 바리케이드에 올라 안으로 넘어왔다.

대단한 운동 신경이었다.

바리케이드 내부에서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고블린은 무력화시켰더라도 반드시 죽었는지 확인해야 돼.”

푸욱!

갑자기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괴물의 목에 칼을 꽂았다.

근처에 있던 여자애가 깜짝 놀라 조금 주춤거렸다.

그 모습에 난 인상을 찌푸렸다.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괴물이 부들거리다 죽었다.

여자는 차례차례 쓰러져 있던 괴물을 푹푹 찔러 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권경수가 나서선 여자를 도와 괴물을 다시 찌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죽은 줄만 알았던 괴물 몇 마리가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악!!!”

“끼에에에엑!!!”

괴물은 날카로운 손톱을 겨누며 근처에 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는 당황한 듯, 뒷걸음쳤다.

그리고 진재희는 검을 들어 달려드는 두 괴물을 단숨에 베어 냈다.

목이 달아났다.

떨어진 두 목이 데굴데굴 구르다 한 남자 앞에서 멈췄다.

“우욱……! 우웩!”

그것을 앞에서 직면한 남자는 토를 하였다.

몇몇도 쓰린 속을 참을 수 없어 보였다.

“고블린은 재생 능력이 뛰어나서 목을 베어야만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어.”

여자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여자는 누구를 특정해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날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곁에 있던 권경수가 그녀에게 물었다.

“여, 역시 고블린이군요. 그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맞죠?”

“응.”

여자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또 말을 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마치 마네킹이나 로봇처럼 그녀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외모였고, 행동의 태연함도 여느 일반 사람과 달랐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두려움이나 정신적 불안 증세, 그 어느 것도 그녀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다.

불쾌한 골짜기론.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도는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

난 그녀를 보며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니, 감시에 가까웠다.

수 분이 지났다.

난 여전히 밀대 봉을 쥔 채,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는 기어코 마지막 남은 고블린이라는 이름의 괴물의 숨통을 끊었다.

푸욱-!

초록색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침내 침묵이 찾아왔다.

여자는 온통 고블린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숨은 조금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곤 다시 되돌아왔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여자는 바리케이드 한 편에 풀썩 주저앉더니,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을 쓸고 있었다.

행동에 태연함.

살상에 익숙함.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몇 층에서 올라왔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이곳이 종착지인 듯 여자는 7층까지 올라와 이곳에 머물렀다.

난 조금 다가갔다.

“잘 아네요. 괴물에 대해서.”

떠본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보여 준 행동은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여자의 행동은 구원적인 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난 더 높은 차원의 생각을 읽어야만 했다.

어쩌면 여자가 이 튜토리얼이 시작되기 전, K와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험했을 뿐이야.”

여자의 답은 단순 명료했다.

그 대답도 이상했다.

경험이라니.

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다시 물었다.

“몇 층에서 왔어.”

그녀가 존칭을 사용하지 않기에, 나도 금세 말을 줄였다.

그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하 2층.”

“그곳에서 이곳까지?”

“응.”

여자는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더니 한 개비 꼬나물었다.

칙, 칙.

몇 번 라이터의 불을 켜려고 했지만 잘 먹지 않았다.

여자는 라이터를 손으로 두세 번 흔들더니 이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정도의 적응력을 지닌 자와 함께 한다면 권경수와 더불어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우려가 되었던 건 여자가 진검을 차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진검.

대한민국에선 특정한 직업군이 아니라면,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한 무기.

여자는 쇼핑몰 내부에서 진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당장의 그녀는 전투력만 보아서는 상당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얼 생각하는지.

또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나의 목적과 상반되는 것이라면.

난 고민 않고 총을 꺼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로 난 확신했다.

여자는 담배를 문 채로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네 동생 말이야. 사실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

여자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이 도대체 내게 어떤 의미를 하는지 완전히 알 수 없었다.

난 오늘 여자를 처음 봤음에도, 그녀가 내 동생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거슬렸다.

그렇다면 원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 생각들과 함께 난 가슴이 철렁 가라앉는 듯했다.

눈앞의 여자가 내 동생을 알고 있다니.

게다가 먼저 동생에 대해 말했다.

여자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곤 가방에 들어 있던 칼들을 꺼내었다.

그중에는 간단한 의료 용품도 있었다.

이들을 내게 보여 준 여자는 말을 이었다.

“챙겨 둬. 우린 이곳에서 몬스터가 아닌 인간을 상대하게 될 거니까.”

그때 한 학생이 여자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다, 다른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학생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여자를 주목하고 있었다.

여자는 가방 지퍼를 닫고는 힐끗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인다는 거야. 우리가 죽지 않기 위해서.”

의미심장한 말.

그리고 그 말을 한 여자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

“헉……!”

모두가 나의 행동에 놀라워했다.

여자는 고개만 돌려 자신의 관자놀이를 바라보았다.

드륵-. 철컥.

난 공이치기를 당겼다.

탄알 한 발이 장전되었다.

난 여전히 그녀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누곤 물었다.

“동생이라고?”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여자는 눈동자를 올려 날 바라보았다.

난 방아쇠 홈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다시 물었다.

“내가 동생이 있는 줄 네가 어떻게 알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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