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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320화 (1,32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20화>

주호는 경악한 얼굴로 반문했다.

“지금 뭐라고?”

심복은 참담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대답했다.

“상해가 삼합회에 완전히 먹혔습니다. 그리고 천검이 행방불명 됐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   *   *

“좋아. 정장에 와이셔츠. 간만에 직장인 같네.”

휴가 6일 차 아침.

천문석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외쳤다.

“특급 헌터, 이세기! 슬슬 출발하자! 오전에 끝내고 돌아와야지!”

“첫 출근 준비 다 끝났어! 잘생긴 형 얼른 나와!”

예전 호텔에 갈 때 입었던 양복을 입은 특급 헌터 뒤로 첫 출근 복장을 갖춘 이세기가 나타났다.

노타이 하얀 와이셔츠에 슬림핏 검은 양복.

와이셔츠까지 총 7만 9,900원인 자신의 면접용 양복!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옷걸이였다.

직각으로 떨어지는 넓은 어깨.

역삼각형 상체와 훤칠하게 쭉 뻗은 다리

곧게 뻗은 눈썹과 콧대.

카리스마가 철철 흘러넘치는 표정!

여기에 화룡점정!

‘와, 이 더럽게 잘생긴 새끼!’

보는 순간 탄성이 터지는 얼굴이 더해지자.

7만 9,900원 기성품 양복이 700만 원짜리 고급 양복으로 보였다!

여기에 소매에서 튀어나온 손목의 고급스런 시계가 포인트를…….

“시계? 그거 웬 시계야? 나한테 저런 시계가 있었나?”

“삼촌 시계! 삼촌은 안 쓰는 시계 엄청 많아! 시계회사에서 계속 선물 오거든. 이름 제일 멋진 거로 가져왔어. 오메가 헌터마스터! 잘생긴 형 첫 출근 복장 어때? 러브 시그널 이시언 옷을 참고해서 골랐어!”

“훌륭하다! 특급 헌터!”

“고맙다. 특급 헌터. 그런데 이 바지 다리가 좀…….”

천문석은 잽싸게 이세기의 말을 끊었다.

“특급 헌터, 출근이다!”

“출근! 내가 1등으로 출근이야!”

한달음에 거실을 가로질러 신발을 신고 옥상으로 달려 나가는 천문석과 특급 헌터.

“야, 같이 가야지!”

이세기는 피식 헛웃음과 함께 따라 달렸다.

다다다닷-

단숨에 건물 계단을 뛰어 내려와 성큼성큼 주차장을 가로지를 때.

천문석은 주머니에서 꺼낸 마스크를 건넸다.

“여기 마스크. 용용이 어디 갔는지, 오늘 미세먼지 장난 아니다.”

천문석, 특급 헌터, 이세기.

양복을 차려입은 셋은 마스크를 착착착 착용하고 김철수 사무실을 향해 출발했다.

“갈 때는 버스 타고 돌아올 때는 지하철 타자. 어차피 출퇴근하려면 계속 타야 하니까.”

“난 찬성! 이쪽 골목이 버스 정류장 가는 지름길이야! 길 잃어버리지 않게! 퐁퐁검 잘 보면서 쫓아와!”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빼 들고 골목길에서 앞장서고.

천문석과 이세기는 그 뒤를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아침 9시 10분,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텅 빈 골목에, 앞장선 꼬맹이와 뒤따르는 두 남자의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다닷, 다다닷-

딱딱, 딱딱딱-

이 순간 천문석은 기묘한 감흥을 느꼈다.

‘이세기와 같이 출근하는 날이 오다니!’

문득 이세기를 보자 무심결에 넘겼던 게 보였다.

어제저녁 하루 종일 동네 민원을 해결하고 돌아왔는데 오히려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나 지금 본 이세기의 얼굴에는 피로의 흔적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너 얼굴 왜 그래? 혹시 첫 출근이라고 잠 설쳤냐?”

“그건 아니고 전화가 계속 와서 잠을 못 잤어.”

“전화? 새로 개통한 스마트폰?”

이세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의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스마트폰 좀 이상해. 번호 알려 준 사람이 너랑 꼬맹이밖에 없는데. 계속 전화가 걸려와. 내 이름도 알더라니까? 원래 그런 거냐?”

“계속 전화 왔다고? 혹시 누구 번호 가르쳐 줬냐?”

“너랑 꼬맹이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가르쳐 줬어. 분명 모르는 사람, 모르는 번호인데. 내 이름을 알고 있더라고.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도 맞춰 보라고 웃기만 하고, 끊으려고 하면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간신히 전화 끊으면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는 거야. 결국, 새벽까지 계속 통화하다 스마트폰 꺼지고 잠들었어. 이게 무슨 일이지?”

의아한 눈으로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을 보는 이세기.

천문석은 이세기의 말을 듣는 순간 바로 감을 잡았다.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

누군지 모르는 상대가 아는 자신의 이름!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계속 이어지는 대화!

이런 이상한 전화의 정체는 생각할 것도 없이 하나뿐이다.

보이스피싱!

“와, 이 녀석 큰일 날 녀석이네! 야, 그냥 끊어야지! 왜 계속 대화를 해?!”

“내 이름도 알고, 끊으려고 할 때마다 이상하게 대화가 자꾸 이어져서 끊을 타이밍? 이럴 때 쓰는 말 맞지? 타이밍을 못 잡겠더라고.”

천문석은 앞장서 걷는 특급 헌터에게 질문을 던졌다.

“특급 헌터. 이런 전화 뭐지?!”

“보이스피싱!”

“그렇지! 네가 받은 전화, 보이스피싱! 사기야, 사기!”

“보이스피싱? 그 전화가 사기라고? 아니 사기랑은 뭔가 좀 다른 거 같은데…….”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

천문석은 이 허술한 모습에 버럭 외칠 수밖에 없었다.

“어, 어 하다 눈탱이 맞으려고! 너처럼 생각하다 당한 사람 하나둘이 아냐! 정신줄 꽉 잡고 의심해야지! 까닥 잘못하면 눈탱이 맞고 전 재산 털린다!”

“나 이세기야, 천검 이세기. 내가 눈탱이 맞을 사람 같냐?”

피식 헛웃음 뒤로 이어지는 자신만만한 표정과 목소리!

“야, 너 네이버 지식인에 낚인 게……!”

천문석은 버럭 외치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은 더는 이세기를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젯밤 얼굴 모르는 아이의 지식인 질문에 낚시 답글을 단 마도지존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러나 말문이 컥- 막힌 천문석을 대신한 통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냐! 보이스피싱은 누구나 눈탱이 맞는 피해자가 될 수 있어……!”

“그렇지! 특급 헌터 네가 잘…….”

반색해서 맞장구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말이 이어졌다.

“드래곤 형! 드래곤 형도 백수일 때 보이스피싱에 눈탱이 맞았어! 보이스피싱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절대 용서해서 안 되는 최악의 범죄야!”

‘드래곤 형? 이태성 길드장님이 보이스피싱에 당했다고?!’

이태성 길드장이 누구던가!

한국의 스팸 문자, 보이스피싱을 반의반 토막 낸 장본인!

이태성 길드장이야말로 스팸 문자, 보이스피싱의 천적 그 자체였다!

“그럴 리가!”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디테일한 대답이 돌아왔다.

“뭐?! 진짜야! 내가 직접 들었어! 드래곤 형 게임 끊고 취직하려고 혈맹 온라인 아이템 정리 한 돈 37만 8,900원! 전부 보이스피싱 전화에 눈탱이 맞고 털렸어!”

“……!”

이태성 길드장이 혈맹 온라인 유저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

게다가 37만 8,900원이라는 이 구체적인 숫자까지!

‘이건 진실이다!’

이 순간 한국 헌터 업계의 오랜 미스터리 중 하나가 풀렸다!

‘이태성 길드장은 어째서 보이스피싱 조직을 조지고 다니는가?!’

-친구가 당했다.

-부모님이 당했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다.

-그냥 보이스피싱 조직이 재수 없게 걸린 거다.

……

수많은 가설이 있었지만 모두 틀렸다.

바로 지금 진실이 드러났다!

1세대 헌터!

서울 수복 작전의 탱커!

오러 각성자 랭킹 부동의 1위!

길드 랭킹 1, 2위 태성 길드의 길드장!

거대 괴수의 직격조차 받아 내는 레이드 탱커!

광화문 성채 빌딩, 태성 빌딩의 주인이자, 조 단위 자산가!

이 모든 수식어의 주인공.

이태성 길드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눈탱이를 맞았다.

37만 8,900원을!

지금 이태성 길드장의 재산에 비하면 티끌이나 마찬가지인 액수!

하지만 이 37만 8,900원은 그냥 37만 8,900원이 아니다!

게임 폐인 백수 이태성이 폐인 생활을 청산하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나아가려던 꿈, 희망, 미래의 원동력 그 자체였다!

청년 이태성은 꿈과 희망, 미래이자 원동력인 37만 8,900원을 날렸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그 생각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가 알았다.

이태성, 세계 최강의 오러 각성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재앙이 됐다.

하부 조직이 있는 한국뿐 아니라, 그 뿌리가 있는 남북중국과 필리핀, 베트남, 태국, 라오스 같은 동남아까지!

그 결과 한국에 만연하던 도박, 리딩방, 쪼개기 스팸 문자, 보이스피싱 전화는 반의반 이하로 확 줄어들었다!

“와, 이런 비밀이 있었구나! 이걸 직접 들었다고? 너 이태성 길드장님은 언제 만난 거야? 아, 이번 회기 파출소에서 탈출할 때?!”

“아닌데? 드래곤 형이 아니라 삼촌한테 들었는데.”

“삼촌, 장철 헌터님이? 어떻게? 그렇지 같은 길드! 두 분 같은 혈맹 온라인 게임 같은 길드 출신이지!”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특급 헌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맞아. 삼촌도 같이 눈탱이 맞았대!”

“……뭘 같이 맞아?”

“보이스피싱 눈탱이! 삼촌이 가르쳐 주니까 드래곤 형이 분노해서 외쳤어.”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이태성 길드장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특급 헌터.

“야, 난 37만 8,900원이지만! 장철 넌 137만 8,900원! 보너스, 상여금 받은 거 다 날렸잖아! 제수씨가 이거 알면 넌 끝장이야! 끝장!”

“…….”

1세대 헌터 두 사람의 충격적인 비밀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 어떻게!”

“꺄아- 눈 마주쳤어!”

문득 고개를 돌리자 버스 정류장 넘어 도망치는 학생들이 보였다.

“……이세기 너 혹시 뭐 했냐?”

“응? 나 말하는 거야?”

마스크를 고쳐 쓰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세기.

“하여튼 보이스피싱 조심해. 모르는 전화는 바로 끊고.”

“돌멩이, 넌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내가 그런 사기에 당할 사람이냐?”

‘어, 너 그런 사기에 당할 사람이야! 완벽한 내단! 완벽한 내단 말이야 새꺄!’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삼키는 순간 특급 헌터의 외침이 들려왔다.

“273번! 알바! 김철수 사무실 가는 버스 왔어!”

“교통 카드 내가 찍을 게, 내 뒤로 타라.”

특급 헌터, 천문석, 이세기는 광화문 행 버스를 탔다.

이때 텅 빈 천문석의 옥탑방 앞에선 철검장 무사가 통화하고 있었다.

“장주님. 옥탑방 텅 비었습니다!”

“네! 아무도 없습니다! 인기척이 전혀 없습니다!”

“건물주 세대도 확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기척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모르니 강제로 따고 들어가서 확인…… 넷! 바로 철수하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철검장 무사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종로 사무실로 돌아간다!”

옥탑방 문 앞에 모여 있던 철검장의 무사들은 썰물 빠지듯이 사라졌다.

이 순간 이 모습을 보고 있던 화단 나뭇잎의 반짝이와 사슴이, 평상 아래 탱탱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 -

…… -

……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니케 부두목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셋은 눈빛만으로도 이심전심 뜻이 통했다.

왕-

탱탱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셋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초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햇살 아래 한껏 늘어졌다.

*   *   *

“저기에 네 사무실이 있다고?”

이세기는 익숙한 횡단보도 너머, 익숙한 성채 빌딩을 봤다.

익숙한 성채 빌딩, 익숙한 횡단보도!

청계천, 북한산 호수, 우이천,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난장판이 시작된 장소가 눈앞에 있었다.

‘이 횡단보도에서 경찰관에게 말을 걸지 않고 건너편 성채 빌딩으로 들어가 친우를 찾았으면?!’

“하하, 하하하-”

이세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올 때.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야? 그렇게 놀랐냐? 맞아. 우리 사무실 성채 빌딩에 있다! 저 재금 빌딩 13층……!”

“김철수 사무실 있어! 알바! 잘생긴 형 빨리 와! 파란불이야!”

“야, 좌우 확인!”

말할 필요도 없었다.

특급 헌터는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손을 번쩍 들고 휙, 휙휙- 쉴 새 없이 좌우를 살피며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넜으니까!

단숨에 횡단보도와 인도를 지나 도착한 재금 빌딩 앞.

“뭐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는 거 같지?”

“진짜 오랜만에 출근이니까!”

“이 빌딩 13층에 회사 있다는 거지?”

“맞아. 김철수 사무실.”

“우리 사무실 엄청 좋아!”

한마디씩 하고 성큼 로비로 발을 떼는 순간,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부르르-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꺼내자 보이는 이름.

주호!

천검 이세기와 연결하기 위해 정신없을 주호!

지금까지 문자만 보내던 단혈철검 주호가 전화를 걸었다!

천문석은 이름을 본 순간 직감했다.

뭔가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지금 주호에게 일어날 사건은 하나밖에 없다.

‘천검이 사라진 걸 알아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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