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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나만 지킨다-5화 (5/221)

#제5화. 죽임 (2)

일방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초록 괴물의 상대법을 안 몇몇 사람들이 전투를 주도했다.

눈앞의 초록 괴물은 결코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 초록 괴물들이 도망치자, 그제야 두근거리는 심장을 추스를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난 뒤, 매장에는 헐떡이는 사람들의 신음만이 가득했다.

주위로는 스마트폰 빛이 가득했고 전투에 임했던 사람들은 모두 주저앉은 채, 헐떡였다.

나 역시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폐가 터질 것만 같았다.

동시에 심장도 미친 듯이 뛰었다.

아드레날린이 마구잡이로 치솟아, 온몸의 털들이 곤두섰다.

손을 바라보았다.

빨간 피와 초록 피.

두 피가 뒤섞여 있었다.

당장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흙투성이였던 손이다.

삽으로 시멘트를 푸고, 수레를 끌고, 벽돌을 가득 담은 지게를 쥐었던 손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 저기요……!”

그때, 뒤에서 헐떡이던 남자가 날 불렀다.

남자는 수염이 덥수룩했지만, 지저분하지 않은 것을 보아 관리한 수염이었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리고 키는 컸고, 벌어진 어깨를 보아하니, 근육이 상당했다.

그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며, 손에는 대걸레를 쥐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우리 모두를 살린 거예요.”

“…….”

난 남자를 보고 뒤돌았다.

그곳에는 각자 무기를 쥔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노인과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쥔 채 서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울먹이면서도 결의에 차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학생…….”

“감사합니다. 정말 살았어요……!”

난 숨을 고르면서도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들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나를 위한 일이었다.

아마 이 사람들의 힘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내가 괴물들의 공략법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이 많은 괴물들을 처리할 순 없었을 것이다.

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동생에게 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벌일 것이다.

그 어떤 짓이라도.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힘은 아직 내겐 필요했다.

뜸 들일 시간 따윈 없었다.

아직 튜토리얼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면 도와주시죠. 여러분들 전부.”

난 자리에서 일어나 어지럽혀진 진열대로 향했다.

남자는 날 따라오며 물었다.

“무얼 할까요. 말만 해요.”

“진열대를 옮겨요.”

“진열…… 대?”

남자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남자는 내게 다가와 진열대를 같이 끌기 시작했다.

“여러분들도! 이 학생 말 들어요! 어서요! 이 학생 덕분에 모두 살았잖아요! 뭔가 계획이 있을 겁니다……!”

남자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진열대로 몰려들었다.

“그, 그러지! 빨리 돕자고!”

“저 학생 말을 들어야, 살아!”

“엄마…….”

“괜찮아,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어.”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진열대에 달라붙었다.

난 사람들에게 말했다.

“간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할 겁니다. 출입문이 분산되어 있으니까, 요새를 만들 생각이에요.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긴 봉 대와 같은 게 있으면 그걸 위주로 모아 주세요.”

“아, 알겠네!”

“그러지, 그러지…….”

아줌마가 바리케이드를 밀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학생, 근데 이걸로 될까……? 저 괴물 놈들을 막는데 말이야.”

“충분해요.”

놈들은 턱을 넘지 못한다.

이건 좀 전의 전투로 인해, 알 수 있었다.

괴물의 신체적 특징을 살폈다.

큰 머리.

길고 뾰족한 코.

초록색 피부.

팔의 근육은 잘 잡혀 있지만, 다리의 근육은 비실했다.

이런 생김새의 괴물, 어디선가 영화에서 본 듯하지만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괴물들이 지금 우리의 목숨을 빼앗으려 달려든다는 점이었다.

“2중으로 해 주세요. 서둘러요.”

어느새 사람들은 내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물은 조금이라도 높은 턱은 넘지 못한다.

기어오르는 듯한 모습도 잠깐 확인했는데, 그것은 진열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밀대 봉으로 밀어내면 될 일이다.

정말 간단한 전술이었다.

노인들이 밀대 봉을 두 손 가득 안고선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왔다.

바리케이드는 곧 완성되었다.

이곳이 쇼핑몰이라 다행이었다.

진열대는 옮길 수 있게 바퀴가 달려 있었고, 높이도 적당했다.

한 남자가 진열대를 그대로 쌓고 있었다.

난 그 남자에게 말했다.

“바퀴가 있는 쪽을 지면에 놓지 마시고, 반대로 뒤집어서 놓아 주세요.”

“아…… 아. 그렇군. 생각이 짧았어. 알겠네.”

바퀴가 달려 있다면, 괴물들이 밀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열대의 평평한 부분을 지면에 놓는다면, 놈들도 쉽게 진열대를 움직일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밀대.

밀대가 중요하다.

놈들을 밀어 넘어트리고, 빛을 비추어야 했다.

괴물들은 빛을 본 순간, 몸이 경직되니까.

그러니 빛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손전등. 그래, 손전등이 있었지.’

쇼핑몰에는 재난에 대비해, 벽면에 배치된 빨간 손전등이 있다.

난 지나다니는 아무 여자를 붙잡고 말했다.

“비상구에 있는 손전등을 가져다주세요. 보이는 건, 전부. 화장실이나 비상계단 쪽에 많이 배치되어 있을 거예요. 층은 벗어나지 마시고.”

“아…… 네! 알겠습니다.”

여자는 분주한 사람 사이를 빠져나가 손전등을 가지러 달려갔다.

빛, 바리케이드, 밀대.

얼추 방어 전력은 갖추었다.

첫 번째 괴물을 막아 낼 때보다는 확실히 더 안정적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맡긴 임무들을 속속 완수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주저앉던 초반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손전등 다 모았어요!”

“바리케이드도 다 쌓아 올렸습니다.”

“이쪽도 다 쌓았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난 사람들을 에스컬레이터에 근접한 곳부터 배치시켰다.

공성전을 하기 위한 준비였다.

사람들은 간이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밀대 봉을 쥐고 있었고, 노인과 아이는 라이트를 쥐고 있었다.

난 사람들에게 말했다.

“준비하세요. 놈들이 오면, 밀대로 밀어내세요.”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위층으로부터 기괴한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아래층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확실한 건, 아직 ‘튜토리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튜토리얼이 끝났다면 K가 다시 나와 우릴 맞이해 줄 것이다.

그때, 매장 가득 기괴한 울음소리가 가득 울렸다.

-갸아아아아악!

마치 동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손녀로 보이는 여자애와 할머니가 서로 부둥켜안고선 오들오들 떨어 댔다.

“에구머니나…… 세상에나…… 이게 뭔 일이다냐…….”

“할머니, 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 우리…… 경찰이 곧 구해 주러 올 거예요.”

손녀는 할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경찰, 또 나왔다.

그들로 하여금 조금 경각심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었다.

난 조금 고민을 하다, 에스컬레이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찰은 안 올 거예요. 물론 소방관도, 군인도.”

“아…… 하지만.”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오지 않을 사람을 믿지 말고, 지금 쥐고 있는 그 밀대 봉을 믿으세요.”

난 그제야 아이를 힐끗 돌아보았다.

아이는 오른손으로는 할머니 손을 쥐고 왼손으로는 밀대 봉을 쥐고 있었다.

눈망울은 촉촉하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

울면 난감하다.

눈물은 웃음과 같이, 전염성이 있으니까.

한 번 감정이 무너지면 끝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꿋꿋하고 강인했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듯하더니, 이내 감정을 꾹 숨겼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는 두 번 고개를 숙이며,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조금 놀랐다.

많아 봐야 중학교 3학년으로 보이는데.

보나 마나 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꾸욱…….

난 밀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절망적이겠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를 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난 더 큰 미래를 생각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단순히 튜토리얼을 끝내는 것으로 관계를 청산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난 이들에게서 신뢰를 얻었고, 난 그 신뢰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동생을 위해.

지금도 동생은 어두컴컴한 자취방에 홀로 남아, 오들오들 떨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눈앞이 아찔했다.

하필이면, 또 오늘은 동생의 생일이었다.

최악의 생일.

옆에서 봉 대를 쥐고, 전방을 겨누던 남자가 조금 전, 날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학생, 정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줘요. 난 학생을 전적으로 믿고 있으니까. 근데 한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그러세요.”

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처음 봤어요.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도, 당황하지 않는 사람 말이에요……. 제가 나이는 더 많지만, 그쪽이 더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가만히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혹시 직업을 여쭈어도 될까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서, 설마요. 분명 특전사 출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 아, 아뇨! 미안할 건 없습니다. 전 또 제 후배인 줄 알고.”

난 그 말을 듣고 남자를 돌아보았다.

건장한 체격, 나이는 30대 초반.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지 근육은 전반적으로 잘 잡혀 있었다.

후배라는 말을 하는 걸 보아하니, 남자는 아마 특전사 출신인 듯 보였다.

이 남자는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테니.

남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권경수입니다. 나이는 33이구요.”

“강시온. 20살입니다.”

“이름이 참 예쁘시네요.”

난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필요 이상으로 대화를 할 필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권경수가 다시 물었다.

“계획이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우선은 몰려드는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동생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소리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권경수는 조금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내게는 그 소리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운석이 충돌했다고 했을 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물을 수 있을까.

오늘 교통사고가 나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물을 수 있을까.

그건 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운석이 충돌하는 일도, 하필 그날 만취 운전자를 만난 일도 말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계는 일이 일어나고 난 뒤의 일이다.

권경수가 말했던 적응력이 빠르다는 건, 어쩌면 이 같은 나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현재에 집중하죠.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요.”

“그래요. 시온 씨. 알겠습니다.”

터억-.

그때, 권경수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웃음을 보였다.

“조금만 힘내요. 우린 이겨 낼 수 있을 겁니다.”

스르륵-.

그의 손이 내 어깨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고, 방금 그 행동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 느껴 보는 어른의 위로였다.

내가 위로를 언제 받아 보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 이내 그만두었다.

미세한 진동이 발끝으로부터 느껴졌기 때문이다.

“옵니다……!”

“준비하세요.”

사람들은 바리케이드 안에서 밀대를 움켜쥔 채 긴장하였다.

이제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려고 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다치지 않은 채 튜토리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투두둑 투두둑.

마치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러더니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마리의 괴물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끼에에엑-! 에에에엑!!”

괴물 한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올라오더니, 이내 전방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저, 저건?”

“……기다려요.”

권경수가 상체를 들어 올리자, 난 그를 말렸다.

괴물은 무언가에 겁을 먹어 도망쳐 왔던 것이었다.

난 침을 꼴깍 삼킨 채, 에스컬레이터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터벅…….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발자국.

괴물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였다.

그리고 그 발자국의 주인을 바라보았을 때, 난 인상을 찌푸렸다.

“…….”

검을 든 여자였다.

온몸은 초록 피로 잔뜩 뒤집어쓴.

그리고 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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