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16화>
“…….”
천문석은 잠결에도 감탄했다.
“와, 아직도 이런 스팸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있네. 열심히 사는데 선물을 줘야지…….”
이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는 분에게는 선물을 줘야 한다.
한국의 스팸, 보이스피싱을 반의반 토막 내 버린 인간 재해 이태성 길드장이라는 선물을!
“당신의 친구…….”
여전히 반쯤 감긴 눈으로 이태성 길드장에게 보낼 문자를 옮겨 적을 때 얼핏 보이는 내용.
“시조검 반드시 지참, 어?!”
순간 번쩍 눈이 떠지고 잠이 확 달아났다.
[※당신의 친구※ §§오늘 낮 12시§§ ★☆광화문 앞★☆ 사전조사 No무장☜☜ ♨시조검 반드시 지참♨WSWS]
스팸 문자가 눈에 박혀 드는 순간 자동으로 내용이 해석됐다.
‘나다 친구. 오늘 낮 12시, 광화문 앞에서 보자, 사전 조사니까 무장 없이 ‘하이브리온 시조의 검’ 반드시 지참하고 와라! WSWS.’
해외번호로 발신된 스팸 문자!
그러나 다시 보는 순간 보낸 사람이 누군지 감이 왔다.
자신에게 이런 문자를 보낼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스팸 문자 마지막에 박힌 WSWS.
W. S. 워커 실트!
‘사전조사!’
당연히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 ‘전능 옥좌 탈취 계획’의 사전 조사다.
자신이 휴가를 보내는 중에도 전능 옥좌 탈취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룹 본사가 있는 전능 옥좌는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상징이나 마찬가지!
성공하면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을 대놓고 적대하는 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전능 옥좌 탈취 계획에서 빠질 수도 없다.
이 계획을 세운 워커 실트는 또 다른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였으니까!
경투하사(鯨鬪鰕死)!
재금 그룹과 W. S. 인더스트리, 두 고래 사이에 낀 새우가 돼 버렸다.
“얽히지 않았어야 했는데…….”
뒤늦은 탄식과 함께 창문 밖 전능 옥좌를 바라볼 때 문득 소리가 들려왔다.
짤랑-
“하늘님! 제발제발! 아니라고 해 주세요!”
나무 상자에 500원 동전을 넣고 여명이 밝아 오는 하늘을 향해 헌터용 시계를 번쩍 들고 절절한 기원을 올리는 특급 헌터.
“너 지금 뭐 하냐?”
특급 헌터는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 완전히 까먹고 있던 거 기억났어!”
“까먹고 있던 거?”
“앙꼬 대장이 말해 준 피할 수 없는 운명!”
“피할 수 없는 운명? 그게 뭔데?”
“안 돼! 말 못 해! 하늘님한테 소원 빌고 전문가에게 물어봤어. 지금 말해 주면 부정 타!”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단호히 고개를 젓는 특급 헌터!
언제나 그러하듯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 사건이 튀어나올 거다!
일어나자마자 리어카를 끌고 고황 경로당 텔레비전을 수리하고 온 동네 민원을 처리한 휴가 2일 차처럼!
‘애써 찾은 평화를 깨트릴 수는 없다!’
천문석은 바로 말을 돌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 아직 해도 다 안 떴는데?”
“나 아까아까 일어났는데?! 빵야빵야 통천 도사 관장님 새벽 체조 교실도 다녀왔어! 앗! 세연 누나랑 경석 형 커다란 캐리어 끌고 나가는 것도 만났어!”
“세연이랑 경석이가 캐리어 끌고 나갔다고?”
“어. 세연 누나 학교 갑자기 일정 당겨져서 엄청 바쁘대. 경석 형은 도와주러 같이 가고 태희 누나는 나중에 만날 거라던데?”
“갑자기 일정이 당겨져? 뭔 소리야?”
“세연이 지금 급하다고 나중에 알바한테 따로 말해 주겠다던데?”
“그래? 아, 그러고 보니 세연이랑 이세기, 아직 얼굴도 못 봤네. 오늘 서로 소개하고 동네 안내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잡혀서…….”
이 순간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워커 실트와 약속이 잡히고 집주인 류세연이 자리를 비워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러나 지금 자신 앞에는 평생을 살아온 자신보다 우리 동네에 빠삭한 꼬맹이가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특급 헌터, 오늘 바쁘냐?”
“어, 나 오늘 엄청 바빠! 안녕안녕안녕 할 사람 엄청 많아! 검사 할아버지, 김 판사 할머니, 콤퓨타 세탁소 사장님, PC방 사장형, 최 총장 할머니, 이문 설렁탕 복순이, 국숫집 할머니랑 누나…….”
특급 헌터는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끝없이 이름을 말했다.
이름만 들어도 감이 왔다.
특급 헌터는 언제나처럼 온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다닐 거다.
휴가 2일 차 리어카를 끄는 자신과 함께 온 동네 민원을 처리했던 것처럼!
오히려 잘됐다!
여기에 이세기를 끼워 넣으면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다!
“잘됐네. 특급 헌터 일석삼조 퀘스트다!”
“일석삼조 퀘스트?!”
반색해 한달음에 소파로 달려오는 특급 헌터.
“어떤 퀘스트인데? 유종의……?”
“응 그거 아냐. 이세기 데리고 다니면서 동네 소개…….”
“뭐? 동네 소개! 알바 나 오늘 안녕안녕안녕 해야 해서 엄청 바쁘다니까!”
천문석은 잽싸게 말을 바꿨다.
“……야,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동네 소개하는 김에 너는 인사하고, 이세기는 민원 처리해 주면 되잖아? 며칠 전에 나랑 같이…….”
“고황 경로당 텔레비전 고치고, 할머니 국숫집 문 고치고, 총장 할머니네 유자 딴 것처럼? 잘생긴 형이랑 같이?!”
“그래! 바로 그거야! 그냥 인사하는 게 ‘하나’면, 이세기 소개까지 같이하면 ‘둘‘이지? 여기에 소개한 이세기가 민원처리까지 하면?”
“삼! 셋! 세 개! 그래서 일석삼조 퀘스트!”
특급 헌터가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일석이조를 넘어서는 일석삼조 퀘스트! 퀘스트 3개를 동시에 수행하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냐? 혹시 일석삼조 퀘스트는 특급 헌터에게도 무리면……?”
“그럴 리가 없잖아! 난 특급 헌터야! 지금 당장 잘생긴 형이랑 출동할게!”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티피로 달려가 퐁퐁검과 가방을 챙기고 다다닷- 옥상을 가로지르며 외쳤다.
“일석삼조 퀘스트! 잘생긴 형! 오늘 우리 할 일 엄청 많아! 빨리 일어나! 카카카캌-.”
휴가 2일 차와 똑같은 모습!
달라진 건 특급 헌터와 민원을 처리할 사람이 자신에서 이세기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이세기는 오늘 하루,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동네 민원을 처리하리라!
휴가 2일 차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세기 녀석이 지식인에 낚여 ‘완벽한 내단’을 가져온 복수는 절대 아니다.
이건 전부 이세기의 빠른 재활과 원만하고 즐거운 동네 생활을 위해서였다.
천문석은 소파에 다시 누우며 씩 웃었다.
“이세기 내 친구, 수고해라! 카캬카캌-.”
무한긍정 특급 헌터와의 짧은 대화는 천문석에게도 긍정적 마인드를 불어 넣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전능 옥좌 탈취 계획? 그냥 이름만 그렇겠지, 사전 조사하면 포기하겠지…….’
휴가 5일 차 아침.
천문석은 긍정적 마인드로 다시 담요를 덮고 꿀 같은 아침잠에 빠져들었다.
“좀 더 자야 해. 어제 너무 빡셌다.”
* * *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의 염동 광장.
“…….”
천문석은 자신 앞에 놓인 물건들을 봤다.
워커 실트가 꺼낸 헬멧, 조끼, 보온보냉 가방.
이 모든 것에는 같은 로고가 인쇄되어 있었다.
[배달 나라]
“…….”
천문석은 한참 동안 옷과 장비를 보다가 문득 시선을 내렸다.
“……그렇지! 이제야 제대로 작동하네! 주술은 이게 문제라니까! 살살, 살살. 된다, 된다! 들어간다! 끝까지 들어간다! 쑥, 쑥쑥-.”
배달 나라 헬멧, 조끼, 가방을 이미 착용한 꼬맹이가 쪼그려 앉아, 자신이 가져온 하이브리온 가문 시조의 롱소드를 한 뼘 남짓 작은 텀블러에 살살살 밀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하, 겨우 넣었네! 겹차원 텀블러야. 마법이 아니라 주술이라 마력 스캔에도 안 걸려! 얼른 옷 입어! 적당한 콜 뜨면 바로 게이트 지역으로 들어가자!”
“아니아니! 잠깐!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할 일이 뭐라고?!”
천문석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워커 실트는 휙휙-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배달 나라 조끼를 툭 친 후 하늘을 가리켰다.
“방금 말했잖아? 이 옷 입고 저 위에 백도어 앵커 박으러 간다고.”
천문석은 워커 실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봤다.
하늘에는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섬이 떠 있었다.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 전능 옥좌가!
‘사전 조사가 백도어를 심는 거라고?! 그것도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 전능 옥좌에? 미친! 진짜 전능 옥좌를 훔칠 생각이야?!’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앗! 콜 잡았다! 목적지는 아카데미 행정실…… 픽업할 음식은 햄버거! 좋아! 위치 가깝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야, 어디……?!”
워커 실트는 천문석의 보온보냉 배낭을 낚아채 한달음에 염동 광장의 인파 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인파에서 튀어나오며 외쳤다.
“배낭 받아! 앗 신호! 파란불! 야, 빨리 달려! 늦으면 조력자 사라진다!”
묵직해진 보온보냉 배낭을 던지듯이 안겨 주고 파란 신호등 너머 광화문으로 달리는 워커 실트!
“조력자? 이 배낭은 뭐야?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우선 따라와! 가면서 설명해 줄게!”
천문석은 잽싸게 조끼와 헬멧을 쓰고 보온보냉 가방을 메고 워커 실트를 따라 달렸다.
한달음에 횡단보도를 건너 도착한 게이트 지역 남쪽 입구, 광화문.
광화문 마력 스캐너를 통과해 바로 게이트 지역에 들어왔다.
“광화문 게이트 지역? 여기는 왜?!”
“이쪽이다! 빨리빨리! 조력자가 있는 지금 끝내야 한다! 빨리 따라와!”
다다다닷-
헌터들이 가득한 게이트 지역 거리를 달리길 10여 분.
워커 실트는 인적 없는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순간 발걸음을 늦춰 빠르게 걸었다.
“됐어! 여기서부터는 걸어도 시간 맞출 수 있어!”
“야, 왜 게이트 지역으로…… 아니 그보다 백도어 앵커? 우리 지금 저 위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에 백도어 박으러 가는 거냐?!”
‘야, 이 미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삼킬 때.
워커 실트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고 텀블러를 두들겼다.
“그래! 하지만 걱정할 거 없다. 이 텀블러랑 비슷하다. 백도어 앵커 비활성 상태에서는 절대 안 걸려!”
“결국에는 활성화해야 하잖아?! 그렇게 되면 걸리는 건 시간문제……!”
“당연히 대비책이 있다! 그냥 활성화하면 10분 안에 걸리겠지만, 인증 파문으로 보안 시스템 과부화를 걸 준비해 놨다. 걸릴 때까지 최소 1시간은 통제권을 빼앗을 수 있어. 그럼 성공이다!”
“1시간 동안 통제권을 뺐어? 전능 옥좌 탈취가 계획이라며?”
“최고의 사기, 궁극의 사기가 뭔지 아냐?”
워커 실트가 묻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피해자가 없는 사기, 당한 사람이 사기당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잠깐 너 설마?”
“맞아. 짭 전능 옥좌 통제권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 진짜 목적은 짭 전능 옥좌가 아니라…….”
“기동 병참 도시니까!”
“기동 병참 도시니까!”
이심전심!
천문석은 외치는 순간 깨달았다.
전능 옥좌를 통째로 훔치는 것과 1시간 동안만 통제권을 훔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서울 하늘에 떠 있는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 전능 옥좌를 훔치는 건 안 걸릴 수가 없다.
그러나 전능 옥좌의 통제권을 1시간 동안만 확보해 진짜 목적, ‘기동 병참 도시’를 지구에 부르는 건 가능성이 있다!
최고의 사기! 피해자가 없는,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범인을 밝히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의도’다.
진정한 ‘의도’를 모르는 단서는 꿰기 전의 구슬, 조립 전의 부품이나 마찬가지.
기동 병참 도시라는 ‘진정한 의도’를 모른다면 아무리 단서를 찾아도 헛다리를 짚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사는 곧 흐지부지되리라, 피해자가 없기에 수사 동력 자체가 없었으니까!
‘된다! 이건 가능성이 있다! 백도어 앵커만 박을 수 있다면 성공 확률이 확 올라간다! 가장 큰 문제는…….’
백도어 앵커를 박을 천공의 섬이 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천공의 섬에 올라가려면 헬리포트, 공항으로 가야지? 왜 광화문 게이트 지역으로 들어온 거야? 이 배달 라이더 복장은 또 뭔데? 조력자는 누구고?!”
워커 실트는 씩 웃으며 텀블러를 흔들었다.
“헬리포트, 공항으로 올라가면 이 텀블러 걸릴 가능성 있어. 여기 광화문 게이트 지역에 짭 전능 옥좌랑 연결되는 개구멍 있다. 이 배달 라이더 복장은 그 개구멍을 사용하기 위한 필수 장비다.”
“개구멍? 개구멍으로 올라가서 전능 옥좌에 백도어 박는다는 거야? 아무리 개구멍이어도 지키는 사람이…… 아, 조력자! 그렇지 조력자에게 백도어 건네주면 조력자가 개구멍을 통과해 위로 올라가는 거구나?!”
“조력자 사람 아닌데.”
“뭐……?”
“조력자는 시간이다!”
“시간이 조력자, 그게 무슨…….”
순간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워커와 자신의 헬멧, 조끼, 배낭! 이 모든 것에 박혀 있는 로고!
워커 실트가 보낸 문자!
그리고 현재시간!
배달 나라!
[§§오늘 낮 12시§§]
현재시간 12시 25분!
이 모든 것이 합쳐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음식 배달하는 배달 라이더로 개구멍을 통과해 천공의 섬에 올라 백도어를 박는 거구나! 그렇다면 조력자가 시간이라는 말은……!”
이 순간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동시에 외쳤다.
“점심시간!”
“점심시간!”
조력자는 ‘점심시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