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22화>
“네? 대가를 내고 일하라고요?!”
‘아니 이게 뭔 개소리야? 돈을 내고 일하라고?!’
무림과 이세계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는 황당한 개소리에 입을 떡 벌리는 주호!
천문석은 이 순간 정곡을 찔렀다.
“당연하지! 너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려는 목적이 뭐야? 까놓고. 이세기, 내 친구랑 인맥 쌓자는 거 아냐? 이세기랑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자리. 이거 입찰 붙이면 군벌 수장들이 얼마까지 낼 거 같냐?!”
천문석은 당당하게 외치고 착 목소리를 깔았다.
“내가 엄청난 호의를 베푸는 거 모르겠냐?”
주호의 얼굴에 깊은 고뇌가 생겨나고 필사적으로 머리 굴리는 게 전부 드러났다.
천문석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말을 더할 필요는 없다.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면, 얍삽한 주호 녀석은 분명 의심했을 거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이자 미래의 연방 총통(이제는 아니지만) 천검과 인맥을 뚫을 기회다!
대기업, 헌터, 군벌, 남중국의 권력 상층부라면 수십억, 아니 수백억을 찔러 주고서라도 일가친지를 밀어 넣었을 거다!
이제는 아니지만, 상관없다.
주호는 그 사실을 몰랐으니까!
“…….”
그렇기에 단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주호의 고뇌는 오래지 않아 끝나고,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삼합회에 다 털려서 애들 월급 줄 비자금 통장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이거라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카드를 꺼내는 주호!
‘됐다! 9부 능선을 넘었다!’
천문석은 내심 환호하며 손을 뻗어 카드를 막았다.
“됐어.”
“네?”
“그 카드에 얼마 들었는데? 100억 1,000억?”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나 이세기 친구다.”
“그럼 뭐를…….”
주호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흔들릴 때.
천문석은 별것 아니라는 듯 툭- 가볍게 제안을 던졌다.
이렇게 긴 설득을 한 진짜 이유를!
“돈은 됐고. 너 내일 약속 없지? 있으면 취소하고. 나랑 내 친구랑 같이 일 하나 하자.”
“……일이라면?”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안 하게 될 확률이 더 높은 일인데. 별거 아냐. 그냥 ‘행사장’에서 ‘한 시간쯤 도망’ 다니다가 튀면 되는 일이야. 어때, 할래? 한다고 말하면 바로 계약서 쓰고.”
천문석은 거짓은 단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 ‘행사장’이 서울 하늘에 떠 있는 천공의 섬이고.
‘한 시간쯤 도망’ 다닐 상대가 1세대 헌터, 최상급 각성자들이며.
그 행사가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이 여는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이란 걸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천문석은 당당히 진실만을 말하고, 씩 웃으며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이 스마트폰에 고용 계약서 있어. 한다고 약속하면 이세기랑 같은 사무실, 직속 부하로 고용해 줄게. 어때?”
“……!”
주호는 눈을 번뜩이며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철검장이 망한 지금,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다른 선택지는 없다.
주호는 무조건 천검이라는 줄을 잡아야 한다!
이번에도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일, 하겠습니다! 아니 꼭 시켜 주십시오!”
주호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됐다! 단혈철검 주호, 초절정 고수를 낚았다!’
천문석은 환호성을 안으로 삼키고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만 까닥였다.
“그럼 계약하자.”
천문석 바로 스마트폰에 전자 문서를 띄우고 주호와 고용 계약을 맺었다.
“시간이랑 장소는 정해지면 연락해 줄게. 아마 장소는 저기 광화문 게이트 지역 입구 앞 될 거 같다.”
“그럼 내일 ‘일’이 끝나면 약속하신 대로?”
“내일 ‘일’이 끝나는 순간 성패에 상관없이 이 고용 계약서는 유효하다.”
“……!”
천문석이 확답하는 순간.
주호는 희열이 끓어오르는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로써 자신과 주호 서로에게 Win-Win인 거래가 성립했다.
자신은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에서 어그로를 끌어 줄 강자, 초절정 고수 주호를 직원으로 고용했고.
단혈철검 주호는 이세기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에서 미래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천문석, 주호, 워커 실트까지 모두가 행복한 거래였다.
사소한 문제. 이세기가 남중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괜찮았다.
김철수 사무실은 초대박을 칠 테고.
주호는 초대박을 친 김철수 사무실의 직원으로 보상을 받을 테니까!
카캬카카카캌-
하하하하하하-
천문석과 주호는 각자의 스마트폰에 뜬 전자 고용계약서를 바라보며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워커 실트가 세운 계획의 두 조건 중 하나가 생각지도 못하게 갖춰졌다.
어그로를 끌 강자, 단혈철검 주호!
그러나 여전히 워커 실트의 계획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았다.
천문석은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큰길 방향으로 귀를 기울였다.
“……초대장 삽니다! 현금으로 1,000만 원!”
“창립식 초대장 삽니다! 현금으로 1,010만 원!!”
“1,100만 원! 무조건 옆에 새끼보다 100만 원 더 주고 삽니다!!”
……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초대장으로 난장판이 된 건 온라인뿐만 아니었다.
한국 헌터업 1번지 종로 일대까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하, 뭔 계획이 시작도 안 했는데 개판이냐…… 그냥 처음 계획대로 창립식 끝나고 배달하자니까. 하아-”
천문석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 * *
“그럼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시간 정해지면 바로 연락해 주십시오. 부사장님!”
주호는 90도로 허리 숙여 깍듯이 인사하고 몸을 돌려 멀어졌다.
“어, 그래! ‘일’ 정해지면 연락할게!”
천문석은 골목 안쪽으로 사라지는 주호를 바라보며 짙은 아쉬움을 삼켰다.
“하, 이세기 새끼가 남중국 천검만 포기하지 않았으면 상해 타워에 집 한 채는 받아 낼 수 있었는데…….”
탄식과 함께 재금 빌딩 로비 입구를 향해 걸었다.
너무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이세기는 이미 천검을 그만뒀고, 주호는 개털이 된 상황이니까!
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어디서 초절정 무인을 부하로 거둔단 말인가?
얍삽한 품성, 사파 출신, 현직 악당이라는 사소한 단점들이 있지만 상관없다.
이세기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일석이조!
단혈철검 주호는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에서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 줄 거다!
“아직 초대장은 구할 방법도 찾지 못했지만 말이야.”
애써 스마트폰을 확인했지만, 워커 실트에게서 온 연락은 분통을 터트리던 어젯밤 문자가 마지막.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재금 빌딩 입구로 들어가 로비를 가로질러 특급 헌터와 이세기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곧 카페를 겹겹이 둘러싼 수십 명의 인파와 마주쳤다.
“뭐야,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골목에서 봤을 때보다 더 늘었는데? 연예인이라도 왔나? 이거 뭔가 위화감이 드는데…… 특급 헌터! 너 카페 안에 있냐?!”
한걸음 물러나 외치는 순간 인파 너머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앗! 알바! 여기야! 우리 빵, 커피 받고 있어?!”
“카페 사람 너무 많아서 못 들어가겠는데! 뒷문으로 나올 수 있냐?!”
“알바 잠깐만! 존잘 형! 알바가 못 들어오고 있대!”
“……존잘 형? 이세기?”
순간 이세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친구가 왔네요. 잠시 길 좀 열어 주시겠어요.”
“야, 그걸로 길이 열릴 리가 없잖아! 그냥 네가 특급 헌터 데리고 뒷문으로…….”
‘열릴 리가 있었다!’
순간 홍해가 갈라지듯, 인파가 쫙 갈라지고 길이 뚫렸다.
그리고 이 길의 끝에 서 있는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7만 9,900원 자신의 면접용 양복을 입은 이세기.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처럼 빛나는 잘생긴 외모는 그대로다.
그러나 수백의 인파 한가운데 서 있는 이세기는 또 달랐다!
비범(非凡)은 평범(平凡) 속에서 드러나고.
수천, 수만의 찬탄은 우상(Idol)을 만드는 법!
인파 속의 이세기는 더럽게 잘생긴 새끼 그 이상이었다.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뚝뚝 흘러넘치는 엄청난 카리스마!
수십 쌍의 숨죽인 시선이 이세기를 따라 움직인다!
“……!”
어느새 쩍 벌어진 길을 걸어 이세기 앞에 선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너 뭐 하냐?”
“돌멩이 왔냐?”
이세기가 겸연쩍은 듯 웃는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다급히 숨 삼키는 소리!
“빵이랑 커피 사라고 했잖아? 근데 이 카페는 기계로 주문해야 한다잖아? 내가 기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여기 직원이랑 이분들이 도와주고 계셨어.”
이세기가 가리키는 곳에는 키오스크가 있었다.
그리고 키오스크에는 유니폼을 입은 카페 직원 둘과 오피스룩의 회사원 셋이 매달려 있었다.
“……단팥빵이 우리 카페 시그니쳐 메뉴라니까요!”
“여기 단팥빵 싸고 양만 많지 별로예요. 세기 오빠한테는 레몬 마들렌이 어울린다니까요!”
“하- 뭘 들은 거람. 첫 출근이라 사무실 가져간다고 분명 말했는데…….”
“자, 자. 싸우지 말고 전부 따로 포장해서 고르시도록 하죠.”
……
‘뭐지,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천문석은 초현실적인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질문했다.
“……너 주문하는 걸 다섯 사람이 도와주고 있었다고?”
“아니 일곱 분. 두 분은 줄 게 있다고 창고 가셨어.”
“……줄 게 있다고?”
“이벤트 사은품. 방금 받았어.”
이세기가 눈짓한 테이블에는 봉투가 놓여 있었다.
바로 앞 매대에서 판매 중은 빵이 가득 담긴 봉투가!
“……아니, 이 빵 파는 거 아니었어? 그게 왜 사은품이야?!”
황당함에 말하는 순간 ‘솔’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여기 이 조각 케이크도 가져가세요! 사은품이에요! 우선 7개 준비했는데 모자라면 바로 연락 주세요!”
환한 미소를 띤 채 조각 케이크가 포장된 쟁반을 건네는 직원!
“감사합니다. 점장님.”
이세기가 웃으며 케이크를 받는 순간 물결치듯 미소와 웃음이 퍼져 나갔다.
카페 주위로 빙글빙글 줄을 서고, 빵을 고르고, 커피를 주문하며, 힐끗힐끗 바라보던 모두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환한 미소와 웃음!
“……!”
이 순간 천문석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카페에 모여든 인파의 99% 여자다.
이세기 주변은 장르가 달랐다!
자신이 다큐, 극한 직업, 체험 삶의 현장을 찍고 있을 때.
이세기는 혼자서 멜로, 로맨틱 코메디, 러브 시그널을 찍고 있었다!
“……!!”
무림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세기도 ‘0’, 제로에서 시작하게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다.
무림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마찬가지!
무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세기는 이세기였다!
아니 이세기의 파급력은 무림보다 한국이 더 컸다!
무림의 더럽게 잘생긴 새끼 이세기는!
한국에서 존잘, 얼굴 천재로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해 마음의 외침을 토해 냈다.
‘하, 인생! 이 망겜! 리셋 마렵네! 인생 난이도 밸런스가 뭐 이따위야!’
어젯밤 이문 설렁탕 도가니탕 사건에 이어 다시 한번 절절히 느꼈다.
연공서열의 필요성을!
하늘에는 연공서열이 필요하다!
‘하늘님! 제발 연공서열 도입 좀!’
벽에 막혀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대신 허리 아래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앗! 알바! 장난 아냐! 빵, 과자, 초콜릿이 막막 복사된다니까!”
파파파팟-
쪼그려 앉아 스케치북에 숫자와 이름을 휘갈겨 쓰고.
다다다다닷-
벌떡 일어나 한달음에 테이블 사이를 달리는 특급 헌터.
“여기 있어!”
“누나 얼른 받아!”
“내가 말한 명함이야!”
……
스케치북이 휙휙휙- 넘어가고, 빵, 과자, 초콜릿이 착착착- 넘어왔다.
“…….”
천문석은 또 다른 진실을 깨달았다.
특급 헌터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번호와 이름.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있었던 이세기와의 대화.
‘이 스마트폰 좀 이상해. 번호 알려 준 사람이 너랑 꼬맹이밖에 없는데. 계속 전화가 걸려와. 내 이름도 알더라니까? 원래 그런 거냐?’
‘어, 어 하다 눈탱이 맞으려고! 너처럼 생각하다 당한 사람 하나둘이 아냐! 정신줄 꽉 잡고 의심해야지! 까닥 잘못하면 눈탱이 맞고 전 재산 털린다!’
이세기가 말한 의문의 전화를 ‘보이스피싱’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전화는 보이스피싱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걸려온 ‘의문의 전화’, 그 진실을 지금 보고 있었다.
특급 헌터!
뭔가 이상한 사건이 터졌을 때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사건도 특급 헌터가 원인이었다!
“존잘 형 명함이야!”
특급 헌터는 스케치북 명함과 빵, 과자, 초콜릿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세기, 010-xxxx-xxxx]
자신이 아닌 이세기의 명함과!
한밤중 이세기에게 걸려온 의문의 전화 사건의 범인은 특급 헌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