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14화>
“네? 꿈에 가둬요? 물리면 큰일 난다고요? 이렇게 작고 예쁜 새끼 하늘다람쥐인데……?”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카페 주인.
적예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었다.
“여기 주문이요!”
“아, 네 정신 좀 봐! 혹시 필요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손님! 금방 갈게요!”
때마침 카운터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카페 주인은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그러나 카페 주인의 두 눈은 여전히 테이블에 잠든 새하얀 다람쥐에게 꽂혀 있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적예는 내심 웃었다.
“누가 상상이나 할까? 이렇게 귀여운 얼굴과 작고 몸 안에 담긴 무시무시한 능력을…….”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다.
조금만 운이 없었더라며 당한 건 자신이었다.
문득 손목에 시선이 닿자 그때의 아릿한 통증과 함께 기억이 떠올랐다.
이상한 꼬맹이를 제압하는 순간 우르르 항복하던 이상한 꼬맹이의 부하 요괴들.
그러나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이상한 꼬맹이는 탈출했고, 그 뒤를 추격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돌멩이.
기나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이라니!
그때 알게 됐다.
이 세계가 자신이 그토록 찾던 세계라는 것을.
이상한 꼬맹이는 자신과 돌멩이를 이어 주는 인과의 조각이었음을.
그리고 항복했던 이상한 요괴들을 모두 풀어 주고 간 옥탑방에서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인과의 조각 143개를 찾았다.
그 덕분에 돌멩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준비한 후생의 인연을 엿보고 손에 움켜쥘 방법을 찾았으니까.
‘바로 여기에!’
빙글 손을 돌리자 손 위에 도토리가 나타났다.
평범한 갈색의 도토리.
그러나 손 위를 구른 도토리가 깊게 잠든 하늘다람쥐에게 떨어지는 순간 파슥-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케페니안의 빛이 담긴 보물 도토리!’
돌멩이의 옥탑방에는 케페니안의 빛이 담긴 보물 도토리가 143개나 있었다!
적예는 심장이 콩콩-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케페니안의 빛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빙글 손을 뒤집자 다시금 손안에 나타나는 도토리.
적예는 도토리를 가볍게 움켜쥐고 그것을 다른 손 위에 잠든 다람쥐에게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번쩍 황금빛 안광이 쏟아졌다.
보인다!
대지의 끝에서 하늘의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거대한 흐름, 지극(地極)에서 천원(天元)을 향해 자라나는 인과의 나무가.
느껴진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를 잇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드는 인과의 조각들이.
-훌쩍 자라난 빛의 나무와 맥동하는 거대한 심장.
-이름을 받지 못한 샤와 갈망을 채우기 위해 탑을 오르는 무인.
-천공을 향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념 폭탄을 쏘아 올리는 이종족.
-경계 너머로 도망쳐 눈치 보는 이계의 마법사 둘.
-한낮의 빛처럼 너무나 당연해 그 실체를 느낄 수 없는 존재.
-사건·사고를 끌어당기는 거대한 인력의 주인!
……
밤하늘의 별처럼 미쳐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
이 모든 것이 인과의 조각이었다.
지금 봉신진(封神陣)이 새겨진 비단 손수건 위에 잠든 이 하늘다람쥐처럼!
적예는 문득 시선을 내려 꿈에 갇힌 하늘다람쥐를 봤다.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태워 세계의 나무를 키웠다는 원대륙의 상(上).
이 다람쥐는 세계의 나무를 키운 상의 빛이 가득한 세계, 케페니안의 차원 용병이었다.
엄청난 힘과 더 무시무시한 청구서로 유명한 차원 용병.
그야말로 천우신조로 봉신진을 발동하고 차원 용병을 꿈에 가둘 수 있었다.
“그 이상한 꼬맹이 정체가 뭐지? 어떻게 케페니안 차원 용병을 부하로 삼은 거지?”
차원 용병은 부유한 대요마조차 무시무시한 청구서에 감히 고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적예는 빙긋 웃으며 빙글빙글 손을 뒤집어 도토리를 떨어뜨렸다.
톡, 톡톡-
잠든 하늘다람쥐가 이불을 덮듯 도토리에 덮이는 순간.
딱, 딱딱-
테이블에 놓인 붉은 비단 손수건을 두들겨 봉신진을 변화시켰다.
이 순간 하늘다람쥐의 악몽은 반전했다.
깨애애앵-
무자비하게 도토리를 삼키던 늑대는 숲의 어둠으로 도망치고.
쏴아아아-
나무가 빗소리를 내며 흔들릴 때마다 황금빛 도토리 비가 쏟아졌다.
어느새 하늘다람쥐의 눈물이 사라지고 작은 눈과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키기기기-!
행복한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
적예는 옷소매를 걷어 물린 자국이 선명한 손목을 내밀었다.
“방금 악몽으로 나 물었던 건 쌤쌤이다?”
그리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솜털같이 부드러운 가슴을 쓸어 주며 말을 이었다.
“모든 게 끝나면 케페니안 보물 도토리 143개 전부 돌려줄게. 그럼 잘 부탁해…….”
파스스-
마력광과 함께 이름이 새겨진 다람쥐 모양 펜던트가 나타났다.
“니케.”
* * *
서울 밤하늘에 그 어떤 별보다 밝게 빛나는 별이 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공의 빛이 하나로 모여 찬란히 빛나는 별, 천공의 섬.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상징.
천공의 섬의 심장, 마도 엔진 통제실에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이 있었다.
[경고 마도 엔진 이상]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은 멍하니 통제실 디스플레이를 봤다.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
이 거대한 섬은 작은 도시나 마찬가지다!
이 거대한 섬을 하늘에 띄우고, 순환계를 유지하고,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통제하고, 막대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마도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
수없이 골머리를 썩였던 출력 저하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추이린! 지금 출력은?!”
김철수 발명가의 외침에 추이린은 번쩍 정신을 차리고 패널을 조작했다.
[마도 엔진 출력 43%]
디스플레이에 뜬 수치에 김철수 발명가는 기함했다.
“40%를 넘겼다고? 어떻게?!”
“지금 40% 문제가 아니에요! 이 속도면 72시간 안에 50% 넘어갑니다!”
김철수 발명가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반 이상을 더미 슬롯으로 교체했는데?!”
“설마, 더미 슬롯이!”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의 시선이 마주치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은 통제실 벽으로 달려갔다.
숫자가 새겨진 직사각형 격자가 벽 전체를 가득 채웠다.
이 격자 하나하나가 마도 엔진에 마력을 공급하는 정제 마석 슬롯이었다!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은 정제 마석 슬롯의 잠금장치를 풀고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푸슈, 그르르륵-
격자가 서랍 열리듯 뽑혀 나오는 순간 마력광이 쏟아지고 가지런히 세팅된 육각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 10칸, 세로 10줄, 총 100여 개의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이 마력광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마력광이라고?!”
“이 슬롯도 마찬가지예요!”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은 반사적으로 뽑아낸 슬롯의 번호를 확인했다.
[0202x] [0711x]
일련번호 뒤에 x자가 붙은 더미 슬롯이 맞다!
더미 슬롯에 세팅된 육각기둥, 액화 정제 마석이 충전되지 않은 텅 빈 육각기둥에서 마력광이 흘러나오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
푸슈, 그르르릇-
두 사람은 정신없이 더미 슬롯을 뽑아내 확인했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0707x, 0807x, 1010x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곧 깨달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전부 마찬가지다!
더미 슬롯에 세팅된 텅 빈 육각기둥에 마력이 충전됐다!
그것도 초고순도의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과 비슷한 순도의 마력이!
“어떻게?”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김철수와 추이린은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남중국에 가게 된 이유!
난장판이 된 종로 뒷골목에서 발견한 빛의 나무!
“빛의 나무!”
“마도 엔진 공명 현상?!”
“분명 봉인했는데?!”
“혹시 모릅니다! 우선 확인부터!”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바로 보안 코드를 해제하고 3중 격벽을 열고 마도 엔진룸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도 엔진룸에는 예상 그대로, 아니 예상을 뛰어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빛의 나무와 마도 엔진이 공명하고 있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규모로!
빛의 나무가 그려진 벽은 봉인, 단절, 왜곡 마력 회로가 겹겹이 새겨진 강화 강철 프레임과 강화 유리 감옥에 갇혀 있었다.
빛의 나무는 마치 유리를 통과하는 빛처럼 사방으로 가지를 뻗었다.
그림이 그려진 벽, 마력 회로가 새겨진 강화 강철 프레임, 마력장을 차단하는 강화 유리 벽. 그 무엇도 빛의 나무를 막지 못했다.
작은 벽에 그려진 빛의 나무는 어느새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빛의 나무로 자라나 있었다!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반사적으로 정제 마석을 꺼내고 마력 파문을 일으켰다.
파스, 파스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파문이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파문이 빛의 나무에 닿는 순간 보였다.
바람에 벚꽃잎이 흩날리듯.
수천수만의 마력결정체가 흩날린다.
벚꽃잎처럼 흩날리는 마력결정체는 거대한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같은 곳으로 흡수됐다.
이 거대한 부유 도시의 심장, 마도 엔진으로!
구우우우우우우-
마치 노래하는 듯한 진동이 울려 퍼지는 마도 엔진!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넋을 놓고 이 광경을 바라봤다.
[‘빛의 나무’가 게이트 마력장을 정제해 마력결정체를 쏟아 내고, ‘마도 엔진’은 이 마력결정체를 흡수해 출력이 상승한다.]
빛의 나무를 이곳으로 옮겼을 때 이미 알아낸 현상이다.
그 결과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이 채워진 슬롯 수천 개로도 불가능했던 마도 엔진 출력 30%의 벽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광경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외벽에 그려진 그림인 빛의 나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봉인을 뚫고 자라나 스스로 마도 엔진과 공명해 어느새 마도 엔진 출력은 43%를 넘었다!
20%대 출력으로 이 거대한 섬을 허공에 띄우고, 공원, 식량 타워, 순환 플랜트, 십만 단위 사람이 사는 도시를 유지할 에너지를 만들어 냈다!
30%대 출력을 뚫었을 때는 마력 안테나, 광대역 스캐너, 차원 좌표 검색기, 천공탑 유도기…….
출력이 부족해 사용하지 못하던 기능과 존재조차 몰랐던 기능이 활성화됐다.
40%대 출력을 넘어서자 더미 슬롯에 세팅된 텅 빈 육각기둥이 충전되고 있다.
50, 60, 70% 출력에선 무엇이 나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 이렇게 마도 엔진이 출력이 올라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
“…….”
김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전 세계 상위 0.01%의 마력 각성자이자 마도 공학 기술의 선두를 달리는 재금 그룹의 최상층이었다.
그런 두 사람도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철수 발명가는 홀린 듯이 공명하는 빛의 나무와 마도 엔진을 바라봤다.
이해할 수조차 없는 현상을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오너를 모셔야겠다.”
“……!”
추이린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탄,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개발자.
이 거대한 천공의 섬을 하늘에 띄운 천외천의 마력 각성자.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재금 그룹의 오너, 전능 옥좌의 주인을 마침내 만난다!
“그럼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준비는 미루도록 할까요?”
“아니. 더 성대하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초대한다.”
“네? 오너가 오시는데…… 아!”
추이린은 반문하는 순간 김철수 발명가의 생각을 알아챘다.
“숲에 나무를 숨긴다!”
“전능 옥좌를 주시하는 눈은 하늘, 지상, 회사 어디에나 있다. 그 눈을 모두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의 인파에 오너를 숨긴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추이린은 대답과 동시에 움직였다.
‘마도 엔진에 언제 이상이 생길지 모른다. 최대한 일정을 당겨야 한다!’
추이린과 김철수 발명가는 적예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