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326화 (1,32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26화>

휴가 7일 차 아침이자.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당일.

하아아-

천문석은 하품하며 욕실에서 나와 주위를 휙휙휙- 돌아봤다.

거복이는 베란다.

탱탱이는 평상 아래.

사슴이와 반짝이는 화분에.

어제 점심, 저녁, 밤, 새벽까지 몇 번이나 확인했을 때와 마찬가지!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하, 이제 내 감도 무뎌지는 건가?”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워커 실트가 모든 장비를 준비하기로 한 상태.

셔츠에 청바지, 헌팅 재킷을 걸치고 잡낭이 결말 된 헌터용 벨트만 허리에 찼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

“걱정 마.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

천문석은 이세기에게 다시 한번 부탁하고 베란다, 평상, 화분을 향해 외쳤다.

“거복이, 탱탱이. 사슴이, 반짝이. 너희 사고 치면 안 된다. 특급 헌터가 시켜도 사고 치면 안 돼! 알겠지?”

…… -

…… -

…… -

…… -

당연히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요새 왜 계속 씹히는 것 같지?’

천문석은 피식 웃고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뭔가 사고가 터질 듯한 직감과 달리 행운이 이어졌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순간 끼이익- 멈춰 서는 273 버스!

273 버스는 텅텅 빈 좌석으로, 한 번도 정체에 걸리지 않고 쭉쭉 달렸다.

약속 장소인 염동 광장에서도 행운은 마찬가지.

찾을 필요도 없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주호를 만났다.

“주호 왔냐?”

“네 천 대협! 그런데 오늘 할 일이 뭔지……?”

“야, 말 편하게 해. 자세한 건 내 친구 오면 설명해 줄게. 아직인가?”

스마트폰을 꺼내자마자 아이스크림 트럭이 멈춰 서고 워커 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타라. 오늘 아이스크림 트럭째로 바로 올라갈 거다.”

부아아앙-

주호를 안에 태우고 입구에 앉자마자 출발하는 아이스크림 트럭.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아이스크림 트럭은 뭐야? 이 트럭째로 올라간다고? 그 작은 개구멍을……?!”

“실제 계획에 쓰려고 준비하던 위장 트럭이야. 트럭째로 들어갈 방법 있다. 그보다 너 어제 보내 준 초대장! 그거 뭐야?!”

“퀵으로 보낸 초대장?”

“어, 그거!!”

워커 실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쏟아 냈다.

“그 초대장 장난 아냐! 말이 개구멍 통행권이지! VVVVIP 초대장보다 훨씬 더 좋다!”

“어젯밤에 재금 연구소 연구원 포섭해서 확인했는데. 네 말대로 검문 검색 기록도 없이 그대로 통과 가능해!”

“더 대박은 차에서 내릴 필요도 없어! 차 가지고 오면 누가 탔는지 확인도 안 하고 차가 통과할 수 있게 개구멍 키워 준대!”

“연구원 분통을 터트리더라! 가끔 나타나는 이 초대장! 분명 그룹 임원이 구린 일에 쓰는 초대장이라고!”

“잠깐 그 말은……?!”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주위를 돌아본 순간 깨달았다.

차 곳곳에 쌓여 있는 장비들!

“맞아! 이 아이스크림 트럭과 이 안의 장비를 그대로 가지고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다! 카카캌-”

“역시 인맥왕 철수 형! 와, 어떻게 이렇게 풀리냐?! 카캬카캌-

카카카카카캌-

카캬카카카캌-

천문석과 워커 실트가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당황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초대장? 개구멍? 지금 무슨 말을?”

“아, 얘가 내가 말한 어그로를 끌어 줄 강자야. 이름은 주호. 주호 이쪽은 이번 일을 계획한 보스, 두목, 브레인.”

“꼬맹이? 이 꼬맹이가 보스?!”

주호의 얼빠진 목소리.

워커 실트는 바로 천문석에게 확인했다.

“쟤 괜찮겠냐? 창립식장에 1세대 헌터 바글바글할 거다. 특히 이태성! 이태성은 사건 터지면 반드시 앞장선다. 쟤 이태성 상대로 버티면서 도망칠 수 있어?!”

“이태성! 설마, 이태성 길드장?!”

주호의 비명 같은 외침.

“야, 걱정할 거 없어! 주호 이 녀석 생존력, 도망치는 실력 하나는 일품이야! 내가 직접 설산에서 끌고 달려 봐서 알아! 한 시간? 온종일도 도망칠 수 있다! 카캬캌-”

“잠깐, 잠깐만! 하루 종일 도망쳐?! 설마, 이태성한테서?! 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주호가 버럭 외쳤지만.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대화를 이었다.

“그래? 좋아! 네가 보증하는 거면 믿을 만하지! 바로 밟을게! 카카카캌-”

“밟지 마! 밟지 말고! 설명부터 하라고!”

“야, 별거 아냐. 걱정할 거 없어. 워커 얼른 밟아라!”

부아아아앙-

아이스크림 트럭은 단숨에 가속해 게이트 지역 입구를 통과, 광화문 게이트 지역을 달리기 시작했다.

개구멍이 있는 중앙광장을 향해서!

“천문석! 새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오늘 내가 할 일이 뭐야?! 제대로 설명해!!”

주호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듯 분노한 외침을 쏟아 냈다.

“야, 설명해 줄게! 앉아. 앉으면 설명해 줄게. 우선 우리 목적지가 어디냐면…….”

천문석은 차근차근 오늘 주호가 해야 할 임무를 설명했다.

“…….”

설명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넋 나간 표정이던 주호가 마침내 입을 열고 질문했다.

“네가 말한 행사장이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이라고?”

“저기 하늘에 떠 있는 재금 그룹 천공의 섬에서 열리는?”

“1세대 헌터랑 헌터 업계 최상층이 모두 모이는 그 행사장?”

“그러니까 지금 내가 그 행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러 가는 거라고 그것도 1시간 동안?”

……

“난장판이 아니라 어그로!”

“난장판이 아니라 어그로!”

천문석과 워커 실트가 동시에 대답하는 순간.

주호는 마침내 폭발했다.

“야, 이 미친! 안 해! 미친놈들아, 안 한다고! 나 내린다! 야, 비켜! 문 막지 말고 당장 비켜!”

“야, 진정해! 워커의 계획은 완벽해!”

“그래! 내 계획은 완벽하다! 여기는 총기, 마탄 규제에 미친 한국이다! 어그로를 끌다 마탄을 맞거나, 영구 손상을 입을 확률은…… 37%밖에 안 된다!”

“뭐?! 3할 7푼밖에?! 와 이 미친 새끼들! 됐어! 철판 자르고 나가면 된다!”

깡, 깡, 까아앙-

“시발! 이 철판 뭐야?! 칼이 왜 안 박혀!”

“당연하지! 이 아이스크림 트럭 내가 직접 제련한 나이트 아머 내골격 특수 강화 합금으로 보강했거든! 오러에도 안 뚫린다! 카카카카캌-”

“잘했다! 워커! 야, 주호! 우리는 어차피 한배 탄 거야. 그리고 걱정할 거 없어! 최악의 상황에도 탈출 방법 있다! 그렇지 워커?”

“당연하지! 거기 뒷좌석에 엑스 반도로 위장한 낙하산 유닛 있다!”

“어? 낙하산 유닛? 윙슈트가 아니라?”

“윙슈트는 역장 매트릭스 통과 못 해! 걱정하지 마라! 저 엑스 반도로 위장한 낙하산 유닛은 내 특제 스텔스 낙하산이다! 안전한 탈출 확률…… 67%다!”

‘뭐지? 왜 나까지 불안해지는 거지?!’

그 이유는 주호의 외침에서 알수 있었다.

“6할 7푼?! 미친놈아! 저 높이에서 3할 3푼! 세 번 중 한번은 실패한다는 거잖아! 우리 셋 중 한 명은 실패한다고!”

“그게 바로 통계의 오류다! 표본이 적을 때는 결괏값이 한쪽으로 치우친다! 그러니까 ‘성공성공성공’이 나올 확률이 있다! 그리고 그동안 난장판에서 구른 경험과 직관! 내 빅데이터에 의하면…….”

“이거 진짜 미친놈들이잖아!”

주호는 미친 듯이 분노를 쏟아 내며 칼을 휘둘렀다.

깡깡, 깡깡깡-

그러나 그 외침과 굉음이 새어나가지도, 탈출할 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 아이스크림 트럭은 워커 실트가 이번 사전 조사와 전능 옥좌 탈취를 위해 만든 역작이었으니까!

그리고 천문석이 마법의 단어를 외치는 순간.

주호는 그대로 정지했다.

“군벌 수장!”

“……어?!”

주호가 거짓말처럼 멈추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핵심을 찔렀다.

“너 언제까지 깡패 두목으로 살래?! 이세기 최측근 해서 너도 헌터 군벌 수장 한번 해 봐야지!”

“이 새끼! 또 무슨 구라를…….”

천문석은 번개같이 호주머니에서 잘 접힌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뭔데?”

“펴봐라.”

주호가 펼친 종이에는 꼬맹이가 그린 듯한 이름과 번호가 있었다.

[이세기 010-xxxx-xxxx]

“이거 설마……?!”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세기 직통 번호가 박힌 명함이다.”

“……!”

주호는 뽀미 언니 앞의 아이처럼 홀린 듯이 명함을 바라봤고.

아이스크림 트럭은 빠르게 게이트 지역을 달려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부아아아앙-

그리고 몇 배로 커진 개구멍을 통과해 전능 옥좌에 도착했다.

아무 사건, 사고, 불운, 돌발 변수 없이!

시가지 뒷골목에 승합차가 멈춰 선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안도했다.

‘다행히 내 직감이 틀렸구나!’

“우선 이거 귀에 꽂아. 마력 통신기다.”

워커 실트는 통신기를 나눠 주고 다시 한번 계획을 설명했다.

“지금 시간 8시 10분!”

“인증 파문으로 보안 시스템에 과부하를 거는 건 10시.”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이 시작되는 시간은 11시.”

“주호 넌 창립식장에서 대기하다가. 내가 연락하거나, ‘와 이거 뭐야?! 쟤들 뭐 하는 거야?!’ 이 생각이 들 때 어그로를 끌고 도망 다니면 된다.”

“인증 파문 발생기가 보안 시스템에 과부하를 걸 수 있는 최대 시간은 대략 2시간이다!”

“즉, 백도어를 심는 제한 시간은 10시+2시간, 12시까지다!”

“12시까지 전원 이곳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돌아온다.”

“아이스크림 트럭 사이드미러가 펼쳐져 있으면 정상 상황! 트럭을 타고 빠져나가고. 사이드미러가 접혀 있으면 비상 상황! 스텔스 낙하산 유닛으로 각자 탈출한다!”

“혹시 질문? 질문 없지?! 그럼 바로 준비 시작한다. 거기 준비한 작업복 갈아입고 낙하산 엑스 반도 착용!”

“실시!”

“실시!”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잽싸게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주호! 야, 뭐 해 빨리 옷 갈아입어!”

“어, 어!”

작업복을 입고, ‘시설 관리’ 네 글자가 선명한 재킷을 걸치고, 낙하산 엑스 반도에 안전 헬멧, 허리에 공구 벨트, 손목에 시간을 똑같이 맞춘 시계를 찼다.

셋은 순식간에 시설 관리 직원으로 위장했다.

드르르륵-

아이스크림 트럭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순간 워커 실트는 외쳤다.

“구호와 함께 시작한다! 구호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주호의 반 박자 늦은 외침과 함께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성큼성큼 멀어졌다.

“야, 행사장 어디?!”

“재킷 주머니에 팸플릿 있어!”

“수고해라!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최측근을 향한 길이다!”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외침과 함께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

주호는 한참 동안 멍하니 두 사람이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다 문득 손에 쥔 명함을 봤다.

[이세기 010-xxxx-xxxx]

어린이가 만든 것 같은 조악한 명함.

하지만 천문석은 이 명함에 있는 번호가 천검 이세기의 직통 번호라고 말했다.

천문석 이 녀석은 상상을 초월한 잔머리를 굴리지만,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초절정 고수의 직감이 말한다.

천문석은 이번에도 진실을 말했다.

이 번호는 천검 이세기의 번호가 맞다!

그러나 초절정 고수의 직감은 또 말하고 있었다.

쿵쿵, 쿵쿵쿵쿵-

터질 듯이 뛰는 심장과 파르르 떨리는 손.

보이지 않는 칼이 목에 겨눠진 듯 서늘한 가슴까지!

‘오늘 뭔가 일어난다!’

서자로 태어나 가문을 집어삼킨 촉과 생존본능은 당장이라도 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철검장이 삼합회에 먹힌 지금은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다.

여기서 내려 봐야 거대한 삼합회에 박살 나는 결말이 기다릴 뿐이다.

주호는 손에 명함을 소중히 접어 주머니에 넣고, 팸플릿을 펼쳤다.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현장으로 걸으며 마음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할 수 있다! 반드시 천검 이세기의 최측근이 되어! 상해 군벌이 된다!’

주호는 기원하고 기원했다.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을!

*   *   *

“뭐야? 누가 내 이야기 하나?”

이세기는 평상에 누운 채 주위를 돌아봤다.

돌멩이가 몇 번이나 강조하던 사슴벌레, 황금 풍뎅이, 강아지, 거북이는 모두 제자리.

초겨울 같지 않은 아침.

햇살은 따듯하고, 바람은 포근하다.

수많은 시선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던 남중국과 달리.

친우의 옥탑방 평상에선 푸른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다.

이세기는 하늘을 눈에 담고 바람을 마음에 담았다.

휘이, 휘이이-

바람이 몸을 스치는 순간.

휘이, 휘이이이-

마음속에도 바람이 불어왔다.

절로 일어난 내력이 바람을 따라 육체의 길과 마음의 길을 달렸다.

이세기의 몸과 마음의 상처, 외상과 내상이 서서히 아물어 갈 때 은근슬쩍 나타난 게 있었다.

포그르-

어느새 바람 속에 하나둘 끼어든 작은 물방울.

휘이, 휘이이-

작은 물방울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퐁, 퐁, 퐁-

이세기의 몸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물방울에 담긴 념(念)은 빛과 따듯한 온기가 되어 이세기의 몸과 마음에 스며 들어갔다.

이세기가 점점 더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 때.

하나둘 흩날리는 물방울은 점점 더 많아지더니…….

포그르르르르르-

옥상을 모조리 뒤덮을 기세로 쏟아졌다.

구으읏-!

띠디디-!

왕, 왕왕-!

끼잇이잇-!

동물 친구들이 다급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옥상 난간에서 반투명한 하늘 고래가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영체로 변한 퐁퐁이었다.

퐁퐁이는 평상에 잠든 이세기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조심조심 날아가 가슴지느러미로 살짝 다리를 건드렸다.

“…….”

‘아주 깊이 잠들었다! 아주아주 깊은 곳에 있는 자기를 만날 정도로!’

휘이잇-

퐁퐁이는 바람 빠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용용이와 함께 싸웠던 무서운 인간을 아주아주 깊이 재우는 데 성공했다! 이제 대두목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

구으으으으-

퐁퐁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자 평상 위의 모인 모든 각성 동물들도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득한 하늘에 떠 있는 섬.

얼마 전부터 너무나 그립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섬으로 올라갈 때가 왔다.

대두목의 명령대로!

퐁퐁이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으으으으읍-

동글동글 작은 몸이 한껏 커지는 순간 하늘 고래의 념을 담아 단숨에 내뿜었다.

구으으으으응-

부드러운 뿔피리 소리와 함께 빛이 그대로 통과하는 투명한 물방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반짝이, 사슴이, 탱탱이, 거복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투명한 물방울 속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퐁퐁이가 물방울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투명한 물방울은 둥실둥실- 아득한 천공의 섬을 향해 떠올랐다.

하늘 고래의 념(念)의 폭풍이라는 기연을 만나 무아지경에 빠져든 이세기를 바닥에 찰싹 붙인 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