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21화>
“알바! 빨리빨리!”
“잠깐! 이거 급한 전화야. 특급 헌터, 이세기랑 같이 로비…… 아, 카페! 저기 로비 안쪽에 카페 보이지?!”
천문석은 강화 유리벽 너머 로비 가장자리 카페를 가리켰다.
“저 카페에서 사무실 사람들 가져다줄 커피랑 빵 사면서 기다려. 여기 카드 받고!”
천문석이 던진 카드를 낚아채 달려가는 특급 헌터.
“잡았어! 잘생긴 형! 이쪽이야! 빨리빨리!”
“안에서 기다릴게.”
특급 헌터와 이세기가 로비로 사라지고 10초.
천문석은 후, 하- 심호흡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하, 하하- 주 대협! 갑자기 웬 전화……?”
-주 대협? 설마, 너 알고 있던 거냐?
‘와, 귀신 같은 녀석! 존댓말 한 번에 낌새를 눈치챘다고?!’
그러나 전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가 말해 줬다.
‘주호 이 녀석, 천검이 사라졌다는 확신이 없다!’
확신이 있었다면 전화를 거는 게 아니라 검을 들고 직접 찾아왔을 테니까!
그렇다면 대응 방법은 간단하다.
“뭐야? 갑자기 전화 걸어서, 뭘 알고 있다는 거야? 뭔 일 터졌냐? 급한 일이야? 내가 알아야 하는 일?!”
천문석은 오히려 질문을 쏟아 냈다.
-…….
주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깊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때로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법!
이 깊은 침묵에서 느껴졌다.
불안초조당혹!
설마 하는 감정!
간신히 붙잡은 희망!
순간 주호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삼합회의 반격에 상해의 이권을 통째로 날렸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천검에 올인했는데, 정작 천검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불안초조당혹! 설마 하는 감정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간신히 붙잡은 희망이 뚝 끊어질까 질문조차 하지 못한다.
-…….
전화기 너머 주호의 침묵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나서서 사실을 밝혀 봐야 원망만 쏟아질 뿐이다.
원래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천문석은 아무 대답 없이 질문을 기다렸다.
‘자, 얼른 물어봐라. ‘진실’을 말해 줄 테니까!’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곧 침묵을 깨뜨리는 질문이 들려왔다.
-천검이 남중국에서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던데 혹시 아는 거 있냐?
“하하, 하하하-”
우선 웃음부터 터트리고 말을 이으려는 순간 버럭 고함이 쏟아졌다.
-그 웃음! 미친! 진짜였어?! 너 언제부터 안 거야?! 미친놈이 알면 말해 줬어야지! 내 상하이 타워! 신철검장이! 으아아악-
폭탄 터지듯 쏟아진 괴성!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귀에서 뗐는데도 괴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전화라서 다행이었다.
직접 만났다면 당장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을 테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그렇지!”
천문석은 외침이 잦아든 순간 잽싸게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 말을 쏟아 냈다.
“주호,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상상해 봐! 만약 네가 상해에 있을 때 천검이 없어졌으면?! 지금쯤 삼합회 조폭 헌터들이 들이닥쳐서 쏟아부은 마탄에 걸레짝이 돼서 물고기 밥 됐다! 즉, 지금 넌 불운이 찾아온 게 아니라, 행운이 찾아온 거다! 긍정적 생각으로 이 위기를…….”
-긍정적 생각? 긍정적 생각이라고?! 야, 이 미친! 지금 전 재산을 날린 사람한테……!
진정되기는커녕 2배로 분노하고 있다!
“야, 진정되면 나중에 전화해!”
천문석은 잽싸게 전화를 끊었다.
이 순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게 할 소리냐?! 미친 또라이 새꺄! 당장 찾아가서 네놈 몸에 구멍을……!”
전화를 끊었는데도 주호의 분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등 뒤에서!
“……!”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
“……!?”
귀에 스마트폰을 대고 인파 속에서 나타나는 두 눈이 활활 타오르는 분노한 무인과!
“주호? 어떻게 여기에?!”
“집에 없어서 찾아왔다! 새꺄!”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전화의 장점이 사라진 상황!
천문석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외쳤다.
“주호! 힘을 내라! 언젠가 좋은 날이……!”
“뭐 좋은 날?! 너 만나고 좋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 시바시바! 그냥 처음부터 얽히지 않는 건데! 빌어먹을! 더럽게 재수 없는 새끼!!”
쿵쿵, 쿵쿵쿵-
당장 사생결단을 낼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걸어오는 주호!
“뭐야? 이 기파?!”
“싸움 났나 본데?!
“무공 각성자?!”
“야, 모두 모여! 싸움 났다!”
“간만에 무공 각성자 싸움이다!”
……
주호의 기파에 사방에서 모여드는 흥미진진한 시선들.
이대로 붙으면 국가 헌병대가 출동한다.
회기 파출소 사건으로 찍힌 국가 헌병대가!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도망쳤다.
타다다닷-
단숨에 화단을 뛰어넘는 순간.
파파파파팟-
납작 엎드려 화단 뒤를 미친 듯이 기었다.
화단과 재금 빌딩 외벽을 타고 도망치길 1분 30초!
대로를 빠져나와 골목에 도착한 순간 힐끗 뒤를 돌아봤다.
‘포기했을까?!’
“오늘 끝장을 본다!”
미끄러지듯 튀어나오는 주호!
주호의 오른손이 검대에 닿았다.
우우우웅-
섬뜩한 검명이 천지를 떨어 울리고!
파스스스슷-
초절정 무인의 기세가 칼날처럼 날아온다!
마공의 업을 벗었어도 천문석의 무혼에 새겨진 본질은 천마!
초절정 무인의 기세를 뒤집어쓰는 순간 분위기가 일변하고 투지가 끓어 올랐다.
천문석은 빙글 몸을 돌려 쿵-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내력이 폭발하고 산을 반으로 쪼개 버릴, 해일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좋다! 강대강! 정면에서 부러뜨려 주마!”
주호를 향해 몰아치려는 순간.
천문석은 벼락 치듯 깨달았다.
“……!”
어그로를 끌어 줄 강자!
워커 실트의 계획에 필요한 인물이 나타났다!
심마를 깨뜨리고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공!
지구에 떨어지고 1년도 안 돼 상해 삼합회를 집어삼킨 머리!
온갖 난장판에서 개같이 굴러도 멀쩡한, 사파 무림인 특유의 더럽게 끈질긴 생존력!
무공, 머리, 생존력!
거기에 난장판에 막 굴리기 좋은 악당!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인재가 나타났다.
단혈철검 주호!
천문석은 잽싸게 기세와 내력을 죽이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주 대협이 화를 내는 게 정상이다!’
‘자신이라도 상하이 타워가 날아갔으면 화를 냈을 거다!’
‘이성, 합리적인 어른은 주먹보다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하는 법!’
‘주 대협의 분노를 단숨에 날려 버릴 1석2조의 방법이 있다!’
‘천검을 대신할 새로운 인맥을 소개해 주는 거다!’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워커 실트를 소개하는 거다!’
된다! 이건 먹힌다!
확신과 함께 잽싸게 허리를 숙이려는 순간.
쿵-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주호의 기세가 돌연 멈췄다.
부르르 떨리는 몸, 경악으로 커진 눈.
주호의 시선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곳에 박혀 있었다.
“옆?”
문득 고개를 돌리자 강화 유리 벽 너머로 보였다.
재금 빌딩 1층 로비.
멀리 모여 있는 인파 사이에 있었다.
군계일학(群鷄一鶴).
특급 헌터와 이세기가!
주호의 경악한 시선은 이세기에게 꽂혀 있었다!
‘뭐야 이 녀석? 이세기가 천검 그만둔 거 알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놀라…… 잠깐?!’
‘-천검이 남중국에서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던데 혹시 아는 거 있냐?’
방금전 주호의 질문!
’주호 이 녀석 천검 이세기가 남중국에서 사라졌다는 것만 알았구나!’
즉, 주호는 이세기가 ‘천검’, ‘연방 총통’을 완전히 그만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깨달음의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어그로를 끌어 줄 강자이자, 김철수 사무실의 신입 사원을 환영하는 종소리가!
초절정 고수, 단혈철검 주호.
* * *
“…….”
주호는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벼도 변하는 건 없었다.
남중국에서 사라진 천검!
미래의 연방 총통이 강화 유리 벽 너머, 인파 속에 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보는 순간 초절정 고수의 직감이 말했다.
‘진짜 천검 이세기다!’
“천검? 천검이 왜 여기에……?!”
주호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잽싸게 끼어들어 대답했다.
“이세기 쟤 친구 보러 왔다더라.”
“친구라면 혹시……?”
“어, 맞아. 나 보러 왔대.”
“너였냐? 역시 너 때문에 내가 망했구나!!”
주호가 다시 검에 손을 올리는 순간.
천문석은 대범하게 양손을 들고 피식 웃었다.
“야, 넌 그 말을 믿냐?”
“뭐?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멈칫하는 주호.
‘이제 시작이다!’
천문석은 온 정신을 주호에게 집중한 채 입을 털었다.
“야, 생각해 봐? 이세기 새끼가 아무리 정상이 아니어도. 친구 좀 보자고 남중국 연방 총통 자리를 던져 버리고 왔겠냐?”
순간 주호의 눈을 스치는 번뜩임.
천문석은 주호의 생각이 훤히 읽혔다.
‘그렇다! 아무리 이세기라도 그럴 리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상황을 판단하는 법!
예상 그대로, 한결 누그러진 질문이 들려왔다.
“그럼 왜……?”
“글쎄 왜일까?”
천문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강화 유리 너머 이세기를 슬쩍 봤다.
“왜? 이세기는 연방 총선이 코앞인 이 중요한 시기에 남중국에서 자리를 비웠을까? 천검이 사라졌다는 ‘의도적인 소문’까지 내고?”
‘의도적인 소문!’
순간 주호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충성 경쟁! 가지치기! 충성심이 없는 쭉정이들을 골라내려고 일부러 자리를 비웠구나!”
주호의 경악한 외침.
천문석은 대답 없이 의미심장만 미소만 지었다.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법!
자신이 답을 하지 않아도 주호의 머릿속에서는 스스로 ‘원하는 답’을 끼워 맞출 테니까!
천문석의 예상대로였다.
주호는 ‘원하는 답’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권력은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는 법!’
‘천검이 스스로 권력을 놓고 남중국에서 사라졌을 리 없다!’
‘천문석 녀석이 말한 대로 가지치기다!’
‘맞아! 그렇지! 그게 아니면 이런 중요한 순간에 남중국에서 사라질 리 없지!’
‘연방 총선만 끝나면 남중국의 황제나 마찬가지인 연방 총통이 되는데!’
‘이세기가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황제 자리를 걷어찰 리 없다!’
‘충성 경쟁이다! 이제 곧 피바람이 불겠구나!’
‘잠깐 피바람이 분다면?!’
주호의 눈이 번뜩였다.
누군가의 위기는 반대로 누군가의 기회!
피바람이 불어 군벌 수장이 날아가면 권력 구조가 재편된다!
잃어버린 상해의 이권은 아무것도 아니다.
권력 구조 재편 과정에 끼어들 수만 있다면 철검장이 아닌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신도 왕과 같은 권력을 가진 군벌이 될 수 있다!
‘그걸 위해 해야 할 일은?!’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천검 이세기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거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천검 이세기의 친구, 천문석을 통해서!
“저 혹시 이세기 대협은……?”
주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을 때.
천문석은 말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알아서 헛다리를 짚었구나! 카캬캌-’
탁-
가볍게 어깨를 두들기며 가볍게 대답했다.
“이세기 우리 사무실 일하기로 했는데…….”
“네? 이세기 대협께서 천 대협의 사무실에서 일한다고요?!”
“맞아. 너라면 왜 그러는지 알겠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주호의 속마음.
‘쭉정이를 골라낼 때까지 몸을 숨기려는 거구나! 기회다!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 옆에 있을 기회!’
“대협 혹시……?”
주호가 반색해 조심스레 말을 이을 때.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호가 듣고 싶은 말을 했다.
“너도 혹시 우리 사무실에서…….”
“하겠습니다! 돈, 대가,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시켜만 주신다면 견마지로, 분골쇄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주호가 활활 끓는 열의를 담아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표정으로 반문했다.
“돈, 대가가 필요 없다고? 야, 당연히 대가는 네가 나한테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