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종말의 세계 (3)
인간에게 있어 생존의 욕구는 가장 기초적인 욕구이다.
괴물의 등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로써 사람들은 포유류가 가진 무의식 속의 ‘피식’에 대한 두려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도 여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다시 잡아먹는 위치에서 잡아먹히는 위치로 바뀌었다.
매장 내 상황은 최악이었다.
“비켜, 씨발!!!”
“꺄아악! 밀지 마요!!!”
“우아아악! 아악! 아악!!!
출입구 쪽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생존에 대한 갈망에 이성을 잃은 채, 출입문을 열려고 했다.
그저 생존을 위한 본능만 남은 개체가 되었다.
실제로 괴물이 그들 중 한 명을 죽인 것도 아니었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변해 갔다.
푹! 퍼억! 콰직!
출입구 앞에서 넘어진 사람이 여럿이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몇몇이 물밀 듯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깔려 짓밟혔다.
시온은 출구를 찾으려 여러 방면으로 뛰어다니다, 겨우 다른 계단 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출입문에 몰린 사람들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쇼핑몰의 출입구는 제한적이었다.
쇼핑몰의 출입구는 주로 1층에 있고, 차로까지 생각하면 지하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지상 7층.
이 쇼핑몰 내부에 대략 1000명의 사람이 있다고 쳤을 때, 지금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1층으로 도망가 빠져나가는 것.
그리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1층에 몰려든다면 그곳은 생지옥일 것이 분명했다.
시온은 성큼성큼 되돌아가, 다시 원래 있던 계단 층을 살폈다.
‘검은 안개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안개 같은 기체는 좁은 문 틈새로 충분히 새어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안개는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온은 공사판에서 쓰던 땀 닦는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삼킨 채, 서서히 계단 문을 열었다.
철컥! 끼이이익-.
썩은 내가 진동하며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인 광경은 충분히 놀라웠다.
검은 안개는 벽면을 둘러싼 채 정지해 있었다.
말 그대로 정지.
안개는 더 나아가지도 퍼져 가지도 않고 있었다.
지금 시온이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임은 틀림없었다.
시온은 천천히 벽에 다가갔다.
벽은 조금씩 일렁였다.
동시에 그곳에서부터 역한 냄새가 계속해서 풍겨 왔다.
수건으로는 어림도 없는 냄새였다.
마치 시체가 썩는 듯한 냄새.
촉감은 알 수 없다.
‘우우웅~’ 거리는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진동 상태를 온몸으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검은 안개는 벽면을 따라 건물 외벽과 내벽에 동시에 걸쳐 있다.
건물 전체가 이 검은 안개에 뒤덮여 있다는 뜻이었다.
‘……위협하고 있진 않아.’
이 검은 연기 바깥의 괴생명체는 인간에게 위협적일지 몰라도, 적어도 이 검은 연기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시온은 천천히, 그리고 주변을 살피며 다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반대편 계단 층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적어도 수십 명의 사람이었다.
시온은 흥미를 잃곤 근처에 있던, 의자에 풀썩 앉았다.
지금까지 관찰하고 느낀 것들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다.
아동복 매장에서 한가롭게 옷들을 구경하던 여자.
그녀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뭔가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어떤 인간이든 이런 상황에선 결코 저렇게 태연할 수 없었으니까.
그 여자는 이내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왔다.
“잠깐만~ 주목해 주세요.”
여자는 사람들을 불렀다.
* * *
난 여자가 있는 쪽으로 조금 다가갔다.
그곳에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노출된 의상을 입고, 이상한 문양이 있는 안대로 눈을 감싼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패닉에 빠진 사람들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교란종 여러분. 저한테 집중해 주세요! 후딱 끝냅시다.”
여자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한순간에 끌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밝았다.
공포에 질린 다른 이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저 여자가 이 빌어먹을 말살 정책의 관리자인 모양이었다.
출입구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여자는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교란종 여러분들! 전 우주 생태 관리 본부에서 파견 나온 관리자 K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상기된 채, K를 바라보았다.
K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자, 자. 여러분들! 너무 그렇게 겁먹으실 필요는 없어요. 이건 그냥 정책일 뿐이잖아요. 여러분들은 우주에 속한 생명체로서 그 정책에 따를 뿐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재앙이 아니라 정책! 자, 따라 해 볼까요?”
그 누구도 따라 하지 않았다.
K는 그곳에 있던 시민들이 웃지 않자, 표정을 누그러뜨리곤 다시 히쭉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라? 아무도 안 따라 하시네…… 아하하. 뭐, 하여튼 전 지루한 건 싫으니까 어서 빨리빨리 시작해 볼까요? 어디 보자…… 우선해야 될 것이……. ”
그때,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K를 바라보던 한 여자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저희! 그냥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다, 당신이 누군지는 몰라도…… 저흰 아무런 죄가 없잖아요…… 왜 이런 테러를…….”
K는 이상한 종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여자의 말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여자는 무릎을 꿇은 채, K에게 사정했다.
“제발…… 제발…… 제 배 속에는 아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인이 무릎을 꿇자, 훌쩍이던 근처 시민들도 사정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두 손을 빌고 있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가득 채워지자, K는 그제야 반응했다.
“흠. 그렇네요. 제가 깜빡했네요. 역시 인간이라는 종족은 마주한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어요. 제가 아까 분명 말씀드렸죠. 여러분들의 현실감을 돋우기 위한 것이라고.”
타악-!
K는 그제야 책을 덮곤 여자를 바라보았다.
기분 나쁜 미소였다.
“좋아요. 그럼 본격적인 1라운드에 앞서 말살 정책에 따르시지 않을 분들을 선정하도록 하죠.”
빙글-.
K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자, 매장 안에는 [O], [X]의 표지판이 달린 영역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술렁였다.
“우주 생태계 교란종 처분법 제1 조 3항. 모든 교란종에게는 정책에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관리자가 보장해야만 한다…… 이런 조항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관리자인 저로서는 선택권을 보장해야만 하지요.”
몇몇 사람들이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사람들의 미소를 바라본 K 역시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렸다.
“그럼 말살 정책에 따르지 않으실 분들은 제 기준으로 X가 있는 좌측으로. 정책을 따르실 분들은 O가 있는 우측으로 움직여 주세요. 시간은…… 뭐. 대충 5분? 드리겠습니다.”
타악! 퐁!
K가 핑거 스냅을 하자, 허공에는 알록달록한 무늬의 디지털 시계가 나타났다.
광대 문양이 있는 시계였는데, 광대는 기괴하게 웃어 댔다.
[케케케케케켁-! 벌레야. 움직여라! 아침이다. 케케케케켁-! 벌레야. 움직여라! 아침이다.]
그러자 K는 화들짝 놀라선 말을 얼버무렸다.
“아, 차차. 이건 내 알람 종이고. 다시.”
타악!
그녀가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자, 그제야 정상적인 시계가 나타났다.
시계는 정확히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 크흠! 자, 그럼 선택해 주십시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이러다 놈들이 몰려들겠어요!”
놈들?
난 K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 괴상망측한 웃음에는 잔혹함이 깃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주춤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대부분이 정책을 따르지 않겠다는 [X] 선택지로 몰려들었다.
몇몇 중립을 고수하던 사람들도 곧 [X]로 걸어갔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선 고민도 않고 선택지로 향했다.
[O] 선택지였다.
선택지에 들어왔을 때, 난 고개를 돌려 [X]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O]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흥미로운 결과네요. 설마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갈릴 줄은 몰랐는데.”
K는 눈웃음치며 [O] 선택지 안에 있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플레이어, ‘O’을 고른 이유가 있을까요?”
K는 알면서도 내게 물었다.
난 굳이 대답할 필요 없어, 침묵했다.
그러자 [X] 선택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게 말을 걸었다.
“이, 이봐! 당신 미쳤어?!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
“그래! 이 미친 정책을 따를 순 없잖아. 어서 빨리 이쪽으로 넘어와.”
“이봐요. 전 군인이에요. 테러에 대처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우선 범인의 요구를 따르는 거예요.”
“그래요, 학생. 어서 이리 오세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몇 명.
한심하다는 표정 몇 명.
걱정하는 듯한 표정 몇 명.
하나같이 사색이 되어선 날 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선택을 고수했다.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나도 쉬운 문제였다.
“3분 남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은 더욱 동요해선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봐요! 학생! 고집 그만 부리고 일단 여기로 와요!”
“그래요! 왜 그러는 거예요! 일단 저 테러범의 말을 듣자고요. 그래야 경찰이 오든, 소방관이 오든 할 것 아니요!”
경찰, 소방관.
재밌는 발언이었다.
난 그들을 구할 의무가 없다.
그들을 구한다고 해서 그들이 내 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난 착한 놈은 아니었다.
세상은 결코 착하다고 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든 안 하든 말이다.
“내버려 둬! 뒈지겠다는 새끼, 거 뭣하러 입 아프게 설득합니까?”
계단 층 앞에서 내게 시비를 걸어오던 중년의 남자였다.
그 말에 날 설득하려던 시민들도 한두 명씩 말 걸기를 그만두었다.
남자의 중얼거림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X신 같은 새끼. 요즘 애새끼들은 저런 자기 주관 때문에 인생 종 치는 거야. 쯧쯧. 나 때는 주관 따윈 없었어.”
뭐가 저리도 타인에 대한 불만이 많은지.
남자는 오늘 처음 본 나에 대해 혐오감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난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3분 뒤, 저 남자는 죽을 테니까.
그때,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조금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플레이어, 내 말 들려요?
난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K가 히쭉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인상을 찌푸렸다.
K는 말했다.
-저기요~. 나, 심심한데, 우리 게임 하나 할까요? 당신과 나만의 특별한 게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K는 여전히 히쭉거리며 목소리를 전달했다.
-지금부터 당신이 이 시민들의 과반수 이상을 ‘O’ 선택지로 불러올 수 있다면, 당신의 승리. 과반수 이상이 ‘X’ 선택지에 있다면 나의 승리.
-당신이 게임에 지더라도, 불이익은 없어요. 그냥 재미로 하자고요~ 재미.
K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감히 장담컨대, 게임을 이긴다면 당신에게 이로운 아이템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당신은 알고 있죠?
K를 노려보았다.
K 역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제안은 딱히 거절할 이유 따윈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의도가 궁금했다.
관리자의 입장으로서는 나 역시, 별 볼 일 없는 교란종일 뿐인데.
그녀는 왜 날 굳이 꼽았나.
나 혼자서만 [O] 선택지를 뽑아서?
그것보다는 더 높은 차원의 결정이 있었을 것이다.
힐끗, 타이머를 바라보았다.
남은 시간은 2분.
난 2분 안에 이곳에 있던 수많은 시민을 설득해야 했다.
입을 열었다.
“[X]에 있으면 전부 죽습니다.”
내 말에 그제야 하나둘, 시민들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 K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그들을 돌아보았다.
“넘어오세요. [O]으로.”
단순하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려고 들면 되레 이상한 남자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내 말을 걸고 넘어지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그래, 저 아저씨처럼.
“뭘 믿고? 드디어 정신머리가 나간 거냐?”
남자가 미끼를 문 순간, 단숨에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이 게임을 하지 않으면 우린 죽을 거예요.”
“게임을 하면 죽는 거야. 저 여자가 말했잖아. 원치 않으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게임을 안 하게 되면? 집에 곱게 돌려보내 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다.
K는 선택 이후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조금만 더 사건을 살펴보면 굉장히 쉬운 문제였다.
아이도 그 의도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정신적으로 정상이지 않다.
즉, 사건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으면, 판단은 감정에 치우치게 된다.
“게임을 하면! 그럼 집에 돌려보내 준대? 이 새끼가 정말!”
“게임을 하면 삶이 연장될 순……”
“네가 뭔데! 너도 한 패냐?! 지금 저 여자랑 뭔가 눈이 마주쳤던 것 같은데……! 너 새끼도 한 패지! 이 X새끼! 그럴 줄 알았어! 여러분! 이 새끼도 한 패요! 쳐 죽일 놈!”
남자는 내 말을 도중에 끊으며 크게 화를 냈다.
그는 잔뜩 흥분해서는 소리쳤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매장 가득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나이가 적고, 만만한 날 대상으로 꼽은 것이었다.
하찮은 남자였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 어디 사람들을 선동하려고 하고 있어! 너 같은 새끼가 나라를 망……!”
“닥치고 들어.”
내가 말하자, 분위기는 냉랭하게 가라앉았다.
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우리는 생태계 교란종으로 선정되었다고 했지. 교란종은 생태계를 위협할 종족으로서, 문명을 거머쥔 생명체에 의해 토벌되어야 할 개체야. 그런 단어이기도 하고. 우린 그 교란종이지. 즉, 생각하자면 우린 지구의 문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급 생명체의 지배를 여태껏 받고 있었다는 소리야. 이 정책의 의의는 인간들을 소수 개체만을 남기고 모조리 몰살하는 정책. 그런데 그 관리자라고 파견된 저 여자가 이 정책에 반대한다고 해서 살려 둔다고? 아니겠지. 그건 정책에 어긋나는 행동이니까.”
“푸흐흐흡!”
이야기를 듣던 K가 소리를 내어 웃어 대는 걸 보아하니, 내 가설 역시 정답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X]에 있던 시민들이 한두 명씩 주춤거리다 [O]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란 거지. 정책을 피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살아남을 확률은 아주 적어. 반면 정책을 따른다면 당장은 살 수 있겠지. 왜, 아직 우린 1라운드도 시작하지 않았으니까.”
“너…… 너……!”
“……지금 저 여자가 우릴 상대로 단순한 노름을 벌이는 것이고, 이미 정답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선택은 [O]야.”
난 그 말을 끝으로 타이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타이머는 15초가 남아 있었다.
“이 정도로 설명해도 모른다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나아. 당신처럼.”
“이 X새끼가!!!”
남자가 버럭 화를 내었지만, 상황은 내 편이었다.
“……저, 저 사람 말이 맞는 거 같은데?”
“그, 그래…… 맞는 것 같아!”
“빠, 빨리!”
사람들이 하나둘 [X]에서 [O]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젊은 층이 주도적으로 넘어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다수의 사람들이 [O]으로 넘어왔다.
“어어엇??!? 당신들 미쳤어??!! 저 미친놈의 망상을 믿는단 말이야?!?!!”
아저씨는 당황해선 주위를 말렸지만, 사람들의 선택에는 변화가 없었다.
남은 타이머가 5초가 되었을 때, [X]에 남아 있던 사람은 채 10명이 안 되었다.
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는 주춤거렸지만, 이내 넘어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타이머 숫자는 곧 ‘0’을 가리켰다.
그제야 아저씨는 [O] 쪽으로 팔을 뻗었다.
“아, 잠깐.”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퍼버버버버벙!!!
눈앞의 아저씨의 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온몸이 고깃덩이가 되어 터져 나간 참혹한 광경을 두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을 뿐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으아악! 으으으으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그들의 잘게 터져 나간 살점들은 꿈틀거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난 태연하게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닦아 내었다.
그리고 이어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짝짝짝짝.
K가 싱긋 웃으며 박수를 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브라보! 굉장해요. 플레이어. 당신이 이겼습니다.”
K는 웃고 있었지만, 난 결코 웃을 순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