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17화>
배달 주문이 쏟아지는 혼란스러운 ‘점심시간’에 ‘배달 나라’ 로고가 박인 헬멧, 조끼, 가방을 멘 배달 라이더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곳이 천공의 섬, 전능 옥좌라 할지라도!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천문석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 전능 옥좌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섬이다.
치킨, 피자, 떡볶이, 족발, 보쌈, 돈까스, 삼겹살, 짜장면, 탕수육, 쌀국수…….
인구 천만 서울에 자리한 수많은 음식점이 천공의 섬에 모두 있을 리 없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하는 법!
천공의 섬에 자리한 회사원, 연구원, 경비용역, 시설 관리원, 기타 등등의 사람들은 당연히 서울의 음식 배달을 원할 거다.
그러나 천공의 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아득한 하늘이라는 위치!
배달 음식은 요금과 시간이 생명이다.
헬기, 비행기로 음식을 배달한다면?
요금과 시간 모두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간다!
음식값보다 비싼 배달 요금, 1시간씩 걸리는 배달 시간을 반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결과 비용, 시간이 많이 드는 헬리포트, 공항이 아닌 음식이 이동하는 ‘개구멍’이 생긴 거다!
즉, 워커 실트의 계획은 배달 라이더 복장으로 점심시간의 혼란을 틈타 ‘개구멍’을 통과해 천공의 섬에 올라가 ‘백도어’를 심는 거다!
완벽한 계획은 아니다.
실행 과정에서 튀어나올 수백 가지 문제점이 떠올랐다.
다른 헌터가 이런 계획을 세웠다면 뒤통수를 때려 줬을 거다.
그러나 이 계획을 세운 건 그냥 평범한 헌터가 아니라.
워커 실트, 재금 그룹과 양강을 이룬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다.
고래의 사정은 고래가 알듯이.
초거대기업의 사정은 초거대기업이 아는 법이고.
정점에 선 사람은 바닥에선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초거대기업의 오너 워커 실트가 세운 계획!
‘이건 해 볼 만 하다!’
천문석은 촉이 오는 순간 바로 외쳤다.
“좋아! 한번 해 보자! 될 거 같다!”
“당연하지! 대륙 최고의 마도 공학자인 내가 세운 계획이다!”
“그런데 개구멍은 어디에 있냐?!”
“광화문 게이트 링, 바로 옆.”
“게이트 링 옆이면 재금 연구소 계측 장비랑 시설이…… 아!”
천문석은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누가 천공의 섬에 개구멍을 뚫을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누가 그 개구멍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뿐이다.
“설마, 그 개구멍 뚫은 게?!”
워커 실트는 씩 웃으며 예상 그대로의 대답을 했다.
“맞아. 그 개구멍, 재금 연구소 애들이 뚫었다!”
이 순간 골목이 끝나고 보였다.
물결치는 수면을 뚝 잘라 내 수직으로 세운 거대한 타원, 광화문 게이트.
거대한 타원형 수면의 가장자리에 채워진 원형 고리, 게이트 안정화 장치.
최초로 열렸고, 최초로 안정화 장치가 설치된 광화문 게이트가 자리한 중앙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 광장의 모습은 예전 기억 그대로였다.
광장 중앙의 게이트.
게이트를 관통해 신서울로 이어진 철로.
철로 위를 달릴 트레일러가 줄줄이 연결된 열차.
열차가 대기 중인 중앙 광장 남쪽의 플랫폼!
그리고 자신과 워커의 목적지가 보였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연결된 굵은 케이블을 따라 어지럽게 설치된 천막과 장비, 컨테이너 구역, 기관총 진지.
게이트와 안정화 장치를 제어하고 지키는 재금 연구소와 헌터 부대가 있는 장소!
“개구멍 컨테이너 구역에 있다. 이쪽으로. 바로 움직이자.”
워커 실트는 광장 동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천문석은 워커 실트를 따라 동쪽 횡단보도를 지나 중앙 광장으로 들어갔다.
곧 미로처럼 복잡한 컨테이너 구역이 나타났다.
그리고 모든 게 워커 실트의 예상대로 진행됐다.
태블릿을 든 연구원, 소총을 파지한 헌터 부대 군인, 간이 사다리와 케이블을 옮기는 유지보수 인력 등등.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누구도 천문석과 워커 실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배달 나라’ 로고가 박힌 조끼, 헬멧, 보온보냉 가방을 보더니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투명 인간이 된 것처럼 컨테이너 구역 깊은 곳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된다! 제대로 먹히고 있다!’
천문석의 가슴속에서 희열이 끓어오를 때.
워커 실트는 한 톤 높은 목소리로 20여 미터 앞, 컨테이너를 가리켰다.
“Xe-106 저 컨테이너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그곳에’ 도착한다!”
‘그곳, 전능 옥좌로 올라갈 개구멍!’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조급해지는 마음을 억눌렀다.
여상한 표정, 태연한 걸음으로, 권태와 피로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점심 이상하네? 뭔 배달이 이렇게 몰리냐?!”
“그러게 말이야. 얼른 아카데미 행정실에 햄버거 배달하고 바로 다음 콜 받자.”
그리고 Xe-106 컨테이너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는 순간 20여 미터 앞에 보였다.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남짓.
직사각형 문 형태의 소형 게이트가 컨테이너 벽에 있었다.
아무 설명이 없이도 보는 순간 이 소형 게이트가 개구멍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소형 게이트 너머로 컨테이너 내부가 아닌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이 보였으니까!
자연광이 쏟아지는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 천공의 섬의 중앙 공원이다.
워커 실트의 말대로 소형 게이트, 개구멍은 천공의 섬, 전능 옥좌와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개구멍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다.
오른쪽 벽에 바짝 달라붙어 5미터 남짓 이어진 줄은 컨테이너 사이로 사라졌다.
“…….”
“…….”
알 수 없는 직감에 개구멍으로 걸어가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빨리 좀 움직여!”
“미친 거 아냐? 일정을 한 달이나 당긴다고?!”
“하- 내일모레 창립식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
“캐리어 끄는 사람은 여기 말고 헬리포트로 가라니까! 점점 느려지잖아!”
“아니 뭔 개구멍으로 사람들이 전부 다 모였어?!”
……
사방에서 쏟아지는 짜증 섞인 외침들!
5미터 남짓 줄을 선 십여 명의 목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수십 명은 된다!
곧 그 이유가 보였다.
십여 명의 사람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
컨테이너 사이 통로로 꺾여 들어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줄!
천문석은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여기 개구멍이라고 하지 않았냐?”
“……맞는데? 분명 여기가 개구멍인데?!”
“뭔 사람이 이렇게 많냐? 설마? 우리 이 줄 끝에서 기다려야 하는 거야?”
이 순간 외침이 들려왔다.
[배달 나라! 거기 배달 나라 두 분! 행정실에 햄버거 배달 오신 분 맞으시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개구멍 너머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네. 맞습니다!”
“햄버거 여기 있어요!”
반색해서 한달음에 달려가 개구멍을 뛰어넘으려는 순간 보안 요원의 굵은 팔뚝이 앞을 막았다.
“음식만 주세요. 제가 넘길게요.”
“네?”
“지금 과부하 걸려서 출입 제한 중입니다. 음식만 넘겨주세요.”
“……!”
“……!?”
천문석과 워커 실트의 시선이 마주치고 찰나의 순간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직접 넘어갈 수 있다며?’
‘괜찮아! 넘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 주면 된다!”
워커 실트는 단말기를 번쩍 들며 외쳤다.
“수령자가 맞는지 직접 확인……!”
[제가 스마트폰 던질게요! 받아 주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오는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반사적으로 낚아채 내미는 보안 요원!
“햄버거 60개 포장, 여기 배달 나라 주문 번호 보이시죠?”
“…….”
“…….”
곧 보온보냉 배낭이 열리고 햄버거 60개가 개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개구멍 너머 아카데미 행정실 직원은 천문석과 워커 실트, 배달 라이더 두 사람을 남겨 두고 사라졌다.
다시금 날 선 외침이 귀에 박혀 들었다.
“앞에 길 막지 말고 빨리 나와요!”
“지금 뒤에 사람 밀리는 거 안 보여요?”
“아, 좀! 거기 볼일 다 봤으면 빨리빨리 좀 움직입시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일 보세요! 여기 원래 배달용 개구멍이니까요!”
“자기들도 개구멍을 뚫던지! 왜 전부 다 우리 개구멍으로 모이는 거야?”
“아니, 이게 개구멍이야 정문이야?!”
“내 말이! 이러다가 추 수석한테 걸리면 개구멍 막히는데!”
……
“자 복잡하니까 얼른 빠져 주세요! 거기 배달오신 분! 줄 서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음식만 넘겨주세요! 김 일병! 교통 정리하자! 배달 끝낸 라이더분들 광장 밖으로 빨리빨리 빼내라!”
“넷! 박 상사님. 배달 나라 두 분 이쪽으로 오세요! 나가는 길 안내해 드릴게요!”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김 일병에 의해 중앙 광장 밖으로 이동 당했다.
“…….”
“…….”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망연자실 개구멍이 있는 컨테이너 구역을 봤다.
가운을 입은 연구원, 음식을 나르는 배달원, 카트를 미는 사람들이 컨테이너 구역으로 끝없이 들어갔다.
어느새 컨테이너 사이에서 튀어나온 줄은 컨테이너 구역을 벗어나 중앙 광장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전부 개구멍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개구멍에 엄청난 인파가 몰린 결과 배달 음식만 개구멍을 통과할 수 있었다.
즉, 배달 라이더로 위장해 개구멍을 통과, 전능 옥좌에 백도어를 심는 계획은 망했다!
천문석은 워커 실트를 봤다.
“너 혹시 다른 계획 있냐?”
“당연하지!”
“이 정도 변수는 상정 범위 안이다!”
“계획의 큰 틀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어!”
“게다가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다!”
“군단장이 태평양 건너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만 앵커 박으면 된다!”
“걔 도착하려면 일주일도 넘게 남았어! 우선 정보부터 수집하자!”
“정보 수집 후에 디테일을 손 봐서 다시 계획을 세우면 된다!”
……
동전을 넣으면 노래가 튀어나오는 주크박스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다다- 말을 쏟아 내는 워커 실트.
이 강렬한 기시감에서 느껴진다.
‘워커 실트 이 녀석, 올라갈 다른 계획 없구나!’
전능 옥좌 사전 조사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장났다.
백도어를 박기는커녕, 전능 옥좌에 올라가는 것조차 실패했으니까!
그러나 워커 실트는 포기를 몰랐다.
“정보 수집! 왜 갑자기 인파가 몰렸는지 알아보고 30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다다다닷-
워커 실트는 한달음에 인파를 향해 달려갔고.
천문석은 게이트 열차가 멈춰 선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데 30분은커녕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금 그룹에서 설립한 재금 아카데미의 창립식 일정이 갑자기 당겨지며 인파가 몰렸다.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게이트 지역의 정보 수집을 끝내고 염동 광장으로 나왔다.
워커 실트는 눈을 번뜩이며 말을 쏟아 냈다.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내일모레! 2일 후로 당겨진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이 절호의 기회다!”
“분명 1세대 헌터, 대형 길드, 대기업, 헌터 업계, 최상층 각성자들이 전부 모일 거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그 인파 속에 끼어 당당히 올라가는 거다.”
“남은 시간은 오늘, 내일 이틀!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건 둘이다!”
“어그로를 끌어 줄 강자와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초대장!”
“강자는 1세대 헌터가 있는 난장판에서도 버틸 수 있는 생존력이 있어야 한다!”
“오늘내일 강자와 초대장을 확보하고! 모레 당당히 올라가자!”
“그럼 다시 연락할게!”
다다다다닷-
워커 실트는 폭풍같이 말을 쏟아 내고 빙글 몸을 돌려 달려가며 외쳤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야, 그러지 말고 차라리…….”
천문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워커 실트는 염동 광장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창립식 끝나고 원래 계획대로 올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
들을 사람 하나 없는 외침이 허공에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